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AI는 ‘도입’의 단계를 지나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 성능 경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질문들이 남는다. 실세계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무엇을 쌓아야 하고, 어디서 병목이 생기며, 그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까. ‘AI 석학에게 듣다’는 AI 서울 2026 현장에서, 석학들의 문제의식으로 ‘전환의 조건’을 추적한다.

대프니 콜러 대표는 머신러닝 기반 신약개발 기업 인시트로(insitro)의 창립자이자 CEO로, ‘바이오 AI’를 실험실에서 병원으로 연결하는 산업 전환을 전면에서 밀어붙여 온 인물이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로 연구 기반을 다진 뒤, 대규모 온라인 교육 플랫폼 코세라(Coursera)를 공동 창업·운영하며 AI 확산의 또 다른 축을 만든 경험도 있다. 이후 콜러의 관점은 알파벳 계열 바이오 기업 칼리코(Calico)에서 컴퓨팅 총괄을 지낸 이력까지 더해지며, ‘모델’이 아니라 데이터·실험·검증이 돌아가는 물리적 시스템에 닿았다.
콜러 대표는 바이오 AI를 ‘모델 혁신’이 아니라 ‘치료를 만드는 방식의 혁신’으로 정의했다. 특히 이날 그녀의 발표는 희귀난치 질환 사례에서 출발해, 왜 혁신이 줄어들고 있는지, 왜 임상 성공 확률이 낮아졌는지를 짚었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해법으로 ‘AI 중심의 물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바이오 AI의 현장 전환은 결국 실험실에서 병원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다시 설계하는 문제라는 것이 콜러 대표의 주장이다.
“현재 치료법이 없는 질병이 너무 많습니다. 또 우리는 많은 질병의 원인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치료 공백의 현실, ‘이름 있는 질병’의 대부분은 여전히 치료 방법이 없다

이날 콜러 대표는 치료 공백의 상황을 숫자로 제시했다. ‘질병 이름은 있지만 치료 방법이 없는’ 영역이 매우 넓고, 그 공백이 곧 바이오 AI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콜러 대표는 “임상에 들어갔던 수많은 시도가 실패했다”는 현실을 먼저 꺼내 들었다.
“기술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원인과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접근해온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고 봐요. 현재 ALS(근위축측삭경화증 *루게릭병)는 FDA(미국식품의약국)가 승인한 치료제가 몇 가지 존재하지만, 수명을 단 몇 달 연장하는 수준에 그칠 뿐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습니다. 70개 이상의 약물 후보가 임상시험에 들어갔지만 대부분 실패했고, 승인된 약물들조차 질병의 진행을 근본적으로 막지 못합니다. 우리는 ALS가 왜 발생하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어 콜러 대표는 치료제나 치료 방법이 존재하는 질병의 비율 역시 매우 낮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살릴 수 있는 생명’과 ‘개선할 수 있는 삶’이 아직 엄청나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한 것은 ‘더 똑똑한 논문’이 아니라, 발견과 검증, 임상으로 이어지는 개발 프로세스 자체였다.
“치료가 존재하는 질병의 비율은 전체의 4분의 1도 안됩니다. 우리가 더 나은 개발 프로세스를 만들 수만 있다면 엄청난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아이디어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그녀는 혁신이 둔화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했다. 완전히 새로운 작동 원리(기전)를 겨냥한 후보물질은 임상 실패 위험이 크고, 성공 확률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새 표적을 뚫는 혁신’보다, 이미 성공 가능성이 확인된 표적과 접근법을 반복해서 선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시장에는 기존 약과 표적·기전이 비슷한 후속(유사) 약, 이른바 ‘미투’ 후보가 늘고 개발 전략도 더 보수적으로 흐른다. 즉 콜러 대표가 말한 바이오 AI의 목표는 ‘예측’이 아니라 ‘혁신이 다시 가능해지는 개발 시스템’이었다.
AI만으로는 못 간다, 맞춤 하드웨어·독점 데이터·표적 모델을 묶는 ‘신약 제조 시스템’

하지만 콜러 대표는 “AI만으로는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신약 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모델이 아니라, 데이터를 만들고 검증을 반복하는 물리적 시스템이다. 그래서 콜러 대표는 “치료제를 만드는 새로운 물리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다른 접근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약을 만들기 위한 완전히 새로운 물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현실 세계에서 작동해야 합니다. 또 이 시스템이 성립하려면 세 가지가 함께 필요하죠.”
그녀가 말한 세 가지는 맞춤형 하드웨어, 독점 데이터, 그리고 특정 물리 문제에 맞춘 AI 모델이다. 콜러 대표는 “세 요소가 결합되기 전까지는 작동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바이오 AI가 ‘모델 단독’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맞춤형 플랫폼과 실험 하드웨어를 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플랫폼에서만 생성되는 독점 데이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조각들이 모두 결합되기 전까지는 실제로 작동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콜러 대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은 길고 복잡하지만, 한 번 구축하면 경쟁우위는 오래 간다는 취지로 말을 이어갔다.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성과를 내려면 같은 여정을 다시 밟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콜러 대표가 말하는 ‘현장 전환’은 결국 병원으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을 플랫폼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멀티에이전트가 과학을 가속한다, ‘가설→실험→학습’ 루프를 시스템화하는 방식

이날 콜러 대표는 발표 말미 에이전틱 리즈닝(Agentic Reasoning, 에이전트 기반 추론)을 소개했다. 데이터가 방대하고 복잡해질수록 인간의 직관만으로는 인과 고리를 따라가기 어렵다. 그래서 ‘에이전트 커뮤니티’가 토론·반성·우선순위화를 수행하고, 타깃과 근거, 한계, 필요한 실험까지 제안하는 구조를 구축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이 문제는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이전틱 리즈닝 레이어를 만들었습니다. 이 레이어는 하나의 에이전트가 아니라 서로 대화하는 에이전트들의 공동체입니다. 이 시스템이 연구의 속도를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콜러 대표는 “과거에는 수개월이 걸리던 작업이 있었지만 에이전틱 시스템에서는 몇 시간 만에 같은 수준의 결과를 제안할 수 있었다”며 “바이오에서 속도는 곧 ‘현장 전환’의 가능성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콜러 대표의 결론은 ‘모델을 더 키우자’가 아니다. 그 보다는 치료 공백이 큰 현실에서 ‘가설→실험→학습’이 구조적으로 돌아가는 물리적 시스템을 만들어 병원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즉 바이오 AI의 현장 전환은 ‘AI 도입’이 아니라 ‘발견과 개발의 운영체제’ 교체에 가깝다는 것이 콜러 대표의 입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