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AI는 제 슈퍼 어시스턴트”…캔바 김해원 리드가 말하는 디자이너·마케터의 생존 전략

브랜딩·마케팅 전 과정에 AI 도입…“속도는 60~70% 빨라졌지만, 마지막 한 끗은 결국 사람 몫”

생성형 AI의 등장은 디자이너와 마케터에게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안기고 있다. “AI가 내 일을 빼앗지는 않을까”, “이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일상이 됐다. 호주 멜버른에서 15년 가까이 독립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21년 캔바(Canva)에 합류한 김해원(코트니 킴·Courtney Kim) 리드는 이 질문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이다. 캔바는 브라우저와 모바일에서 프레젠테이션, 문서, 영상, 소셜 콘텐츠를 템플릿 기반으로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글로벌 온라인 디자인 플랫폼이다. 김 리드는 동시에 멜버른 기반 브랜딩 스튜디오 ‘코트니 킴 스튜디오(Courtneykimstudio.com)’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기사는 김 리드가 국내 디자인 행사에서 진행한 강연 내용과 테크42에서 별도로 진행한 인터뷰를 종합해 정리했다.

디자인 행사에서 발표하는 캔바 김해원 리드(사진=본인 제공)

김 리드는 AI를 “일을 빠르게, 정확하게, 잔말 없이 도와주는 슈퍼 꼬봉”이라고 농담처럼 부르지만, 실제로는 24시간 대기 중인 ‘슈퍼 어시스턴트’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여러분의 직장, 안목, 인생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20년 넘게 일러스트레이터와 포토샵만 써온 김 리드는 한때 “캔바는 프로 디자이너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협업, 프레젠테이션, 문서, 소셜 콘텐츠, 가벼운 영상 제작까지 매일 하는 실무를 캔바로 통합해 보니 “캔바는 내가 쓸 도구가 아니다’라고 믿었던 생각이 완전히 깨졌다”고 말한다. 세밀한 그래픽은 여전히 어도비에서 작업하지만 “현실적인 업무의 대부분은 캔바에서 끝난다”는 게 김 리드의 설명이다.

현재 김 리드는 캔바에서 한국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리드를 맡고 있다. 한국 시장의 콘텐츠 전략, 템플릿·요소 라이브러리 방향, 아트디렉션을 총괄하며 국내 사용자가 접하는 다수의 템플릿 제작에 관여한다. 김 리드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감각적인 크리에이티브 시장 가운데 하나”라며 “그 눈높이를 따라가면서도 한 발 앞선 레퍼런스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AI는 프로 디자이너의 ‘생존 도구’

김 리드는 자신을 “ADHD이고 두 살 아이 엄마이자 풀타임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시간과 에너지가 늘 부족한 조건에서 AI는 그에게 단순한 신기술이 아니라 “정리와 효율을 위한 생존 도구”에 가깝다. 김 리드가 설계하는 브랜딩 프로세스는 ▲전략(Strategy) ▲아이디어(Ideation) ▲제작(Production) ▲전달(Delivery) 네 단계로 나뉘며, 이제 이 전 과정에 AI가 개입한다.

전략 단계에서 김 리드는 챗GPT 등 대화형 AI로 시장 분석, 콘셉트 설명, 고객 심리, 트렌드를 빠르게 정리한다. 나노바이오 기술 기반 친환경 농약을 개발한 농업 과학 스타트업의 브랜딩을 맡았을 때,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과 데이터 시트를 통째로 AI에 넣고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몇 시간 만에 시장 구조와 핵심 기술을 이해했고, DNA 이중나선에서 브랜드명과 로고 모티브까지 도출할 수 있었다.

다만 김 리드는 “AI를 100% 믿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AI는 사용자가 듣고 싶어하는 답을 만들어낼 때가 많다”며 “항상 ‘증거를 보여줘(Show me the evidence)’라고 요구하고, 출처를 직접 확인하는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속도를 얻되 리서치의 신뢰성을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다.

아이디어 단계에서 AI는 ‘정리하는 파트너’로 쓰인다. 김 리드는 책상 앞에서 억지로 아이디어를 짜기보다 자기 전·출근길·카페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스케치와 메모로 남긴다. 캐릭터, 키워드, 비주얼이 뒤섞인 낙서 같은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 AI에 보내 “브랜드 콘셉트와 패키지 아이디어로 정리해 달라”고 하면, 구조화된 콘셉트 시안과 핵심 메시지, 컬러 방향까지 제안받는다. 김 리드는 “정리 안 된 생각을 구조적인 제안으로 바꿔주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빠르게 검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김 리드는 “Quantity of ideas equals quality of ideas(아이디어의 양이 곧 질을 만든다)”라는 문장을 자주 언급한다. 좋은 아이디어는 운이 아니라 시도한 횟수에서 나오며, AI는 이 ‘양’을 폭발적으로 늘려주는 장치라는 것이다.

