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동부, 워싱턴 DC 기준 서쪽에 위치한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Fairfax County)가 한국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의 미국 동부 진출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30일 테크42가 주최한 소규모 커뮤니티 행사 '테크 이지 토크(tech easy talk) #8'에 연사로 나선 김광섭 페어팩스 카운티 경제개발청(FFX) 아시아 마케팅 대표는 페어팩스 카운티의 강점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페어팩스 카운티는 전세계 인터넷 발상지이며,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큰 바이어인 미국 연방 정부가 인접한 테크 허브입니다. 페어팩스 인근의 데이터센터를 통해 전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70%가 처리되고 있죠"
실제 페어팩스 카운티에는 AI, 사이버보안, 핀테크, 양자컴퓨팅, 바이오, 헬스케어, 모빌리티, 우주항공, 에너지/환경, 엔지니어링,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스템 통합, 기술 컨설팅, 통신 등 1만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업종의 테크놀로지 기업들이 위치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미국 우주항공·국방 산업 및 정부·공공 조달 사업, 사이버 보안 산업의 중심지로, 다수 글로벌 기업들의 본사 혹은 지사가 위치하고 있다.
이날 발표에 나선 김광섭 대표는 2005년 페어팩스 카운티 경제개발청 서울 사무소 대표 업무를 시작한 이래 20년 넘게 한국의 테크 기업들(스타트업 및 중소기업 위주)의 미국 동부 시장 진출을 지원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 대표로서 일본, 싱가포르, 대만,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기업들을 대상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미국 동부 시장 중심지, 인구·GDP 3분의 2 집중

"페어팩스 카운티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산업 분야, 회사 규모, 미국 진출 전략 등이 다양합니다. 따라서 그 기업들의 미국 사업 계획 및 전략을 이해한 후, 미국 시장 진출에 비용과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소프트랜딩 서비스를 지원합니다."
현재 페어팩스 카운티에는 45개 국가로부터 410여개(한국 기업 70개 포함) 외국 회사들이 진출해 있다. 페어팩스 카운티 경제개발청은 정부 세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기관으로 모든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한국 기업들에게 미국 진출이란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지역은 여전히 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이다. 김 대표 역시 익숙한 듯 “한국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를 성지처럼 여기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팩트에 기반해 페어팩스 카운티가 왜 좋은지, 어떤 점이 나은지와 함께 전반적인 사업 환경과 한국 기업들이 얻을 수 있는 기회와 도움을 말씀드리겠다”고 운을 뗐다.
"페어팩스 카운티는 미국 동부 시장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위로는 뉴욕과 보스턴이 있고, 아래로는 애틀랜타와 마이애미까지 미국 동부를 커버하기에 굉장히 좋은 전략적인 곳입니다. 지도를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은, 미국 인구나 GDP, 구매력의 3분의 2가 동부에 몰려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한국 사람들만을 위해 사업할 게 아니라면, 미국 전체를 봤을 때는 3분의 2의 시장이 있는 동부를 거점으로 삼는 것이 유리하죠. 특히 페어팩스 카운티는 B2G(정부 대상 비즈니스)는 물론 B2B, B2C 사업을 하기에 굉장히 좋은 곳입니다."
미국 동부 지역의 중심지인 만큼 교통 접근성 역시 뛰어나다. 페어팩스 카운티를 중심으로 워싱턴 DC에 3개 공항이 위치하고 있다. 김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 전체 인구 중 60%를 비행 2시간 이내에 다 커버할 수 있는 곳이 페어팩스 카운티다.
우수한 IT 인프라… 바이오·핀테크·사이버보안...산업별 맞춤 기회 제공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페어팩스 카운티의 장점 중 하나는 잘 갖춰진 IT 인프라다. 특히 데이터센터가 잘 구축돼 있는데, 이제 대부분의 기업들이 AI를 활용해 R&D와 제품 개발에 나서는 만큼 중요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의 주재원 혹은 본사 이전을 고려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자녀를 위한 교육 환경도 페어팩스 카운티의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김 대표는 "60개 이상의 대학이 페어팩스 카운티를 중심으로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조지 워싱턴, 조지 메이슨, 버지니아 테크(VT), 버지니아 주립대 등 굉장히 많은 대학들이 있고, 초중고등학교는 미국에서 최고 수준입니다. 공립학교가 잘 되어 있어서 한국 기업들 중 자녀가 있는 분들은 페어팩스 카운티에 오셔서 사업도 하시고 초중고등학교 공립학교 시스템을 충분히 누릴 수 있습니다."
