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자기술 전문기업 SDT가 초전도체와 이온트랩에 이어 실리콘 스핀 방식으로 양자컴퓨터 제조 영역을 넓힌다. 서울대학교, 글로벌 양자 하드웨어 기업 세미콘(SemiQon)과 함께 연말까지 6큐비트 실리콘 스핀 양자컴퓨터를 시연하고, 서로 다른 양자처리장치(QPU)를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 통합 역량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SDT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3일까지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실리콘 양자 컴퓨팅 워크숍(Silicon Quantum Electronics Workshop, SiQEW 2026)’에 참가해 이 같은 개발 계획을 공개했다. 2007년 시작된 SiQEW는 반도체 큐비트 관련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국제 학술행사다. 올해 행사는 한국연구재단과 서울대학교 넥스트 퀀텀(Next Quantum), 응용물리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행사에서 SDT가 전면에 내세운 것은 양자 설계·제조를 아우르는 QDM(Quantum Design and Manufacturing)이다. 특정 큐비트 방식에 종속되기보다 계측·제어부터 극저온 환경, 고성능컴퓨팅(HPC) 연계까지 양자컴퓨터 구축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통합하는 전략이다.
연말 6큐비트 시연…SDT, 시스템 통합·운영 맡는다
실리콘 스핀 분야에서 가장 구체적인 계획은 연말 예정된 6큐비트 시스템 시연이다. SDT는 서울대학교 하이브리드 양자컴퓨팅 센터 산하 김도헌 교수 연구팀, 세미콘과 지난 4월 계약을 체결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역할은 나뉜다. 세미콘이 테스트를 마친 양자 칩을 공급하고 서울대가 측정과 관련한 학술 자문을 지원한다. SDT는 이를 하나의 양자컴퓨팅 시스템으로 구성해 실제 구동할 수 있도록 통합과 운영을 담당한다.
특히 희석냉동기 조립과 유지보수를 맡는 동시에 자체 개발한 양자 제어장비 ‘QCU’와 RF 인프라를 투입할 예정이다. 개별 양자 칩 개발보다 칩과 극저온 장비, 제어 시스템을 실제 운용 가능한 형태로 연결하는 데 SDT의 역할이 맞춰져 있다.
이번 시스템은 서울시와 협업해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 혁신파크에 구축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초전도·이온트랩에서 실리콘 스핀까지…QDM 범용성 확대
SDT는 이번 프로젝트를 기존 양자 하드웨어 사업의 확장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초전도체와 이온트랩 방식에 대응해 온 데 이어 실리콘 스핀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히면서 특정 QPU 구조에 종속되지 않는 계측·제어 기반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의 기반에는 여러 종류의 QPU를 지원하는 계측·제어장비가 있다. SDT는 다양한 연구진과 협업하며 큐비트 설계와 제조 경험을 축적해 왔으며, SiQEW 현장에서도 극저온 환경에서의 계측·제어와 HPC 연동 기술을 소개했다.
SDT는 이 같은 멀티 플랫폼 접근이 서로 다른 큐비트 아키텍처를 결합하려는 연구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추진하는 ‘HARQ’ 역시 이기종 큐비트 간 통신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서로 다른 양자 모달리티를 하나의 시스템에서 다루려면 각 QPU의 특성과 제어 구조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통합 기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윤지원 SDT 대표는 “이번 SiQEW 2026은 초전도체, 이온트랩을 넘어 실리콘 스핀 플랫폼에서도 시스템 전체를 아우르는 SDT의 역량을 알린 자리”라며 “서울대, 세미콘과의 6큐비트 시연을 통해 이기종 양자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CMOS 공정 호환성 강점…국산 제어 인프라 확보 나서
실리콘 스핀 큐비트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반도체 제조 기술과의 접점이 있다. 기존 CMOS(상보성 금속산화막 반도체) 공정과 호환성이 높아 향후 큐비트를 대규모로 집적하고 생산하는 데 유리한 구조로 평가된다.
반면 아직 기술적 난도는 높다. SDT는 현재 20큐비트 수준의 시스템 구현도 쉽지 않은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기존 반도체 제조 인프라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실리콘 스핀 방식의 확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SDT가 함께 겨냥하는 또 다른 영역은 연구용 하드웨어의 국산화다. 국내 양자 연구 현장에서 핵심 계측·제어 장비 상당 부분을 외산 제품에 의존하면서 도입과 유지보수에 시간이 걸리는 문제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QDM을 통해 극저온 장비와 제어·계측 인프라를 통합 제공해 연구자가 장비 구축보다 실험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실제 서울대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에서는 SDT의 QCU를 이용한 실리콘 스핀 큐비트 제어도 진행됐다. 김도헌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SDT의 최신 양자 제어장비인 QCU는 외산 장비를 대체하고 국산화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확보했다”며 “서울대와 SDT의 협력을 통해 이미 실리콘 스핀 큐비트를 국산 QCU로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말 6큐비트 시연이 예정대로 이뤄질 경우 SDT는 초전도체와 이온트랩에 더해 실리콘 스핀까지 다루는 양자 시스템 통합 경험을 확보하게 된다. 단일 큐비트 기술을 개발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양자 하드웨어를 지원하는 제조·제어 인프라를 사업 축으로 가져가겠다는 전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