넷플릭스 vs ISP, '이용자 볼모 게임'

- 시청자 볼모로 잡는 넷플릭스와 인터넷 망 인프라로 갑질하는 ISP의 싸움?

넷플릭스와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의 망 이용료 분쟁이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현재 국내 ISP 중 하나인 SK브로드밴드와 소송 중입니다. 국내 ISP와 국회·정치권에서는 넷플릭스에게 합당한 망 이용료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면서, 대형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망 이용료 지급을 의무화하는 입법안을 추진 중입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자사의 원칙을 고수하며 물러날 기색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시청자를 볼모롤 잡고 우리나라 ISP와 정부의 정책에 대해 은근히 협박(?)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죠.

최근 우리나라 여야 국회의원들,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글로벌 플랫폼의 합리적인 망 이용대가 지불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방법 모색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국회 차원에서 관련 입법 움직임이 활발하고, SK브로드밴드와의 1심 소송에서 패소한 넷플릭스는 본사 정책총괄 부사장을 한국에 보내 '수습'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 수습은 망 이용료를 내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행위에 그쳐 보입니다. 3일 방한한 딘 가필드 넷플릭스 부사장은 정부 관계자와 국회의원을 잇따라 만났지만, 기존의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신 화두를 한국 콘텐츠 시장에 대한 투자로 돌리는데 집중했습니다. 가필드 부사장은 넷플릭스가 그간 한국 콘텐츠 생태계에 적극 투자해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콘텐츠에 7700억원을 투자했고, 2021년 한해 동안엔 한국 콘텐츠에 5500억원을 투자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이 정도의 투자를 하는 고마운 존재니, 투자자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거둬라'라는 압박으로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넷플릭스로서는 망 중립성 원칙을 훼손하는 낡은 정책이 플랫폼 사업자와 소규모 콘텐츠 사업자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전략일 것입니다.

ISP, CP와 소비자에게 이중으로 돈을 걷는다는 지적 피할 수 있나?

양측의 입장이 극과극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입장에 따라서, ISP가 인터넷망 인프라를 가지고 넷플릭스 같은 CP에게 갑질을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것이죠. 넷플릭스는 이번 논란에 대해 ISP가 소비자들에게 이용료를 받고, CP에게도 망 이용료를 이중으로 받으려는 것이라고 맹 비난하고 있습니다.

사실 국내 ISP가 제공하는 IPTV 서비스를 보면 비슷한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소비자가 이미 돈을 주고 구입한 VOD 영상을 보려면, 그 앞에 광고가 붙어 나오는 경우입니다. IPTV 사업자는 소비자에게 유료로 돈을 받았음에도 광고를 붙이는 행위를 했었는데 과거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던 적이 있죠.

물론 이를 지금의 망 이용료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 창작자에 대거 투자하는 것은 결국 자사의 콘텐츠에 대한 투자입니다. 일각에서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가 저작권을 가지는 구조에서 나온 콘텐츠이므로, 한국 콘텐츠가 아니다"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합니다. 최근의 망 이용료 논란이 오징어게임의 흥행으로 더욱 부각됐기에 넷플릭스도 발빠르게 나섰죠. 

이를 의식한 듯 딘 가필드 부사장은 한국을 찾아서 오징어게임 제작사에게 흥행 수익에 따른 추가적인 보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수습'성 발언을 했습니다.

넷플릭스가 기자간담회 "망 이용료 내라면 내겠지만, 소비자 구독료 인상 고려"

그리고 4일, 넷플릭스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가필드 부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넷플릭스의 주장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이를 언론을 통해 알리기 위한 자리인 것이죠.

가필드 부사장의 발언을 요약하면, "넷플릭스는 자사의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인 오픈커넥트 기술을 통해 트래픽을 줄여서, 피크타임에도 전체 트래픽 비중의 2%만 쓰고 있다. 그러므로 ISP에 망 이용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 해외 어느 ISP에도 망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넷플릭스가 자체 개발한 오픈커넥트 기술을 ISP에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으니, 오히려 ISP가 감사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4일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자사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자체 CDN인 ‘오픈 커넥트 어플라이언스(OCA)’에 한화 1조원을 가량을 투자해 개발했고, 142개국에 1만4000여 개 이상의 OCA를 무상 보급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OCA를 활용하면 넷플릭스 트래픽을 최소 95%에서 최대 100%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인데요. 가필드 부사장은 현재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000개 이상의 ISP가 OCA의 혜택을 무상으로 누리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OCA는 ISP 망 내부 어디에나 설치할 수 있어 콘텐츠를 원거리에서 수신해도 추가 비용이 없다고 하네요. 2020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ISP가 OCA를 도입해 절감한 비용은 약 1조4100억원(약 12억 달러)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또한 그는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는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플러스가 CDN을 도입해 ISP에 우회적 망 이용료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넷플릭스는 디즈니, 애플과 접근방식이 다르다. 그들은 자사에 합리적인 방식을 택한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넷플릭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들인다고 하더라도, 아쉬운 부분이 남습니다. 앞서 가필드 부사장이 주요 정책 책임자들과 만나 한국에 대한 콘텐츠 투자를 강조한 것과도 관련이 있는 부분입니다.

이날 간담회에서 가필드 부사장은 망 이용료 부과 입법안이 통과될 경우 "각국의 입법과정에 대해 존중한다"라고 짧게 언급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의 정책에 따라 망 이용료를 내더라도 넷플릭스 구독료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다만 한가지 조건을 달았습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이래 한 번도 구독료를 올리지 않은 상태라 요금 인상에 대한 검토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언급입니다.

이 말 역시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죠. 망 이용료를 부과하게 한다면 넷플릭스가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겠다는 일종의 압박으로 느껴지는 것은 피해망상일까요?

김효정 기자

hjkim@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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