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약속에 '삼전닉스' 비명, 또 다시 꺼내 든 반도체 관세

  • 1조2000억 달러 재원 없는 공약, 과거 약속들은 모두 '빈 수표'로 끝나
  • 반도체 관세로 한국 기업 압박...삼성·SK하이닉스 대미 투자 늘려야 살아남나
지난 10월 1일 오클라호마주 듀런트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가지 약속을 다시 꺼냈다. 공화당이 11월 3일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지키면 미국 성인 시민 전원에게 5,000달러(약 670만 원)를 주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공약은 지켜질 것인가? (사진=생성형 AI)

지난 10월 1일 오클라호마주 듀런트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가지 약속을 다시 꺼냈다. 공화당이 11월 3일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지키면 미국 성인 시민 전원에게 5,000달러(약 670만 원)를 주겠다는 것이다. 약 2억4,000만 명이 대상이니 총 1조2,000억 달러(약 1,610조 4천억 원)가 필요하다. 그는 사흘 뒤 메디케어 가입자 2080만 명에게는 90달러를 일시 지급한다고 발표했고, 민간 의료보험 가입자 95만 명에게는 500달러씩 나눠주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현금 지급 공세가 본격화한 셈이다.

문제는 5000달러 공약에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이 없다는 점이다. JD 밴스 부통령은 폭스뉴스에 나와 관세 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의회예산처 추산을 보면 9월 말까지 회계연도 관세 수입은 1670억 달러 수준이다. 필요한 금액의 14%에도 못 미친다. 트럼프는 과거에도 비슷한 약속을 여러 차례 했지만 지켜진 적이 없다. 2025년 2월 일론 머스크가 이끌던 정부효율성부 예산 절감분으로 5000달러를 준다더니 흐지부지됐고, 같은 해 11월 관세 수입으로 2000달러를 준다던 약속은 연방대법원이 관세를 무효화하면서 사라졌다. 2020년 선거 직전 메디케어 가입자에게 약속했던 200달러 처방약 카드도 한 장도 발송되지 않았다.

그나마 실제로 지급된 건 작년 12월 군인 145만 명에게 준 1776달러짜리 '전사 배당금(Warrior Dividend)'이 유일하다. 이것도 의회가 이미 승인한 예산으로 집행한 것이다.

■ 의회 통과 가능성 낮고, 경제학자들은 부작용 경고

5000달러 지급은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 상원에서는 대부분의 법안이 통과되려면 60표가 필요한데 민주당이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공화당이 복잡한 예산 절차로 민주당을 우회할 수는 있지만, 하원 회기가 선거 전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아 시간이 부족하다. 애리조나주 공화당 하원의원 데이비드 슈바이커트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이 제안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금리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메릴랜드주 민주당 의원 제이미 래스킨은 CNN에서 이를 정치적 뇌물이라고 규정했다.

경제학자들은 코로나19 당시 현금 지원이 이후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했다고 분석한다. 당시 정부는 2020년 3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성인 1인당 최대 1200달러, 600달러, 1400달러를 지급했다. 의회 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총 4억7600만 건, 8140억 달러가 집행됐고 사망자에게 잘못 송금된 14억 달러를 포함해 각종 문제가 발견됐다. 이번 공약이 실현되면 규모는 그때보다 훨씬 크다.

여론조사 결과도 냉담하다. 라스무센 리포트 조사에서는 찬반이 47% 대 48%로 팽팽했고, 투표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응답은 15%에 그쳤다. 위스콘신주 마케트 로스쿨 조사에서는 70%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코노미스트-유거브 조사에서는 등록 유권자의 57%가 공화당이 의회를 지켜도 트럼프가 실제로 돈을 지급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벤치마크 10년물 미국 국채 수익률은 트럼프의 제안 직후인 9월 중순 4.91%로 상승했다가 10월 2일에는 5.24%까지 올랐다.

