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기에 없었다'의 저자 안드레아 바츠는 자신의 책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평범한 소설가였던 그녀는 2024년 어느 날, 자신의 작품이 AI 챗봇의 학습 데이터로 무단 활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는 같은 처지의 작가들과 함께 실리콘밸리의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년 뒤인 2025년 9월 6일, 앤트로픽은 15억 달러의 합의금을 내놓았다. 한화로 약 2조원이었다. 책 한 권당 3000달러씩, 50만 권 분량이었다.

앤트로픽이 법정에 제출한 문서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패소할 경우 최대 1조 달러의 손해배상 위험이 있었다. 사업을 끝내야 할 수도 있다는 압박 속에 합의를 택했다." 캘리포니아 법원은 앞서 앤트로픽이 해적 사이트에서 최대 700만 권의 책을 불법으로 내려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12월로 예정된 배심원 재판을 앞둔 상황이었다.
비슷한 시기, 할리우드도 움직였다. 2025년 6월 11일, 디즈니와 유니버설은 AI 이미지 생성업체 미드저니를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디즈니 엔터프라이즈, 마블, 루카스필름, 20세기 폭스, 유니버설 시티 스튜디오, 드림웍스 등 6개 영화사가 함께였다. 이들은 '슈렉', '스타워즈', '심슨 가족' 같은 캐릭터들이 무단으로 학습됐다며 저작권 침해 건당 15만 달러의 배상을 요구했다. 세계적 영화사들이 생성형 AI를 상대로 소송을 낸 첫 사례였다.
2026년, AI 저작권 전쟁은 법정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 '공정 사용'이라는 이름의 논쟁
핵심은 단순해 보인다. AI가 저작권 있는 콘텐츠를 학습하는 게 합법인가. 그런데 법원마다 입장이 다르다.
2025년 2월, 미국 델라웨어 연방법원의 스테파노스 비바스 판사는 통신사 톰슨 로이터가 경쟁사 로스 인텔리전스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AI 학습을 위한 정보 수집이 '공정 사용'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로스가 법률 플랫폼을 만들려고 로이터의 콘텐츠를 복사한 행위는 상업적이고 변형적이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판사는 특히 로스의 행위가 로이터의 잠재적 AI 학습 데이터 시장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AI 저작권 소송에서 공정 사용 문제를 다룬 미국 첫 판결이었다.
그런데 영국은 달랐다. 2025년 11월 4일, 런던 고등법원의 조안나 스미스 판사는 게티이미지가 스태빌리티AI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저작권 침해 작품을 저장하거나 복제하지 않는 AI 모델은 침해 복제품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게티는 자사의 수백만 장 이미지가 스테이블 디퓨전 학습에 무단 사용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증거 확보에 실패해 저작권 침해 주장 대부분을 철회했다. 법원은 모델이 이미지를 따로 복제하거나 저장하지 않으면 학습 자체는 문제없다고 봤다. 다만 생성물에 게티의 워터마크가 포함된 경우는 상표권 침해로 인정했다.
미국 음악계도 법정으로 갔다. 2026년 2월 21일, 콩코드 뮤직 그룹, 유니버설 뮤직 그룹, ABKCO 뮤직 등 3개 출판사가 앤트로픽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들은 앤트로픽이 불법 복제 사이트 '리브젠'과 '파일리미'를 통해 음악 가사가 든 수백만 권의 서적을 무단으로 내려받아 학습시켰다고 주장했다. 약 2만 건 이상의 음악 작품이 포함된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손해배상 규모는 수십억 달러로 추정됐다.
2026년 5월 5일에는 엘스비어, 센게이지, 해셰트, 맥밀런, 맥그로힐 등 5개 출판사와 작가 스콧 투로우가 메타를 뉴욕 남부연방법원에 제소했다. 메타가 교과서, 학술 논문, 소설 등을 무단으로 복제해 대형언어모델 '라마' 학습에 썼다는 것이다. N.K. 제미신의 '다섯 번째 계절', 피터 브라운의 '야생 로봇' 같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됐다. 메타는 "법원도 AI 학습을 위해 저작권 있는 자료를 활용하는 게 공정 이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법적 기준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 언론사들의 반격
언론계는 AI 저작권 침해의 최전선에 있다. 2023년 12월 27일, 뉴욕타임스는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다. 챗GPT와 빙챗이 자사 콘텐츠를 그대로 복제해 이용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웹사이트 방문을 차단하고 허위 정보까지 제공한다는 게 주장의 골자였다. 2025년 4월 13일, 뉴욕 남부지방법원의 시드니 스타인 판사는 오픈AI의 기각 신청을 일부 거절했다. 법원은 오픈AI가 훈련 단계부터 저작권 침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이용자에 의한 침해를 유발해 기여 침해가 성립한다고 봤다.
2025년 12월 5일에는 뉴욕타임스가 AI 스타트업 퍼플렉시티도 제소했다. 콘텐츠 사용 중단을 요구한 지 1년 만이었다.
2025년 2월에는 가디언, LA타임스, 폴리티코, 콘데나스트 등이 캐나다 AI 기업 코히어를 저작권 침해 혐의로 제소했다. 이들은 코히어가 4000건 이상의 기사를 AI 학습과 답변에 활용했으며, 유료 기사까지 무단으로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AI가 해당 매체 명의로 가짜 뉴스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판결이 나왔다. 뮌헨 제1지방법원은 음악저작권 관리단체 GEMA가 낸 소송에서 오픈AI의 GPT 모델이 노래 가사를 학습, 기억, 재현한 행위를 저작권 침해로 판단했다. 법원은 가사가 모델 파라미터에 암기돼 간단한 프롬프트만으로 동일한 가사를 재생산할 수 있다며, 이를 단순한 텍스트·데이터 마이닝이 아닌 복제·전송으로 봤다. 오픈AI는 손해배상과 함께 이용 중지, 그리고 어느 가사를 얼마나 어떻게 사용했는지 정보를 제공하고 열람시켜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 한국도 예외 아니다
한국 법정에도 불이 붙었다. 2025년 1월, KBS·MBC·SBS 지상파 3사는 네이버가 자사 뉴스를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 학습에 무단으로 썼다며 저작권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손해배상과 학습금지를 청구했다. 2026년 1월 3차 변론에서 지상파 3사는 약 9만 7000건의 침해 주장 기사 목록을 제출했다.

