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에서 만난 사람] 심재훈 호패 대표 “팬데믹 당시 COOV 개발한 기술력으로 글로벌 디지털 신원인증 인프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팬데믹 시절,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사용한 COOV(전자예방접종증명서) 개발팀이 의기투합
종이와 플라스틱 증서로 이어져 온 신원인증 방식의 혁신… 변화를 주도하는 ‘디지털 신원인증 기술’
‘글로벌 디지털 신원인증 인프라 구축’ 목표 내세운 분산신원(DID) 기반 보안 전문 스타트업의 도전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문제적 장면들 중 기억에 남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손쉽게 대학 졸업증명서를 위조하는 장면이 아닐까. 그만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신분증, 증명서 위·변조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진 고질적 범죄 유형 중 하나였다.

로그인 역시 마찬가지다. 온라인 채널이 다양해지고 금융, 증명서 발급 등이 모두 온라인 로그인절차를 통해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제 사람들은 해킹 방지를 위해 복잡한 패턴으로 자신의 패스워드를 수시로 바꿔야 하고 그 마저도 기억이 나지 않아 재발급을 요청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 됐다.

온라인 채널이 다양해지고 금융, 증명서 발급 등이 모두 온라인 로그인절차를 통해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제 사람들은 해킹 방지를 위해 복잡한 패턴으로 자신의 패스워드를 수시로 바꿔야 하고 그 마저도 기억이 나지 않아 재발급을 요청해야 할 정도의 상황이 됐다. (이미지=픽사베이)

그런데 기술의 발달,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디지털 전환의 속도가 빨라지며 조만간 이러한 로그인 문제를 비롯해 신분증, 증명서 위·변조 문제는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가 될 전망이다. 바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분산신원(DID) 기반 신원인증 및 보안 기술 덕분이다.

‘탈중앙화신원인증’이라고도 불리는 DID는 중앙기관 없이 디지털 월넷 기술을 통해 자신이 직접 발급받은 DID 인증을 저장·보관하고 인증이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정보만 제공해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는 지난 2022년 7월에서야 표준으로 채택된 최신 기술이기도 하다.

DID는 중앙기관 없이 디지털 월넷 기술을 통해 자신이 직접 발급받은 DID 인증을 저장·보관하고 인증이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정보만 제공해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는 지난 2022년 7월에서야 표준으로 채택된 최신 기술이기도 하다.

그에 앞서 이 기술은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4월, 46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사용한 COOV앱(코로나19 예방 접종증명서 앱)에 적용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DID를 적용한 방식이 국가 단위의 서비스에 최초로 활용된 사례이기도 했다.

‘호패’는 바로 이 COOV 개발을 총괄한 심재훈 대표와 팀이 주축이 돼 지난 2022년 4월 창업한 DID 기반 신원인증 및 보안 전문 스타트업이다. 창업 이전부터 세계 유일무이한 경험을 쌓으며 기술력을 입증한 이 스타트업은 창업과 동시에 500글로벌, 뮤렉스파트너스, 본엔젤스 등으로부터 프리시드 투자를 유치했고, 이듬해에는 AWS에서 주최한 SaaS 엑셀레이터 프로그램, 한국인터넷진흥원의 개인정보보호 우수기술 경진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다. 또한 지난 ‘컴업 2023’ 행사에서는 전세계 960개 유망 스타트업 중 최종 10팀에 선정되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엑셀레이팅 프로그램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러한 기세로 호패는 올해 초 미국과 유럽 등에서 시드 투자 라운드를 진행하는 한편 플립(FLIP, 스타트업의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것을 의미)까지 염두하며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테크42는 디지털 아이덴티티(Digital Identity)라는 격변의 파도를 타고 있는 호패의 창업에 얽힌 지난 스토리와 글로벌 디지털 신원인증 인프라 구축이라는 원대한 목표의 시작을 알리는 2024년의 계획들을 들어봤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된 신원인증 분야 전문가의 길

심재훈 호패 대표.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 분야의 디지털포렌식과 인증을 공부한 심 대표는 이후 LG CNS와 COOV를 개발한 블록체인랩스를 거쳐 호패를 창업했다. (사진=호패)

“호패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의 신분증에서 따 왔어요. 디지털 영역에서 신원인증의 수단이라는 의미죠. 크게는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내가 나임을 어디서든 증명할 수 있게 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나를 도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예요. 그것을 디지털지갑과 신원인증, 또 보안 기술로 가능하게 하고 있죠.”

