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아직 많은데…” ‘꿈을 찾던 피터팬’ 김정주 넥슨 창업주가 남긴 숙제

-NXC 대표 직 퇴임 7개월여 만에 안타까운 소식… 생전 우울증이 원인

-최근까지 한국판 ‘디즈니’ 꿈꾸며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전환 꾀해

-벤처 신화 함께한 동료들 비롯 각계 애도 물결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전 NXC 대표가 돌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제(1일) 오후 무렵,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NXC 이사가 지난달 말 미국에서 돌연 세상을 떠났다는 황망한 소식이 전해졌다. 사인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인이 생전 치료 받던 우울증 증세가 최근 악화된 탓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정주 넥슨 창업주의 이상 신호는 지난해 7월 돌연 지주사인 NXC 대표직 사임을 발표할 즈음부터 감지됐다.

후임으로는 오랜 기간 자신을 보좌했던 이재교 대표를 선임하고 다국적 투자은행 UBS 출신 알렉스 이오실레비치를 글로벌 투자총괄 사장(CIO)로 영입하는 등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변화를 줬다.

국내 게임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넥슨, 그리고 넥슨이 보유한 다양한 게임·콘텐츠 IP를 바탕으로 한국의 ‘디즈니’를 꿈꾸던 고인은 이후 자신의 역할을 NXC 등기 이사직으로 한정 지으며 주요 의사 결정 외 향후 미래 사업 발굴과 인재 양성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후 그의 행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언급했던 한국의 ‘디즈니’를 향한 꿈은 차근차근 진행되는 중이었다. 어쩌면 오랜 숙원이었던 그의 꿈이 비로소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던 시기이기도 했다.

7개월 전 건강한 모습으로 퇴임을 밝힌 김정주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얽힌 세간의 관심이 꼬리를 물고 있지만, NXC 측은 “현재 유가족 모두 황망한 상황이라 자세한 설명이 어렵다”며 “고인이 이전부터 치료 받아오던 우울증이 최근 악화됐다”는 입장만을 밝혔을 뿐이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생전 그가 의지를 가지고 추진해 오던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전환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고인의 지난 발자취와 함께 그가 남긴 숙제를 통해 넥슨의 향후 방향을 전망해봤다.

넥슨 신화를 만들었던 ‘김정주의 시간’

김정주 전 대표는 1989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시절 아버지 김교창(넥슨의 첫 벤처투자자), 대덕전자 김정식 회장(넥슨의 첫 엑셀러레이터) 등의 도움으로 가승개발이라는 회사를 세워 대기업의 소프트웨어 하청을 시작하면서 업계에 들어왔다.

이후 1994년 대학시절 친구이자 공동창업자인 송재경 현 엑스엘게임즈 대표이사 등과 출세작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며 1996년 넥슨을 설립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송재경 대표는 김정주 전 대표와 불화로 넥슨을 퇴사했다.

이후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크레이지아케이드,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등을 성공시키며 외부 투자 한 번 없이 2011년 일본법인 넥슨재팬을 도쿄거래소에 상장 시켰다. 상장과 함께 넥슨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시가총액이 큰 온라인 게임사로 등극했다. 김정주 전 대표의 오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넥슨의 성공작 '카트라이더'

김정주 전 대표가 넥슨 창업 과정을 다룬 책 ‘플레이’에 따르면 그의 오랜 꿈은 일본의 닌텐도를 뛰어 넘는 게임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자서전에서 언급된 또 다른 이야기는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돈을 내는 디즈니의 100분의 1이라도 따라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현재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넥슨이 보유한 게임 IP를 활용한 애니메이션, 영화, TV드라마 등의 제작이 추진되고 있다. 호기롭게 추진되는 넥슨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화를 두고 세간에서는 김정주 창업주의 오랜 숙원이 현실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이어지기도 했다.

뇌물수수 사건에 얽힌 법적공방, 한때 모든 것을 내려 놓으려는 결심도…

2019년 1월 갑작스러운 NXC 매각 소식이 알려질 당시 언론에서는 김 전 대표가 '진경준 전 검사장에 얽힌 법적 분쟁'으로 인한 피로감으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사진=YTN 뉴스 캡처)

하지만 그는 지난해 7월 돌연 사임을 발표했다. 김정주 전 대표의 사임 배경을 두고 업계에서는 2016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은 진경준 전 검사장 뇌물수수 사건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로 쌓인 경영 피로감을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2016년부터 2년여를 끌어온 재판은 넥슨의 기업 이미지에도 적잖은 데미지를 줬다. 그 시간들은 그에게 적잖은 스트레스로 작용한 듯했다.

이로 인해 그는 한때 넥슨 지주사인 NXC의 매각을 결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지난 2019년 1월 무렵 그가 자신과 부인 등이 보유한 지분 전량을 시장에 내 놓은 것이 알려지며 구체화됐다.

