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찍은 영화, 640명만 봤다…기술은 '진화', 관객 마음은 '냉담'

  • 할리우드는 디에이징·음성 복제로 오스카 노리는데, 국내는 흥행 참패
  • "어색한 감정에 몰입 안 돼"…정서적 소통 벽 넘을 AI는 언제?
누적 관객 640명과 781명. 2026년 5월 21일 개봉한 국내 AI 장편영화 '한복 입은 남자'와 '아이엠 포포'가 2주 만에 극장에서 내려오며 받아든 성적표다. 누적 매출액은 563만 원과 813만 원이다. 'AI 제작'이라는 화제성만으로는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어렵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복 입은 남자’는 누적 관객 640명을 기록했다. (사진=네이버TV 캡처)

누적 관객 640명과 781명. 2026년 5월 21일 개봉한 국내 AI 장편영화 '한복 입은 남자'와 '아이엠 포포'가 2주 만에 극장에서 내려오며 받아든 성적표다. 누적 매출액은 563만 원과 813만 원이다. 'AI 제작'이라는 화제성만으로는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어렵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같은 시기 할리우드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한 영화들이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거론되며 예술성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는데 관객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영화 제작에 사용되는 AI 기술은 어디까지 왔으며, 관객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 넷플릭스 300편·벤 애플렉까지…AI는 이미 제작 현장 깊숙이

넷플릭스는 2026년 약 300편 이상의 영화와 시리즈 제작 과정에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했다고 밝혔다. 주요 활용 분야는 콘셉트 아트, 프리 비주얼라이제이션, VFX 보정 등이다. 넷플릭스는 2026년 3월 6일 배우 겸 영화 감독 벤 애플렉이 창업한 AI 스타트업 '인터포지티브(InterPositive)'를 인수하며 AI 영화 제작 투자를 본격화했다. 인수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영화 제작 공정 전반에 AI가 스며들고 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미드저니와 스테이블 디퓨전 같은 생성형 AI가 콘셉트 아트를 시각화하고, 프리 비즈 작업을 수행한다.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2D 이미지를 3D로 변환하거나, 3D 모델에 텍스처를 실시간으로 입혀 캐릭터 의상과 피부 질감을 즉각 확인한다. 기존 10~15분 걸리던 텍스처 세팅 작업이 20초 미만으로 단축됐다.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더 다양한 기술이 투입된다. 3D 볼륨의 2D 변환, 딥러닝 기반 소스 라이브러리 검색, 리라이팅 기술을 통한 조명 수정, 머신러닝을 활용한 마커 제거 및 합성 시 텍스트 수정, 캐릭터 베리에이션(군중 장면 제작) 등이다. 드라마 '트레이서' 관련 작업에서는 59프레임 길이의 영상에서 6프레임 작업으로 텍스트를 수정해 약 10배의 작업 효율을 만들어냈다.

■ '브루탈리스트'는 발음 보정, '에밀리아 페레즈'는 음성 복제…할리우드는 오스카 문턱

할리우드는 AI 기술을 더 공격적으로 영화 예술에 접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시상식 후보로 거론되며 논란을 촉발한다. '브루탈리스트'는 애드리언 브로디와 펠리시티 존스의 극 중 헝가리어 발음을 AI로 미세하게 보정했다. 특정 모음 발음의 정확성을 원어민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주연배우 칼라 소피아 가스콘의 노래 연기 장면에서 보컬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AI 음성 합성 기술 회사 리스피처(Respeecher)의 음성 복제 기술을 사용했다. 배우 본인의 목소리를 베이스로 AI가 음역대를 확장한 방식이다. '컴플리트 언노운'과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도 머신러닝 캐릭터 작업에 AI 기술을 활용했다.

가장 논란이 된 기술은 '디에이징(De-aging)'이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신작 '히어(Here)'는 디지털 메이크업이라는 후반작업 공정을 통해 톰 행크스의 젊은 시절을 구현했다. 시각 효과 회사 메타피직(Metaphysic)의 '메타피직 라이브(Metaphysic Live)'라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2019년 개봉한 '아이리시맨'도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연출하는 장면에서 AI 기반 디에이징 기술을 활용했다.

이러한 AI 활용은 예술성 논쟁으로 직결된다. AI 기술의 도움을 받은 배우의 연기를 온전한 예술가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는지, 시상식 후보 자격을 부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가 핵심이다. 창작자들의 가장 큰 우려는 일자리 위협이다. 2023년 5월 2일 미국작가조합(WGA)은 AI 사용과 관련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배우조합도 같은 해 7월 14일 동참하며 63년 만에 배우와 작가의 동반 파업이 벌어졌다. 작가조합은 148일 만인 9월 27일 파업을 종료했다.

■ AI 배우 '틸리 노우드', 주연 영화 발표…"디지털 블롭일 뿐" 비난 거세

논란은 AI 배우의 등장으로 정점에 달했다. 영국 기반의 AI 전문 프로덕션 스튜디오 '파티클6(Particle6)'가 생성형 AI로 만든 배우 '틸리 노우드(Tilly Norwood)'가 2026년 7월 6일 코미디 영화 '미스얼라인드(Misaligned)'의 주연으로 발표되며 할리우드를 충격에 빠뜨렸다. 갈색 머리에 영국식 억양을 사용하는 틸리 노우드는 100% 인공지능으로 생성된 캐릭터다.

