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를 휩쓸던 한국 문화가 이제 글로벌 전역에서도 주류 문화로 등극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K-푸드’ ‘K-팝’ ‘K-콘텐츠’ 등 한국을 의미하는 ‘K’가 앞에 붙는 모든 것에 열광하는 세계인들에게 일찌감치 인정 받은 산업 중 하나는 ‘K-뷰티’가 아닐까?
우수한 품질로 무장한 한국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글로벌 고객들의 관심은 이미 ‘K 열풍’ 이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일부 글로벌 고객들 중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제품들을 마케팅에 의존해 구매하며 성분과 제품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자신의 피부 타입과 맞지 않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국내 화장품 브랜드들은 제품 개발 외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까지 코칭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피부 타입에 맞는 화장품을 추천하고 관리해 주는 피부관리실이 보편화돼 있는 반면, 다른 나라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돼 왔다. 또 기존 맞춤형 스킨케어 서비스는 대부분 주관적인 설문에 의존해 정확도가 낮다는 점 역시 문제였다.
이에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고 피부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적잖은 글로벌 고객들은 여행과 피부관리를 연계한 패키지 상품을 통해 ‘K-뷰티’의 본고장인 한국을 방문하곤 한다. 하지만 그 숫자는 실제 ‘K-뷰티’를 경험하고 싶어하는 수요층의 일부에 불과한 상황이다. 즉 더 큰 시장이 존재하는 셈이다.

1년여 전 그 가능성을 확인한 문수민 해봄(HAEBOM) 대표는 한국에서 가장 글로벌한 장소인 명동에 오프라인 스튜디오인 ‘해봄’을 오픈했다. 이어 앤틀러코리아 제너레이터 프로그램 4기 투자를 통해 K-뷰티를 동경하는 글로벌 20억명의 고객을 타깃으로 홈케어를 설계하는 맞춤형 피부 관리 플랫폼 ‘글라시(Glassy, 가칭)’를 론칭했다.
시장 각각에 존재하는 페인포인트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연결해 막강한 ‘K-뷰티’ 진성 고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에 테크42는 해봄의 문수민 대표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에서 다양한 경험 쌓아, 아버지 조언에 창업 결심

문수민 대표가 ‘해봄’을 창업하기까지 스토리는 유학 시절로 되돌아 간다. 20대 시절 뉴욕시립대(CUNY)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던 그녀는 방학 기간 한국에 머물며 우연찮은 기회에 당시 급성장하던 쿠팡에서 단기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그러다 정규직 제안을 받았고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던 그녀는 학업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고.
2년여 후 다시 유학길에 오른 그녀는 경력과 이전 과정을 인정 받아 영국 코번트리대(Coventry university) 편입, 국제패션 마케팅과 경영을 공부했다. 졸업 후 그녀가 몸담은 곳은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이었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재미를 알아버린 탓이었다.
“기술 조직 브랜딩을 담당했어요. HR이나 내부 조직 문화를 기반으로 전략을 수립하는 일이었죠. 쿠팡에서도 그렇고 우아한형제들에서도 정말 재미있게 일을 했어요. 두 곳 모두 성장하는 과정을 밟는 스타트업이었기에 제게 주어지는 기회도 많았고, 시도할 수 있는 것도 많았어요.”
하지만 스타트업에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이 되며 일하는 방식에 변화가 찾아왔다. 조직이 개편되고 역할이 세분화되며 해야 할 일과 업무는 명확하게 구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는 고민스러운 변화였다.
“저는 더 많은 일을 하고 싶고 더 성과를 내며 인정 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업무가 나눠지며 한계가 생겼죠. 돌이켜보면 제 개인적인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웃음). 당시에는 그런 고민이 다른 회사를 간다고 해도 반복될 것 같았어요. 그럴 바에는 제가 직접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창업을 처음 생각한 것도 아니었어요. 사업가이신 부모님 영향을 받아서 언젠가는 창업을 하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다만 필요한 자금이 모일 때까지 미뤘던 것인데, 한날은 아버지가 ‘수민아, 돈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있고 머리로 할 수 있는 사업이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죠. 아버지 조언 덕분에 그렇게 결심을 하고 창업을 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죠.”
앤틀러 1기로 도전, 4기에서 투자를 받기까지

