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필품은 11번가, 신선식품은 컬리"…쿠팡 사태가 바꾼 쇼핑 지도

  • 네이버 거래액 19%↑·이용자 11%↑…앱 다운로드 1위 등극
  • 컬리 신선식품 22%↑, 11번가 슈팅배송 229%↑…반사이익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소비 패턴 자체를 바꾸고 있다.

작년 11월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단순한 플랫폼 이탈을 넘어 '하나의 앱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던' 원스톱 쇼핑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쿠팡을 완전히 떠나기보다 용도를 제한하고 카테고리별로 최적 플랫폼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쇼핑 습관을 재편 중이다.

앱 결제 데이터 분석업체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12월 한 달간 쿠팡 앱 이탈자는 67만6983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2만3000명씩 감소한 셈이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 조사에서도 쿠팡의 주간 활성 이용자 수는 사태 발생 시점인 11월 29일 주 2784만명에서 12월 마지막 주 2668만명으로 4주 연속 하락했다.

주간 신용체크카드 결제추정액도 사태 첫 주 약 1조296억원에서 한 달 만에 약 9562억원으로 7% 이상 감소했다. 연말 이커머스 최대 성수기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하락세다.

주목할 점은 소비자들의 이탈 패턴이 상품 카테고리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커머스 서비스 (AI 생성)

신선식품과 장보기 영역에서는 컬리와 쓱닷컴으로의 이동이 두드러졌다. 컬리는 12월 한 달간 과일·채소 카테고리 주문량이 전월 대비 22% 급증했으며, 육류·수산 부문도 18% 신장세를 기록했다. 네이버와의 '컬리N마트' 제휴 효과에 쿠팡 이탈 수요가 더해진 결과다. 같은 기간 이용자가 209만명에서 239만명으로 14% 증가했으며, 결제추정액도 338억원에서 391억원으로 15% 늘었다.

쓱닷컴은 쓱배송(이마트 점포 연계 배송) 첫 이용자가 30% 이상 증가하며 오프라인 매장 네트워크를 활용한 신선식품 배송에서 강점을 발휘했다.

생활용품과 일상 소비재 부문에서는 11번가와 G마켓이 수혜를 입었다. 11번가의 '슈팅배송' 신규 이용자는 전년 동기 대비 229% 폭증했으며, 특히 화장지·세제 등 벌크형 생필품 주문이 집중됐다. 결제추정액은 462억원에서 496억원으로 7% 증가했다. G마켓은 주말 배송 서비스 도입 이후 소형 가전과 주방용품 카테고리에서 20% 이상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패션과 뷰티 영역에서는 무신사와 올리브영이 예상 밖의 수혜를 봤다. 무신사는 2026년 1월 첫 주 뷰티 카테고리 거래액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급증했다. 쿠팡에서 화장품과 의류를 함께 구매하던 소비자들이 전문 플랫폼으로 분산된 것으로 분석된다.

쿠팡멤버십 고객이던 김지현 씨(35)는 "예전엔 귀찮아서 쿠팡에서 다 시켰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식품은 컬리, 생필품은 11번가, 전자제품은 네이버로 나눠서 주문하고 있다"며 "오히려 각 분야 전문 플랫폼을 쓰니 할인 혜택도 더 많고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네이버플러스스토어(출처=네이버)

네이버쇼핑의 약진이 가장 두드러진다. 증권업계와 조사분석 업체 등에 따르면 네이버의 2026년 1월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는 쿠팡 사태 첫 주 325만명에서 12월 셋째 주 374만명까지 증가하며 11%의 이용자 증가율을 기록했다. 특히 1월 12일과 13일에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 일간 무료 인기 앱 1위를 차지했다.

네이버는 1월 7일부터 거래 종료 후 61일이 지난 주문 내역의 개인정보를 자동으로 가림 처리(마스킹)하는 정책을 API까지 확대 적용했다. 쿠팡이 2단계 인증 미도입으로 비판받은 것과 대비되는 보안 강화 행보다.

경쟁 플랫폼들은 공격적 마케팅에 나섰다. 쓱닷컴은 1월 6일 월 구독료 2900원의 '쓱세븐클럽' 멤버십을 출시하며 쿠팡 와우(7980원)보다 60% 이상 저렴한 가격을 내세웠다. 결제금액의 7%를 월 최대 5만원까지 적립해주는 혜택도 제공한다.

무신사는 쿠팡의 5만원 쿠폰 보상안을 정면으로 겨냥한 '조건 없는 5만원 할인 쿠폰'을 1월 14일까지 신규·기존 회원 모두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커머스 시장의 지각변동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통계청 집계 2025년 말 기준 시장점유율에서 쿠팡은 22.7%로 여전히 1위를 지켰지만, 네이버(20.7%)와의 격차는 불과 2%포인트로 좁혀졌다.

증권업계는 이번 사태가 단기 이슈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오동환 삼성증권 연구원은 "네이버로 유입된 신규 이용자들이 충성 고객으로 전환되는 효과는 2026년부터 본격화될 것"이라며 "특히 컬리 입점으로 신선식품 대응력을 갖춘 점이 장기적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메리츠증권 이혜민 연구원은 "현 추세가 이어질 경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성장률이 기존 전망 대비 5~10%포인트 상향 조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쿠팡은 지난 12월 29일 피해 고객 3370만명에게 1인당 5만원 상당의 구매 이용권을 지급하는 총 1조6850억원 규모 보상안을 발표했다. 1월 15일부터 순차 지급되는 이 쿠폰은 쿠팡 전 상품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알럭스 2만원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이용률이 낮은 여행·명품 서비스에 더 많은 금액을 배정했다는 점, 탈퇴 고객은 재가입해야만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보상 아닌 마케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5만원으로 개인정보 판 꼴", "재가입 유도용 쿠폰" 등 부정적 반응이 확산됐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정부·국회와도 대립각을 세우며 장기전 양상을 보이는 만큼, 2026년 시장 점유율 변화가 주목된다"며 "쿠팡의 최대 강점인 배송 속도와 가격 경쟁력을 완전히 대체할 플랫폼이 등장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2025년 기준 약 250조원 규모로 성장했으며, 쿠팡과 네이버가 합쳐 시장의 43%를 장악하고 있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이 양강 구도에 균열을 낼지, 아니면 쿠팡의 일시적 위기로 끝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재엽 기자

anihil@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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