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가 ‘스펙’이 된 시대…제품탄소발자국, 공급망 경쟁력 가른다

IEA “2024년 배출량 378억톤”…탄소, 규제 넘어 산업 기준으로
삼성·LG·포스코까지 ‘제품 단위 탄소 관리’ 확대…수출 경쟁력 직결
글래스돔 사례로 본 제조 현장 변화…탄소 데이터가 기업 생존 좌우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에코디자인 규정(ESPR), 디지털제품여권(DPP) 도입을 통해 제품 단위 탄소 정보를 요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 제품탄소발자국이 산업의 또 다른 기준으로 자리 잡으며 기업들의 대응이 빨라지고 있다. (이미지=젠스파크로 생성)

탄소발자국이 산업의 또 다른 기준으로 자리 잡으며 기업들의 대응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3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Global Energy Review 2025’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에너지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78억 톤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흐름 속에서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에코디자인 규정(ESPR), 디지털제품여권(DPP) 도입을 통해 제품 단위 탄소 정보를 요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9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주요 디지털 기업들의 간접 배출이 최근 3년간 약 150% 증가했다고 발표하며, 탄소 문제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제 탄소는 환경 지표가 아니라, 제품 경쟁력과 공급망 참여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제품탄소발자국, ‘측정’에서 ‘경쟁력’으로

제품탄소발자국(Product Carbon Footprint, PCF)은 원재료 채굴부터 생산, 유통,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정량화한 지표다. (이미지=젠스파크로 생성)

제품탄소발자국(Product Carbon Footprint, PCF)은 원재료 채굴부터 생산, 유통,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정량화한 지표다. 최근 산업계에서 이 개념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탄소가 더 이상 외부 비용이 아니라 제품 내부에 내재된 ‘비용 구조’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기후 테크 SaaS 기업 CO2 AI가 발표한 ‘Climate Survey 2025’는 측정 기업 비율 자체는 아직 낮지만, 투자와 내부 탄소 가격 도입 등 실행 체계는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너지 측면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IEA ‘Energy and AI’ 2025. 04.)는 약 415TWh(테라와트시)로 전체 전력의 1.5% 수준이며, 생성형 AI 확산으로 증가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IT 산업에서도 제품 또는 서비스 단위 탄소 측정이 불가피해졌음을 보여준다.

핵심은 공급망 구조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은 Scope 3(기업이 직접 배출하지 않지만 원재료 조달, 물류, 제품 사용·폐기 등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 관리 강화를 통해 협력사의 제품 탄소배출량까지 관리하기 시작했다. 협력사가 생산한 제품의 탄소가 곧 완성품 기업의 배출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 구조에서는 제품탄소발자국이 곧 납품 조건이 된다.

결국 PCF는 측정 지표를 넘어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진화하고 있다. 성능과 가격 중심의 경쟁 구도에 ‘탄소’가 포함되면서, 기업들은 제품 설계 단계부터 배출량을 고려하는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삼성·LG·포스코…국내 산업, 탄소 데이터 경쟁 본격화

각 기업들의 대응을 보면 탄소는 더 이상 환경 대응이 아니라, 제품 경쟁력과 공급망 참여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재정의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미지=젠스파크로 생성)

이 같은 변화는 국내 주요 산업에서도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삼성, LG, 포스코 등 주요 기업들은 제품탄소발자국 관리 체계를 구축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제품 전 과정의 탄소배출량을 관리하는 ‘제품 탄소발자국 산정 체계’를 확대 적용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주요 IT 제품에 대해 탄소발자국 라벨링을 적용했으며, 일부 제품은 국제 인증을 획득했다. 또한 2030년까지 디바이스경험(DX) 부문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설정하고, 제품 설계 단계부터 탄소 저감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에서는 탄소 데이터가 직접적인 납품 기준으로 작용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생산 전 과정의 탄소배출량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글로벌 완성차 기업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원재료 단계까지 추적 가능한 탄소 관리 체계를 확대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탄소발자국은 차량 전체 배출 평가에 포함되기 때문에 경쟁력 요소로 작용한다.

철강 산업에서는 변화가 더욱 구조적이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등 저탄소 공정 전환과 함께 제품 단위 탄소배출량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EU CBAM 대응을 위해 철강 제품별 탄소 데이터를 산정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수출 경쟁력과 직결되는 요소다.

이들 사례는 공통된 방향성을 보여준다. 탄소는 더 이상 환경 대응이 아니라, 제품 경쟁력과 공급망 참여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재정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대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급망 구조상 협력사까지 동일한 수준의 탄소 데이터 관리가 요구되면서, 중소·중견 기업 역시 대응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실제 제조 현장의 데이터 확보 문제가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글래스돔, 섬유 산업 PCF 검증…제조 현장의 현실

EU 에코디자인 규정과 디지털제품여권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은 협력사에 탄소 데이터 제출과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제조 현장에서 ‘데이터 확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이미지=젠스파크로 생성)

이 같은 흐름은 제조 현장에서 ‘데이터 확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탄소 데이터 관리 전문기업 글래스돔은 최근 효성티앤씨, 부성TFC, 덕우실업 등 국내 섬유 제조기업 3개사를 대상으로 제품탄소발자국 산정 및 제3자 검증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는 제품 탄소발자국 국제 표준(ISO 14067) 기반으로 수행됐으며, 글로벌 인증기관 로이드인증원(LRQA)을 통해 데이터 신뢰성을 확보했다. 특히 제직, 염색, 코팅 등 섬유 산업 특유의 복잡한 공정을 반영해 PCF를 산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섬유 산업은 공정이 다단계로 분산돼 있어 탄소 데이터 통합 관리가 어려운 대표적인 산업이다. 실제로 국내 섬유 기업의 탄소 관리 인프라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계측 및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도 제한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의 요구는 이미 달라졌다. EU 에코디자인 규정과 디지털제품여권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은 협력사에 탄소 데이터 제출과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중소·중견 기업까지 포함한 공급망 전반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탄소 데이터 관리 전문기업 글래스돔은 최근 효성티앤씨, 부성TFC, 덕우실업 등 국내 섬유 제조기업 3개사를 대상으로 제품탄소발자국 산정 및 제3자 검증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미지=글래스돔)

글래스돔은 PCF 산정부터 보고, 제3자 검증까지 전 과정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통합 관리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공정별 배출 기여도를 분석해 실제 감축 전략 수립까지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장에서도 변화의 효과가 확인된다. 참여 기업은 공정별 탄소 배출 기여도를 파악함으로써 향후 글로벌 바이어 요구에 선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제품탄소발자국은 일부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공급망 전체가 따라야 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제조 현장의 데이터 확보에서 시작된 변화는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탄소 데이터는 이제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기 위한 ‘필수 언어’가 되고 있다.

황정호 기자

jhh@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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