한국신문협회도 2025년 2월 17일, 네이버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협회는 "네이버가 2021년 발표 논문에서 블로그,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과 함께 뉴스를 주요 학습 데이터로 소개했다"며 "네이버를 비롯한 생성형 AI 기업이 뉴스 콘텐츠를 무단 이용하는 건 저작권법 위반이며,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신문협회는 네이버에 이어 구글 등 해외 생성형 AI 기업들도 단계적으로 공정위에 제소할 방침이다.
이 소송들은 단순히 돈 문제를 넘어선다. AI 산업의 핵심인 '데이터 확보 방식'과 '생성 결과물 책임'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판례가 될 전망이다.
■ AI가 만든 작품, 저작권은 누구 것인가
분쟁의 또 다른 축은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저작권은 누구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2026년 3월 3일, 미국 대법원은 AI가 독창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어도 법적으로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AI가 100% 만든 작품이라도 AI 자체는 저작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작권법상 저작물은 인간의 창작물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셈이다.

미국 저작권청도 "AI 산출물 중 사람이 기여한 부분만 저작권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AI 단독 결과물은 원칙적으로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없지만, 인간이 AI 결과물을 직접 수정·보완하거나 창작적 개입을 한 경우에는 그 부분에 한해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판단은 현행 저작권법이 AI 시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성형 AI가 만드는 콘텐츠 양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법적 보호 범위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어느 정도여야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 AI 개발사가 생성물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 등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 해법을 찾아서
AI 저작권 전쟁은 법적 분쟁을 넘어 기술 발전과 창작자 보호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일부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연쇄 창업가 이승윤 대표가 설립한 프로그래머블IP랩스는 AI로부터 저작권을 보호하는 '스토리 프로토콜'이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등록된 저작물을 AI가 학습이나 답변에 활용하면 자동으로 추적해 이용료를 청구한다. AI가 비용을 내고 저작물을 정당하게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3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패리스 힐튼, 방시혁 하이브 의장, 삼성 및 미국 유명 벤처투자사들로부터 1억 40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창작자들이 일일이 AI의 저작권 침해 사례를 추적해 법적으로 대응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저작권 은행을 만들어 공동 대응하는 방식은 저작권자와 AI 업체 모두에게 효율적일 수 있다. AI 기업들도 정당한 저작권료 지불이 AI의 신뢰를 높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맥쿨 스미스 로펌의 채드 허멜 변호사는 앤트로픽 합의를 두고 "생성형 AI 기업을 상대로 한 첫 주요 합의로 역사적 사건"이라며 "업계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고, 동의 없는 접근에 대한 기업 관행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AI 시대의 저작권 문제는 법정에서만 해결되지 않는다. 기술, 법, 윤리가 함께 작동하는 새로운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AI 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2조원 합의금과 수많은 소송은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몇 년간 전 세계 법정에서 내려질 판결들이 AI 시대 창작과 저작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