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의 클라우드 전략이 다시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한때 디지털 전환의 표준처럼 여겨졌던 ‘클라우드 퍼스트’ 접근은 비용, 성능, 보안, 규제 준수라는 현실적 조건 앞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모든 워크로드를 퍼블릭 클라우드로 옮기는 것이 정답이라는 인식보다, 어떤 업무를 어디에 배치해야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지를 따지는 방향으로 논의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델 테크놀로지스가 IDC에 의뢰해 발간한 인포브리프는 이러한 변화를 ‘프라이빗 클라우드 현대화’라는 관점에서 짚는다. 조사 대상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이며, 보고서는 기업들이 비용 통제력과 운영 민첩성, AI 대응력 확보를 위해 멀티·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아키텍처를 다시 전략의 중심에 놓고 있다고 분석한다.
핵심은 클라우드 도입 자체가 아니라 클라우드를 다루는 방식의 변화다. 기존에는 시스템을 빠르게 옮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워크로드의 특성, 데이터 민감도, 지연 시간, 규제 요건, AI 활용 가능성까지 고려해 인프라를 재설계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의 경우 이러한 흐름이 뚜렷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93%는 어떤 형태로든 클라우드 송환, 즉 퍼블릭 클라우드에 있던 워크로드를 온프레미스나 프라이빗 환경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클라우드 송환은 ‘후퇴’가 아니라 재배치 전략이다

클라우드 송환은 표면적으로는 퍼블릭 클라우드에서 다시 내부 인프라로 돌아오는 움직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고서가 강조하는 흐름은 단순한 회귀가 아니다. 기업들이 클라우드 활용 경험을 거친 뒤, 각 워크로드에 맞는 최적의 위치를 다시 찾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한국 기업이 클라우드 송환을 검토하는 주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능과 지연 시간 문제다. 모든 애플리케이션이 퍼블릭 클라우드 환경에서 동일하게 좋은 성능을 내는 것은 아니다. 실시간 처리, 대용량 데이터 분석, 제조·금융·의료처럼 지연 시간과 안정성이 중요한 업무에서는 물리적 위치와 네트워크 구조가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둘째는 데이터 보안과 규제 준수 요구다. AI와 데이터 기반 업무가 늘어날수록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의 민감도는 높아진다. 고객 정보, 거래 데이터, 산업 기밀, 운영 데이터처럼 외부 이전이나 처리 방식에 제약이 따르는 정보는 퍼블릭 클라우드만으로 관리하기 어렵다. 특히 데이터가 어느 지역에 저장되고 처리되는지,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 감사와 추적이 가능한지가 중요해지면서 프라이빗 클라우드나 온프레미스 환경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된다.
셋째는 기존 시스템과의 통합 문제다. 많은 기업의 핵심 업무는 여전히 레거시 시스템 위에서 작동한다. 새 클라우드 환경과 기존 업무 시스템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복잡성이 커지고, 예상보다 높은 운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보고서가 클라우드 전환의 주요 과제로 ‘레거시 환경과의 통합’, ‘사이버 보안 및 컴플라이언스’, ‘하이브리드·멀티 클라우드 관리’를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의 클라우드 송환 흐름은 퍼블릭 클라우드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 무조건적인 클라우드 이전 전략의 한계를 확인한 결과에 가깝다. 클라우드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 기업들은 “클라우드로 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워크로드를 어떤 클라우드에 둘 것인가”를 묻고 있다.