아산나눔재단의 창업가 플랫폼 ‘마루360’에서 만난 심재훈 호패 대표는 사명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호패팀이 창업 이후 독자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선보인 첫 프로덕트가 바로 IAM(신원증명 및 접근관리, Identity Access management) SaaS ‘Furo’다. 이는 온라인 환경에서 단순 로그인 시스템을 구축해 주는 것을 넘어 보안, 개인정보 등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을 자랑하고 있다. 현재 ‘호패 IAM’으로 리브랜딩 중인 ‘Furo’는 앞서 언급된 DID 기술이 적용된 ‘호패 월렛’과 함께 호패팀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무기로 지속적인 고도화가 진행 중이다.

그런 심 대표가 호패 솔루션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그는 2007년부터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 그 중에서도 디지털포렌식과 인증을 공부했다. “초기에는 인증보다 포렌식에 관심이 있었다”는 그의 관심이 인증 분야로 돌아서게 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에 참여하게 된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포렌식 클래스 교수님께서 여름 방학 때 진행하는 세 가지 프로젝트 중에 하나를 골라 함께 하자고 하셨고, 그 중 하나가 당시 저희 학교 전체의 로그인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었어요. 꽤나 재미있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라는 생각에 시작을 했고 3개월 동안 50만명이 이용하는 로그인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보수하는 경험을 하게 됐어요. 돌이켜보면 COOV(쿠브)와 비슷했던 것 같네요. 로그인 하면 60초 정도 시간이 걸렸는데, 그것을 평균 0.7초로 단축했죠. 그것을 가지고 졸업 논문도 쓰고 그 연구실에서 2년 정도 더 일을 하며 인증 분야에 전문성을 쌓을 수 이었어요. 돌이켜 보면 마치 운명처럼 인증 분야 전문가로서 제 인생이 예정돼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웃음).”

이후 졸업을 앞둔 그는 LG CNS로부터 채용 제안을 받고 귀국을 선택했다. 2018년 12월 말이었다. 이듬해 1월 2일자로 바로 LG CNS 근무를 시작한 그는 전사적인 기술 역량 테스트, 블록체인 파트 교재 집필과 강의, 문제 출제 위원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프로덕트 컨셉트가 정해지면 그것을 바탕으로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는 것도 그의 업무 중 하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사내 최초로 신원인증에 블록체인을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했고 그러한 제안은 ‘사내 벤처’ 형태의 호패 설립으로 이어졌다.

COOV로 시작된 호패팀의 도전

호패팀에 의해 완성된 COOV는 그렇게 블록체인랩스에서 질병관리청에 기부되는 과정을 거치며 대부분의 국민이 사용하는 코로나19 전자예방접종증명서로 등극했다. (이미지=질병관리청)

그렇게 LG CNS의 사내 벤처로 시작한 호패팀은 인큐베이션 기간으로 예정돼 있던 1년이 채 안된 6개월만에 사업 검증과 기술 검증을 완료하고 스핀오프를 앞두게 됐다. 하지만 당시 회사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투자 검토가 길어지며 호패팀의 고민이 시작됐다. 그런 상황에서 3배 이상의 밸류에이션으로 투자를 해 주겠다는 외부 벤처캐피탈(VC)들의 제안도 이어졌다. 하지만 의외로 호패팀의 선택은 전원 퇴사였다. 기술적 검증이 끝난 상황에서 자체적으로 법인을 설립해 제대로 창업에 도전해보자는 결심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받은 것이 ‘블록체인랩스’의 제안이었다.

“LG CNS 재직 당시 고객사였던 블록체인랩스 요청으로 저희 팀이 PoC(개념검증)과 MVP(최소기능제품)을 만들었어요. 그게 COOV가 된 것이었는데, 블록체인랩스가 저희 팀 모두 합류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한 거죠. 저희 역시 바로 창업을 하는 것보다 COOV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창업을 하면 투자 유치 등에서 더 좋은 성과를 확보하는 것이라 그 제안을 받아들였죠.”

이후 호패팀에 의해 완성된 COOV는 그렇게 블록체인랩스에서 개발해 질병관리청에 기부되는 과정을 거치며 대부분의 국민이 사용하는 코로나19 전자예방접종증명서로 등극했다. 심 대표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COOV에는 엄청난 노력과 에피소드가 있다”며 당시 이야기를 털어 놨다.

