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SNS에 올린 평범한 셀카 한 장. 그것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 성착취물로 둔갑해 인터넷 곳곳을 떠돌고 있다면 어떨까. 2026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디지털 성범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5년 한 해에만 1만 637명이 피해자 지원을 받았고, 지원 건수는 35만 2,103건에 달했다. 특히 딥페이크를 포함한 합성·편집 피해는 심각하다. 2024년 1,384건에서 2025년 1,616건으로 16.8% 증가했으며, 2021년과 비교하면 경찰 신고는 6배, 피해자 지원은 7배 이상 폭증했다. 문제는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 지인의 얼굴이 성착취물이 되는 시대
딥페이크 성범죄의 가장 섬뜩한 특징은 '실제 촬영'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판결문 분석 결과,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SNS 프로필이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수집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딥페이크 제작물의 56.60%는 가해자가 직접 제작했으며, 피해자의 40.25%는 지인이었다. 연예인(25.78%)보다 오히려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더 많았다.
2025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중 10대와 20대가 8,258명으로 전체의 77.6%를 차지했다. 구체적으로 20대가 5,226명, 10대가 3,032명이었다. 디지털 플랫폼 이용 빈도가 높을수록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진다는 방증이다.
피해 유형을 보면 '유포불안'이 4,884건(27.7%)으로 가장 많았다. 실제 유포되지 않았더라도 언제 영상이 퍼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피해자가 가장 많다는 의미다. 불법촬영 3,856건, 실제 유포 3,113건, 유포협박 2,154건이 뒤를 이었다.
■ 기술은 진화하는데, 처벌은 제자리
범죄 생태계는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가해자의 18.24%는 텔레그램 채널을 운영하며 범죄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성착취물을 제작·유통하는 구조다. 그러나 판결 과정에서 범죄단체 조직죄는 적용되지 않았다.
처벌 수위는 더욱 문제다.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의 88.68%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기소됐지만, 절반에 가까운 47.17%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피해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디지털 흔적과 싸워야 하는데, 가해자는 법정을 나서는 순간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2024년 8월 28일부터 2025년 3월 31일까지 약 7개월간 경찰이 허위영상물 범죄 집중단속을 실시했다. 총 963명을 검거하고 59명을 구속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가해자가 여전히 많고, 범죄는 계속되고 있다.
■ AI가 범죄를 만들면, AI가 범죄를 잡는다
정부는 기술로 기술에 대응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2026년부터 성평등가족부는 AI 기반 디지털 성범죄 대응 시스템을 본격 가동했다.

'아동·청소년 온라인 성착취 선제적 대응 시스템'은 SNS와 랜덤채팅앱을 24시간 자동으로 모니터링한다. 키워드 탐지, 이미지 내 텍스트 추출, 신체 노출도 판단, 아동·청소년 여부 추정, 유사 이미지 대조 등 다단계 분석을 거쳐 성착취물 여부를 판단한다. 시범운영 25일간 종사자 1인당 일평균 수집 건수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 2.7배, 성착취 유인정보는 80배 증가했다.
삭제 시스템도 자동화됐다. 약 2만 개 사이트에 대한 삭제요청부터 처리 이력 관리까지 전 과정이 자동화되면서 건당 처리 시간은 1분 이내로 단축됐다. 미국 국립실종학대아동방지센터와 클라우드플레어와의 API 연계를 통해 우회 접속 URL도 대량으로 자동 삭제할 수 있게 됐다.
딥페이크 탐지 솔루션도 도입됐다. 육안으로 판별이 어려웠던 합성물을 AI가 정확히 식별해낸다. 온라인 모니터링 중 의심 영상이 발견되면 즉시 솔루션을 적용해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한 합성물까지 찾아내 추가 유포를 차단한다.
■ 텔레그램의 변심,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대응
'추적당하지 않는 메신저'로 각종 범죄의 온상이었던 텔레그램이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2024년 10월부터 한국 경찰의 수사 자료 요청에 95% 이상 응답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찰이 제공받은 자료는 1천여 건에 이른다. 경찰이 정해진 형식에 따라 요청서를 보내면 텔레그램이 자사 정책과 국제법 위반 여부를 검토한 뒤 가입자 정보나 IP 기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경남경찰청은 지난해 딥페이크 합성물을 제작·유포한 10대 고등학생을 구속하고 공범 23명을 검거했다. 텔레그램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한 뒤 위장 수사와 텔레그램과의 공조를 통해 이들을 모두 붙잡은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25년 피해자 중 지속 피해자는 4,797명으로 전년 대비 26.3% 증가했다. 피해영상물이 추가로 유포되거나 재유포되면서 피해가 지속되는 것이다. 삭제해도 다시 올라오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일회성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
■ 피해자가 짊어지는 평생의 짐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단순한 영상 유포 이상의 고통을 안긴다. 피해자의 신체를 직접 촬영하지 않고도 심각한 2차 피해와 사회적 고립을 초래한다. 피해자는 영상 존재조차 모른 채 주변인들의 시선에 노출되기도 한다.
딥페이크는 제작이 쉽고 유포는 빠르며 삭제는 어렵다. 2021년 대비 2024년 10월 기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는 5배, 피해자 지원은 약 7배, 경찰 신고는 6배 이상 증가했다. 기술 기반 범죄의 확산 속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수치다.
2025년 전체 지원 건수는 35만 2,103건으로 전년 대비 5.9% 증가했다. 이 중 피해영상물 삭제지원이 31만 8,020건(90.3%)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피해자들은 삭제 요청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더 이상 '예상되는 미래'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얼굴이 범죄의 재료로 쓰이고 있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지만 법과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AI가 범죄를 모니터링하고 삭제하는 시대가 왔지만, 정작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이다.
피해자가 평생 지워지지 않는 디지털 흔적과 싸우는 동안, 가해자의 절반은 집행유예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2026년 대한민국 디지털 성범죄의 민낯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