비주얼 제작 단계에서도 AI는 적극 활용된다. 자연사 백과사전에서 볼 법한 점묘화(Stippling) 스타일의 일러스트를 브랜딩에 쓰고 싶었던 프로젝트에서, 김 리드는 이미지 생성 AI에 “자두(plum)를 점묘화 스타일로 그려줘”라고 지시했다. 이후 “아웃라인을 지워달라”, “점 크기를 키워달라”, “조명을 자연스럽게 바꿔달라” 같은 프롬프트를 반복 수정하며 원하는 스타일에 근접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완성된 이미지를 다시 AI에 넣어 “이 스타일을 설명하는 프롬프트”를 생성해 저장하자, 동일한 스타일의 이미지를 대량으로 재현하는 ‘스타일 프리셋’이 됐다.

브랜드 가이드라인 제작처럼 반복적이고 문서화가 많은 작업에서는 자동화 효과가 특히 크다. 과거 2~3주 걸리던 브랜드 가이드 PDF 제작을, 김 리드는 캔바 브랜드 키트·자체 템플릿·AI 작문 기능을 결합해 약 80%까지 자동화했다. 로고·컬러·폰트 등 핵심 요소만 교체하고 나머지 설명은 AI로 보완하는 방식이다. 김 리드는 “AI 도입 이후 브랜딩 관련 문서 작업 속도가 체감상 60~70% 빨라졌다”고 말했다.

브랜드별 전략·톤·카피·비주얼 기준을 학습시킨 ‘커스텀 GPT’를 만들어 두는 것도 특징이다. 김 리드는 “브랜드 전용 GPT를 만들어 두면 여러 사람이 동시에 작업해도 톤과 메시지 일관성이 유지되고, 마케팅 조직 입장에서도 캠페인 카피와 소셜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균을 만드는 AI, ‘사람다움’을 설계하는 사람

캔바 TV광고 영상의 한 장면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AI 시대에 디자이너와 마케터는 무엇으로 승부할 것인가.” 김 리드는 AI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짚는다. 김 리드는 “AI를 실제로 써보면 속도, 아이디어의 폭, 시안 검증은 말도 안 되게 잘한다”고 평가하면서도, “감정의 깊이, 손맛, 누군가를 설득하는 미묘한 결은 여전히 사람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신 모델이라도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시각적 균형과 디자인 감정의 온도는 흉내만 낼 뿐”이라는 설명이다.

김 리드는 AI의 본질을 “평균(Average)을 잘 만드는 도구”라고 정의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안전하고 익숙한 패턴을 생성하기 때문에, AI 결과물에 그대로 의존하면 비슷한 디자인과 메시지로 수렴하기 쉽다. 그렇기에 오히려 AI 시대에 더 중요해진 것은 디자이너와 마케터의 세계관, 관찰력, 감각, 그리고 진정성이라고 김 리드는 말한다. “AI가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바로 우리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마케터에게도 AI는 위협이 아니라 도약의 기회에 가깝다. 김 리드는 “이제 직무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라며 “툴 사용 능력보다 데이터 인사이트, 시장·트렌드 분석 같은 본업 역량에 AI를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디자인 예산이 크지 않은 팀도 AI 기반 디자인·카피 도구를 활용하면 브랜드 이미지를 무너뜨리지 않는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캔바의 비전에 대해 김 리드는 “모두가 디자인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디자이너·마케터·창업자·콘텐츠 크리에이터 등 누구나 시각적 메시지를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인터뷰 마지막에 김 리드는 마블의 슈퍼히어로를 소환했다. “프롬프트 한 줄로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고, 영향력을 키우고, 내 기술을 몇 배로 확장할 수 있는 슈퍼파워가 이미 여러분 손 안에 있습니다. 다만 이 파워를 어디에 쓸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김 리드가 제안하는 AI 시대의 생존 전략은 단순하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은 AI ‘슈퍼 어시스턴트’에게 맡기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관찰, 세계관 설계, 손으로 만드는 즐거움에 더 많은 시간을 쓰는 것.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이 더 창의적인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시대라는 메시지는, 지금 AI 앞에서 고민하는 디자이너와 마케터에게 현실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김해원 리드는 오는 12월 9일 개최되는 '디지털마케팅 인사이트 2026' 콘퍼런스에서 AI와 협력하는 디자이너와 마케터를 위한 강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정재엽 기자

anihil@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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