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vs 오픈AI 소송의 진짜 쟁점은 '영업비밀'이 아니라 '이직의 자유'다

애플과 오픈AI 간 영업비밀 소송의 진짜 쟁점은 '누가 무엇을 훔쳤는가'가 아니다. '인재는 어디까지 자유롭게 옮겨갈 수 있는가'다.

애플은 지난 7월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오픈AI가 전직 직원들을 통해 하드웨어 설계·공급망 관련 영업비밀을 빼돌렸다는 주장이다. 이후 양측은 증거 인멸 의혹, 반박 서면 제출 등으로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오픈AI 측 소송 자료에는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하드웨어 프로젝트를 위해 전직 애플 직원 약 400명을 채용했다고 스스로 밝힌 부분이다. 오픈AI는 캘리포니아주법이 근로자의 자유로운 이직을 보장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애플이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소송을 이용하고 있다는 취지의 반박이다.

다만 이는 몰래 침투해 정보를 빼낸 산업스파이 사건과는 결이 다르다. 문제가 된 직원들은 정상적으로 퇴사해 오픈AI에 입사했다. 애플의 주장은 "재직 중 합법적으로 접근했던 정보를 퇴사 후에도 활용했다"는 민사상 영업비밀 침해에 가깝다. 애플이 형사고발이 아닌 민사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출처=AI 생성 이미지)

캘리포니아주는 사업·직업법(Business and Professions Code) 제16600조에 따라 경업금지 조항이 담긴 고용계약을 원칙적으로 무효로 본다. 2023년에는 이를 더 강화한 법안이 시행됐다. 다른 주에서 체결한 경업금지 계약이라도 캘리포니아 내에서는 효력이 없다. 이를 강제하려는 사용자에게는 근로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됐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인재의 이직 자체를 막을 법적 수단을 갖지 못하는 이유다. 대신 기업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영업비밀보호법(Trade Secret Act)이다. 애플·오픈AI 소송은 "경업금지가 없는 시장에서 벌어지는 필연적 결과"라는 진단이 나온다.

이 같은 해석은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같은 캘리포니아 북부지법는 지난 6월15일 일론 머스크의 xAI가 오픈AI를 상대로 낸 유사한 영업비밀 소송을 기각했다. 전직 직원이 영업비밀을 단순히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새 고용주의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애플이 이 판결 이후 25일 만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애플이 같은 법리적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가 이번 소송의 핵심 관전 포인트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한국은 근로자 이직 자체를 일정 기간 막는 전직금지약정이 폭넓게 활용된다. 대법원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는 한 이를 유효로 본다. 통상 퇴직 후 1년 이내의 제한 기간과 상응하는 대가 지급이 있다면 법원이 인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LG AI연구원은 소속 연구원과 임원이 업스테이지, KT로 이직하자 전직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현재 계류 중이다. 정부 AI 프로젝트마다 경쟁사와 협력사를 오가는 기업들이 제한된 인력을 놓고 소송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캘리포니아식 모델은 인재 유출을 감수하는 대신 기술 생태계 전체의 유동성과 혁신 속도를 끌어올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식 모델은 개별 기업의 핵심 인력 유출은 막을 수 있지만, 생태계 차원의 인력 이동은 제약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순유출된 최상위 AI 연구자·발명가는 월평균 11명이다. 조사 대상 21개국 중 다섯 번째로 유출 규모가 컸다. 저조한 보상과 연구 인프라 부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다만 국내 기업 간에도 인재가 자유롭게 옮겨 다니기 어려운 구조 자체가 생태계의 활력을 낮추는 요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애플과 오픈AI의 법정 다툼은 결국 '영업비밀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재 이동을 규제할 것인가, 시장에 맡길 것인가. 국내 AI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정재엽 기자

anihil@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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