'파티클6(Particle6)'가 생성형 AI로 만든 배우 '틸리 노우드(Tilly Norwood)’. (사진=틸리 노우드 홈페이지 캡처)

할리우드 배우들과 창작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가디언은 "틸리 노우드는 배우가 아니라 디지털 블롭과 코드 라인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배우조합(SAG-AFTRA)은 "틸리 노우드는 배우가 아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틸리 노우드의 창작자는 프로젝트 때문에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AI 배우 논란의 핵심은 인간 배우의 연기 데이터를 학습해 만들어진 AI 캐릭터가 실제 배우들의 일자리와 초상권을 침해한다는 점이다. 버라이어티는 "틸리 노우드의 새 영화가 할리우드의 AI 배우에 대한 우려를 재점화시켰다"며 "AI 배우가 인간 연기를 도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거세다"고 전했다.

■ 국내 AI 영화, 참담한 성적표…"기술 데모 영상 보는 느낌"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국내 AI 장편영화의 흥행 실패는 기술 수준이 아니라 영화적 완성도와 정서적 소통의 문제로 분석된다. 관객들은 "기술 데모 영상을 길게 보는 느낌", "감정 표현이 어색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정 장면을 생성하는 능력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인물의 성장과 감정의 축적, 이야기 흐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영역은 여전히 인간 창작자의 몫이다.

AI 제작 현장도 완전 자동화와는 거리가 멀다. 2026년 칸영화제 기간 중 AI 영화 서밋에서 공개된 AI 장편영화 '헬 그라인드(Hell Grind)'는 미국 AI 영상 플랫폼 힉스필드 AI가 중국 바이트댄스의 영상 생성 모델 '시댄스(Seedance) 2.0'을 활용해 제작했다. 15명 규모 인원이 참여해 2주 만에 완성했지만, 장편 서사에 필요한 감정선과 몰입감 구현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제작비 절감 효과는 분명하다. CJ ENM이 티빙에서 공개한 AI 장편영화 '아파트'는 약 5억 원의 제작비로 제작됐다. CJ ENM 측은 "같은 작품을 기존 방식으로 만들 경우 최소 5배 이상, 약 25억 원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극장 흥행 실패에도 제작 효율성 측면에서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 제작 도구론 vs 일자리 위협론…AI는 창작자의 동료인가, 적인가

영화계는 AI를 두고 갈림길에 섰다. 한쪽에서는 AI를 제작 효율을 높이는 유용한 도구로 본다. 반복적이고 인력 집약적인 VFX 작업을 자동화함으로써 인건비를 절감하고, 중소형 영화사나 독립영화 제작자들에게 더 많은 창작 기회를 제공한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김한민 감독의 '칼: 고두막한의 검', 강윤성 감독의 '아덴만', 이철하 감독의 '오케이 마담2' 등은 CJ 포디플렉스의 영화제작 플랫폼 '젠AI' 기술을 접목해 제작 중이다.

반대편에서는 AI가 창작자의 일자리와 예술성을 위협한다고 우려한다. 2023년 할리우드 작가·배우 파업의 핵심 요구사항은 "AI를 작품 제작에 사용할 때 창작자들이 알아야 하고, 배우의 디지털 초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48일 만에 종료된 파업은 AI 사용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근본적인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넷플릭스 최고제품·기술책임자(CPTO) 엘리자베스 스톤은 "인터포지티브 팀이 넷플릭스에 합류한 이유는 혁신 기술이 창작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를 돕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공통된 믿음 때문"이라고 밝혔다. 영화계 관계자는 "AI는 제작 효율을 높이는 유용한 도구지만, 관객과의 정서적 소통까지 대체하기는 아직 어렵다"며 "전 과정을 AI에 맡기기에는 기술적·사회적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 하이브리드 제작 방식에 희망 걸지만…관객은 '감동' 원한다

업계는 AI가 영화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실사와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제작 방식'에서 현실적 가능성을 찾고 있다. 완전 AI 영화는 기술적 호기심을 넘어 감동을 전달하지 못하지만, VFX 보정, 배경 생성, 특수효과 등 특정 영역에서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방식은 효과적이라는 판단이다.

2026년 상반기 서울국제AI영화제(SIAFF 2026)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 등 AI 영화 전문 플랫폼도 등장했다. 기술적 실험과 예술적 시도가 공존하는 장이지만, 극장 흥행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관람료가 1만 5천 원 수준으로 오른 지금, 관객들은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몰입감과 정서적 교감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AI 영화가 마주한 과제는 기술력이 아니라 영화적 완성도다. 인물의 성장, 감정의 축적, 이야기의 유기적 흐름을 구현하는 영역은 여전히 인간 창작자의 영토로 남아 있다.

AI가 영화 제작의 보조 도구로 자리 잡을지, 창작자를 대체하는 위협으로 인식될지는 결국 관객이 결정한다. 640명이 본 AI 영화와 수백만 명이 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김광우 기자

kimnoba@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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