창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찾던 그녀에게 당시 막 1기 모집을 진행하고 있던 앤틀러코리아의 제너레이터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템도 없이 창업 의지만 있는 창업자라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제안이 매력적이었다. 6개월의 과정을 거치며 다양한 창업자들과 교류하고 팀을 구성하는 경험도 했다. 다만 프리 시드 투자까지는 진행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1기 졸업 이후에도 앤틀러코리아 파트너들과 교류하며 지속적으로 창업 준비를 진행했다. 그렇게 1인 기업으로 시작한 것이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 대상 뷰티 서비스 예약 중개와 동행 통역을 제공하는 플랫폼이었다.
“유학 시절을 통해 외국 친구들이 한국 뷰티 서비스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또 뷰티 분야는 제 개인적인 관심사이기도 했어요. 제 스스로도 피부 고민이 있었기에 스킨 케어 제품부터 피부과 시술까지 누군가 앉혀놓고 끊임없이 설명할 수 있는 분야였죠. 거기에 제가 쿠팡과 우아한형제들에서 접한 IT 관련 경험을 접목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해봄’이었죠.”
앤틀러 프로그램을 마친 후 1인 기업으로 시작한 상황에서 모든 일이 그녀의 과제로 주어졌다. 노코드 툴을 활용해 웹사이트를 만들고 해외 친구들에게 한국을 여행하는 사람 소개를 부탁했다. 그렇게 무료로 여행 가이드와 뷰티 서비스 예약을 해주며 업체들을 방문해 제휴 요청을 이어갔다.
“일본에서 한국을 여행하겠다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어요. 그 분은 2박3일 동안 뷰티 서비스만 받고 싶다고 하더군요. 무료로 가이드와 통역을 해주며 예약을 도와주고 함께 업체를 방문해 제 플랫폼을 소개하고 제휴 요청을 했어요. 제가 외국인 고객을 데려오고 통역까지 지원하는 대신 웹사이트에 업체 등록을 하게 해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제휴처를 확보하며 시작을 하게 됐죠.”
문 대표는 그 과정에서 통역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관광통역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도 병행했다. 현재 해봄 공동 창업자인 정은재 COO를 만난 것은 그 즈음이었다.
“통역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학원에 다니면서 중국어와 영어 통역을 배우는 친구들을 대상으로 당시 진행했던 외국인 대상 뷰티 서비스 가이드와 통역 알바를 제안했어요. 정 COO도 그중 한 명이었는데 몇 번 진행하는 것을 보니 너무 잘하더군요. 게다가 기존에 다니고 있던 회사 역시 뷰티 관련된 회사였어요. 뷰티와 관련해 전문성까지 갖췄던 거죠. 그래서 ‘함께 사업을 해보자’며 제안을 하게 됐어요. 선뜻 공동창업자로 함께하겠다고 답을 주더군요.”
정 COO의 합류와 함께 해봄의 사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한편으로 문 대표는 그 과정을 지속적으로 앤틀러코리아 파트너들과 공유했다.
해봄 스튜디오를 통해 가능성 검증,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론칭

그렇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그동안 문 대표가 구상했던 오프라인 스튜디오 설립을 추진했다. 그간 외국인 대상 뷰티 서비스 예약 중개·통역 가이드 플랫폼을 통해 모은 돈에 기술보증기금에서 자금을 융통해 한국에서 가장 글로벌한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명동에 ‘해봄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그리고 초기 구축해 놓은 플랫폼과 해봄 스튜디오를 연계해 해외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글로벌 고객들의 피부 특성을 고려한 홈케어를 설계하고, 이를 다시 제품 판매로 연결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봄 스튜디오’는 1년만에 누적 매출 5억원을 달성하는 성공을 거뒀다. 앤틀러코리아로부터 4기 투자심사 참여를 제안 받은 것은 그 즈음이었다.
“앤틀러 1기 졸업 이후 지속적으로 파트너님들과 연락을 하고 제가 시도하는 것들의 리뷰를 요청드리곤 했어요. 해봄 스튜디오 역시 진행 상황을 업데이트하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죠. 그러던 차에 곧 4기 IC(투자심사)가 진행되니 맞춰서 다시 해보자는 말씀을 주시더군요. 이미 초기 플랫폼을 통해 고객과 제휴사를 확보하고 오프라인 스튜디오와 연계해 적잖은 매출을 달성한 상황이니 앤틀러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PoC(기술검증)는 완료 된 셈이었죠.”
흥미로운 점은 투자 심사에서 해봄 팀이 제시한 새로운 사업 방향이다. 이들이 제안한 것은 당시 달성한 성과를 바탕으로 한 본격적인 글로벌 공략 플랫폼 개발이었다. 문 대표는 “글로벌 고객이 한국을 방문하지 않아도 본인의 스킨 케어를 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고자 했다”며 해봄의 비즈니스 스케일업 계획을 설명했다.

