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기술은 그 자체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산업혁명의 상징처럼 기억되는 증기기관에는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있었고, 오늘날 세계 전력망의 기반이 된 교류 시스템의 역사에는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가 있었다. 하지만 기술의 역사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들 뒤에는 또 다른 이름이 등장한다. 와트에게는 매슈 볼턴(Matthew Boulton)이, 테슬라에게는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가 있었다. 뛰어난 기술을 알아보고 자본을 투입하고, 특허를 확보하고, 시장에 공급할 사업모델을 만들어낸 사람들이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본명 김재혁)가 ‘딥테크(Deep Tech)’를 설명하기 위해 약 250년 전 산업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기술적 가능성과 실제 산업혁신 사이에는 연구개발뿐 아니라 투자와 창업, 사업화라는 긴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자본과 사업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를 뒷받침할 검증된 기술이 없다면 혁신이라는 이름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얼마전 서울 도봉구청 선인봉홀에서 열린 ‘제2회 도봉창업포럼’에서 궤도는 ‘딥테크와 창업이 바꾼 세상’을 주제로 첫 기조강연에 나섰다. ‘대전환의 시대, 기술과 사회적 가치가 여는 창업의 새로운 기회’를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는 딥테크와 인공지능(AI), 콘텐츠, 사회적 가치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궤도는 유튜브에 앞서 천문우주학 연구자로 경력을 시작했다. 연세대학교에서 천문우주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위성궤도 추적을 연구했으며, 이후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활동명 ‘궤도’ 역시 자신의 세부 전공인 인공위성 궤도에서 따왔다.
이후 온·오프라인 강연과 방송, 저술 활동을 이어왔으며 과학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의 주요 진행자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현재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기초학부 특임교수로 학생들의 과학 커뮤니케이션 역량 향상과 진로 상담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이날 꺼내든 제임스 와트와 니콜라 테슬라,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Holmes),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기술이 산업을 바꾸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와트의 기술을 산업으로 만든 볼턴…발명만으로 시작되지 않은 산업혁명

산업혁명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기술이 증기기관이다. 그러나 증기기관은 어느 날 와트 한 사람이 갑자기 만들어낸 발명품이 아니었다. 사실 그보다 앞서 18세기 초 토머스 뉴커먼(Thomas Newcomen)이 광산에 차오른 물을 퍼내기 위한 증기기관을 실용화했고, 와트는 이후 뉴커먼 기관의 낮은 효율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그가 고안한 핵심 기술이 실린더와 별도로 증기를 식히는 ‘분리 응축기(separate condenser)’였다.
영국 사이언스뮤지엄(Science Museum)에 따르면 와트는 1769년 ‘증기기관에서 증기와 연료의 소비를 줄이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내용으로 분리 응축기 특허를 받았다. 이 기술을 적용한 증기기관은 기존 뉴커먼 기관보다 석탄 소비를 약 3분의 2 줄였다. 증기기관이 탄광의 배수펌프를 넘어 공장과 작업장 등 다양한 산업현장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기술적 기반이었다.
하지만 좋은 기술이 있었다고 곧바로 산업이 바뀐 것은 아니다. 와트에게는 기술을 실제 사업으로 만들어줄 파트너가 필요했다. 그 역할을 한 인물이 버밍엄의 기업가 매슈 볼턴이었다. 두 사람은 1775년 파트너십을 맺었다. 같은 해 영국 의회는 와트가 1769년 취득한 특허의 유효기간을 연장했다. 영국 국립문서보관소(The National Archives)에는 당시 특허 연장과 볼턴·와트의 파트너십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두 사람이 기술을 판매한 방법은 오늘날의 성과기반 사업모델을 떠올리게 한다. 초기 광산 고객들에게 기존 뉴커먼 기관과 비교해 절약되는 석탄 비용을 계산하고, 그 절감 효과 일부를 사용료로 받는 방식을 활용했다. 고객에게 ‘새로운 기계를 사라’고 설득하기보다 기술을 사용해 실제 비용이 줄어들면 그 성과를 나누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증기기관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던 궤도는 기술과 사업모델이 결합되는 이 지점을 산업혁명의 중요한 조건으로 꼽았다.

