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전쟁 생존을 위한 치트키 ‘뉴로모픽 반도체’

[AI 요약] 반도체는 AI, 사물인터넷(IoT), 커넥티드카, 로봇 등 미래 산업 분야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 부품으로 시대가 변할수록 고도화되며 점차 인간의 뇌를 모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사람의 뇌 신경망을 모방한 뉴로모픽 칩의 개념은 1000억개의 뉴런(신경세포)과 100조개의 시냅스로 이뤄진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미중 간의 경제전쟁과 함께 반도체 산업 주도권 다툼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생존하기 위한 길은 기술력 뿐이다.


삼성전자와 하버드대학교는 차세대 인공지능 반도체 뉴로모픽 칩의 공동연구를 통한 기술 비전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이미지=삼성전자)

함돈희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펠로우 겸 하버드대 교수, 박홍근 하버드대 교수, 황성우 삼성SDS 사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공동연구를 통해 집필한 논문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세계적인 영국의 학술지 ‘네이처 일렉트로닉스(Nature Electronics)’에 게재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삼성전자가 미국 하버드 대학교 연구진과 손잡고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인 뉴로모픽(Neuromorphic) 칩의 기술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람의 뇌신경망을 모방한 뉴로모픽 칩의 개념은 1000억개의 뉴런(신경세포)과 100조개의 시냅스로 이뤄진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뉴로모픽 칩의 궁극적인 기술 목표는 인지, 추론 등 뇌의 고차원 기능까지 재현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 해결해야 할 기술적 난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삼성전자와 하버드대는 이번 논문을 통해 뇌 신경망에서 뉴런들의 전기 신호를 초고감도 측정이 가능한 나노전극으로 측정, 뉴런 간의 연결 지도를 복사하고 복사된 지도를 메모리 반도체에 붙여 넣어 뇌의 고유 기능을 재현하는 뉴로모픽 칩의 기술 비전을 제시했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미중 경제전쟁의 이면에 숨은 반도체 산업 주도권 다툼에서 우리나라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이 기술력임을 일깨우고 있다.

인간의 뇌를 닮은 반도체, 뉴로모픽 가능성은?

지난 2월 24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자동차용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개 품목에 대한 글로벌 공급망 검토를 지시하는 ‘미국의 공급사슬에 대한 대통령 명령’에 서명하며 “못이 없어서 편자가 사라졌고, 편자가 없다 보니 말까지 잃었다. 이런 일이 계속 되면 결국에 ‘왕국’이 파괴된다”는 속담을 인용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4개 품목 중에서도 유독 강조한 반도체가 바로 21세기 편자의 못이다. 실로 반도체는 AI, 사물인터넷(IoT), 커텍티드카, 로봇 등 미래 산업 분야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 부품이다. 코로나19로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 되면서 그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반도체가 그리 중요할까? 반도체는 컴퓨터를 비롯한 다양한 기기에서 성능을 좌우하는 중요한 부품이다. 오늘날 대부분 기기의 성능은 정보처리 속도로 판가름 되고 있다. 즉 반도체는 정보처리 속도를 좌우하는 중요 부품이며 반도체 고도화는 이러한 정보처리 속도를 높이는 과정인 셈이다.

초기 컴퓨터의 진공관을 대체한 트랜지스터는 1947년 미국 벨 연구소의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 존 바딘(John Bardeen)에 의해서 개발됐다. 진공관에 비해 가볍고 적은 전력으로 동작이 가능한 이 기술은 오늘날까지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반도체는 인공지능을 비롯한 미래 기술의 구현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다. (이미지=픽사베이)

반도체의 발전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무어의 법칙(2년마다 2배로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이에 따라 반도체는 시간이 갈수록 고도화되며 점차 인간의 뇌를 모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인간의 뇌는 100억개의 뉴런과 100조개의 시냅스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처리하지만 소비하는 에너지는 20W(와트)에 불과하다. 이를 모방한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 역시 단순화하자면 100억개의 뉴런, 100조개의 시냅스와 같이 집적도를 높이는 것, 그리고 소비 에너지를 줄이는 것, 마지막으로 정보처리 과정에서 전기적 간섭과 오류를 줄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세가지 난제는 인간의 뇌를 모방하려는 반도체 기술이 부딪힌 한계이기도 했다. 뇌와 달리 반도체는 소자의 크기를 줄여 집적도를 높였을 때 열이 발생하고 전기적 간섭에 의한 정보처리 오류를 해결하기 쉽지 않았다. 다른 말로 반도체의 기술적 우위를 확보했다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얼마나 개선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기술적 한계를 돌파하며 독보적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제안한 뉴로모픽 반도체의 개념은 뇌 신경망에서 뉴런들 사이에 이뤄지는 전기신호를 나노전극으로 초고감도 측정해 전체 뉴런 간 연결 지도를 복사하는 1단계 과정을 거친다. 이후 2단계로는 복사된 뉴런 간 연결지도를 다시 메모리 반도체에 붙여 넣어 뇌의 고유 기능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그간 뇌 신경망에서 측정된 방대한 전기신호를 분석해 뉴런 간 연결 지도를 구성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삼성전자의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은 ‘측정 신호로 메모리 플랫폼을 직접 구동해 신속하게 신경망 지도를 내려받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기술 비전이 제시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가 제안한 뉴로모픽 반도체는 인간의 뇌 신경망 지도를 복사해 메리로 반도체에 붙여 넣어 뇌의 고유 기능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이미지=픽사베이)

