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챗GPT나 제미나이, 클로드 같은 인공지능(AI)이 페이스북에 접속해 이용자 대신 게시물을 검색하고 댓글까지 작성한다면 어떨까.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이지만 실제로는 간단하지 않다.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는 사전 허가 없이 자동화된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사람이 직접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라도 AI가 대신 접근하면 허용 범위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메타 역시 다른 기업의 웹사이트에서 이용자를 대신해 활동하는 AI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 9월 선보인 개인 AI 에이전트 '뮤즈(Muse)'가 대표적이다. AI 에이전트는 질문에 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의 지시에 따라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AI다. 예를 들어 "10만 원 이하 운동화 중에서 후기가 좋은 제품을 찾아줘"라고 요청하면 여러 쇼핑몰을 방문해 상품을 비교한다. 이용자가 허용한 범위에서는 구매 절차까지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AI가 방문하려는 웹사이트가 이를 반기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IT 전문매체 더버지는 지난 17일 아마존과 옐프, 항공사, 금융기관 등이 외부 AI 에이전트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6일 테크크런치도 AI가 이용자를 대신해 쇼핑이나 예약을 시도하다 접속을 거부당하는 사례를 전했다. 아마존과 퍼플렉시티는 이 문제로 법적 공방까지 벌이고 있다.
갈등의 이면에는 인터넷의 주도권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AI가 소비자를 대신해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하면 기존 쇼핑몰은 고객과 직접 만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광고와 상품 추천 방식도 달라진다. 반면 AI 기업은 더 많은 웹사이트에 접근해야 이용자가 원하는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
결국 AI가 어디까지 들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권한을 누가 결정할 것인지를 놓고 새로운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AI에게 닫히는 인터넷…아마존부터 네이버·쿠팡까지 달라지는 접근 규칙

AI 에이전트의 확산은 기존 플랫폼에 새로운 고민을 안겼다. 사람이 직접 웹사이트를 방문해 상품을 찾고 결제하던 일을 AI가 대신하기 시작하면서다. 하지만 모든 웹사이트가 이러한 자동화된 접근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지난 9월 메타의 개인 AI 에이전트 뮤즈가 자사 쇼핑 사이트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했다. 아마존은 앞서 퍼플렉시티의 AI 쇼핑 도구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흥미로운 것은 아마존 역시 자체 AI를 통해 다른 쇼핑몰의 상품을 대신 구매하는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존은 지난 3월 자사에서 판매하지 않는 상품을 다른 판매자의 웹사이트에서 대신 구매하는 '바이 포 미(Buy for Me)' 기능의 지원 범위를 확대했다. 자사 AI의 외부 서비스 활용에는 적극적이면서 경쟁사의 AI가 아마존에 접근하는 것은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지역정보 서비스 옐프(Yelp)는 정식 데이터 이용계약을 맺지 않은 AI 에이전트의 자동화된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델타항공과 JP모건체이스, 찰스슈왑 등 항공·금융회사들도 고객정보와 계정 보안을 이유로 외부 AI 접근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AI의 접속 실패가 모두 의도적인 차단은 아니다. 월마트는 메타의 뮤즈와 협력하는 기업이지만, 일부 이용자는 AI로 구매를 진행하다 실패했다. 방문자가 사람인지 확인하는 보안 절차를 AI가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월마트는 의도적인 차단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악성 프로그램을 막으려던 기존 보안 시스템이 정상적인 AI 에이전트까지 막는 문제가 발생한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쿠팡은 외부 AI가 자사 앱에서 상품을 구매하거나 결제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네이버는 외부 개발자에게 제공하는 검색 데이터의 이용 규칙을 강화했다.
네이버는 지난달 7일부터 시행한 개발자센터 검색 API 개정 약관을 통해 검색 데이터를 AI에 입력하거나 학습·개선·평가·결과 노출 등에 활용하는 행위를 제한했다. API는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로, 외부 프로그램이 다른 서비스의 데이터나 기능을 이용하도록 연결하는 통로 개념으로 생각하면 쉽다. 네이버는 앞서 지난 7월 31일 쇼핑·책·전문자료 검색 API 제공도 종료했다.
플랫폼들이 외부 AI를 경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객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소비자는 네이버에서 상품을 검색하고 쿠팡에서 가격과 후기를 확인한 뒤 구매했다. 그 과정에서 플랫폼은 광고를 보여주고 구매 데이터를 확보했다.
하지만 AI가 여러 쇼핑몰을 대신 방문해 가격을 비교하고 구매까지 처리하면 소비자가 개별 쇼핑몰을 직접 찾을 이유는 줄어든다. 소비자에게는 편리한 변화지만, 기존 플랫폼에는 광고 수익과 고객 접점을 잃을 수 있는 위협이기도 하다.
내가 시킨 AI인데 왜 못 들어가나…아마존·퍼플렉시티 법적 공방