“기술이 어떤 사업가와 만나 창업으로 진행되고, 그 결과가 어떤 비즈니스 모델로 돈을 버느냐까지 이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모두가 돈을 버는 상황, 손해를 보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지니까 너도나도 이 아이템을 도입하게 되고 영국 전역, 전 세계가 바뀝니다. 과학기술과 창업, 이 두 가지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산업혁명이 일어납니다. 창업이 없는 과학은 열매가 달리지 않은 씨앗과 같습니다. 가능성은 어마어마하지만 씨앗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창업이 뒷받침돼야 열매가 열립니다.”
와트와 볼턴의 협업은 후대에도 두 사람을 함께 기억하게 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2011년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50파운드 지폐를 발행하면서 이들을 각각 ‘기업가 볼턴’과 ‘공학자 와트’로 소개했다.
‘에디슨 대 테슬라’가 전부가 아니었다…기술을 시장으로 만든 세 번째 인물

궤도가 두 번째로 꺼낸 스토리는 19세기 말 ‘전류전쟁(War of the Currents)’이었다. 대중문화에서는 흔히 토머스 에디슨의 직류(Direct Current, DC)와 니콜라 테슬라의 교류(Alternating Current, AC)가 정면으로 맞붙은 ‘에디슨 대 테슬라’의 싸움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조금 더 복잡하다.
미국 럿거스대학교(Rutgers University)의 ‘토머스 에디슨 페이퍼스(Thomas A. Edison Papers)’는 전류전쟁을 에디슨 일렉트릭 라이트와 이후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으로 이어지는 직류 진영과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을 중심으로 한 교류 진영의 경쟁으로 설명한다. 테슬라는 다상 교류(polyphase AC) 시스템과 교류 전동기 기술을 제공한 핵심 발명가였고, 웨스팅하우스는 이 기술의 특허권을 확보해 실제 전력사업으로 확장했다.

