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폭주에 꿈틀거리는 전기차 시장, "이제 ‘착한 차’가 ‘살아남는 차’다"

  • 중국의 글로벌 시장 장악…더 거칠어진 가격 경쟁
  • 유가 급등과 보조금 변화, 변하고 있는 전기차 산업의 방향

전기차를 바라보는 기준이 바뀌고 있다. 한동안 이 산업은 친환경 전환의 상징처럼 다뤄졌지만, 최근 시장은 전혀 다른 언어로 움직인다. 소비자는 충전 속도보다 유지비를 따지고, 기업은 기술 우위보다 판매 비중과 수익 구조를 먼저 본다. 지금의 전기차 시장은 명분보다 가격, 기대보다 점유율, 선언보다 실적이 앞서는 산업으로 재편되는 중이다.

■ 세계 시장의 중심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다

지난해 세계 전기차 판매는 다시 늘었다. 전 세계 판매량은 2,070만대로 집계됐고, 증가율은 20%였다. 그중 중국이 1,290만대를 소화했고, 유럽은 430만대, 북미는 180만대, 기타 지역은 170만대를 기록했다. 비중으로 환산하면 중국이 약 62.3%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세계 전기차 시장의 축은 이미 중국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다. 유럽은 20.8%, 북미는 8.7% 수준에 머물렀다. 전기차 시장을 세계적 경쟁 구도로 설명할 수는 있어도, 실제 무게중심은 사실상 중국 단일 시장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성장률이 아니다. 전기차는 이제 자동차 시장의 주변부가 아니라 판매 구조를 바꾸는 본류가 되고 있다. 세계 전기차 판매는 2024년에 이미 1,700만대를 넘어섰고, 신차 판매 가운데 비중도 20%를 웃돌았다. 2025년에는 2,000만대를 넘어서며 전체 신차의 4분의 1 수준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제시됐다. 이 정도면 전기차는 새로운 선택지라기보다, 주요 시장에서 구매 기준 자체를 흔드는 품목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 중국은 더 이상 선두주자가 아니라 기준점이 됐다

중국 시장의 변화는 특히 압도적이다. 2024년 중국의 전기차 판매는 1,100만대를 넘어섰고, 연간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 비중은 50%에 근접했다. 올해는 판매량이 1,400만대 이상으로 늘고, 비중도 60% 수준까지 오를 가능성이 제시돼 있다. 이쯤 되면 중국은 전기차 전환을 추진하는 시장이 아니라, 전기차를 새로운 표준으로 받아들인 시장에 가깝다. 가격, 배터리, 생산 규모, 수출 경쟁력까지 연결되는 현재의 시장 질서는 사실상 중국이 만든 규칙 위에서 돌아가고 있다.

같은 시기 북미는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줬다. 전기차 판매는 180만대로 줄었고, 연간 기준으로 4% 역성장을 기록했다. 세액공제 종료 이후 미국 시장의 탄력이 약해졌고, 캐나다 역시 보조금 축소의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유럽이 같은 해 33% 성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미의 후퇴는 더 뚜렷하다. 이 대목은 전기차 시장의 민감한 속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기술이 뛰어나도, 정책이 물러서면 수요는 금방 움츠러든다. 전기차 산업이 여전히 보조금과 세제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사실이 숫자로 드러난 셈이다.

업체별 구도는 더 분명하게 갈렸다. 2025년 4분기 글로벌 순수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BYD 15%, 테슬라 10%, 지리 홀딩 9% 순으로 집계됐다. 분기 판매량만 놓고 봐도 BYD가 약 70만대 수준으로 선두를 지켰고, 테슬라는 감소세 속에 2위에 머물렀다. 한때 전기차 시장은 테슬라가 기준이었지만, 지금은 중국 업체들이 시장 표준을 새로 쓰는 국면으로 넘어갔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BYD의 전기차 'DOLPHIN'. (사진=BYD 홈페이지)

■ 연간 실적은 상징보다 냉정했다

연간 수치에서는 격차가 더 선명하다. 2025년 BYD의 순수전기차 판매는 225만6,714대였고, 테슬라의 연간 인도량은 163만6,129대였다. 상징성과 브랜드 파워는 여전히 테슬라의 강점이지만, 시장은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팔아내는 기업 쪽으로 움직인다. 지난해는 그 변화를 체감이 아니라 숫자로 확인한 해였다. 이제 전기차 시장에서 우위를 설명하는 방식도 ‘혁신 기업’보다는 ‘대량생산과 가격 경쟁력’ 쪽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실적도 흐름을 뒷받침한다. 테슬라는 2025년 총매출 948억2,700만달러, 자동차 매출 695억2,600만달러를 기록했고 차량 인도량은 163만6,129대였다. BYD는 매출 8,039억6,500만위안, 지배주주 순이익 326억1,900만위안, 신에너지차 판매 460만대를 올렸다. 해외 수출은 105만대, 해외 매출은 3,107억위안으로 집계됐다. 순수 전기차 브랜드 이미지와 별개로, 외형과 확장 속도에서는 BYD가 훨씬 빠르게 판을 넓히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한국 시장은 반등했지만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국내 시장은 지난해 확실히 되살아났다. 신규 등록 전기차는 22만177대로 늘었고, 증가율은 50.1%였다. 침투율도 13.1%로 올라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2년 연속 이어졌던 둔화 흐름이 일단 멈췄다는 점에서 반등으로 볼 만하다. 다만 이 회복을 국내 업체의 일방적 반전으로 읽기는 어렵다. 시장이 커진 만큼, 경쟁자도 함께 커졌기 때문이다.

