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수십 통씩 쏟아지던 불법 스팸 문자. 당첨됐다는 거짓 알림, 불법 대출 유혹, 도박 사이트 링크까지. 이제 그 끝없는 공격에 제동이 걸렸다. 정부가 꺼내든 칼은 예상보다 날카로웠다. 대량문자 사업자 1168곳 중 462곳이 스스로 시장을 떠났고, 남은 사업자들에게는 매출액 6%라는 살벌한 과징금 기준이 기다리고 있다.
■ 문자 한 통도 함부로 못 보낸다…'전송자격인증제'가 바꾼 판도
2026년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공동 개최한 설명회장 분위기는 무겁다. 28일 시행을 앞둔 '전송자격인증제'는 단순한 제도 도입이 아니다. 지난 수년간 난립했던 대량문자 시장의 판을 완전히 뒤엎는 구조조정이다. 불법스팸 방지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업자는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다. 5개 분야 16개 항목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만 문자 한 통을 보낼 자격이 주어진다.
이용약관부터 부정사용 차단, 금칙어 차단체계, 정보보호 인력 요건, 납입자본금 기준까지. 서류 적정성과 이용자 관리 적정성을 철저히 검증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인증을 받은 사업자조차 방문·서면·전화 방식으로 연 1회 정기 점검을 실시한다. 등록 조건 미이행, 전송자격인증 취소, 불법스팸 방치가 확인되면 즉시 퇴출이다.
지난해 12월 마감된 인증 신청 결과는 충격적이다. 전체 1168개 문자재판매사업자 중 706개만이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률 60%. 나머지 462개 사업자는 아예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이 중 285개가 인증을 완료했고, 30개는 보류, 3개는 불허 판정을 받았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관계자는 "행정처분 이력이 많으면 심사 통과가 어렵다. 미신청 사업자들은 인증을 받기 힘들거나 정상 영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시장의 40%가 자진 퇴장한 셈이다.
■ 3천만 원 과태료에서 매출액 6% 과징금으로…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더 무서운 건 처벌 수위의 변화다. 2026년 3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불법스팸에 대한 제재 방식을 근본부터 바꿨다. 기존에는 불법스팸을 보내도 최대 3천만 원 과태료로 끝이었다. 수억 원을 벌어들이는 사업자에게는 '사업 비용'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불법스팸 전송자와 스팸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자에게 관련 매출액의 6% 이하 과징금이 부과된다. 위반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과태료와 달리, 과징금은 경제적 이익 환수가 목적이다. 연 매출 100억 원 사업자라면 최대 6억 원을 토해내야 한다. 여기에 불법행위로 얻은 부당이익은 별도로 몰수·추징된다.
공포 후 6개월 뒤 시행될 이 조항은 대량문자 시장의 수익 구조 자체를 흔든다. 과징금 상한과 산정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세부화될 예정이지만, 업계는 이미 긴장 상태다. 불법스팸으로 버는 돈보다 과징금이 더 크다면, 애초에 사업 모델이 성립하지 않는다.

■ AI가 잡고, 무효번호가 막고…기술로 차단망 촘촘하게
규제만 강화한 게 아니다. 기술적 차단망도 한층 두터워졌다. 2026년 상반기 도입된 '불법스팸 무효번호 차단시스템'은 스팸 발송자들이 즐겨 쓰던 꼼수를 원천 봉쇄한다. 미할당 번호나 이용 중지된 번호로 발송되는 문자메시지를 실시간으로 검증해 차단한다. 가짜 번호로 수사망을 피하던 이른바 '유령번호 스팸'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은 AI 기반 공동 대응 플랫폼을 구축했다. 인공지능이 스팸 패턴을 실시간 분석하고 피싱 여부를 탐지한다. LG유플러스는 AI 기반 스팸 차단 시스템 고도화 결과, 5개월 만에 스팸 차단 건수가 1.4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동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 대량문자 사업자가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는 불법스팸 데이터를 공유하고 개방하며 협업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해외발 대량문자 차단도 강화됐다. 국제문자중계사에 대한 가이드라인 준수 의무가 엄격해지면서 해외 경로를 통한 스팸 유입이 줄어들었다. 대량문자 발신자의 신원을 검증하는 통신이용증명원 확인 절차도 개선 적용됐다.
■ 1년 만에 74% 급감…성과는 나왔지만 방심은 금물
실제 효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2025년 상반기 국민 1인당 월평균 문자스팸 수신량은 3.04통으로, 1년 전 11.59통 대비 73.8% 감소했다. 전체 스팸 신고·탐지 건수도 3883만 건으로 전년 동기 2억 2680만 건보다 82.9% 급감하며 최근 5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4년 11월 발표된 '불법스팸 방지 종합대책'이 가시적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부당이익 환수 강화, 대량문자시장 정상화, 발송차단 강화, 수신차단 고도화, 스팸 차단 거버넌스 구축이라는 5대 전략이 맞물려 작동했다. 과기정통부 최우혁 네트워크정책실장은 "민관협의체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스팸 신고 건수가 대폭 감소했다"며 "민관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문자스팸이 줄어든 자리를 음성스팸이 채우고 있다. 2025년 상반기 음성스팸은 오히려 39.2% 증가했다. 스팸이 문자 중심에서 음성 기반 피싱으로 이동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도박·로또 광고가 가장 많고 금융·투자 유도형이 뒤를 이었다. 불법스팸이 단순 불편을 넘어 보이스피싱과 불법투자 유인 등 금융범죄로 연결되고 있다는 의미다.
■ 기술과 제도와 참여가 만든 변화…지속가능성이 관건
문자스팸 74% 감소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기술과 제도, 국민 참여가 삼박자를 이룬 결과다. AI 필터링은 불법 문자 패턴을 학습하며 스스로 진화하고, 정부와 민간의 협력은 사회 전반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스팸 신고·예방 홍보 콘텐츠를 영상·이미지로 제작해 배포하고, 국민이 손쉽게 신고·차단할 수 있도록 온라인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전송자격인증제 도입, 정보통신망법 개정, 무효번호 차단시스템 가동, AI 기반 공동 대응 플랫폼 구축. 불법스팸의 발송·유통·수신·이익환수·재유통 전 단계를 끊어내는 종합 대책이 현실이 되고 있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은 "이번 법 개정이 불법스팸으로 인한 국민 불편과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안전하고 자유로운 디지털 서비스 환경 구축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스팸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메신저, SNS, 음성 통화로 경로를 바꾸며 새로운 틈새를 파고든다. 정부의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용자의 인식 제고와 개인 보안 습관 강화가 병행돼야만 진정한 '스팸 제로 사회'가 가능하다. 디지털 신뢰 회복이라는 더 큰 과제가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