이날 궤도는 두 인물을 비교하면서 에디슨에 대해 ‘테슬라에 비해 과학자라기 보다 발명된 것을 잘 사업화하는 사업가에 가깝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에디슨의 업적이 더 부각됐지만 사실상 현대의 전력시스템은 테슬라의 교류로 쌓아올려졌다는 것이다. 단 그러한 평가가 에디슨이 이룩한 성과까지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 NPS)에 따르면 에디슨은 실용적인 백열등과 이를 작동시키는 발전기·배선·퓨즈·스위치 등을 포함한 전력공급 시스템을 개발했다. 평생 미국에서 취득한 특허만 1093건이다. 그의 웨스트오렌지 연구소는 연구자가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시험한 뒤 주변 공장에서 제조와 판매까지 연결하는 대규모 산업 연구개발(R&D)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영화 기술에서도 비슷하다. 미국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은 에디슨 연구소가 키네토그래프(Kinetograph)와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 개발을 주도했지만 실제 실험의 상당 부분은 연구원 윌리엄 K. L. 딕슨(William K. L. Dickson)이 수행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에디슨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발명했다’는 영웅담도, ‘에디슨은 발명한 것이 없었다’는 반대쪽 주장도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전류전쟁 역시 기술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웨스팅하우스는 테슬라의 교류 관련 기술을 사업화했고,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에서 교류 시스템의 실용성을 대규모로 보여줬다. 이후 나이아가라 폭포 수력발전 사업은 다상 교류 시스템의 장거리 전력공급 가능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전해진 역사적 자료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테슬라의 기술뿐 아니라 웨스팅하우스의 자본과 사업화 능력, 웨스팅하우스 소속 기술자들의 추가적인 공학적 개선이 함께 작용했다. 강연 현장에서 궤도가 강조한 부분도 바로 이 대목이었다.
“중요한 것은 테슬라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었던 게 그의 기술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 옆에는 웨스팅하우스처럼 테슬라의 과학기술을 알아보고 지지했던 투자자가 있었습니다. 제임스 와트도 매슈 볼턴이 있었듯 투자자가 있어서 사업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족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업에는 과학이 있어야 하고, 과학은 창업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이날 궤도가 강조한 것은 에디슨과 테슬라, 웨스팅하우스의 경쟁이 보여주는 것이 결국 기술 우위뿐 아니라 특허, 자본, 제조능력, 가격, 인프라와 시장 선택이 새로운 기술의 표준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테라노스와 알파폴드의 갈림길…딥테크는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이어 궤도는 증기기관과 전류전쟁을 지나 현대의 딥테크로 시선을 돌렸다. 먼저 등장한 것은 실패 사례였다. 바로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미국의 혈액검사 스타트업 테라노스(Theranos)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는 소량의 혈액만으로 수많은 검사를 할 수 있다는 비전을 내세워 대규모 투자를 끌어모았다. 문제는 사업의 핵심을 뒷받침해야 할 기술이었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결국 홈즈는 투자자 사기와 관련된 4개 혐의에 대해 2022년 유죄 평결을 받았고 같은 해 11월 연방법원에서 징역 135개월, 즉 11년 3개월을 선고받았다.
궤도는 이와 같은 테라노스 사례를 통해 ‘창업’만으로 딥테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술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과 그 기술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이어 궤도는 오랜 연구개발이 거대한 과학적 성과로 이어진 사례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를 언급했다.
2024년 노벨화학상은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와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 존 점퍼(John Jumper)에게 돌아갔다. 이 가운데 허사비스와 점퍼의 공식 수상 사유는 ‘단백질 구조 예측(for protein structure prediction)’이었다. 두 사람이 이끈 알파폴드2(AlphaFold2)는 아미노산 서열을 바탕으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오랜 난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돌파구를 만들었다.
알파폴드의 성과가 연구실 안에 머문 것도 아니다. 구글 딥마인드와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 산하 유럽생물정보학연구소(EMBL-EBI)는 2억 개가 넘는 단백질 구조 예측 데이터를 세상에 공개했고, 이후 연구자들은 그들의 성과를 의약품과 질병, 환경 연구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AI는 더 이상 알고리즘이나 소프트웨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알파폴드의 사례와 같이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서비스하려면 AI 반도체와 서버,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 전력망까지 필요한 상황이 됐다. 궤도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인공지능 사업을 하면서 이제 생태계 자체가 바뀝니다. AI는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넘어 아예 산업 구조를 바꾸고 있습니다. 하드웨어를 만들고 냉각 시스템을 만들고, 에너지를 어떻게 공급할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별의별 모든 산업들이 AI를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합니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가 2026년 업데이트한 전망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는 2025년 약 485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약 950TWh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AI 중심 데이터센터의 전력소비는 약 3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AI와 반도체, 에너지, 바이오, 로봇과 같은 딥테크가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사업과 다른 지점도 여기에 있다. 긴 연구개발 기간과 높은 기술 위험, 대규모 초기 자본을 감수해야 하지만 일단 기술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산업의 구조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

강연 후반, 궤도는 딥테크가 꽃 피우는 과정을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 오랫동안 땅속에서 뿌리를 뻗는 대나무에 비유했다. 겉에서 성장이 보이지 않는 기간을 실패라고 판단해 투자를 멈춘다면 숲이 만들어질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약 250년 전 와트의 증기기관에서 지금의 AI까지 기술은 달라졌지만 질문은 반복된다. 누가 기술의 가능성을 알아볼 것인가. 누가 실패 가능성을 감수하고 자본을 투입할 것인가. 그리고 연구실의 기술을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제품과 산업으로 만들어낼 것인가. 와트에게 볼턴이 있었고 테슬라에게 웨스팅하우스가 있었다는 궤도의 이야기는 결국 오늘의 딥테크 창업자와 투자자에게 돌아온다.
기술만으로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기술이 빠진 사업만으로 세상을 바꿀 혁신을 오래 유지하기도 어렵다. ‘과학이라는 씨앗이 산업이라는 열매로 이어지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자본을 누가 견뎌낼 수 있나’ 궤도가 약 250년의 기술사를 돌아 오늘의 창업가들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