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시장 위축과 기업공개(IPO) 시장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스타트업의 성장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후속 투자를 받아 외형을 키운 뒤 IPO에 도전하는 기존 경로만으로는 장기간의 자금 공백과 급격한 시장 변화를 견디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기업 인수·합병(M&A)을 사업이 어려워진 뒤 추진하는 ‘생존형 매각’이 아니라 사업 확장과 기업가치 제고, 투자금 회수를 함께 설계하는 전략적 선택지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KAIST 동문 혁신창업생태계 모임 KOC(KAIST One Club)와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난 21일 경기 성남시 판교 배민스타트업스퀘어에서 ‘스타트업을 위한 M&A 추진 전략’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KAIST총동문회와 배민스타트업스퀘어가 후원한 이날 행사에는 스타트업 대표와 창업지원기관 관계자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강연을 맡은 홍현권 제타플랜인베스트 대표는 경영학 박사이자 국제공인경영컨설턴트, 기술거래사로 한국거래소(KRX), 한국벤처캐피탈협회(KVCA), 한국산업은행(KDB) 등에서 M&A 자문과 실무 교육을 맡아왔다. 홍 대표가 이끄는 제타플랜인베스트는 2011년부터 매도·매수기업 컨설팅을 수행해 왔으며, 상장기업과 중견기업 등 3900여 개 전략적 투자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기업 매칭과 가치평가, 기술거래, 인수·합병 전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홍 대표는 이날 시장 변화와 주요 거래 사례를 바탕으로 스타트업이 M&A를 준비할 때 확인해야 할 기술과 시장성, 지식재산권, 기업 실사, 가치평가, 협상 전략을 설명했다. 기술의 우수성을 일방적으로 알리는 데 그치지 말고 인수기업이 ‘왜 지금 이 회사를 사야 하는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독점 자산과 시장 검증 실적, 인수 이후의 시너지를 하나의 거래 논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강연의 핵심이었다.
IPO만 기다릴 수 없는 스타트업…M&A도 초기부터 준비해야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IPO가 투자금 회수와 기업 성장의 대표적인 경로로 인식돼 왔다. 이날 홍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이 IPO에 이르기까지 평균 10.4년이 걸린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시리즈 B 이후에는 기술의 가능성뿐 아니라 매출과 고객사, 반복 거래, 수익성 등 실제 성과에 대한 검증이 강화된다는 설명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집계 기준 2025년 1분기 스타트업 회수 수단 가운데 M&A가 차지한 비중은 38.0%로, 2023년 1분기 50.2%보다 낮아졌다. IPO 문턱이 높아졌지만 이를 보완할 M&A 시장도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하면서 후속 투자가 끊긴 스타트업이 자금을 모두 소진한 뒤에야 인수자를 찾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홍 대표는 “자금이 부족해진 시점에 급하게 거래를 추진하면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이 있어도 협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홍 대표는 “많은 스타트업이 IPO를 전제로 계획을 세우지만 실제 상장까지 장기간이 걸리고, 시리즈 B 이후부터 실적과 성과에 대한 검증이 엄격해진다”며 ”시장 검증과 레퍼런스가 만들어지는 성장 단계부터 M&A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장의 선호도 역시 달라지고 있다. 가입자 수와 장래 시장 확대 가능성을 내세운 B2C 플랫폼보다 즉각적인 매출과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B2B 솔루션 기업이 높은 평가를 받는 추세다. 홍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AI·반도체, 바이오·헬스케어, 콘텐츠, 방산, 에너지, 첨단 제조 등 6대 전략산업이 대형 M&A와 투자 거래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로봇과 모빌리티, 드론처럼 현실의 물리적 환경에서 작동하는 피지컬 AI 분야 역시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기술 확보 경쟁이 확대되고 있다. 홍 대표는 “M&A는 창업자의 지분을 매각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며 다양한 잇점을 언급했다.
“스타트업은 인수기업이 보유한 자금과 유통망, 생산시설, 브랜드, 전문 인력을 활용해 사업화 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창업자가 회수한 자금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창업하거나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선순환도 기대할 수 있죠.”
