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학교에선 태블릿으로 AI 코딩 수업을 하고, 바로 옆 학교에선 칠판에 알고리즘을 그린다. 같은 학년, 같은 교육과정이지만 교실마다 풍경이 다르다. 2026년 초·중·고교 AI 교육 현장은 정부의 화려한 목표와 달리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예산은 쏟아붓지만 가르칠 교사가 없고, 학생들은 AI를 쓰지만 학교엔 지침조차 없다. 구호만 요란한 'AI 강국'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 전국 1,141개 중점학교 선정했지만… 4곳 중 3곳엔 전담교원 없다
교육부는 올 3월 전국 1,141개교를 'AI 중점학교'로 선정하고 특별교부금 385억 원을 배정했다. 학교당 평균 약 3,400만 원 수준이다. 초등은 정보 수업 시간을 34시간에서 68시간 이상으로, 중학교는 68시간에서 102시간 이상으로 두 배 늘렸다. 2027년 1,500개교, 2028년 2,000개교까지 중점학교를 확대해 모든 학생이 AI 교육을 받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발간한 '2025년 초·중등학교 디지털 전환 현황 및 AI교육 인식 조사' 보고서를 보면 실상은 다르다. 유효 응답한 186개교 중 AI 전담 교원이 배치된 학교는 50개교로 26.9%에 불과했다. 73.1%에 해당하는 136개교는 전담 교원이 없었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교가 17.6%로 가장 낮았고, 중학교 37.9%, 고등학교 36.4% 순이었다. 조사 대상 특수학교 4곳은 모두 전담 교원이 없었다.
전담 교원이 없다는 건 비전공 교사가 AI를 가르치거나, 한 명의 정보교사가 여러 학교를 순회한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시도별 정보교사 현황'에 따르면, 2025년 9월 기준 정보교사 463명이 2개 학교를, 151명이 3개 학교를 맡고 있었다. 전북에서는 6개 학교를 담당하는 교사가 10명, 9개 학교를 맡는 경우도 1명 있었다. 도서·산간 지역에서는 교사 1명이 최대 9개교까지 담당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지역 격차는 더 심각하다. 2025년 9월 기준 전국 중·고 정보교사 배치율은 75.3%지만, 학교급과 지역에 따라 최대 3.4배까지 벌어졌다. 경기도는 중·고 배치율이 114.1%로 가장 높았고, 강원은 33.9%로 가장 낮았다. 강원의 경우 중학교 배치율이 27.3%, 일반고는 45.6%에 그쳤다. 전남(36.0%), 전북(40.1%), 경북(42.1%)도 40%대에 머물렀다. 같은 나라, 같은 교육과정인데 지역에 따라 AI 교육의 질이 천차만별로 갈리고 있다.
■ "무엇을 가르치라는 건지 모르겠다"… 예산만 주고 방치된 현장
AI 중점학교로 선정된 한 중학교 교사는 "교육부가 AI 구독료로 예산을 쓰지 말고 학생 교육 활동에 쓰라고 했지만, 참고하라는 사례가 너무 부실했다"며 "결국 교사들이 교육 내용을 알아서 만들라는 식"이라고 토로했다. 교육부는 중점학교 담당자 워크숍을 열었지만, 구체적 교육과정이나 성취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교사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은 '체계적 AI 교육과정 및 성취기준 마련'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조사에서 'AI 교육을 위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준비 사항'을 묻는 질문(복수 응답)에 교원 연수가 29.7%로 가장 많았고, 예산 편성·확보 25.2%, 시설·환경 개선 23.5%가 뒤를 이었다. 반면 교재 확보는 7.2%에 그쳐, 대부분의 학교가 자체 교재 개발보다 교사 개별 준비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AI 교육의 개념조차 혼란스럽다. 충남 서천초등학교 송근상 교사는 "AI 원리를 가르친다는 건지, 프로그래밍을 가르친다는 건지, 교육 도구로 쓴다는 건지 개념부터 정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은 'AI 교육 행동계획'을 발표하며 "정부의 AI 교육 정책은 중구난방"이라고 비판했다.
개인정보 보호 규칙조차 마련되지 않은 학교가 절반을 넘는다. 186개교 중 53.8%인 100개교가 'AI 교육 실습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규칙이나 규정이 없다'고 답했다. 이 중 73%는 교육청이나 정부 차원의 규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학생 절반은 AI 쓰는데, 교사 6%만 "정책 명확하다"
학생들의 AI 활용 속도는 학교의 준비를 압도한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4년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 17,140명 중 49.9%가 생성형 AI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 성별 차이는 남학생 49.7%, 여학생 50.0%로 미미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용률이 뚜렷하게 증가했다. 초등학생은 18.4~36.2%, 중학생 40.9~54.9%, 고등학생은 71.3~77.5%에 달했다.

