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되는 인공지능(AI) 기본법을 둘러싸고 스타트업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규제 중심의 법 체계가 신생 기업의 혁신 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산업 육성에 방점을 둔 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29일, 지난 28일 국회에서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및 한국벤처창업학회와 공동으로 AI 기본법 관련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곧 시행될 AI 관련 법안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적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를 주최한 황정아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AI 기술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그는 "AI는 여러 산업 영역을 가로지르는 범용 기술 특성상, 초기 단계에서 지나친 제약을 가하면 성장 동력이 약화될 위험이 있다"며 "지금은 대한민국 AI 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기술 분야에서는 과학기술 혁신이 경제 성장을 이끄는 핵심 엔진 역할을 한다"며 "이제 막 출발하는 기업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식의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이기대 센터장은 현 상황을 더욱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현재 추진 중인 AI 기본법은 산업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사전 규제 장치를 우선 구축하는 방식"이라며 "이런 환경에서는 유능한 창업자들이 국내보다 미국 등 해외 시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미래를 이끌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규제 도입 시점과 방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첫 번째 발제에 나선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AI 기본법과 글로벌 기술 패권 전략'을 주제로 한국 AI 산업의 구조적 취약점을 지적했다.
전 교수는 "과거에는 알고리즘 개발 역량이 AI 경쟁력의 핵심이었지만, 이제는 클라우드 인프라부터 운영체제(OS), 앱 유통 플랫폼에 이르는 전방위 생태계 구축이 관건"이라며 "한국은 모델 개발과 인프라 투자 양 측면에서 선진국 대비 뒤처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논의 중인 3년 규제 유예안에 대해서도 "임시방편적 처방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며, "플랫폼 기업과 스타트업이 협력할 수 있는 생태계 전략과 법제도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실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구글, 메타 등 글로벌 AI 선도 기업들도 초기에는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플랫폼 생태계 속에서 성장했다"며 "현행 AI 기본법은 중소기업 지원에만 초점을 맞춰 플랫폼 산업과의 연계 전략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창업 기업이 플랫폼과 협업하며 성장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박상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 규제 조항 3년 유예안의 필요성과 개정 방향'을 주제로 현행 법안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박 교수는 "AI 기술은 적용 분야에 따라 위험도와 규제 필요성이 천차만별인데, 현행법은 유럽연합(EU) 방식의 포괄적 수평 규제를 그대로 도입했다"며 "한국 산업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가 구체적으로 지적한 문제는 △생성형 AI에 대한 일괄적인 고지·표시 의무 부과 △'고영향 AI' 개념의 모호함과 이에 따른 과잉 규제 우려 △빠르게 변하는 기술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고성능 AI 정의 등이다. 그는 "이런 조항들은 업계에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므로 유예 기간을 활용해 산업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적 동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박 교수는 "여러 국가들이 포괄적 AI 규제의 시행을 미루거나 재검토하는 추세"라며 "한국이 참고했던 캐나다의 'AI and Data Act'는 이미 폐기됐고, EU 역시 AI Act 시행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도 'One Big Beautiful Bill Act'를 통해 향후 10년간 주 및 지방 정부 차원의 AI 규제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우리도 규제 속도를 조절하고 산업 친화적 관점에서 재설계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가 좌장을 맡아 학계와 산업계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의견 교환이 이어졌다.
이해원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 시행 시기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EU보다 앞서 법을 시행하는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될지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며 "AI 핵심 요소인 연구개발(R), 인프라(I), 데이터(D), 거버넌스(G) 중 한국은 앞의 세 가지에서 역량이 부족한데, 현행법은 거버넌스 강화에만 치중해 산업 경쟁력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본 사례를 들며 "일본은 산업 육성 중심의 과감한 AI 전략을 펼치며 R&D와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며 "우리도 이런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주희 동덕여대 문화지식융합대학 교수는 콘텐츠 산업 관점에서 우려를 표했다. 그는 "현행 AI 기본법은 윤리와 신뢰 확보에 집중한 나머지 진흥 조항은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고영향 AI 기준이 불명확하고, 생성형 AI에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면 콘텐츠 제작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신뢰성 인증 제도도 구체적 기준 없이 도입되면 스타트업들은 긴 검증 절차와 높은 비용 부담에 직면할 것"이라며 "규제 유예를 넘어 현실에 맞는 제도 설계와 정책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정근 BHSN 대표는 기술 변화 속도에 맞춘 유연한 규제 체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예측이 어렵고, 현재 통용되는 기술이 한 달 뒤에는 구식이 될 수 있는 환경"이라며 "고정된 제도보다는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전 규제보다는 투명성 기반의 자율 규제를 정착시키고, 부처 간 해석 차이를 조율할 컨트롤타워 구축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정준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행법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AI 기본법은 진흥과 규제를 나열만 했을 뿐, 진흥은 R&D 중심이고 국민이 일상에서 AI를 활용하는 경험을 확대하는 'AI 전환(AX)' 전략은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GPU나 대규모 언어모델(LLM) 개발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진흥은 국민이 일상에서 AI를 체감하고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AI 시장 형성을 위한 진흥 조항과 AX 전략이 부재한 만큼 입법·정책적 보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한 "규제 조항 유예를 넘어 AI 관련 규제 전반을 체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으며, 규제 샌드박스도 사업자에게 과도한 입증 책임을 지우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경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기반정책관은 정부 입장을 밝혔다. 그는 "AI 정책의 기본 방향은 진흥에 있으며, 과기정통부 업무의 대부분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며 "EU마저 AI법 시행을 유예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성급한 규제보다는 유연하고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시행령, 고시 2건, 가이드라인 5건을 준비 중이며, 법적 명확성과 행정적 유연성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고 있다"며 "추후 업계 의견을 청취할 기회를 더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좌장을 맡은 유병준 교수는 마무리 발언에서 "과거에도 새 법이 만들어지면 추가 규제가 붙고, 담당자가 바뀌면 또 다른 해석의 규제가 생기는 일을 여러 차례 겪었다"며 "혁신 기업들이 한국에서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 설계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토론회는 AI 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산학연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한 자리로 평가된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시점에서 법안의 실효성과 산업 현장 적합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계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