“그간의 과정을 종합하면 해봄은 고객의 니즈를 따라 진화하는 회사라고 할 수 있어요. 초반에는 K-뷰티를 향한 한국 여행객들의 관심에 집중해 뷰티 서비스 중개와 통역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고 그들의 니즈를 파악해가며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봄 스튜디오를 오픈했죠. 이 새로운 솔루션도 마찬가지예요. 스튜디오 오픈 후 꾸준히 고객 인터뷰를 진행했고 한국에 오는 사람들을 외에 올 수 없는 사람들 또한 ‘K-뷰티’의 코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로 기획이 됐죠.”
해봄이 새롭게 선보이는 플랫폼, ‘글라시(Glassy, 가칭)’는 고객 데이터 기반의 나노 타겟팅을 전략으로 삼고 있다. 고객의 피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품 성분과 적합도를 분석해 주는 솔루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고객들은 정기적인 구독 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피부 상태를 체크하고 관리 받을 수 있다. 이달 베타 서비스를 시작하는 ‘글라시’는 성분매칭&추천 서비스를 시작으로 콘텐츠 기반 커머스, 초개인화 AI 뷰티 커머스, 정밀 타겟팅을 통한 뷰티 마케팅 최적화 플랫폼으로 고도화를 준비 중이다.
차곡차곡 쌓이는 고객들의 진성 데이터, 글로벌 비즈니스 확장 전략 시동

“해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데이터라고 생각해요. 글로벌 고객들이 현재 어떤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지부터, 어떤 피부 상태인지, 어떤 니즈를 가지고 있는지 등의 데이터를 꾸준히 확보할 계획이예요. 초기 MVP(최소기능제품)의 경우 저희 솔루션 내에서 고객이 피부 타입을 진단 받으면 그 피부 타입을 기반으로 고객이 궁금해 하는 제품의 적합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줘요. . 때론 그 보다 더 적합한 제품을 추천하기도 하죠. 다음 단계로는 고객이 스킨케어 루틴을 설계하도록 도와요. 보통 스킨 케어 제품은 하나만 쓰지 않으니까요.”
그러면서 문 대표는 ‘K-뷰티’가 글로벌 고객들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를 언급하기도 했다. 제품의 품질도 좋지만 제품을 활용해 피부를 관리하는 방식 자체를 교육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이를 반영한 ‘글라시’ 플랫폼은 고도화될수록 뷰티 제품 브랜드사들의 고민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최근 뷰티 분야는 다양한 인디 브랜드들이 엄청나게 빨리 성장하고 있어요. 이들을 통해 한 해에만 몇 만개의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죠. 고객 입장에서는 제품 선택이 고민이지만, 브랜드사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제품을 소개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상황이 돼요. 현재까지 이들이 제품을 홍보하는 방식은 결국 ‘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귀결되고 있어요. 해봄을 통해 쌓은 고객 데이터는 전 세계 고객들의 피부 타입의 교집합, 필요한 제품의 공통적인 특성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브랜드사들은 이를 통해 나노 타겟팅이 된 마케팅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해봄의 데이터 구축 전략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스튜디오에서 확보되는 고객 데이터가 추가되며 더욱 정교해진다. 이를 위해 문 대표는 장기적으로 명동에 오픈한 ‘해봄 스튜디오’와 같은 오프라인 접점을 각국 주요 도시에 개설하겠다는 계획을 언급하기도 했다.

“해외 거점 지역에 열게 될 ‘해봄 스튜디오’는 일종의 데이터센터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글라시를 통해 축적되는 데이터에 더해 실제 그 지역 고객들에게 한국의 ‘K-뷰티’ 서비스를 체험하게 하면서 더욱 정밀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이터센터가 되는 거죠. 굳이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는 오프라인 스튜디오를 굳이 왜 하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뷰티 서비스에 있어서 만큼은 오프라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전략은 해봄의 수익 파이프 라인의 다양성으로도 이어진다. 오프라인 스튜디오를 통해 형성되는 매출에 더해 플랫폼 구독 수익, 브랜드사들의 제품 매칭을 통한 광고 수익 등을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다. 문 대표는 “차제 이커머스를 운영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는 고객이 글라시를 통해 피부 진단을 받고 나면 그 결과에 맞춰 본인이 위치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커머스 플랫폼들의 목록을 제시하려 해요. 이를 통해 전 세계 고객들이 어디서든 저희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이러한 계획들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후속 투자 유치도 필요한 부분이다. 문 대표는 “올해 상반기에 글라시의 1차적인 검증이 완료되고 나면 본격적인 투자 라운드를 시작할 계획”이라며 “우선은 글라시 플랫폼의 글로벌 서비스 안정화와 오프라인 스튜디오의 체계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터뷰 말미, 문 대표가 언급한 것은 해봄의 비전이다.
“저희는 글로벌 고객들이 스킨 케어를 즐거움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하려 해요. 생각보다 피부로 인해 자존감이 떨어지고 고통받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을 위해 한국의 잘 구축된 스킨 케어 노하우를 글로벌 고객들에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 해봄이 하려는 일입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건강한 피부를 바탕으로 건강한 마인드를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 저희 비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