브랜드별 점유율은 기아 27.5%, 테슬라 27.2%, 현대차 25.2%로 나타났다. 간격은 크지 않았지만 시장의 질감은 달라졌다. 국산 전기차 비중은 57.2%로 내려앉았고, 수입 전기차는 42.8%까지 올라왔다. 특히 중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는 7만4,728대로 1년 새 112.4% 급증했고, 전체 시장에서 33.9%를 차지했다. 한국 전기차 시장을 더는 국내 제조사 중심의 내수시장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의 경쟁은 사실상 글로벌 가격전이다.

모델별 판매 순위가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 1위는 Tesla Model Y로 5만397대였다. 기아 EV3는 2만1,254대, 현대 아이오닉 5는 1만4,275대였다. 이 결과는 소비자가 이제 제조국보다 실구매가, 상품성, 체감 만족도를 우선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전기차 시장에서 브랜드 서사보다 가격 조건이 훨씬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들어 국내 전기차 판매는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차의 3월 국내 전기차 판매는 7,809대로 전년 동기 대비 38% 늘었고, 1분기 누적 EV 판매는 1만9,040대로 집계됐다. 같은 시기 국내 전기차 등록이 전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는 흐름도 확인됐다. 보조금 조기 집행, 가격 경쟁, 신차 출시가 맞물린 결과로 읽힌다. 한국 시장은 회복 국면을 넘어 재가속 단계에 들어선 모습이다.

국내 업체들의 전략도 흥미롭다. 현대차는 2025년 매출 186조3,000억원, 글로벌 판매 413만8,389대를 기록했고, 전동화 차량 판매는 96만1,812대로 27% 늘었다. 이 가운데 EV는 27만5,669대였다. 기아는 매출 114조1,000억원, 글로벌 판매 313만5,873대, 전동화 차량 판매 74만9,000대, EV 판매 23만8,000대를 기록했다. 두 회사 모두 순수 EV에만 집중하기보다 EV와 하이브리드를 함께 키우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다. 수익성과 판매량을 동시에 지키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기아자동차 전기차 'EV5'.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홈페이지)

■ 이란 전쟁은 전기차 시장의 변수를 다시 키웠다

여기서 이란 전쟁은 단순한 지정학 이슈를 넘어 자동차 시장의 변수로 떠올랐다. 전쟁 이후 브렌트유는 약 42% 상승해 배럴당 103.78달러 수준까지 올랐고, 싱가포르 경유 가격은 104%, 휘발유 가격은 91% 급등했다. 유가가 이 정도로 뛰면 전기차는 친환경 소비재가 아니라 연료비 회피 수단으로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최근의 시장 반응은 전기차 수요가 여전히 유가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시장 반응은 각국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호주에서는 3월 EV 대출이 100% 늘었고, 기업의 관련 금융 문의도 88% 증가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주간 EV 등록이 직전 주보다 거의 두 배 늘었다. 미국에서는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배터리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탐색 비중이 20.7%에서 22.4%로 상승했다. 한국 역시 같은 흐름 안에 놓여 있다. 고유가가 길어질수록 전기차는 환경의 언어보다 경제의 언어로 다시 해석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고유가가 곧바로 판매 폭증을 뜻하지는 않는다. 분명한 한계도 있다. 미국 시장에서 신차 EV 평균 가격은 5만5,300달러로, 비전기차 평균 4만8,768달러보다 여전히 높다. 관심이 늘어도 실제 구매는 가격, 충전 인프라, 잔존가치, 유지 편의성까지 모두 따진 뒤 결정된다. 유가 급등은 전기차의 경제성을 부각시키는 계기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시장을 폭발적으로 키우는 만능 변수는 아니다. 결국 관건은 제조원가 하락과 구매 장벽 완화다.

장기 흐름을 보면 시장의 성격은 더 선명해진다. 전기차 확산으로 2024년 하루 130만배럴 이상의 석유 수요가 대체됐고, 2030년에는 하루 500만배럴 이상이 대체될 가능성이 제시돼 있다. 이쯤 되면 전기차는 자동차 산업 내부의 기술 전환만이 아니라, 국가의 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수단으로도 읽힌다. 최근의 전쟁이 남긴 가장 큰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석유 가격이 흔들릴 때마다 소비와 산업 전체가 함께 흔들리는 구조를 언제까지 감당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전기차 시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세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성장이 모든 기업과 모든 국가에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이미 규모와 가격을 앞세워 판을 넓히고 있고, 유럽은 정책으로 속도를 유지하려 한다. 북미는 인센티브 축소의 후유증을 겪는 중이며, 한국은 반등에 성공했지만 경쟁 강도는 더 높아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멋진 미래를 말하느냐가 아니다. 누가 더 싸게 만들고, 더 많이 팔고, 더 넓은 시장으로 빠르게 나가느냐다. 지금 전기차 시장은 기술 낙관론보다 훨씬 냉정한 숫자의 질서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김광우 기자

kimnoba@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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