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인공지능(AI)은 글을 쓰고 그림을 만들며 프로그램 코드까지 작성한다. AI가 사람의 지적 업무를 상당 부분 대신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화면 속에서 좋은 답을 만드는 것과 공장·병원·도로에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다르다. 제조 현장에는 불량품이 충분하지 않고, 병원에서는 환자의 민감한 데이터를 마음대로 모을 수 없다. 차량에 탑재하는 AI는 작은 장치 안에서 주변 상황을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채정훈 에이아이매틱스(A.I.MATICS) 그룹장은 지난 2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AI 서밋 서울 & 엑스포 2026(AI SUMMIT SEOUL & EXPO 2026, AISE 2026)’ 센터 스테이지에서 이러한 차이에 주목했다. ‘AI 과도기, 월드모델 기반 산업 전략’을 주제로 발표한 그는 AI가 발전한다고 해서 산업 현장의 어려움이 한꺼번에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 뒤에 가려져 있던 다른 문제가 새로운 ‘병목’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채정훈 그룹장은 모빌리티, 제조, 의료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상용화를 주도해온 AI 기술 개발 리더다. 도쿄대학교 전기전자공학 석사 출신으로, 고효율 신경망 아키텍처 연구를 기반으로 산업 현장의 복잡한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해왔다.
PLK Technologies에서 AI 개발을 총괄하며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의 상용화를 이끌었고, 이후 에이아이매틱스에서 차량용 B2B AI 솔루션, 제조 현장 비전 검사 시스템, AI 기반 ECG 부정맥 진단 모델, AI 콜센터 서비스 등을 개발해 실제 매출 성장과 비용 절감 성과를 창출했다. 현재는 도메인 월드모델 기반 산업 적용 전략과 차세대 AI 플랫폼 구축을 이끌고 있다.
그런 채 그룹장이 제시한 전략은 현재 AI가 잘하는 업무만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에 나타날 병목을 먼저 찾아 해결하는 것이다. 에이아이매틱스는 이를 위해 거대한 범용 AI와 정면으로 경쟁하기보다 산업 현장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학습하는 ‘월드모델(world model)’에 집중하고 있다.
데이터 많은 언어 AI와 달리 산업 현장은 조건부터 다르다

최근 AI가 언어와 코딩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한 배경에는 풍부한 데이터가 있다. 인터넷에는 책, 기사, 문서, 프로그램 코드처럼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대량으로 쌓여 있다. 문장과 코드에는 단어와 기호로 뜻이 정리돼 있어 AI가 규칙과 관계를 찾기도 비교적 쉽다. 그러나 도로와 공장, 병원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는 사정이 다르다. 채 그룹장은 그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언어 분야가 빠르게 발전한 데는 인터넷에 많은 텍스트 데이터가 존재하고, 데이터의 추상화 수준도 높다는 조건이 작용했습니다. 반면 비전은 데이터가 많더라도 추상화 수준이 낮고, 피지컬 AI는 데이터의 양과 추상화 수준 모두 부족한 영역입니다. 저희가 다루는 사고나 불량 같은 사건은 발생 확률이 낮아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기도 어렵습니다. 여기에 각 산업의 현실적인 제약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채 그룹장이 이야기하는 추상화는 복잡한 현실에서 중요한 특징을 뽑아 단순한 개념이나 기호로 나타내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빨간불에서는 멈춘다’는 문장은 뜻이 분명하지만, 실제 도로 영상에서 빨간 신호등을 찾으려면 날씨와 거리, 주변 불빛까지 구분해야 한다.
산업 AI에는 장비와 운영 환경의 제약도 따른다. 클라우드 서버에서는 많은 전력을 사용해 큰 AI 모델을 실행할 수 있지만, 차량용 카메라나 공장 설비에 들어가는 장치는 크기와 전력 소비, 가격에 제한이 있다. 인터넷 연결이 끊겨도 즉시 판단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이처럼 차량이나 카메라 등 현장의 장치에서 AI의 핵심 연산과 판단을 직접 수행하는 방식을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라고 한다. 서버와의 통신 지연을 줄여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민감한 원본 데이터의 외부 전송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제한된 연산 능력 안에서 높은 성능을 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에이아이매틱스는 독자적인 비전 AI(vision AI) 기술을 바탕으로 모빌리티, 스마트팩토리, 보안, 헬스케어, 고객 서비스 분야의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비전 AI는 사람이 눈으로 사물을 보듯 카메라 영상에서 사람과 물체, 행동, 상황을 찾아내는 기술이다. 에아이매틱스의 자체 모델 ‘에임넷(aimNet)’은 하나의 AI가 여러 데이터와 과제를 함께 학습하도록 설계됐다.
“AI 전환은 병목의 소멸 아닌 이동”…다음 문제를 먼저 찾아야
채 그룹장은 AI의 성능 향상과 산업 전체의 생산성 향상을 같은 의미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AI가 코드를 작성하면 작업 시간이 곧바로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나 신약 개발은 컴퓨터 안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반도체는 설계를 마친 뒤에도 실제 칩을 만들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사하며, 불량률을 낮춰 대량으로 생산해야 한다. 신약 역시 AI가 후보물질을 빠르게 찾아도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거쳐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해야 한다. 앞부분의 작업 속도가 빨라지면 뒤에 남아 있던 검증과 생산 과정이 새로운 병목으로 드러날 수 있다.
범용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이 사람의 여러 지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더라도 이러한 물리적 절차가 저절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채 그룹장은 이 때문에 AI 전환기를 ‘병목이 사라지는 시기’가 아니라 ‘병목의 위치가 이동하는 시기’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AI 전환 뒤에는 병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해결된 병목 뒤에서 다른 병목이 드러난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반도체는 설계 이후의 검증과 생산이 남고, 신약 개발은 임상시험에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지금 자동화되는 일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다음에 나타날 병목에 집중해야 합니다. 다음 병목을 먼저 발견하고 해결하는 쪽이 새로운 가치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에이아이매틱스가 세운 몇 가지 방향성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첫째, 범용 AI가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산업 문제에 집중한다’ ‘둘째, 제조와 모빌리티 등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가진 분야를 공략한다’ ‘셋째, 사업 과정에서 얻은 현장 데이터와 도메인 지식을 회사의 핵심 자산으로 쌓는다’ 등이다.
이처럼 AI가 산업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단순히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뿐 아니라 이러한 판단 기준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채 그룹장의 설명이다.
정답만 외우지 않고 세상의 작동 원리부터 배우는 월드모델