한국 기업의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도입은 아직 절반에 못 미친다

보고서에서 주목되는 대목은 한국 기업의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추진 현황이다. 한국 기업의 45.9%는 견고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환경을 적극적으로 구축 중이라고 답했다. 절반에 가까운 수치이지만, 동시에 아직 다수 기업이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들어서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21.6%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와 플랫폼 단순화의 이점을 인식하고 도입을 고려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18.9%는 잠재력은 인정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투자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8.1%는 검토 의향은 있지만 다른 우선 과제가 있는 상태이며, 5.4%는 기존 온프레미스 인프라와 플랫폼 유지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 수치는 한국 기업의 클라우드 전략이 이중적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AI, 자동화, 디지털 인프라 혁신을 위해 하이브리드 클라우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산, 인력, 기존 시스템, 보안 리스크, 운영 복잡성 때문에 실제 현대화 속도는 제한적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한국 기업의 3대 인프라 목표는 자동화를 통한 운영 효율성 제고, AI 기반 제품 혁신과 비즈니스 성장 촉진, 디지털 인프라를 통한 혁신 가속화다. 이는 단순한 IT 인프라 교체가 아니라, 기업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과제에 가깝다. 자동화는 인력 부족 문제와 운영 복잡성을 줄이는 수단이고, AI 인프라는 새로운 제품과 업무 프로세스를 만드는 기반이다. 디지털 인프라 혁신은 기존 시스템 유지에 묶인 조직을 더 빠르게 실험하고 확장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일이다.
결국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의 가치는 ‘두 환경을 함께 쓴다’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기업이 워크로드를 필요한 곳으로 옮길 수 있는 선택권을 확보하고, 운영 복잡성을 자동화로 줄이며, 특정 기술이나 공급업체에 과도하게 묶이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AI가 클라우드 전략을 다시 흔들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 클라우드 현대화의 가장 강한 동력으로 제시되는 것은 AI다. AI는 기업의 기술 우선순위가 됐지만, AI를 실제 업무에 적용하려면 기존 IT 인프라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난다. 대규모 데이터 처리, 고성능 컴퓨팅, 확장 가능한 스토리지, 빠른 네트워크, 데이터 보안, 규제 준수까지 동시에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71%는 AI 이니셔티브를 지원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또는 온프레미스 인프라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주요 활용 사례는 고객 자동화, 생산성 향상, 위험 관리 및 사기 감지다. 이는 AI 도입이 단순한 실험이나 파일럿 단계를 넘어 고객 접점, 내부 업무 효율, 리스크 관리처럼 실제 비즈니스 운영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AI 도입에는 리스크도 따른다. 한국 기업이 꼽은 향후 12개월간 AI 도입의 주요 위험 요인은 조직 내 학습 데이터 부족이 24%로 가장 높았다. 보안 침해 또는 개인정보 보호 위반은 18%, 기술 공급업체 종속은 16%, 명확한 수익 없는 AI 과잉 투자는 14%, 규제 미준수와 제재 리스크도 14%로 나타났다.
이 대목은 AI 인프라 전략이 단순히 GPU를 확보하는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운영하려면 데이터 품질과 보안, 접근 통제, 비용 구조, 공급업체 선택권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보고서는 현대화된 프라이빗 클라우드가 데이터 품질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제된 데이터를 안전하게 운영하고 보안 침해 위험을 줄이며, 개방성과 상호운용성을 통해 종속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AI 워크로드의 성격 변화도 중요하다. 초기 AI 프로젝트에서는 모델 학습을 위한 고성능 GPU 자원이 주목받지만, 실제 운영 단계로 갈수록 추론 업무의 비중이 커진다. 추론은 학습과 달리 서비스 운영 환경에 지속적으로 붙어 있어야 하고, 비용 효율성과 응답 속도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기업은 학습과 추론, 일반 업무 워크로드를 함께 고려한 인프라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기술 부채는 클라우드 비용 문제와 맞물린다

보고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들이 기술 부채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체감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기술 부채란 과거의 빠른 구축, 임시방편적 개발, 낡은 시스템 유지로 인해 시간이 지나며 쌓이는 비용과 복잡성을 뜻한다. 오래된 시스템을 계속 유지할수록 보안 취약점, 통합 난이도, 운영 비용이 늘어나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속도는 느려진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디지털 인프라 예산 초과의 주요 원인으로는 비즈니스 전략과 연계되지 않은 인프라 전략이 48.9%, 과도한 기술 부채와 기존 애플리케이션 유지 관리 비용이 47.8%로 높게 나타났다. 지나치게 분산된 인프라 구매 조직과 퍼블릭 클라우드 비용 관리 미흡도 각각 36.8%로 집계됐다. 비효율적인 인프라 관리는 29.8%였다.
