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국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조2,578억원이었다. 2006년 통계를 만들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1조원을 넘긴 숫자다. 흐름을 보면 오르내림이 뚜렷하다. 2022년 5,438억원까지 내려갔던 피해액은 2024년 8,545억원으로 뛰었고, 지난해 다시 4,000억원 가까이 늘어 1조원 문턱을 넘었다.
올해는 반대로 간다. 경찰청이 8월 25일 발표한 1~7월 보이스피싱은 7,940건, 피해액 3,614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1만4,707건, 7,766억원에서 건수는 46%, 피해액은 53% 줄었다. 7월 한 달 피해액 337억원은 올해 들어 가장 적었다.
줄어든 이유는 명확하다. 만들어지기 전에 막았기 때문이다.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은 이동통신 3사와 함께 AI로 범죄 의심 번호의 패턴을 분석해 하루 20회 이상 미리 탐지하고 차단한다. 5월부터는 사설중계기 집중 단속에 들어가 184곳에서 9,199대를 찾아냈고 관리책 등 151명을 검거했다. 가짜 투자 사이트나 의심 대화방에 접속한 사람에게 보내는 긴급 알림은 2월 767명에서 7월 12만7,026명으로 늘었다. 악성 앱에 감염된 사람 3만3,652명을 현장에서 구제해 593억원의 피해를 막았다는 집계도 나왔다. 7월 한 달만 긴급 알림과 현장 출동 1,421회로 77억원을 지켰다.
그런데 이 숫자들과 별개로 움직이는 게 하나 있다. 목소리다.
경찰청은 딥페이크로 자녀의 감금 영상을 만들어 부모에게 돈을 요구한 실제 사례를 공개했다. 외국에 사는 부모가 한국을 여행 중인 딸이 방에 갇혀 울면서 살려달라고 하는 영상을 받았다. "당신 딸을 납치했다"는 협박과 함께 합의금을 요구받았다. 부모는 영사관에 알렸고 영사관이 한국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이 딸의 안전을 확인하면서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는데, 영상 속 인물은 전부 합성이었다.

같은 기술이 전화에도 쓰인다. 딥보이스다. 보안업계는 "여보세요" 한 마디만으로 목소리를 복제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고 본다. 실제로 인터넷에는 3초, 10초, 30초 정도의 음성만 올리면 목소리를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즐비하다. 어투와 감정 표현까지 따라 한다. 경찰청은 딥페이크와 딥보이스가 실제 인물을 학습해야 하는 만큼 SNS에 공개된 가족의 영상과 사진, 음성이 범죄 조직의 표적이 된다고 경고했다.
피해자는 고령층에 몰려 있다. 지난해 1~7월 기준 60대 이상 피해자가 4,514명으로 전체의 30.7%를 차지했다. 60대는 전년보다 85.4%, 70대 이상은 29.7% 늘었다. 범행은 대부분 국경 밖에서 시작된다. 2024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적발된 해외 발신 피해 가운데 94.2%가 중국이었고, 베트남 4.1%, 태국 0.58%가 뒤를 이었다. 자녀를 사칭하는 전화 한 통이 국내 통계를 흔드는 구조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025년 인터넷범죄 보고서에서 AI를 이용한 사기 피해를 처음으로 따로 집계했는데, 금액이 약 8억9,000만 달러에 달했다. 같은 보고서의 전체 사이버 범죄 피해액이 210억 달러 수준이었으니,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법이 전체의 4%를 넘게 차지한 셈이다. 홍콩 기업 임원이 AI로 만든 가짜 화상회의에 속아 약 340억원을 송금한 사건도 이미 보도됐다.
AI를 쓴 사기는 사람을 속이는 방식이 다르다. 검찰과 은행원을 사칭하던 시절에는 낯선 사람을 믿게 만들어야 했고, 그래서 협박이 필요했다. 지금은 이미 믿고 있는 목소리를 그대로 가져다 놓는다. 의심할 이유를 없애는 방식이다. 판단할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가 없으면, 목소리 하나로 결정이 끝난다.
자녀(부모)의 감금 영상을 받아 본다면 꼭 자녀(부모)와 직접 통화·영상통화로 안전을 확인하는 동시에 즉시 112에 신고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