AI가 이용자 대신 쇼핑몰을 방문하는 것이 과연 문제일까. 이 질문은 실제 소송으로 이어졌다. 아마존은 지난해 11월 4일 퍼플렉시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퍼플렉시티의 AI 브라우저 '코멧(Comet)'이 허락 없이 고객 계정을 통해 자사 서비스에 접근하고, 자동화된 활동을 일반 이용자의 접속처럼 보이게 했다는 이유였다.
아마존은 외부 AI가 자사 서비스에 접근하려면 운영자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마존은 당시 공식 입장에서 제3자 프로그램은 투명하게 운영돼야 하며, 서비스 제공자가 참여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자가 AI에 일을 맡겼다는 이유만으로 외부 기업에 무제한 접근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다.
반면 퍼플렉시티는 이용자가 자신을 대신해 일할 AI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사람이 친구나 가족에게 온라인 구매를 부탁할 수 있다면 AI에 같은 일을 맡기는 것도 허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퍼플렉시티는 아마존이 소비자의 선택권보다 자사 광고와 쇼핑 시스템을 보호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법원에서는 서로 다른 판단이 나왔다. 지난 3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은 아마존의 신청을 받아들여 퍼플렉시티의 AI 쇼핑 에이전트 접근을 제한하는 예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8월 4일 미국 제9연방순회항소법원은 이 명령을 취소하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항소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아마존 시스템에 접근한 주체를 퍼플렉시티가 아닌 AI 에이전트를 이용한 사용자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아마존이 컴퓨터 사기 및 남용 방지 관련 법률 위반을 근거로 예비적 금지명령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했다고 봤다.
다만 이번 결정은 AI 에이전트의 모든 접근을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항소법원은 아마존이 자체 서비스 이용약관으로 접근을 규율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AI의 대리행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둘러싼 법적 다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사건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직접 상품을 주문하는 것과 AI가 대신 주문하는 것은 같은 행위일까. AI가 잘못된 거래를 실행했다면 누가 책임져야 할까. 이용자가 허용했더라도 웹사이트 운영자는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
웹 보안기업들도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는 지난 9월 15일부터 웹사이트 운영자가 AI의 접근 목적에 따라 허용 여부를 구분할 수 있도록 관련 설정을 확대 적용했다. 검색을 위한 방문과 AI 학습용 데이터 수집, 이용자를 대신한 작업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웹사이트 운영자는 AI의 접근 목적과 자신의 서비스 정책에 따라 서로 다른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
결국 AI가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됐다. AI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어떤 일을 하려는지, 그 행동에 누가 책임지는지까지 따져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AI에게 문 여는 기업들…메타·구글·쇼피파이와 한국의 선택

모든 기업이 외부 AI에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를 새로운 고객 유입 경로로 보고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기업들도 있다.
메타는 지난 9월 공개한 개인 AI 에이전트 뮤즈를 중심으로 월마트, 베스트바이, 갭, 세포라 등 주요 유통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AI가 허락 없이 웹사이트에 들어가는 대신 정식 제휴를 통해 상품 검색과 구매 기능을 이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또한 메타는 지난 6일 시에라 등과 함께 개인 AI 에이전트가 기업의 시스템에 접근할 때 신원과 권한을 확인하는 기술표준인 '개인 에이전트 프로토콜(Personal Agent Protocol·PAP)' 개발 계획도 발표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이용자가 AI에 부여한 권한을 기업이 확인하고, 기업 역시 AI가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의 범위를 정하도록 하는 데 있다. 기업이 AI를 무조건 차단하거나 허용하는 대신 일정한 규칙 안에서 고객을 대신한 활동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개인 AI 에이전트를 거부하는 것이 결국 그 뒤에 있는 고객을 거부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메타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메타 역시 자사 페이스북에서는 사전 허가 없는 자동화된 데이터 수집을 금지하고 있다. 다른 기업에는 AI 에이전트를 고객 유입 경로로 인정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자사 서비스에 대해서는 접근 조건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셈이다.
한편 캐나다 전자상거래 기업 쇼피파이(Shopify)는 더욱 적극적이다. 지난 13일 외부 AI가 10억 개 이상의 상품 목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 범위를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이용자는 자신의 AI 에이전트를 쇼피파이의 쇼핑 앱 '샵(Shop)'과 연결해 상품을 찾고 구매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실제 구매는 이용자가 승인해야 한다.
구글도 지난 15일 미국에서 '유니버설 카트(Universal Cart)'를 출시했다. 구글 검색과 제미나이에서 여러 쇼핑몰의 상품을 하나의 장바구니로 관리하고 가격 변동과 할인 혜택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이용자는 구글 페이를 통해 지원되는 판매자의 상품을 결제하거나 판매자의 쇼핑몰로 이동해 구매를 마칠 수 있다.
이들 기업의 전략은 외부 AI의 접근을 무조건 제한하기보다 정해진 규칙과 결제 시스템 안에서 거래가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기업들의 대응은 엇갈린다. 네이버는 외부 AI의 데이터 이용을 제한하면서 자체 쇼핑 AI 에이전트를 고도화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 13일 열린 '이프 카카오 2026(if(kakao)26)'에서 메시지 전송과 일정 관리 등을 지원하는 개인 AI 서비스 '카나나 스페이스(Kanana Space)'를 공개했다.
반면 신세계그룹은 외부 AI 기업과의 협력을 선택했다. 지난 4월 6일 오픈AI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올해 이마트 앱에 AI 쇼핑 에이전트를 도입한 뒤, 2027년에는 챗GPT 대화창에서 상품 검색부터 결제·배송까지 처리하는 서비스를 구현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처럼 기업들의 선택은 서로 다르다. 외부 AI를 차단하면 고객과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기 쉽지만 새로운 이용자를 놓칠 수 있다. 반대로 문을 열면 고객 확대를 기대할 수 있지만, 상품 추천과 구매 과정에서의 주도권은 약해질 수 있다.
지금까지 인터넷은 사람이 직접 검색하고 웹사이트를 방문해 상품을 구매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AI가 이 일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규칙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 경쟁의 핵심은 AI가 얼마나 똑똑한지에만 있지 않다. 내가 일을 맡긴 AI가 인터넷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 그 문을 열고 닫을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을 결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