IBM부터 구글, 오라클, MS, 메타까지 서부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도 페어팩스 카운티에 대규모 운영 조직을 두고 있다는 점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들 기업이 수도인 워싱턴과 가까운 페어팩스 카운티를 중심으로 정부 사업을 다수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동부 시장 공략을 위한 거점으로도 활용된다.
김광섭 대표는 페어팩스 카운티가 특히 강점을 가진 산업 분야 바이오·헬스케어, 핀테크, 정부 조달사업 등으로 꼽기도 했다. 특히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미국 FDA(식품의약국)와 NIH(미국국립보건원), 존스홉킨스대학교 등이 위치해 있어 인접한 페어팩스 카운티는 전통적으로 바이오·헬스케어가 주요 산업으로 이어져왔다고. 김 대표는 “최근 AI 기술이 급부상하며 순수 바이오·제약 산업 외에 융합 산업도 성장 중”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페어팩스 카운티가 AI가 워낙 강하다 보니 순수 바이오 제약보다는 AI를 활용한 IT와 바이오의 융합 산업이 뜨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IT와 바이오를 융합한 융합 산업이 페어팩스 카운티의 하나의 중심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가 기업들을 만났을 때 만약 순수 바이오 제약회사로서 R&D 목적이라면 보스턴이 훨씬 좋을 수 있다고 하죠. 하지만 R&D 목적이 아니라 사업을 위해 미국에 간다면 보스턴보다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큰 시장이 있는 페어팩스 카운티,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검토할 것을 조언합니다.”

이어 김 대표는 페어팩스 카운티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 핀테크 분야의 강점과 함께 미국 연방 정부 공공 사업의 중심지로서의 장점을 언급했다. 특히 미국 연방정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고객이라는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싱글 바이어를 바로 옆에 두고 있는 곳이 페어팩스 카운티이고, 그러다 보니 연방 정부 공공 사업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페어팩스 카운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1년에 연방 정부 공공사업 조달 금액을 전체 더했을 때, 50개 주 중 40개 이상의 주가 받는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이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계약이 이루어집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 프라임 컨트랙터(주요 계약자)로 미국의 조달 사업에 참여하긴 어려워도 일단 기술이 좋고 제품이 좋다면 서브로 들어가 미국 연방 정부에 제품을 조달할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있습니다. 페어팩스 카운티에 오시면 저희가 현지에 있는 프라임 컨트랙터, 서브 컨트랙터들을 소개해 드려서 한국 기업들이 거기에 제품을 제공하고, 그 제품들이 연방 정부 조달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루트를 소개하고 있죠.”
이 외에도 미국의 경우 일정 금액 이하 규모의 사업은 별도의 RFP(제안요청서)가 나오지 않고 수의계약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도 한국 기업에게는 기회라 할 수 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조달 시장에 관심이 있는 기업의 경우 페어팩스 카운티만한 곳도 없다.
한편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다는 점에서 페어팩스 카운티는 AI와 솔루션, 사이버 보안 분야 기업들에게도 많은 기회가 열려있는 상황이다. 특히 사이버 보안 분야는 페어팩스 카운티의 핵심 사업 중 하나라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사이버 보안은 전 세계에서 제일 큰 허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연방 정부에서도 보안에 굉장히 많은 예산을 집행하며 산업을 키우고 있죠. 민간에서도 사이버 보안에 대해 굉장히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지금 페어팩스 카운티에 580개가 넘는 사이버 보안 기업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인도, 이스라엘 등 다양한 해외 사이버 보안 기업들이 페어팩스 카운티에 이미 진출해서 활발하게 사업을 하고 있죠."