대기업은 ‘미래’를 산다…기술 확보 경쟁으로 바뀐 M&A

최근 M&A 시장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기존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 거래보다 새로운 기술과 전문 인력을 빠르게 확보하기 위한 거래가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이 신사업에 필요한 기술을 모두 내부에서 개발하기보다 이미 기술과 시장성을 일부 검증한 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이다.
홍 대표는 “로봇 분야에서 이러한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며 다양한 사례를 언급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20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를 11억달러로 평가한 거래를 통해 지분 80%를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2023년 868억원을 투자해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14.7%를 확보했고, 2024년 말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율을 35%로 높였다. LG전자 역시 2024년 6000만달러를 투자해 베어로보틱스 지분 21%를 확보한 뒤, 2025년 1월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율을 51%로 높였다. SK온의 미국 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는 2024년 유일로보틱스의 367억원 규모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약 13.5%를 확보하고 2대 주주가 됐다.
이들 거래의 공통된 특징은 현재의 매출과 이익만을 기준으로 기업을 평가하기보다 자율주행, 물류, 제조 자동화, 서비스 로봇 등 미래 사업에 필요한 기술과 인력을 먼저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홍 대표는 “스타트업도 잠재적 인수기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을 건넸다.

“M&A는 미래를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기업이 신사업에 필요한 기술을 직접 개발하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만큼, 오픈이노베이션으로 가능성을 먼저 확인한 뒤 기술과 시장성이 맞으면 투자나 인수로 관계를 확대할 수 있죠. 스트업도 잠재적 인수기업의 미래 전략을 분석하면 어느 기술과 사업이 거래 대상이 될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홍 대표가 언급한 오픈이노베이션은 단순한 기술검증 프로그램을 넘어 잠재적 투자자나 인수기업과 관계를 형성하는 통로로 알려져 있다. 대기업은 기술검증(PoC)과 공동 개발을 통해 기술의 완성도뿐 아니라 스타트업 조직의 실행력과 협업 가능성을 확인한다. 이후 성과가 검증되면 전략적 투자나 M&A로 관계를 확대할 수 있다.
홍 대표에 따르면 거래 형태도 다양해졌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기술을 인수하는 방식 외에도 스타트업끼리 고객과 서비스를 결합하거나, 성장한 스타트업이 기존 기업의 유통망과 사업 인프라를 확보하는 거래가 등장하고 있다. 기업의 절대적인 규모보다 결합 후 새로운 시장과 수익원을 만들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좋은 기술’만으로 부족…인수자가 선택할 세 가지 이유

홍 대표는 M&A 성사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조건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과 지식재산권(IP), 오픈이노베이션 실적, 계량화된 시너지 가치를 제시했다. 기술력은 거래의 출발점이지만 외부 검증과 경제적 효과까지 입증해야 실제 인수 대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첫 번째 조건은 핵심 기술과 데이터, IP를 회사의 독점 자산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특허의 개수보다 인수기업이 같은 기술을 내부에서 단기간에 개발하거나 다른 기업을 통해 쉽게 확보하기 어려운지가 중요하다.
특허가 창업자 개인 명의로 등록돼 있거나 대학·연구기관, 공동 개발기업과의 권리 관계가 불분명하면 실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외주 개발한 소스코드와 결과물의 소유권, 전·현직 임직원의 직무발명 권리 승계와 보상 관계, 핵심 인력 퇴사 이후의 기술 보호 방안도 사전에 정리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PoC와 공동 개발 등 실제 시장에서 기술을 검증한 기록이다. 인수기업은 스타트업의 기술 설명만으로 거래를 결정하지 않는다. 산업 현장에 적용했을 때 기술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 고객의 문제를 해결했는지, 유료 계약과 후속 발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홍 대표는 “기술은 출발점”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핵심 기술과 데이터, IP의 권리 관계를 명확히 하고 PoC와 공동 개발을 통해 시장 적용 가능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또 인수 후 늘어날 매출과 절감 가능한 비용, 단축되는 개발 기간 등을 수치로 제시해야 실제 거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죠.”
이어 세 번째 조건은 인수 이후 발생할 시너지를 숫자로 제시하는 것이다. 창업자가 투입한 시간과 비용이나 과거 투자 유치 당시의 기업가치만으로 희망 매각 가격을 설명해서는 인수기업을 설득하기 어렵다.
