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업자를 발굴해 투자하고 성장시키던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AC)가 이제는 회사가 만들어지기 전 단계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 이미 설립된 스타트업을 골라 투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를 발굴해 시장성을 검증하고 창업자를 찾아 법인을 함께 세운 뒤 초기 경영까지 관여하는 ‘벤처스튜디오(Venture Studio)’ 모델이다. 자본뿐 아니라 인력과 기술, 지식재산권(IP), 법무·재무·채용 등 창업에 필요한 기능을 조직 내부에서 함께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존 액셀러레이팅과 구별된다.
정부 정책도 이런 흐름을 따라 움직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미 지난 2024년 10월 ‘선진 벤처투자 시장 도약 방안’에서 창업기획자의 자회사 설립 방식 투자, 이른바 컴퍼니빌딩(Company Building)의 허용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8월 5일부터는 경영지배 목적 투자 예외 요건에서 ‘해당 창업기획자가 직접 선발하거나 보육한 초기창업기업’이라는 제한이 삭제됐다.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벤처스튜디오 활성화’가 포함됐다.

문제는 ‘회사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과 벤처스튜디오가 기존 창업·투자 제도 안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다. 과반 지분으로 회사를 세우면서 경영지배 목적 투자는 가능해졌지만 신설회사의 창업기업 인정, 초기창업기업 의무투자 실적, 지분 보유와 회수기간이 서로 다른 법령의 기준에 걸린다. 여기에 외부 출자자(LP)나 모태펀드 자금을 활용하면 자금의 성격과 위험 부담, 이해상충 관리 문제까지 더해진다.
이 같은 쟁점은 얼마전 서울 서초구 드림플러스 이벤트홀에서 열린 ‘KAIA 벤처스튜디오 인사이트 세미나’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협회(KAIA)가 마련한 행사에서 공성현 KAIA 사무국장은 ‘액셀러레이터형 벤처스튜디오 제안 모델’을, 안희철 법무법인 DLG 대표변호사는 ‘창업과 M&A를 잇는 벤처스튜디오 제도와 법률적 쟁점’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실제 도입 과정에서 맞닥뜨릴 지분구조와 자금 운용 문제를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투자자’에서 ‘공동창업자’로…AC 역할의 확장

공성현 국장은 AC가 만들어진 취지와 실제 운용 방식 사이의 간극부터 짚었다. 극초기 창업팀을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도입된 AC가 실제 현장에서는 VC와 비슷한 평가·투자 프로세스 안에서 움직이면서 역할의 폭이 좁아졌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액셀러레이터가 벤처스튜디오 모델을 고민했던 건 다양성이라는 관점 때문입니다. 사실 투자자라고 하면 벤처캐피털도 충분히 많고, 액셀러레이터는 벤처캐피털이 커버하지 못하는 극초기 스타트업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육성하느냐는 정책적 관점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벤처캐피털과 똑같은 틀과 프로세스로 출발하다 보니 계속 ‘투자자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왔습니다. 투자자는 만들어진 회사에 밸류에이션을 책정해서 지분을 사고파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너무 획일적이라는 거죠. 왜 액셀러레이터는 새로운 아이템과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찾으면 안 되느냐는 필요 때문에 벤처스튜디오 모델이 관심을 받게 된 겁니다.”
이어 공 국장은 벤처스튜디오의 개입 시점을 기존 인큐베이터·AC·VC보다 앞선 ‘프리 아이디어(Pre-Idea)’ 단계로 잡았다. 산업과 기술, IP를 탐색하고 사업 아이디어를 검증한 뒤 핵심 인력과 인프라를 투입해 고객 문제를 정의하고 팀을 구성하는 단계부터 관여한다는 설명이다.

“벤처스튜디오의 핵심은 한 번 회사를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고,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는 데 있습니다. 컴퍼니빌딩이 한 회사를 처음부터 성장 단계까지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벤처스튜디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발굴하고 검증해 여러 사업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실질적으로 아이템을 같이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투자기관 자체가 공동창업자가 되는 겁니다. 외부 창업가가 사업을 주도하도록 기회를 주더라도 첫 아이디에이션 단계부터 투자가 연결돼 성장하는 단계까지 벤처스튜디오가 많은 역할을 합니다. 저는 그게 공동창업자의 개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벤처스튜디오는 별도의 투자상품이라기보다 AC의 사업 방식 변화에 가깝다. 아이디어 발굴과 시장 검증, 팀빌딩, 법인 설립, 초기 경영까지 하나의 조직이 연속적으로 관여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2025년 8월 경영지배 목적 투자 예외 요건을 완화한 것도 예비창업자와 함께 법인을 설립하는 구조를 제도권 안에서 논의할 수 있게 했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규정에는 시간 조건이 남아 있다. AC가 경영지배 목적 투자를 할 경우 경영지배 성립일부터 6개월이 되는 날까지 해당 주식이나 지분을 보유해야 하고, 원칙적으로 7년 이내에 전부 매각해야 한다. 공 국장이 발표한 ‘AC가 공동창업자로서 장기간 회사를 만든다’는 구상과 기존 투자 규정 사이에서 현재와 같은 쟁점이 발생하는 대목이다.
‘벤처스튜디오’는 투자기관이 아니다…법체계가 놓친 공동창업