한국 대학생의 경우 사용률이 84%에 이른다. 미국 교육기업 체그(Chegg)가 2025년 실시한 15개국 대학생 조사에서 확인된 수치로, 2023년 23%에서 2년 만에 61%포인트 상승해 조사 대상국 중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했다. 인도네시아(95%), 말레이시아(90%), 사우디아라비아(89%), 스페인(87%)에 이어 5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학교는 이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발표한 'AI 인덱스 2026'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중·고등학교 중 AI 관련 정책을 갖춘 곳은 50%에 그친다. 학생의 36%만이 학교 정책이 명확하다고 느꼈고, 교사는 단 6%만이 학교 정책이 "명확하고 포괄적"이라고 답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수·학습 국제조사(TALIS) 2024 결과를 보면, 한국 교사의 수업 AI 활용 비율은 42.7%로 OECD 평균 36.3%를 웃돈다. 하지만 교사들은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학생들이 타인의 자료를 자신의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문항에 83.4%가 동의했고, '학생 관련 자료와 개인정보 보호 위협'에 74.7%, '부적절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내용 추적'에 71.6%가 우려를 표했다.
■ 디지털 격차가 학습 격차로… "공부 잘하는 애들이 AI도 잘 써"
AI 교육은 기존의 교육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 분석 결과, 초등학생의 디지털 리터러시는 잠재 프로파일 분석(LPA)을 통해 '우수', '일반', '잠재취약', '취약'의 4개 집단으로 명확히 구분됐다. 디지털 자원의 학습적 활용 측면에서 학생 간 격차가 특히 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 자료 분석 결과, 국내 중등학교 학생들은 모든 과목(읽기, 수학, 과학)에서 학업성취 수준이 높을수록 디지털 자원의 학습적 활용도가 높았다. 교원 39명이 참여한 심층면담(FGI)에서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디지털 역량도 높다"는 증언이 나왔다.
가정 배경에 따른 격차도 뚜렷하다. 디지털 리터러시의 7개 하위 요소 모두에서 가구 소득 수준에 따라 '고소득 > 중소득 > 저소득' 순으로 차이가 났다. 지역별로도 '특별·광역시 > 중소도시 > 읍면 지역' 순으로 격차가 확인됐다.
공교육의 부실은 사교육 의존을 부추긴다. 통계청과 교육부가 공동 발표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9조 2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7.7% 증가했다. 사교육 참여율은 80.0%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학령인구가 1.5% 감소했음에도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 연간 434명 양성으로 1만 개 학교 채운다?… 구조적 한계
교사 부족은 양성 체계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 교육부가 이정헌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사범대학 컴퓨터교육과는 9곳에 불과하고 총 입학정원은 193명이다. 2021년 182명에서 5년간 11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일반대학 교직과정 정원 241명(40개 대학)을 합쳐도 연간 정보교사 양성 규모는 434명뿐이다. 전국 1만여 개 중·고등학교에 정보교사를 배치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2026학년도 전국 정보·컴퓨터교원 모집 인원은 375명으로, 10년 전인 2016학년도 44명 대비 8.5배로 늘었다. 사범대 정원은 5년간 11명 늘어난 반면, 임용 수요는 8.5배로 뛴 것이다.
■ 소프트웨어 교육의 전철 밟나… 1조 4천억 AIDT의 교훈
과거 소프트웨어 교육 정책의 실패가 반복될 우려가 크다. 정부는 2015~2020년 '소프트웨어 교육 선도학교' 사업을 추진하며 성과를 홍보했지만, 코로나19 시기 학생들은 화상 수업 플랫폼 로그인조차 어려워했다. 송근상 교사는 "기초적인 디지털 활용 능력조차 길러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AI 디지털교과서(AIDT)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감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부터 3년간 AIDT 도입에 투입된 예산은 1조 4,093억 원에 달하지만 학생 활용률은 평균 8.1%에 그쳤다. 미접속률은 60%였다. 교사 연수에만 1,170억 원이 집행돼 참여 교사 1인당 약 66만 원이 쓰였지만, 실제 수업 활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감사원은 "교육 현장 의견수렴과 시범운영 없이 전반적으로 부실하게 추진됐다"고 지적했다.
민간 기업의 교육 프로그램이 학교로 유입되려는 시도도 경계 대상이다. 구글은 미국에서 학생 100만 명에게 디지털 리터러시 프로그램 '비 인터넷 오섬(Be Internet Awesome)'을 보급했지만, 2023년 뉴햄프셔대학교 연구팀은 사이버 괴롭힘 등 부정적 행동을 줄이는 데 효과가 없었다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딥페이크나 데이터 편향성 등 AI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윤리 교육을 최우선해야 한다"며 "기기 없이 진행하는 '언플러그드 교육'을 확대하고 인문학적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예산 쏟아붓기보다 기본부터… 교사 양성과 명확한 지침 먼저
국회는 최근 AI 디지털교과서를 '핵심 교육자료'에서 '보조 교육자료'로 재분류했고, 17개 시도교육청 중 13곳만 도입에 동의한 상태다. 정책 혼선은 학교 현장의 피로도를 가중시키고 있다.
이정헌 의원은 "AI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좋은 '컴퓨터 선생님'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데, 공급이 현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초중고 학생들이 전문 교사 지도 아래 AI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AI 강국의 기반이 마련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조사에서 신승기 서울교대 교수 등 연구진은 "AI 교육 전담 교원 배치는 전체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특히 초등학교와 특수학교에서 그 한계가 두드러진다"며 "향후 AI 교육의 실질적 안착을 위해 전담 교원 확보와 인력 체계 개선이 핵심 과제로 검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화려한 예산과 목표 뒤에 가려진 현실이다. 교사도, 지침도, 준비도 없는 교실에 AI만 들어왔다. 학생들은 이미 AI를 쓰고 있지만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모른다. AI 강국을 외치기 전에, 교실 안 기본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