또한 삼성전자는 사람의 뇌 속 뉴런과 시냅스의 집적도를 구현하기 위해 3차원 플래시 적층 기술과 고성능 D램에 적용되는 TSV(실리콘 관통 전극)을 통한 3차원 패키징 등 최첨단 반도체 기술의 활용을 제안했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IBM의 ‘트루노스’, 인텔의 ‘로이히’가 개발돼 있다. 그러나 이들 칩은 크기가 크고 가격 비싸다. 또한 아직은 주로 하이엔드 앱에서만 사용 되며 범용성도 낮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뉴로모픽 반도체 상용화 시점을 3~4년 후로 전망하고 있다. 역시 관건은 크기, 효율, 가격이다. 삼성전자는 이제까지 쌓아온 반도체 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뉴로모픽 연구에 박차를 가해 차세대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한편 이와 별도로 지난 8월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최양규·최성율 교수팀 역시 상용화된 CMOS 공정을 이용해 고집적 뉴로모픽 반도체를 8인치 웨이퍼로 만드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는 기존 반도체에 비해 집적도를 3500배 높인 것으로 뉴런, 시냅스 부가적인 신호처리 회로를 동일 웨이퍼 상에 동시에 집적했다는 특징이 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향후 뉴로모픽 하드웨어의 상용화를 한 단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이 대만을 두고 대립하는 이유는?

반도체 산업의 세계 시장 규모는 오는 2030년 1조 달러(약 117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동차, 로봇, 전자 기기 및 에너지 등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되며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기 때문이다.

경제전쟁 혹은 제2의 냉전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한편으로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 다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잠시 반도체 산업의 지난 반세기를 되돌아보자면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반도체 산업은 1980년대 일본으로 생산중심기지가 이동했다. 일본이 미국을 위협하는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된 시점과 맞아 떨어진다. 위협을 느낀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를 비롯해 일본산 반도체에 100%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일본에 성장세를 꺾기도 했다. 미국이 일본을 견제하던 이 시기를 틈타 미국 시장에 진출한 것이 우리나라와 대만의 반도체였다.

이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사슬은 국가 별 특화된 분업체제로 재편되며 미국이 설계(팹리스, Fabless)와 장비, 소프트웨어를 담당하고, 한국과 대만이 주문생산방식(파운드리, Foundry)으로 제조를 맡는 형태로 이어져 왔다.

현재는 미국은 반도체 연구개발과 전자설계 자동화 및 집적회로 레이아웃 설계 분야 74%, 시스템 반도체 설계 67%, 메모리 반도체 생산 29% 수준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노동집약적인 조립 및 포장, 검사 분야는 중국이 46%를 점유한 상태다. 1위 대만을 이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은 대규모 설비와 자본을 필요로 하는 원자재와 웨이퍼 제조를 담당하는 상태였다. 그 중 7나노 이하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은 대만의 TSMC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만이 가능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의 이면에는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다툼도 포함돼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문제는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가 있었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경제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로서는 반도체 소재의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 다변화와 국산화를 추진하는 계기가 됐지만, 미국과 중국의 문제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추세에 있다. 선공을 날린 것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다. 대만의 TSMC가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회사인 하이 실리콘에 대한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이는 중국이 자력으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반도체 굴기 정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은 2020년 8월 ‘신시대 반도체·소프트웨어 고품질 제품 개발과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을 발표하며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점점 강화되는 미국의 제재 조치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대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72년 미중 관계 정상화를 통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했던 미국이 최근 대만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며 중국의 패권화를 견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면에는 미국 반도체 주요 공급 루트인 대만의 TSMC가 있다. 미중 간 경제전쟁에 있어서 반도체 공급처인 대만은 미국의 안보와 직결돼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생존의 길은 ‘기술력’

반도체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글로벌 2위로 D램이 69.5%, 낸드플래시 44.5% 파운드리 17% 정도다. 하지만 이 순위는 안정적이지 않다. 앞서 언급한 미중 경제 전쟁으로 각 국가별 경제 블록화 현상이 심화되는 한편 미국, 유럽 등이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 정책을 펼치며 반도체 산업 재육성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견제가 심하긴 하지만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도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우리나라 삼성전자 등을 백악관으로 불러 매출 및 재고 현황은 물론 ‘집적회로 유형, 원자재와 설비 종류’ 등 기업 기밀에 속하는 핵심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극비 경영 정보를 그대로 제공할 경우 이는 자국 반도체 산업 재육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 정부에 의해 미국 기업으로 유출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정보를 주지 않으면 국방물자생산법(DPA)로 직접 통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은 진퇴양난에 처한 상황이다.

또한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 비중이 41%, 미국 비중이 7.7%로 미중 간 대립이 격화될수록 더욱 난감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미국 역시 무턱대고 중국을 제재할 수 만은 없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수입하는 반도체의 55%가 수출품의 부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즉 중국의 반도체 생산이나 수입을 무작정 막을 경우 중국 제품 의존도가 높은 미국 역시 타격을 받는 셈이다.

우리나라로서는 이러한 미중 간의 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해 중국 시장을 유지하면서도 반도체 신기술 확보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위를 유지하는 것만이 생존을 위한 길이라 할 수 있다.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 선점이 더욱 절실한 이유기도 하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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