“출시 후 3개월 무렵인 2021년 7월에 백신 접종 인센티브가 시행되며 네이버와 카카오, 토스 등에서 OR코드 찍어 접종 유무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을 짧은 시간에 만들어야 했어요. 일주일도 채 안돼는 사이에 각 기업 100명의 개발자를 슬랙에 모아 놓고 호패팀이 밤낮으로 대응하면서 합심해서 만들었죠. 관건은 대규모 트래픽을 해결하는 것이었어요. 초반에 블록체인에서 데이터를 가져오는 속도가 5~7초 걸리던 것을 그렇게 0.3초로 줄였어요.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3~5초가 걸리던 걸 우리나라 만 유일하게 0.3초로 만들었던 거죠. 그 과정에서 DAU 4300만을 찍고, 블록체인 지갑 SDK를 배포하면서 그렇게 만들어진 지갑 개수만 8600만개가 넘어요. 크립토에서 가장 유명한 ‘메타마스크’ 지갑의 월평균 활성사용자 수가 2500만명 수준이었으니 그보다 1.7배 이상이 된 거죠. 아직도 이와 같이 국가 단위로 진행했던 케이스는 없어요.”

COOV를 통해 확보한 경험과 기술력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서다

심 대표의 예상대로 블록체인랩스에서 COOV를 완성한 경험은 호패팀에게 유일무이한 경험이자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노하우를 확보하는 과정이 됐다. 결과적으로 호패가 정식 법인을 설립할 무렵에는 이미 그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호패의 신원인증 관련 솔루션은 PoC까지 완료된 상태였다. 신생 기술을 적용하며 직면할 수 있는 규제 리스크 조차 호패는 COOV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 심 대표의 말에 따르면 “개인정보보호법을 세번 정독했을 정도”다.

“COOV가 국가에서 적용한 서비스다 보니 규제나 보안 이슈를 모두 적용 받았어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국정원, 과기부 등에서 정기적으로 보안감사를 받으면서 컴플라이언스나 보안에 대해 굉장히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죠. 저희가 당시 활용했던 데이터가 민감 데이터 중에서도 가장 규제가 강한 의료 데이터이니 그럴 만도 해요. 해외에서도 저희가 이런 데이터를 다뤘다는 것 자체에 굉장히 신뢰를 했고 그 덕분에 WHO나 UN에서 발표도 할 수 있었죠. 당시에는 쉽지 않았지만 그게 현재 호패의 자산이 된 거고요.”

이렇듯 규제 대응 경험과 기술 우위를 확보한 호패는 새해를 맞아 글로벌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COOV와 같이 어느 나라보다 앞선 기술 상용화 사례가 있었지만, 해외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 유럽의 경우 통장 하나 개설에 며칠이 소요되는가 하면 미국은 신원보증을 해 줄 사람이 없으면 집을 빌릴 수도 없다.

이에 유럽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는 2026년까지 W3C 표준 기반의 로그인 시스템인 ‘EUID’를 필수 탑재하도록 예정돼 있다. EUID는 말 그대로 EU(유럽연합)에서 발급하는, DID 기술이 적용된 디지털 신분증이다. 게다가 미국 국토부 주도의 영주권 워크퍼밋, 비자 모바일 발급 프로젝트 역시도 호패가 PoC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호패는 아시아에서 오픈월렛재단 내 유일한 회원으로 사용자 친화적 디지털 지갑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심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호패의 기술력은 타 기업에 비해 2~3년은 앞선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분야에 스타트업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빅테크도 뛰어들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은 없습니다. 스타트업의 경우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곳이 없을 정도로 아주 초기 시장이예요. 그런 상황에서 저희는 국가 단위의 서비스를 실제 개발하고 운영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니 경쟁력을 높게 평가 받고 있는 상황이죠.”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호패는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서며 심 대표가 내세운 것은 “비자와 같은 회사를 만들 것”이라는 비전이다. 인터뷰 말미, 심 대표는 ‘글로벌 디지털 신원인증 인프라 구축’라는 대담한 목표를 언급했다.

“저희가 해외에서 음식점이나 술집을 가면 내가 가진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지 여부를 문 앞에 붙여진 가맹 스티커를 보면서 확인하잖아요. 저는 앞으로 거기에 호패 스티커가 붙어 있으면 사람들이 ‘여기는 호패 인프라로 발급받은 디지털 신분증이 있으면 성인 인증을 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만들 겁니다. 저희 신원증명 기술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프라 내에서 실물 신용카드는 물론 모바일에도 호패 마크가 들어갈 거예요. 비자 마크가 써 있는 카드는 해외 결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호패 마크가 있으면 해외에서 인증이 가능한 신분증이 되는 거죠. 졸업증명서, 의약 처방전에도 들어갈 수 있고, 해외에서 집을 렌트할 때도 이를 통해 신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신원인증의 고통, 아이디, 패스워드로 인한 고통을 해결하고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호패는 그런 사명감으로 모인 팀입니다.”

황정호 기자

jhh@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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