이 수치는 인프라 현대화가 단순히 새 장비를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기술 부채는 비용 문제이면서 동시에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다. 비즈니스 전략과 맞지 않는 인프라 투자가 반복되면 기업은 클라우드 비용을 통제하지 못하고, 레거시 시스템 유지에 리소스를 빼앗기며, AI와 같은 새로운 워크로드에 대응할 여력을 잃는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해법 중 하나는 분리형 인프라다. 분리형 인프라는 컴퓨팅, 스토리지, 네트워크 자원을 하나의 묶음으로만 확장하지 않고 각각 독립적으로 확장하거나 교체할 수 있는 구조를 말한다. 예를 들어 스토리지만 더 필요할 때 전체 서버 스택을 교체하지 않고 스토리지 영역만 늘릴 수 있다. 이는 특정 업그레이드 주기에 묶이는 부담을 줄이고, 인프라 투자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또 다른 핵심은 자동화와 가시성이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는 구조적으로 복잡하다. 퍼블릭 클라우드, 프라이빗 클라우드, 온프레미스, 엣지 환경이 함께 운영되면 사람이 수동으로 모든 자원과 보안, 배포, 패치를 관리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대화된 인프라는 프로비저닝, 패치, 수명주기 관리, 보안 통제, 워크로드 배치를 자동화할 수 있어야 한다.
‘클라우드 퍼스트’에서 ‘클라우드 애그노스틱’으로

이번 보고서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업의 클라우드 전략은 특정 환경을 우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퍼블릭 클라우드냐, 프라이빗 클라우드냐의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특정 공급업체나 특정 기술 구조에 묶이지 않고 워크로드를 이동·확장·운영할 수 있는지다.
보고서는 이를 클라우드 애그노스틱 아키텍처로 설명한다. 클라우드 애그노스틱은 특정 클라우드 사업자나 기술 환경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여러 환경에서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를 운용할 수 있는 구조를 뜻한다. 이 접근은 특히 AI 시대에 중요해진다. AI 기술은 빠르게 변하고, 모델과 데이터 처리 방식, 비용 구조도 계속 바뀐다. 기업이 특정 스택에 과도하게 묶이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비용 효율적인 대안을 선택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김경진 한국 델 테크놀로지스 총괄 사장은 “지속적인 현대화는 단순한 IT 과제가 아니라 비즈니스 필수 요소”라며 “멀티-하이브리드 클라우드의 확산과 AI로 인한 새로운 요구 속에서, 유연하고 개방적인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자유롭게 솔루션을 선택하고 인프라 환경을 혁신하려는 수요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 인프라 현대화는 비용이 드는 과제다. 하지만 보고서가 제시하는 데이터는 현대화를 미룰 때 발생하는 비용도 이미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 부채는 예산 초과로 이어지고, 클라우드 비용 관리는 복잡해지며, AI 도입은 데이터와 보안 문제에 부딪힌다. 결국 현대화의 핵심은 새로운 기술을 더 많이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업무와 데이터, AI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선택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한국 기업의 클라우드 전략은 이제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첫 단계가 클라우드로 옮기는 일이었다면, 다음 단계는 옮긴 것을 다시 평가하고, 필요한 곳에 다시 배치하며, AI 시대에 맞는 운영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퍼블릭 클라우드와 프라이빗 클라우드, 온프레미스와 엣지를 함께 다루는 멀티·하이브리드 전략은 더 이상 대기업 IT 부서만의 기술 논의가 아니다. AI를 실제 비즈니스 성과로 연결하려는 기업에게 인프라 현대화는 경쟁 우위를 가르는 운영 전략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