NXC 지분 전략을 매각한다는 것은 ‘NXC>넥슨(일본법인)>넥슨코리아>10여 개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하에서 사실상 모든 것은 매각한다는 의미였다. 충격적인 것은 매각 협상 대상이 중국 기업인 텐센트라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1위 게임업체가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며 그는 다시금 의도치 않게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매각은 가격에 대한 서로의 입장 차로 좌절됐고, 이후 김 전 대표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경영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색을 볼 수 없었다. 이러한 김 전 대표의 행보를 두고 업계에서는 ‘김 전 대표가 게임 산업에 마음이 떠난 것 같다’고 보는 시각이 생겨났다.

비트코인 투자 손실과 퇴임에 이은 안타까운 소식… 업계 애도 물결

지난해 초 가상자산 시장은 비트코인에 대한 기대감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한때 1비트코인 당 한화 8000만원을 넘어서며 조만간 1억원 돌파도 문제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세계적인 가상자산 열풍 속에 넥슨 역시 비트코인 투자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4월말 넥슨의 일본 본사는 1억 달러(약 1133억원) 규모의 비트코인 투자를 단행했다. 당시 일본 넥슨의 오웬 마호니 대표는 이를 현금성 자산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넥슨의 예상과 달리 비트코인 시세는 이후 급락했고, 넥슨 역시 약 458억원을 손해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비트코인 투자액 1133억원은 넥슨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의 2% 미만으로 사실 큰 손해는 아니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와 같은 투자 배경에 이전부터 가상자산에 관심을 가졌던 김정주 창업주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결과적으로 고인은 이 시기에도 적잖은 실패감을 맛본 셈이다.

관련성은 알 수 없지만, 김정주 창업주의 퇴임 소식은 비트코인 투자 실패 사실이 알려진 직후 발표됐다. 퇴임 7개월 만에 전해진 안타까운 소식에 미뤄 짐작해 보건대 이후 고인은 내내 우울증 치료에 전념해 온 것으로 보인다.

김정주 넥슨 창업주의 부고가 알려진 1일, 생전 고인과 막역했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회환이 가득한 애도의 글을 남겼다. (이미지=김택진 대표 페이스북)

김정주 넥슨 창업주의 부고가 알려진 이후 그와 인연을 쌓아온 각계 인사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사랑하던 친구가 떠났다. 살면서 못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며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김 대표는 생전 고인과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2012년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공동으로 글로벌 게임사 ‘일렉트로닉아츠’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같이 인생길을 걸어온 나의 벗, 사랑했다. 이젠 편하거라 부디”라는 글에서 김 대표의 회한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팬의 꿈’은 계속 된다

창업주의 안타까운 소식과 별개로 넥슨은 올 1월 미국 AGBO 스튜디오에 4억 달러(약 48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감행하는 등, 이제는 고인의 유지가 돼 버린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본업인 게임에서 넥슨은 올해 지난 10년의 성공을 이어 갈 신작 타이틀 출시를 다수 예고하고 있다. 이미 사전 예약에 들어간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은 내달 24일 국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올해 선보이는 신작만 10개에 달한다.

연 이은 신작 개발에 나서며 대대적인 인력 확충도 예정돼 있다. 지난해 200명 수준의 신입사원을 채용한 넥슨은 올해 1000명 이상의 신규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넥슨은 올해 초 앤소니 루소(좌) 조 루소(우). 넥슨은 '어벤저스:엔드게임' 등을 감독한 루소형제의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회사 AGBO에 60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발표했다. (이미지=AGBO 홈페이지)

게임에 신기술을 도입하는 작업도 병행되고 있다. 2017년부터 인텔리전스랩스를 설립한 넥슨은 머신러닝, 딥러닝 등 AI 기술을 활용해 게임에 적용된 부가기능 고도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 부문에도 인재 확보는 지속되고 있다. 넥슨은 현재까지 약 500명의 인력을 투입했으며 향후에도 지속적인 인력 투입을 진행해 인텔리전스랩스를 자사의 핵심 조직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간 넥슨의 모든 것을 구상했던 김정주 창업자가 돌연 별세하며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점이다. 넥슨의 지배구조는 고인과 가족들이 최상위 지주사인 NXC의 지분 전량을 보유하고 있고 NXC가 일본 넥슨 본사를 지배하고 다시 넥슨 본사에 넥슨코리아와 한국 내 계열사들이 종속돼 있는 형태다.

NXC의 지분 현황을 보면 별세한 김정주 창업주가 67.49%, 아내인 유정현 감사가 29.43%, 창업주의 두 자녀가 각각 0.68%씩 보유한 상황이다.

김 창업주의 별세로 NXC의 최대 주주는 아내인 유정현 감사가 된다. 업계의 관심은 한때 창업주를 도와 초기 넥슨의 경영을 함께하기도 했고 계열사인 넥슨네트웍스 대표직을 맡기도 한 유 감사가 향후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쏠려 있다.

지난해 7월 김정주 창업주는 퇴임하며 이재교 NXC 대표, 오웬 마호니 일본 넥슨 본사 대표,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를 중심으로 한 흔들림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만들어 놓은 상태다.

업계에서는 김 창업주가 일찌감치 “자녀에게 경영을 세습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현재와 같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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