안희철 변호사는 먼저 기존 벤처투자 제도에서 무엇이 ‘투자기관의 자격’이고 무엇이 ‘운영 방식’인지 구분했다. 창업기획자와 벤처투자회사는 법이 요건과 의무를 정한 지위인 반면, 벤처스튜디오 논의는 회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누가 어떻게 수행하느냐의 문제라는 접근이다.
“벤처스튜디오는 어떤 투자기관의 종류가 아닙니다. 창업기획자와 벤처캐피털은 벤처투자법에서 규정하는 투자기관이지만 벤처스튜디오는 성격이 다른 겁니다.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시장조사를 하고 법인을 설립하고 창업자를 영입한 뒤 제품을 개발하고 초기 자금을 투자하고 인사·재무·법무·마케팅까지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수행하는 겁니다. 그렇게 여러 회사를 연속적으로 창업하는 과정까지 나아가는 게 벤처스튜디오입니다. 그래서 이 모델은 액셀러레이터도 할 수 있고 벤처캐피털도 할 수 있습니다.”
안 변호사는 지분율과 경영 관여 수준에 따라 벤처스튜디오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신설법인 지분 50%를 초과해 직접 경영하는 ‘자회사형’, 과반 미만 지분을 보유하되 이사 선임권이나 중요 의사결정권을 확보하는 ‘공동창업형’, 창업자가 경영권을 갖고 스튜디오가 소수지분과 공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창업자주도형’이다. 법률적 쟁점은 특히 자회사형과 공동창업형에서 커진다.

현행 벤처투자법 시행규칙에서 경영지배는 단순히 지분 50% 초과만을 뜻하지 않는다. AC가 이사회 구성원 과반수의 임면권을 갖거나 주주총회에서 과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 AC 임직원이 투자기업 대표이사를 겸직하거나 이사회 과반을 차지해 주요 재무·영업사항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경우도 경영지배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AC가 개인투자조합 또는 벤처투자조합의 업무집행조합원(GP)으로서 해당 조합 자금으로만 투자하는 경우에는 ‘50% 초과 소유’ 기준의 예외가 적용된다. 그러나 다른 경영지배 판단 기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안 변호사의 발표는 법령 간 연결 문제로 넘어갔다. 벤처투자법에서는 일정 요건 아래 경영지배 목적 투자를 허용하지만, 중소기업창업 지원법의 창업기업 인정 기준은 별도로 작동하는 부분이다. 두 제도가 같은 신설회사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투자실적 산정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 구조다.
“중요한 건 창업기업의 정의가 중소기업창업지원법에 있다는 겁니다. 법인인 기업이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의 50%를 초과해서 소유한 신설법인은 창업기업이 아닌 겁니다. 창업기업이 아니면 초기창업기업도 아닙니다. 벤처스튜디오가 50%를 초과해 법인을 만들어서 키우면 그 투자는 40% 의무투자 비율에서 빠지는 문제가 생겨요. 그러면 창업기획자 입장에서는 벤처스튜디오로 투자할 회사와 초기창업기업에 투자해 의무비율을 맞추는 일을 따로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다만 현행 제도에는 이 문제를 일부 보완하는 규정이 이미 시행 중이다. 올 1월 1일부터는 설립 당시 이런 사유로 창업에서 제외됐더라도 사업 개시 후 7년 이내에 제외 사유를 해소하면 그 사유가 해소된 날부터 창업으로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쟁점은 과반 지분 자회사가 영원히 창업기업이 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창업기업으로 인정되기 전까지 투입한 자금과 후속투자를 초기창업기업 투자실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더 가깝다. 다만 공개된 법령만으로는 이전 투자금의 소급 인정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창업기획자의 투자의무 이행기간도 올해 7월부터 등록 후 3년에서 5년으로 완화됐다. 창업기획자는 등록 후 5년이 지난 날까지 전체 투자금액 가운데 대통령령이 정한 비율인 40% 이상을 초기창업기업 투자에 사용해야 하고 이후에도 해당 의무를 유지해야 한다. 벤처스튜디오를 본격적으로 운용하려면 지분구조뿐 아니라 창업기업 인정 시점과 투자실적 계산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안 변호사는 법률 설계가 창업 단계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자회사형 벤처스튜디오는 설립 때부터 주주 간 계약으로 지분율과 이사 선임권, IP 귀속, 공용 서비스 범위를 정하고, 언제 경영지배를 해소하고 지분을 이전할 것인지까지 계획해야 한다. 7년 내 전량 매각이라는 규정까지 고려하면 창업과 육성, 경영권 이전, M&A·IPO 등 회수 전략을 하나의 로드맵으로 설계해야 하는 셈이다.
‘내 돈으로 창업’과 ‘LP 돈으로 창업’은 다르다

