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는 쿠팡이 쳤는데, 몽둥이는 플랫폼 전체가 맞는다”
12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간한 이슈페이퍼(이하 리포트)가 던진 문제의식은 직설적이다. 이번 리포트는 2025년 11월 발생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계기로, 진행되는 플랫폼 규제 문제를 직격하고 있다. 직설적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리포트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규제 논의의 초점이 개별 기업의 보안 투자·관리 책임을 따지는 수준을 넘어, 플랫폼 산업 전반을 구조적으로 통제하려는 방향으로 확산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한다.
실제로 국회와 정부에서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 논의와 함께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음식배달플랫폼법(음플법) 등 플랫폼 사업 구조 전반을 규율하는 입법이 동시에 추진되면서, 규제의 패러다임은 “문제가 생기면 제재한다”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거래 구조 자체를 표준화하겠다”로 이동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리포트는 이 변화가 ‘대형 플랫폼을 겨냥한’ 정비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사전 의무가 산업의 기본 룰로 고착되면, 충분한 인력과 자원을 가진 기업보다 성장 초입의 스타트업·중소 플랫폼이 먼저 비용과 불확실성의 무게를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다.
이와 관련 이기대 공동대표는 “AI 시대에도 플랫폼은 기술과 데이터를 연결하는 생태계 그 자체”라며 “특정 사건을 계기로 규제 일변도의 접근이 강화될 경우, 국내 플랫폼 산업의 중장기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사건이 산업 룰이 되는 메커니즘: ‘사후 책임’에서 ‘사전 의무’로

리포트는 쿠팡 사태 이후 규제 확산을 ‘단일 사건의 후속 조치’가 아니라, 플랫폼 산업의 운영 룰이 재설계되는 과정으로 본다. 출발점은 개인정보 유출처럼 구체적인 침해 사건이지만, 정책 논의는 곧 “무엇이 잘못되었나”에서 “플랫폼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내포한 잠재적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로 옮겨간다. 이 전환이 발생하면 사고 원인에 대한 정밀한 타격, 가령 해당 기업의 보안 통제 실패보다 플랫폼 전반에 동일한 기준을 덧씌우는 방식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리포트가 특히 경계하는 변화는 규제의 무게중심이 사후 제재에서 사전 설계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사후 제재는 사건을 중심으로 설계되지만, 사전 의무는 계약·정산·노출·추천·운영 프로세스 등 ‘사업 구조 그 자체’를 규율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서 중요한 쟁점은 규제의 강도보다 ‘예측 가능성’이다. 논의가 여러 부처·상임위·정책 영역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되면, 기업은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준비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혁신 비용이 제품·서비스 고도화가 아니라, 불확실성 대응(법무·컴플라이언스·통제 체계 구축)으로 먼저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온플법·음플법·개인정보…규제는 어디까지 번졌나: “거래 구조 자체를 표준화하겠다”
리포트는 ‘쿠팡 사태’ 이후 플랫폼을 둘러싼 논의가 개인정보를 넘어 공정거래, 노동, 조세, 금융, 소비자, 사법제도까지 확장됐다고 정리한다. 여기서 관전 포인트는 각 규제가 따로 움직이는 듯 보여도, 결과적으로 플랫폼 기업에는 ‘규제 패키지’로 동시 도착한다는 점이다.
>개인정보: 상시 운영 의무로의 이동
개인정보 영역에서는 유출 사고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상시적 의무 체계를 강화하는 명분으로 작동한다. 리포트는 과징금 상향 논의 등 제재 강화 흐름 자체보다, 사고를 계기로 플랫폼 전반의 관리·감독 강화가 구조화되는 점에 주목한다.
