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보다 무서운 건 ‘기준의 변화’… 캘리포니아발 부유세 논쟁이 실리콘밸리를 흔드는 이유

  • 현금화 전 지배력까지 과세 검토… 창업자 경영권 구조가 조세 리스크로 부상
  • 자본은 이미 이동 중… 한국 벤처·스타트업에도 던져진 제도적 질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추진 중인 부유세 주민발의안을 둘러싸고 실리콘밸리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억만장자들의 거주지 이전과 자산 재배치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단순한 고율 과세 논쟁을 넘어 조세 기준 자체가 기술 산업의 불확실성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추진 중인 부유세 주민발의안을 둘러싸고 실리콘밸리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억만장자들이 캘리포니아를 떠나가고 있다. (사진=Mangoidiots)

이번 논란의 출발점은 순자산 10억 달러 이상 개인을 대상으로 한 1회성 5% 과세안이다. 표면적으로는 세율이 핵심처럼 보이지만, 시장이 주목하는 대목은 과세 대상에 실제 보유 지분뿐 아니라 의결권 등 기업 지배력이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실현되지 않은 부에 대해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리콘밸리 주요 기술기업 상당수는 차등의결권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창업자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분율로도 기업 의사결정을 주도할 수 있도록 설계된 방식이다. 문제는 이번 과세 구상이 이러한 의결권 비중을 그대로 평가 기준에 반영하려 한다는 점이다. 기업 가치가 커질수록, 지분율과 무관하게 세금 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는 구조다.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소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의결권 기준으로는 회사 경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같은 구조가 과세에 반영될 경우, 아직 현금화되지 않은 경영권을 기준으로 한 세금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비상장 스타트업에서는 부담이 더 직접적이다. 기업 가치 산정이 명확하지 않은 성장 단계에서 과세가 이뤄질 경우, 창업자는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지분 매각이나 외부 자금 조달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일부 외신은 특정 기술 스타트업 창업자가 투자 유치 단계에서 세금 부담으로 보유 지분 대부분을 상실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법안 설계에 참여한 측은 과도한 우려라는 입장이다. 비상장 주식에 대해서는 과세를 유예하고, 실제 매각 시점에 일정 비율을 납부하는 선택지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기업이 실패하면 세금이 발생하지 않고, 성공했을 경우에만 정부가 일정 몫을 가져가는 구조라는 논리다.

그러나 조세 실무 현장에서는 비상장 기업 가치 평가의 불확실성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평가 방식에 따라 과세 기준이 크게 달라질 수 있고, 주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세금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평가 책임이 개인에게 귀속될 경우, 세금 부담을 넘어 법적 리스크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가 커지고 있다.

이번 부유세 제안은 의료 재정 확보를 명분으로 한다. 캘리포니아 의료노조는 연방정부의 의료 예산 축소로 인한 재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초고액 자산가의 기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 측은 대상자는 제한적이지만, 확보 가능한 재원은 최대 1천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대 움직임도 빠르게 조직화되고 있다. 실리콘밸리 주요 인사들은 정치 성향을 초월해 대응에 나섰고, 제안된 과세 방식이 기업 활동과 투자 환경에 미칠 영향을 문제 삼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역시 해당 발의안이 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자본 이동의 조짐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주 소득세가 없는 플로리다는 최근 기술·금융 자산의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했다. 미 국세청(IRS)의 최근 통계에서도 캘리포니아는 고소득자 순유출이 이어진 반면, 플로리다는 순유입 상위 지역으로 분류됐다. 일부 실리콘밸리 인사들이 거주지와 사업 거점을 분산시키는 움직임에 나선 배경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논의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국내에서도 벤처기업 창업주에게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제도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 비상장 주식 과세는 주로 상속·증여 또는 매각 시점에 집중돼 있으며, 경영권 자체를 보유 단계에서 과세 대상으로 삼는 방식은 채택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의 사례는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지분과 지배력이 분리되는 글로벌 기술기업 구조에서, 조세 기준 설정이 기업 환경에 어떤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해외 진출을 추진하는 국내 스타트업과 투자자들 역시 법인 설계와 지분 구조뿐 아니라, 장기적인 제도 환경 변화까지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김광우 기자

kimnoba@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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