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로 생성한 얼굴과 음성이 실제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지면서 금융기관의 신원 확인 방식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화상회의 화면에 나타난 상대가 실제 사람인지, 금융 거래를 요청한 사람이 본인이 맞는지, AI 에이전트가 정당한 권한을 위임받아 활동하는지 확인하는 일이 중요한 보안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인간 증명 네트워크 월드(World)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과 금융기관에 특화된 '금융권을 위한 월드ID(World ID for banking and finance)'를 출시했다고 20일 밝혔다.
월드 공동 창업자 알렉스 블라니아(Alex Blania)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금융산업 행사 '머니20/20(Money20/20)'에서 신규 솔루션을 공개했다. 월드가 특정 산업을 대상으로 인간 증명 기술을 결합한 서비스를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솔루션은 사람이 직접 수행하는 금융 업무뿐 아니라 AI 에이전트가 관여하는 디지털 상호작용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인증 체계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금융권에서 AI 사칭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딜로이트(Deloitte)는 미국의 AI 기반 사기 피해액이 2023년 약 123억 달러에서 2027년 400억 달러로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금융 거래나 자산 매매처럼 금전적 판단이 수반되는 업무에서는 신원 사칭에 따른 피해 가능성도 그만큼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월드가 제시한 대응 방안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인증 기술을 결합하는 것이다. 먼저 '월드ID 앱(World ID app)'은 이용자가 자신의 신원과 관련된 증명을 발급받아 보관하고 필요할 때 제시할 수 있는 디지털 지갑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온라인 서비스에서 실제 사람임을 확인하는 인간 증명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AI 에이전트용 월드ID(World ID for Agents)'는 사람을 대신해 업무를 처리하는 AI를 위한 기능이다. 이용자가 자신의 증명을 AI 에이전트에 위임하면, 해당 에이전트는 외부 플랫폼에 증명을 제시하고 검증받을 수 있다. 월드는 이를 구현할 수 있도록 개발 도구인 '에이전트키트(AgentKit)'도 제공한다.
눈에 띄는 기능은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에 적용되는 '줌용 월드ID(World ID for Zoom)'다. 이 기술은 화면에 나타난 인물이 딥페이크로 생성된 가짜 영상이 아니라 사전에 인증을 받은 실제 당사자인지 확인하도록 설계됐다.
검증에는 세 가지 이미지가 활용된다. 월드의 인증 기기 '오브(Orb)'에서 최초 인증 당시 촬영하고 암호학적으로 서명한 이미지, 이용자 기기에서 실시간으로 촬영한 얼굴 이미지, 다른 회의 참가자에게 표시되는 영상 화면이다.
세 이미지가 일치하면 해당 참가자의 화면에 '휴먼 배지(Human Badge)'가 나타난다. 단순히 영상의 조작 여부를 탐지하는 방식과 달리, 사전에 인증된 사람과 현재 회의에 참여한 사람이 동일한지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춘 기술이다.
이 과정에는 줌의 실시간 미디어 스트림(Realtime Media Streams·RTMS) 기술이 활용된다. 월드의 기술 개발사 툴스 포 휴머니티(Tools for Humanity·TFH)는 줌의 독립 소프트웨어 공급사(ISV) 익스체인지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이에 따라 줌의 기업 고객은 앱 마켓플레이스에서 줌용 월드ID를 구매할 수 있으며, 사무실에 오브를 설치하도록 요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월드는 금융 분야의 실제 활용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한 기업 협력도 추진하고 있다. 오픈익스체인지(OpenExchange), 베인캐피탈(Bain Capital), 반에크 펀드(VanEck Funds), 판테라캐피탈(Pantera Capital), 아웃테이크(Outtake)가 설계 협력사로 참여해 금융 서비스에 인간 증명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산드로 헤르비히(Sandro Herbig) 툴스 포 휴머니티 사장은 "AI가 일상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사기를 줄이고 신뢰를 높이기 위해 개인에게 자신에 관한 '증명(Proofs)'을 제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금융권을 위한 월드ID는 기업의 내부·외부 시스템에 AI를 악용한 위협에 대응하는 신뢰 체계를 더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월드는 지난 4월 줌을 비롯해 도큐사인(Docusign), 옥타(Okta), 버셀(Vercel), 틴더(Tinder) 등과의 협력 및 서비스 연동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이번 금융권 솔루션 출시와 줌용 월드ID의 정식 제공을 계기로 소비자 서비스에서 기업 업무와 AI 에이전트 영역까지 인간 증명 기술의 활용 범위를 넓혀간다는 구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