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이처럼 당연"…AI 구독, 넷플릭스 제쳤다

  • 2년 만에 결제액 24배 폭증…연 9600억원 규모로 OTT 추월
  • "시간이 돈"…MZ세대 40% 차지, 60대 이상도 235% 급증
  • 챗GPT 독주 속 클로드 627% 성장…"코딩 지원에 개발자들 몰려"
챗GPT 화면 (테크42)

서울 성수동에서 스타트업을 꾸리는 박지훈(29)씨는 매달 AI 구독료로 5만원을 낸다. 챗GPT 플러스(2만9000원)에 클로드 프로(2만9000원)까지 동시 결제 중이다.

"처음엔 '한 달에 5만원이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와이파이처럼 당연한 인프라가 됐어요."

박씨가 체감한 변화는 확실했다. 기획서 초안 작성에 하루 종일 걸리던 게 이제 2시간이면 끝난다. 개발자를 구하지 못해 미뤄뒀던 랜딩페이지도 AI 도움으로 직접 만들었다.

박씨 같은 사람들이 늘면서 한국의 AI 구독 시장이 OTT를 제치고 '디지털 구독 경제의 새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데이터 분석기업 한경에이셀이 최근 내놓은 리포트를 보면 변화가 극적이다. 국내 주요 AI 서비스 7곳의 신용카드 월 결제액이 지난해 12월 기준 800억원을 넘었다. 연 환산하면 약 9600억원이다.

이미 넷플릭스코리아 법인의 2024년 매출(8945억원)을 넘어섰고, 티빙(4354억원)의 2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월 결제액이 34억원에 그쳤던 걸 생각하면 24배 성장이다.

결제 건수는 더 놀랍다. 2024년 1월 5만2000건에서 지난해 12월 166만6000건으로 32배 뛰었다. 건당 평균 금액을 따져보니 개인은 3만4700원, 기업은 10만7400원을 썼다. 넷플릭스 베이직(7000원)이나 쿠팡 와우멤버십(7890원)보다 4~5배 비싼데도 사람들은 "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왜 한국인들은 비싼 AI 구독에 지갑을 열까. 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소비 기준이 '가성비'에서 '시간 효율'로 바뀌었다는 게 핵심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뒤져보면 이런 반응이 수두룩하다. "월 3만원으로 하루 5시간을 벌었다", "AI 없이 보고서 쓰는 건 이제 상상도 못 한다". 특히 20대가 전체 구독의 40%를 차지하며 주축이 됐다.

기성세대도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신한카드 데이터를 보면 60대 이상 이용 건수가 1년 새 235%나 급증했다. "손자한테 배웠는데 이거 진짜 편하더라"는 반응이 실제로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 산하 AI이코노미인스티튜트 조사에서 한국의 생성형 AI 사용 인구 비중은 지난해 하반기 30.7%를 기록했다. 상반기보다 4.8%포인트 오르며 조사 대상 30개국 중 증가 속도 1위다. 오픈AI는 한국을 챗GPT 유료 구독자 수 기준 미국 다음 2위 시장으로 공식 확인했다.

국가별 AI 확산 추이 (출처=마이크로소프트 AI이코노미인스티튜트)

서비스별로는 챗GPT가 압도적이다. 지난해 국내 결제액만 5354억원으로 전체 시장의 71.5%를 차지했다. 월 2만9000원짜리 '플러스'부터 전문가용 200달러(약 29만원)짜리 '프로'까지 폭넓게 갖춘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그렇다고 경쟁이 없는 건 아니다. 구글 제미나이가 11.0%, 앤스로픽 클로드가 10.7% 점유율을 기록하며 추격 중이다. 특히 클로드는 코딩 지원 기능이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타며 전년 대비 627%나 급증했다. 챗GPT(231%), 제미나이(200%)보다 3배 이상 빠른 속도다.

이미지 생성 특화 서비스 미드저니는 3.7%, AI 검색 엔진 퍼플렉시티는 1.1%를 차지했다. 국내 스타트업 업스테이지와 뤼튼이 만든 '솔라'와 '뤼튼'은 각각 0.3%, 1.8%로 집계됐다.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오픈AI는 지난 18일 구독 기반 연간 매출이 200억 달러(약 30조원)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2023년 20억 달러, 2024년 60억 달러에 이어 매년 3배씩 뛰고 있다. 챗GPT는 지난해 8월 기준 월간 활성 사용자 1억9000만명을 돌파했다.

시장조사기관 센서타워에 따르면 2024년 1~8월 전 세계 AI 챗봇 앱 다운로드는 6억3000만건으로 2023년 전체를 넘었고, 수익은 5억8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1.5배 늘었다.

프레시던스 리서치는 글로벌 AI 시장이 2025년 7575억 달러에서 2034년 3조6804억 달러로 연평균 19.2% 성장한다고 내다봤다. 그중에서도 AI 서비스 분야는 2024년 120억 달러에서 2034년 2948억 달러로 연평균 37.78%씩 급증하며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는 AI 구독이 통신비, OTT에 이어 '제3의 디지털 고정비'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고객 소비 패턴을 들여다보니 AI 구독은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생산성 투자' 범주로 분류되더라"며 "관련 혜택 상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젊은 층 사이에서 'AI 구독 > OTT 구독' 우선순위가 굳어지는 분위기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넷플릭스는 끊어도 챗GPT는 남긴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인사이트 파트너스는 글로벌 구독경제 시장이 2024년 5062억 달러에서 2031년 1조2282억 달러로 연평균 13.5% 성장한다고 전망했다. 디지털 플랫폼 발전과 개인화 콘텐츠 수요 증가가 동력이 될 거라는 분석이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AI 구독 시장은 이제 얼리어답터 단계를 벗어나 대중화 국면에 들어섰다"며 "특히 한국은 높은 디지털 리터러시와 빠른 기술 수용 속도로 글로벌 AI 기업들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재엽 기자

anihil@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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