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경제 견인하는 국내 인터넷 업계, 규제 환경은 여전히 '낙제점'

작년 한 해 동안 국내 디지털 경제가 빠르게 확장하면서 인터넷 관련 산업이 전통 제조업을 제치고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 성장세와 달리, 관련 입법 품질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가 24일 공개한 최신 분석 자료에 따르면, 작년 기준으로 국내 디지털 플랫폼과 온라인 서비스를 포괄하는 인터넷 산업 영역의 전체 수익 규모는 635조원에 달했다. 이는 2022년과 비교해 7.2%나 늘어난 수치다.

같은 시기 금융·보험을 제외한 국내 전산업 매출은 오히려 1.1% 역성장했다는 점에서 인터넷 산업의 성장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제조 분야가 2.5% 줄고 금융보험업이 11.5% 감소하는 동안, 디지털 기반 산업만이 홀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눈에 띈다. 작년 인터넷 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은 200만명을 돌파하며 전년 대비 13.5% 급증했다. 같은 해 전산업 고용 증가율(0.9%)은 물론, 제조(-2.3%), 유통(-0.1%), 건설(-1.7%) 등 주요 업종의 고용 감소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분야의 폭발적 성장이다.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은 매출이 22.4%, 고용은 30.9% 뛰었다. AI 소프트웨어와 관련 서비스 역시 매출 21.6%, 인력 20.7%씩 각각 증가하며 혁신 기술이 산업 확장을 주도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산업계는 규제 환경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최근 4년간(2020년 6월~2024년 5월) 열린 21대 국회에서는 인터넷 산업과 관련한 법안이 무려 492건이나 쏟아졌다. 그런데 이 중 80% 이상이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는 운명을 맞았다.

더 큰 문제는 법안의 질이다. 협회가 전문가들과 함께 진행한 입법 품질 평가에서 21대 국회의 인터넷 산업 관련 법안들은 100점 만점에 평균 25.3점이라는 낙제 수준을 기록했다. 통과된 법안조차 36.1점에 그쳤고, 폐기된 법안들은 22.7점으로 더욱 낮았다.

평가단은 이들 법안이 산업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 자율 규제 가능성 무시, 관료 중심적 사고, 이해관계 조정 실패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위해 발의된 22건의 법안은 단 하나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으며, 체계성·균형성·산업 이해도 등 모든 항목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흥미롭게도 국회 임기가 끝나갈수록 법안의 완성도는 더 떨어졌다. 임기 초반 2년과 후반 2년을 비교했을 때, 후반부에 나온 법안들의 '산업·기술 이해도' 점수가 큰 폭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적인 논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현장과 입법 사이의 간극은 벌어진 셈이다.

학계 전문가 10명이 참여한 심층 조사에서는 더 신랄한 평가가 나왔다. 이들은 국내 플랫폼 업계가 근거 없는 부정적 인식과 과도한 규제 압박으로 위축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 전문가는 "플랫폼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 없이 규제 수단만 난립하면서 정책 방향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다른 전문가는 "현재 플랫폼 규제는 '플랫폼=악'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며 "이런 접근은 필연적으로 산업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내수 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 플랫폼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려면 해외 확장이 필수적이지만, 국내 시장에 갇혀 고립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해결책으로 ▲단기 대응이 아닌 장기 비전 수립 ▲시장에 대한 이해도 제고 ▲산업 인식의 긍정적 전환 ▲새로운 정책 프레임워크 구축 ▲기술 불안감 해소와 혁신 필요성 공감대 형성 등을 제시했다.

박성호 인기협 회장은 "통계가 입증하듯 플랫폼 산업은 성장과 고용을 동시에 이끌며 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입법 평가와 전문가 의견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낙후된 규제 환경을 개선해 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우 기자

kimnoba@tech42.co.kr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저작권자 © Tech42 - Tech Journalism by AI 테크42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AI 규제’의 모든 것

백악관이 발표한 AI 입법 프레임워크가 주 차원의 AI 규제를 막으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으로 지적받으며 수많은 전문가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백악관의 제안된 규제안은 AI 기술로 인한 ‘피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길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일부 주에서는 이미 딥페이크 영상 제작이나 고용 차별 등 AI의 잠재적으로 위험하고 유해한 사용 사례를 다루는 법률을 제정한 상황이어서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AI 교과서 논란 이후… 교육의 AX는 멈춘 것일까?

교육의 디지털 전환이 멈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식이 달라졌다. 정책의 전면 드라이브는 멈췄지만, 현장에서는 교사 대상 AI·디지털 연수가 이어지고 있고, AI 튜터와 맞춤형 학습 시스템 도입도 일부 시·도교육청을 중심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 교육 플랫폼은 고도화되고, 생성형 AI를 활용한 수업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예전이 ‘교과서 중심 AI’였다면, 지금은 ‘수업 중심 AI’로 관점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기술 패권 전쟁, 8.6조 쏟아붓는다”… 정부, 23개 부처 합심 ‘기술 주권’ 선포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정부가 대한민국의 미래 생존을 좌우할 전략 기술 확보를 위해 8조 6,000억 원이라는 역대급 예산을 투입한다.

[AI 기본법 톺아보기⑤] ‘고영향 AI 사업자 책무’가 만든 운영 표준… 위험관리부터 이의제기까지

고영향 AI 사업자 책무가 겨냥하는 것은 기술의 완벽함이 아니라 절차의 일관성이다. 위험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이용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이의제기나 피해가 발생했을 때 어떤 루트로 처리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문서로 남겼는지가 결국 책임의 기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