100% 무상 지원, 맞춤형 소프트랜딩 서비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페어팩스 카운티 경제개발청의 지원 프로그램은 모든 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김 대표는 “페어팩스 카운티 정부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라서 비용을 받지 않고 기업들이 필요한 모든 자문이나 네트워킹, 마케팅을 도와준다”며 맞춤형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들마다 규모가 다르고 분야가 다르고 전략이 다르기 때문에 필요하신 도움들이 다양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어떤 통일된 프로그램으로 기업들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기업들이 어떤 사업 계획이 있고 어떤 애로사항이 있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따라서 맞춤형으로 도움을 드립니다. 저희가 제일 잘하고 기업들을 위해서 크게 도움을 드리는 게 현지 네트워킹입니다. 기업들이 시행착오 없이, 비용과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사업을 할 수 있게 필요한 다양한 네트워킹을 저희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발굴해서 연계해 드리고 있죠."
김 대표에 따르면 사무실이 필요한 경우부터 현지 직원 채용, FDA 인증, 법률적인 세무·회계 자문까지 다양한 네트워크와 연결이 가능하다. 그 외에도 페어팩스 카운티 경제개발청은 다양한 협력 기관들과 파트너십을 통해 기업을 위한 인력 훈련 프로그램, 페어팩스 파운더스 펀드, SBDC 버지니아 중소기업 지원 펀드, 조지메이슨 대학 스타트업 지원센터, 액셀러레이터 등의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김 대표는 페어팩스 카운티의 여러 장점들을 다시금 실리콘밸리와 비교해 설명했다.

"실리콘밸리는 스타트업들이 주도하는 혁신적이고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으로 보시면 되고, 페어팩스 카운티는 AI, 사이버 보안, 우주항공 쪽 전문가들, 정책 결정자들이 포진돼 있는 곳이라는 차이가 있어요. 특히 보안이 잘 되어 있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죠. 또 생활비 역시 실리콘밸리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에 속합니다. 또 각국 대사관이 연방정부 옆에 있다 보니 다양한 인종의 외교관들 많은 유학생들이 커뮤니티에 참여하며 역동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죠.”
이어 김 대표는 실제 페어팩스 카운티를 통해 미국 진출에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내고 있는 한국 기업들을 소개하는 한편으로 ‘미국 진출이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점도 가감 없이 털어 놨다.
"중소·중견 기업이라도 스타트업과 다를 게 없습니다. 미국 시장에 맞는 비즈니스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한국에서 잘 나갔던 기업이라도 쉽지 않습니다. 한국 비즈니스 모델을 그대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데, 겉보기에는 비슷하지만 차이가 큽니다. 현지에서 직접 발로 뛰며 현지 시장 조사를 하거나, 현지 서비스 기업을 통해서라도 마켓 리서치를 해야 합니다. 전략을 세워서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미국 시장에 맞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발표 말미, 김 대표는 다시 한 번 페어팩스 카운티 경제개발청의 지원 프로그램이 ‘아무 조건 없이 제공되는 것’임을 언급하며 “페어팩스 카운티에 자리잡은 기업들이 고용창출을 통해 성장하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사업 의지가 있는 기업이라면 어떤 곳이라도 환영입니다. 투자 조건이나 법인 설립 조건 등의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는 굳이 돈이나 사무실을 지원하며 오지 않을 기업을 유치하지 않습니다. 그 보다는 인프라에 투자해서 기업이 원활하게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 구축에 집중하고 있죠. 제가 이 일을 해 온 지난 20년 동안 한국 기업들은 꾸준히 페어팩스 카운티를 통해 미국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AI, 양자컴퓨팅, 바이오, 핀테크 등 한국의 주력 산업과 페어팩스 카운티 주력 사업의 매칭률 또한 높습니다. 그렇다고 꼭 페어팩스 카운티만 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패션이나 코스메틱 기업라면 뉴욕이나 LA와 조건을 비교해보고 결정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켓핏이 맞는 곳에서 사업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