발표 뒤 패널토론에서는 개인투자조합이나 벤처투자조합의 자금을 벤처스튜디오에 활용할 수 있는지가 논의됐다. LP 동의를 전제로 한 조합 자금 활용 가능성을 묻는 공 국장의 질문에 안 변호사는 “법적으로 가능한지와 전통적인 벤처스튜디오 모델에 적합한지는 나눠서 봐야 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동의를 받고 하면 조합으로 투자하는 것 자체는 문제없을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AC가 직접 자기 돈으로 회사를 만들고 육성하면서 벤처스튜디오 모델을 구현하는 것과 LP들의 돈을 받아 조합을 만들고 그 조합이 회사를 만든 다음 성장시키는 건 다른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후자보다는 전자 쪽으로 가야 성장이나 관리, 보육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가장 큰 건 창업 과정에서의 리스크입니다. 모태펀드나 이런 조합은 해산해야 하는 기한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자기자본 방식에서는 실패 위험을 기본적으로 AC가 부담한다. 반면 LP나 정책자금이 들어간 조합은 존속기간과 청산 시점이 정해져 있고, 출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투자심의와 이해상충 관리도 필요하다. 아직 제품과 법인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단계부터 자금을 투입하는 벤처스튜디오의 특성과 기존 펀드 운용 원칙을 어떻게 맞출지가 별도의 과제가 되는 셈이다.
정책 논의도 자금 공급 단계로 옮겨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기부가 최근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에서 중소기업모태조합 출자 예산은 올해 8200억원에서 내년 정부안 1조3000억원으로 확대됐다. 공식 예산안에는 ‘벤처스튜디오’가 별도 출자 분야로 명시되지 않았다. 다만 중기부는 2027년 모태펀드 출자사업에 벤처스튜디오 분야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는 제도가 완전히 정리되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하는 중소형 AC의 불안감도 표출됐다. 패널토론에 참여한 한 AC 관계자는 “새로운 성장모델에 도전했다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규제로 기존 펀드 운용이나 사업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현행법 안에서 가능한 지분구조와 계약 방식을 담은 실무 기준을 요청했다. 이에 공 국장은 협회 차원의 기준 정리 작업과 중기부 협의 상황을 설명했다.

“저희가 벤처스튜디오 플레이북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시행령에서 정의되지 못하거나 모호한 영역들을 중기부와 계속 맞춰가고 있습니다. 벤처스튜디오를 통해 창업한 기업을 창업기업으로 어디까지 인정할지 정리가 돼야 가이드북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분 50% 이상이면 됩니다’라고 하는 순간 문제가 꼬이기 시작합니다. 50% 이상 지분을 가진 경우도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창업활동이라고 정리돼야 업계에 적극적으로 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벤처스튜디오 논의는 ‘AC가 직접 회사를 만들어도 되는가’라는 첫 단계는 넘어섰다. 다음 과제는 공동창업자로 참여한 AC의 경영지배를 어떤 조건에서 인정할지, 그렇게 만든 회사의 창업기업 지위와 초기창업기업 투자실적을 어떻게 연결할지, 외부자금을 투입할 때 투자자 보호와 장기 육성을 어떤 구조로 조화시킬지다. 이 세 축이 함께 정리되지 않으면 벤처스튜디오라는 이름은 허용돼도 실제 운용은 기존 제도의 빈틈을 피하는 설계에 머물 수 있다.
결국 제도화의 핵심은 새로운 투자기관 하나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투자자가 회사의 탄생부터 함께하는 방식을 기존 창업·투자 법체계 안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창업자와 투자자, 외부 출자자의 권리와 위험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벤처스튜디오의 성패를 가를 쟁점으로 남은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