에이아이매틱스가 산업 AI의 해법으로 제시한 기술이 월드모델이다. 이름 때문에 현실과 비슷한 영상을 만들어내는 생성형 AI로 오해하기 쉽지만, 월드모델은 환경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를 AI 내부에 표현하는 기술에 가깝다.
기존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은 대개 사진과 정답을 짝지어 AI에 보여준다. 고양이 사진에는 ‘고양이’, 불량품 사진에는 ‘불량’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가르치는 방식이다. 많은 예시를 학습한 AI는 새 사진이 들어왔을 때 가장 비슷한 답을 고른다.
월드모델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주변을 관찰하면서 물체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익힌다. 공을 놓으면 아래로 떨어지고, 가까운 물체는 크게 보이며, 움직이는 차량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충돌 위험이 커지는 것과 같은 원리를 배우는 셈이다. 이렇게 환경을 이해하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내부적으로 예상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행동을 계획할 수 있다.

“저희는 범용 AI와 정면으로 경쟁하지 않고, 다른 종류의 문제를 월드모델로 해결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월드모델은 월드 생성 모델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 환경을 내재적으로 이해하는 모델입니다. 인간이 주변 세계의 법칙을 스스로 경험하고 이해하듯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상하고 계획하며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는 이러한 월드모델을 각각의 산업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채 그룹장에 따르면 에이아이매틱스는 이러한 접근을 차량 영상 인식, 심전도 분석, 제조 비전 검사에 적용하고 있다. 차량 분야에서는 AI 안전운전 장치 ‘로드스코프 9(Roadscope 9)’가 운전자와 도로 주변을 실시간으로 살핀다. 로드스코프 9에는 앞서 언급된 에이아이매틱스의 자체 비전 AI 모델 에임넷이 적용됐다. 차량 내부 카메라는 졸음이나 주의 분산을 감지하고, 외부 카메라는 도로의 위험 상황을 분석해 운전자에게 경고한다.
의료 분야에서는 심전도(Electrocardiogram, ECG) 신호를 분석해 부정맥 등 심장 이상을 찾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심전도는 일반적인 글이나 사진과 데이터 형태가 다르고, 부정맥 종류에 따라 확보할 수 있는 사례의 양과 판별 난도도 달라진다. 에이아이매틱스는 이러한 의료 지식을 반영한 모델 구조에 월드모델을 더해 분석 성능을 높이는 방식을 제시했다.

제조 현장에서는 AI 비전검사 장비 ‘AIM-T1(에임-T1)’이 제품 표면을 촬영해 흠집과 도금 불량, 미결합 등을 찾는다. 에이아이매틱스에 따르면 AIM-T1은 2024년 개발됐으며 같은 해 12월 모기업 드림텍의 베트남 공장 일부 생산라인에 처음 적용됐다. 정상 제품의 특징을 먼저 익혀 평소와 다른 부분을 찾아내는 ‘이상 탐지(anomaly detection)’와 소량의 불량 데이터를 이용한 정밀 검사를 함께 활용한다.
그러나 검사 AI를 빠르게 개발한다고 해서 공장 자동화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제품을 알맞은 위치에 놓고 촬영할 장비를 설계하고, 검사 결과에 따라 불량품을 골라내는 장치를 연결해야 한다. AI 모델 개발 시간이 줄어들자 장비 제작과 운용이 새로운 병목으로 떠오른 것이다. 에이아이매틱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AI 모델뿐 아니라 검사 장비와 운영 체계를 함께 제공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날 채 그룹장의 발표는 AI 경쟁의 기준이 모델의 크기에서 산업 현장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범용 AI가 더 똑똑해져도 도로와 공장, 병원이 각각 어떤 원리와 제약 아래 움직이는지 알지 못하면 실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 산업 AI의 경쟁력은 다음 병목을 먼저 발견하고, 현장 데이터와 전문 지식을 활용해 이를 얼마나 빠르게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