홍 대표는 “인수기업의 고객과 유통망을 활용했을 때 매출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신규 시장 진입 기간이 얼마나 단축되는지, 연구개발비와 운영비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계산해야 한다”며 “스타트업이 독립적으로 사업을 계속할 때의 가치보다 인수기업과 결합한 뒤 만들어질 추가 가치를 중심으로 거래 논리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무·지분·IP 정비부터 협상까지…실사 전 준비에서 승부 갈린다

홍 대표는 “잠재적 인수기업이 관심을 보이더라도 내부 관리체계가 정비돼 있지 않으면 거래는 실사 단계에서 중단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스타트업은 인수 제안이 들어오기 전부터 최근 3개년 재무제표와 주주명부, 투자계약, 스톡옵션, 근로계약, 주요 고객 계약, 특허와 기술 권리 관계를 점검해야 한다.
미지급 급여와 퇴직금, 세금 체납 등의 잠재 채무와 주주 간 분쟁, 소송 가능성 등 법적 리스크는 기업가치를 낮추는 요인이다. 연구개발비와 무형자산의 회계처리, 외주 개발 결과물의 소유권, 핵심 인력의 고용 관계도 인수기업이 중점적으로 확인하는 대상이다.
거래는 일반적으로 잠재적 인수기업 발굴과 비밀유지계약, 기초 정보 교환, 예비 검토, 양해각서 체결, 기업·기술 가치평가, 법률·재무·세무 실사, 거래 조건 협상, 본계약 체결 순으로 진행된다. 매도기업과 매수기업이 서로의 존재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 자문기관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홍 대표는 “매도기업과 매수기업이 서로를 직접 찾기 어려운 만큼 자문기관을 통해 후보를 발굴하고, 비밀유지계약과 예비 협의를 거쳐 실사와 거래 조건 협상으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매도자가 특정 가격만 고집하면 협상이 깨지기 쉬우므로 가격뿐 아니라 지분율, 신주 투자, 경영 참여 방식 등 거래 구조를 유연하게 조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당사자 간 감정적 충돌을 줄이기 위해 전문적인 협상 창구를 두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희망 가격에 차이가 있다면 구주 매각과 신주 투자 비율, 창업자의 잔여 지분, 경영 참여 기간, 성과 달성에 따른 추가 지급 등으로 거래 조건을 조정할 수 있다. 홍 대표는 “당장의 매각대금만이 아니라 인수 후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창업자·핵심 인력의 역할까지 포함해 협상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며 다양한 정부 지원 사업을 소개하기도 했다.
중소벤처기업부 ‘M&A 활성화 지원사업’에 따르면 요건을 충족한 중소·벤처기업은 기업·기술 가치평가와 실사, 인수 후 통합(PMI) 컨설팅 비용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다. 기업·기술 가치평가 수수료는 일반기업의 경우 소요 비용의 40%, 최대 1500만원이며 벤처기업은 60%, 최대 2000만원이다.
법률·회계·세무 통합실사는 비용의 50%, 기업당 최대 3000만원까지 지원된다. 개별 실사는 최대 1000만원, PMI 컨설팅은 최대 2500만원이다. 지원은 심사를 거쳐 이뤄지며 예산 소진 시 조기 마감될 수 있다.
인수기업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제도도 있다. 기술보증기금의 M&A 특례보증은 유형에 따라 최대 100억~200억원 한도로 운영되며, 지원 규모는 M&A 소요자금의 60~80% 범위에서 정해진다. 실제 보증 여부와 규모는 인수기업의 신용도와 기술성, 거래 구조 등 심사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홍 대표는 강연을 마치며 “M&A를 일부 대기업만 수행하는 거대한 거래로 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대가를 지급해 기업의 특정 기술이나 사업을 인수할 수 있고, 뜻이 맞는 회사끼리 합병해 새로운 사업을 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오늘 아침에 편의점에 들러서 우유를 사시던 껌을 사시든 내가 대가를 지불하고 사오는 겁니다. 또는 내 옆에 동료와 서로 합이 맞아서 회사를 합병할 수도 있고 그걸 키울 수도 있습니다. M&A는 그러한 전략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접근하세요. 한편으로 M&A는 경영의 한 수단입니다. 지금 해서 안 되면 다음에 다시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선택의 도구처럼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