>온플법·음플법: ‘사전 설계형 규제’의 전형
가장 강한 사전 규제의 성격을 띠는 축으로는 온플법·음플법이 거론된다. 계약서 필수 기재사항(8대 항목), 정산기한 단축, 판매대금 예치(50% 이상), 입점업체 단체구성권 등은 단순한 분쟁 사후 대응이 아니라 거래 조건을 법으로 미리 설계하는 방식이다. 이때 논쟁의 핵심은 ‘공정’ 그 자체가 아니라, 공정을 담보하는 방식이 획일적 표준화로 흘러갈 경우 시장의 자율적 조정 기능과 산업의 역동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알고리즘·노출 기준 공개: 투명성과 영업기밀의 충돌
리포트가 날을 세우는 지점은 노출·추천 기준 공개 요구다. 플랫폼의 노출 알고리즘은 핵심 역량이자 영업기밀인데, 이를 계약서 등으로 공개하도록 강제하면 후발 주자의 무임승차를 부추길 수 있고, 더 큰 문제로는 알고리즘을 악용해 검색 상단을 인위적으로 점유하려는 어뷰징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투명성”을 내세운 규제가 오히려 시장 신뢰를 떨어뜨리고, 성실한 입점업체가 피해를 보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스타트업이 먼저 흔들린다: ‘성장 페널티’와 보호의 역설, 그리고 AI 경쟁력 딜레마
리포트의 결론은 규제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재의 확산 방식이 산업 전체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정교한 설계라기보다, 사건을 계기로 규제 프레임이 급팽창하며 생태계에 비대칭 비용을 전가할 위험이 크다고 본다. 이 대목에서 리포트는 두 가지를 핵심 리스크로 제시한다.
>낮은 적용 기준이 만드는 ‘성장 공포’
온플법의 적용 기준으로 거론되는 매출액 100억원 또는 총 판매금액 1000억원(음플법도 유사한 수준의 정량 잣대 가능성)은 플랫폼 산업의 성장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장 단계의 플랫폼은 시장 확대를 위해 ‘계획된 적자’를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거래 규모가 커졌다는 이유만으로 대형 플랫폼과 동일한 규제 틀에 편입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성장은 곧 규제의 표적이 되는 길”이라는 신호를 받게 된다. 그 결과, 도전과 확장을 스스로 늦추는 왜곡된 유인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다.
>수수료 상한의 ‘보호의 역설’: “비용은 반드시 이름을 바꿔서 다시 나타난다”
가격 통제형 규제는 특히 ‘풍선효과’를 낳을 수 있다. 수수료만 억제해도 플랫폼 운영에 필요한 비용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줄어든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광고비 인상, 서비스 유료화, 지원 축소 등 다른 경로로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 리포트는 이를 “보호의 역설”로 부르며 “비용은 반드시 이름을 바꿔서 다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해외 사례로는 뉴욕시의 배달 플랫폼 수수료 상한제를 든다. 플랫폼이 수수료 감소분을 소비자 요금에 반영하면서 평균 주문 금액이 약 4.49달러(약 6000원) 상승했고, 가격 부담으로 주문량이 3.37% 감소했으며, 소비자 후생(만족도)이 약 6.2% 하락했다는 분석을 인용한다. 규제가 입점업체를 보호하려는 의도였더라도, 시장의 가격·서비스 구조를 왜곡하면 소비자와 입점업체 모두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취지다.
>AI 시대의 전략 문제: “규제보다 앞서야 할 것은 전략이다”
리포트는 마지막으로 플랫폼을 ‘규제 대상’으로만 보는 관점 자체가 AI 시대의 산업 전략과 충돌할 수 있다고 본다. 생성형 AI 확산 국면에서 플랫폼은 단순 중개를 넘어 데이터 축적과 AI 활용이 결합되는 핵심 영역으로 진화한다. 그럼에도 정책이 ‘AI는 진흥, 플랫폼은 규제’라는 이분법에 머물면, 데이터·플랫폼·AI가 맞물린 생태계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리포트는 ‘규제보다 앞서야 할 것은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규제의 방향이 산업을 위축시키는 신호로 작동하지 않도록, 공정과 진흥 사이에서 ‘합리적 균형’을 설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번 리포트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규제 반대가 아니다.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규제 확산이 ‘사전 의무’로 빠르게 굳어질수록, 비용과 불확실성은 약한 고리부터 전이될 수 있다는 경고다. 플랫폼 생태계를 둘러싼 논쟁은 이제 “규제가 필요하냐”가 아니라, “어떤 위험을 어떤 수준의 의무로, 어떤 순서와 기준으로 다룰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균형의 핵심은 시장의 공정성을 높이되, 혁신 주체가 ‘성장을 포기’하게 만드는 구조적 신호를 줄이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