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23일 오전 8시, 서울 중구 명동 애플스토어 앞에 줄이 늘어섰다. 애플 사상 첫 폴더블폰 아이폰 듀오(iPhone Duo)가 이날 한국을 포함한 70개가 넘는 나라에서 동시에 팔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 대부분은 빈손으로 나왔다. 한국에 처음 배정된 물량이 2만~3만 대 수준이라는 게 통신업계의 확인이었고, 이날 오전 8시 30분께 홈페이지에 새로 주문하면 출고가 내년 1월 22일 이후로 밀려 있다는 안내가 떠 있었다. 329만 원을 내도 폰을 만질 수 없는, 낯선 품귀 행진이다.
한 달 전 삼성전자는 정반대의 풍경을 맞았다. 일주일 치 사전 판매만 144만 대, 갤럭시 폴더블 역대 최대 기록이었다. 접히는 폰을 둘러싼 두 회사의 전쟁이 본격화된 이번 가을, 소비자는 지갑을 열었되 마음까지는 아직 열지 않은 모양새다.
전쟁의 첫 포는 삼성이 쐈다. 7월 22일 런던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에서 폴드8 울트라와 폴드8, 플립8 세 모델을 내놓은 삼성전자는 가로 폭을 키워 펼치면 4대3 화면이 되는 소위 '여권형' 폴드8을 전면에 내세웠다. 두께와 화면 주름을 한 번에 잡은 플렉스 티타늄도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시장의 답은 빨랐다. 7월 말 일주일간 진행된 국내 사전 판매가 144만 대로 끝나 전작(104만 대)보다 38.5% 늘었고, 이 가운데 폴드8이 약 101만 대로 70%를 가져갔다. 폴드 한 모델이 전작 시리즈 전체 사전 판매량에 육박한 셈이다. 더 눈에 띄는 건 얼굴 라인이었다. 삼성닷컴 기준 10~30대 구매 비중이 절반을 넘겼고 젊은 여성 구매자는 전작의 두 배 이상으로 불었다. 업무용 기기라는 낙인이 껴 있던 폴더블이 콘텐츠 기기로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미국에서는 판매량이 전년보다 30% 늘었고 유럽에서도 20% 이상 증가했으며 일본에서는 일부 색상과 용량이 품절됐다.
애플이 입장한 건 그 뒤였다. 9월 9일(한국시간 10일)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공개된 아이폰 듀오는 펼치면 19.3cm(7.6인치), 접으면 13.6cm(5.4인치)다. A20 프로 칩과 48메가픽셀 카메라를 얹었고 색상은 스타 화이트와 나이트 스카이 두 종뿐이다. 출고가는 256GB가 329만 원, 512GB가 359만 원, 1TB가 419만 원, 2TB가 509만 원이다. 갤럭시 Z 폴드8 기본형보다 약 100만 원 비싼 값이다. 그런데 이 폰의 품귀를 만든 건 인기만이 아니었다. 출시를 앞둔 10월 초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애플의 생산 파트너 폭스콘의 최종 조립 수율이 60%를 겨우 웃도는 수준이었다. 생산된 10대 중 약 4대가 애플의 품질 기준을 넘지 못한다는 뜻이다. 힌지 하나에 부품이 백 개가 넘어 일반 스마트폰보다 조립 난도가 높다는 설명도 나왔다. GF증권의 제프 푸 애널리스트는 힌지 공급 제약을 이유로 올해 아이폰 듀오 출하량 전망을 700만 대에서 600만 대로 내렸다. 수요 폭주가 아니라 공급 곤란이 줄을 만든 형국이다.
숫자로 그린 지형도는 이렇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집계로 올해 글로벌 폴더블 출하량은 전년보다 21% 늘어, 상용화 8년 만에 누적 1억 대를 넘긴다. 출하 첫해 애플은 25%로 2위를 차지해 화웨이(22%)를 앞서고, 삼성전자(38%)가 정수리를 지킨다. 내년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업체는 2027년 시장이 37% 성장하면서 애플 점유율이 40%로 오를 것으로 보고, 북미에서는 애플이 46%를 차지해 삼성전자(29%)를 제치고 1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모건스탠리는 아이폰 듀오가 12월 분기에만 약 650만 대 팔려 매출 140억 달러를 남길 것으로 치했다. 애플이 시장을 키우는 동안 삼성도 몫을 챙기는 이유는 부품이다. 두 회사의 접히는 OLED 패널은 사실상 삼성디스플레이가 공급하는데 한 장에 약 250달러로 알려졌고, 옴디아 분석으로 3분기 글로벌 폴더블 OLED 패널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 점유율이 83.5%에 올랐다. 완제품으로 맞붙고 패널로 수확하는, 다소 기묘하지만 단단한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뭐라고 했을까. 반은 만족, 반은 불안이었다. 만족 쪽에는 만족도 조사가 근거가 된다. 미국 소비자만족지수협회(American Customer Satisfaction Index·ACSI)가 지난 5월 내놓은 스마트폰 조사에서 삼성전자는 81점으로 애플(80점)을 1점 차로 누르고 모바일폰 종합 1위에 올랐다. 폴더블과 플래그십 부문 1위도 삼성전자의 몫이었지만, 이 조사가 아이폰 듀오 출시 전 1년을 기준으로 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가격을 둘러싼 목소리는 언팩 무대부터 엇갈렸다. "물가와 칩셋 인상폭을 생각하면 선방했다", "256GB 값에 512GB를 주는 혜택을 쓰면 체감가는 나쁘지 않다"는 말과 "울트라 1TB가 345만 원이면 무서워서 지갑이 안 열린다"는 말이 같은 시기에 나왔다. 그리고 불안은 10월 말에 현실이 됐다. 출시 열흘 만에 접히는 부분을 따라 화면에 금이 간다는 후기가 해외 커뮤니티를 타고 퍼졌고, 스무 번도 접지 않았다는 국내 구매자 이야기까지 나오자 '크랙 게이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애플은 27일 "소수 기기의 문제"라며 애플케어를 통한 무상 교체를 약속했다. 다만 힌지 설계 탓인지 제조 공정 탓인지 원인은 끝내 밝히지 않았고, 재고가 없어 교체마저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신뢰는 한 번 더 흔들렸다. 삼성은 이 틈새를 노릴 카드도 이미 놓았다. 두 번 접히는 갤럭시 Z 트라이폴드는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425만 원에 나와 금세 사라졌고, 미국 시장에서는 출시 당일 완판을 기록하며 미국 IT 전문지가 뽑은 CES 2026 최고의 제품에 이름을 올렸다. 내년에는 트라이폴드 후속까지 폴더블 네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전망이다.
두 달 남짓한 전쟁을 두고 소비자의 심판은 단순했다. 접히는 폰에 돈을 쓰는 데는 이제 망설이지 않되, 검증이 끝난 폰에만 서명하겠다는 것이다. 애플의 참전으로 폴더블은 누적 1억 대 시대의 문을 열었고, 삼성은 7년 축적을 근거로 버티고 있다. 이번 가을 크랙 게이트가 확인해 준 건, 첫 번째 관문이 화면 크기도 가격도 아니라 내구성이라는 사실이다. 승부는 내년에 다시 갈린다. 37% 커질 시장에서 애플의 수율 노트와 삼성의 네 모델이 맞붙기 전에, 소비자는 이미 답을 언저리에 적어 뒀다. 돈을 내는 기준은 펼쳐지는 화면이 아니라 접히지 않는 신뢰라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