■ 반도체 관세, 한국 기업에 '미국 투자 확대'로 압박

5000달러 공약이 표심잡기용이라면, 반도체 관세는 해외 기업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실제 정책이다.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은 9월 초 CNBC 인터뷰에서 반도체 관세 방침을 명확히 했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가 없고, 그렇지 않으면 관세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제약 분야에서 특허 의약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고 2년 뒤 제네릭 의약품에 100%, 3년 뒤에는 200% 관세를 매긴 정책을 반도체의 모델로 제시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반도체 관세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진=생성형 AI)

미국은 올해 1월 15일부터 엔비디아 H200, AMD MI325X 같은 첨단 컴퓨팅 반도체에 2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다만 미국 데이터센터나 연구개발, 스타트업, 공공 부문에 쓰이거나 미국 기술 공급망 강화에 기여하는 수입품은 면제했다. 백악관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국가별 협상 뒤 더 광범위한 반도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폴리티코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반도체뿐 아니라 노트북, 게임 콘솔, 데이터센터 서버처럼 반도체가 들어간 완제품으로도 관세 대상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25% 반도체 관세가 10년간 유지될 경우 미국 GDP가 누적 1조6000억 달러, 즉 GDP의 3.9%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정보통신기술(ICT) 제품 소비가 26% 감소하고, ICT 소비는 125억 달러 줄어든다는 분석이다.

■ 타이완은 투자로 관세 면제 받아…한국은?

타이완은 빠르게 대응했다. 타이완과 미국의 협정은 관세 면제를 미국 내 제조 투자와 직접 연결했다. TSMC는 애리조나주에 265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 10개를 짓고 있다. 마이크론도 2035년까지 미국 투자를 2500억 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루트닉 장관은 이 두 투자만 합쳐도 5000억 달러를 넘는다며, 이것이 트럼프 관세 정책의 실제 작동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타이완이 다음 주 안에 200억~300억 달러의 추가 미국 투자를 발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2025년 11월 미국과의 공동성명에서 향후 유사한 칩 무역 협정에서 제공되는 것보다 불리하지 않은 관세 조건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구속력 있는 조약이 아니고, 타이완처럼 생산과 연계된 구체적 면제 조항도 없다. 한국이 2018년 철강 관세 면제를 협상했다가 2025년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30일 전 통보로 철회된 전례를 보면, 정치적 약속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최소 170억 달러를 투자해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기존 오스틴 공장과 연구개발 시설을 포함하면 텍사스 지역 총 투자 계획은 370억 달러를 넘는다. 하지만 테일러 공장은 파운드리 생산에 집중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관세 감면 대상에 포함될지는 불투명하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파예트에 4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한국에서 생산한 첨단 웨이퍼를 인디애나에서 가공하고 테스트해 미국산 제품으로 공급할 계획이며 2029년 하반기 양산이 목표다. SK하이닉스의 미국 투자가 한국산 웨이퍼에 대한 관세 감면으로 얼마나 연결되느냐가 관건이다. 미국 정부가 공장 건설 기간과 가동 후 단계에서 얼마만큼의 물량을 무관세로 수입할 수 있게 허용할지가 한국 기업들에게 결정적이다.

■ 한국도 협상 카드 있다…HBM 시장 장악력

다만 한국도 협상 카드가 있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압도적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삼성전자가 DRAM 시장 점유율 38%로 1위를 차지했고 SK하이닉스가 25%로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HBM 부문에서는 SK하이닉스가 50~62%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자체 전망으로는 엔비디아 차세대 루빈 플랫폼용 HBM4 시장에서 약 70% 점유율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상위 3개 메모리 제조사가 전 세계 DRAM 매출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고, 미국 내에는 대체재가 없다.

올해 6월 미국 업계단체들은 루트닉 장관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에게 메모리 칩 시장의 공급 부족이 미국 경제 전반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은 서울이 만드는 것을 필요로 한다. 퀸 이매뉴얼 어콰트 앤 설리번 로펌 설립자이자 40년 경력의 통상 소송 전문가 존 B. 퀸은 코리아타임스 기고에서 한국의 협상력은 규칙이 확정되기 전에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계약을 재검토하고 제품 분류별 관세 노출을 평가하며, 구체적이고 서면으로 작성된 집행 가능한 약속을 확보하기 위해 압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약속은 반복되지만 실행은 드물다

트럼프의 5000달러 공약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의회 승인이 필요한데 민주당이 확실히 반대할 것이고, 하원 회기도 선거 전까지 일주일만 남았다. 설령 실현된다 해도 국가 부채와 인플레이션을 다시 끌어올릴 위험이 있다. 반면 반도체 관세는 이미 시행 중이고, 루트닉 장관의 발언처럼 더 광범위하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TSMC와 마이크론은 이미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한국 기업들도 압박을 받고 있지만 메모리 시장 장악력이라는 협상 카드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 다른 파트너를 확보하거나 국내 대체재가 나타나기 전에 협상 테이블에서 최선의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트럼프의 약속이 반복되는 동안 실제 정책은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결정을 바꾸고 있다.

김광우 기자

kimnoba@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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