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인공지능(AI)의 경쟁 기준이 '얼마나 빨리 답하느냐'에서 '언제 말을 시작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고객센터에 전화했다가 자동응답 시스템이 말을 중간에 끊어 처음부터 다시 말한 경험은 누구나 있다. 반대로 말을 마쳤는데도 대답이 없어 "여보세요?"를 되풀이한 적도 있을 것이다. 이번 주 국내외에서 잇따라 나온 음성 AI들은 바로 이 불편을 겨냥했다. 핵심은 상대의 말이 끝났는지 알아채는 '발화 종료 감지(턴 감지)' 기술이다.
프랑스 AI 기업 미스트랄AI는 10월 20일(현지시간) 음성 AI 모델군 '복스트랄 3(Voxtral 3)'를 공개했다. 사람의 말을 글자로 받아 적는 음성인식 기능은 한국어를 포함해 50개 언어를 지원한다.
이 AI는 목소리의 높낮이 같은 소리 정보와 문장이 마무리됐는지 같은 의미 정보를 함께 따져 말이 끝나는 시점을 예측한다. 고객의 말을 섣불리 자르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고객이 AI의 말 도중에 끼어들면 AI가 곧바로 말을 멈추는 기능도 갖췄다. 미스트랄은 듣고, 생각하고, 답하는 한 번의 주고받기를 1초 안에 끝낸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자체 서버에 설치하면 통화 내용을 외부로 내보내지 않고도 쓸 수 있다.
같은 날 음성 AI 스타트업 일레븐랩스는 '일레븐 리얼타임(Eleven Realtime)'을 내놨다. 일상 대화용 '미니'와 고객 상담 같은 복잡한 업무용 '맥스' 두 가지로, 90개 이상 언어를 지원한다.

일레븐랩스는 그동안 음성 AI가 '빠른 답'과 '정확한 답'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지만 이번 모델은 둘 다 해낸다고 강조했다. 맥스는 질문을 받은 뒤 0.57초 만에 말을 시작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대화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오가는지를 따진 평가 결과다. 가벼운 미니가 95.8%로 더 똑똑한 맥스(94.1%)를 근소하게 앞섰다. 머리가 좋다고 대화의 호흡까지 좋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다만 이 수치들은 모두 회사 측이 발표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채널톡 운영사 채널코퍼레이션이 21일 AI 전화 상담 서비스 '보이스 알프(Voice ALF)'를 정식 출시했다. 걸려온 전화를 받는 것은 물론, 상담을 신청한 고객에게 AI가 먼저 전화를 걸기도 한다.
회사가 공들인 부분은 한국어 대화 특유의 머뭇거림이다. 보이스 알프는 고객의 억양과 머뭇거림을 분석해 잠깐의 침묵이 말의 끝인지, 할 말을 고르는 중인지 구분한다. 회사가 사내 카페의 AI 전화 주문 1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AI가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다고 판단해 기다린 경우의 87%에서 고객이 1.5초 안에 말을 이어갔다. 잠깐의 침묵에 곧바로 답했다면 상당수 고객의 말이 잘렸을 것이라는 얘기다. 음식물 처리기 브랜드 린클은 도입 후 상담사가 직접 받은 전화 건수와 통화 시간이 각각 약 39%, 42% 줄었다고 회사는 전했다.
시장의 관심도 뜨겁다. 일레븐랩스는 9월 말 기업가치 약 29조1500억원(220억달러)을 인정받았으며, 자사 AI가 일주일에 1500만 건 이상의 대화를 처리한다고 밝혔다.
AI와의 통화가 늘어날수록 '말 끊는 AI'에 대한 불만도 함께 쌓일 수밖에 없다. 사람 사이의 신뢰가 끝까지 들어주는 데서 시작하듯, 음성 AI 경쟁의 다음 단계 역시 사람처럼 말하는 기술보다 사람처럼 듣는 기술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