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쯤 대형 병원 진료를 받아 본 사람이라면 진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고 접수를 한 뒤 대기하는 시간에 비해 직접 의사를 만나 진료를 받는 시간은 굉장히 짧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평균 진료 시간은 고작 4분에 불과하다. OECD 평균과 비교하면 4분의 1수준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짧은 진료 시간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지적하는 문제다.
이렇듯 짧은 진료 시간은 암 등의 중증 질환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중대한 질환에 직면한 환자는 충격과 더불어 이 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치료법은 어떻게 되는지, 그에 따른 부작용이나 고통은 없는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막상 의사를 대면했을 때 질문이 생각나지 않는다. 또 질문을 한다고 해도 “자세한 이야기는 간호사에게 들으시면 된다”는 의사의 말을 들을 때면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간호사들 역시도 질문에 대한 충실한 답에는 한계가 있다. 그럴 때면 환자와 그 보호자들은 답답함을 느끼며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에서 불확실한 치료법을 찾곤 한다.
물론 의료진들의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다. 하루에 진료를 봐야 예약 환자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다 보면 결국 다른 환자가 진료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앤틀러 코리아 제너레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스타트업, ‘퍼슬리’는 바로 이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AI 기반 건강 비서 서비스로 해결하고 있다. 이에 테크42는 퍼슬리의 창업자 중 한명인 오상준 대표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환자의 의료정보를 분석해 개인화된 정보를 제공하는 AI 건강비서

개인 의료기록 기반 AI 건강비서를 표방하는 퍼슬리는 중증 질환자 타겟의 맞춤형 헬스케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퍼슬리가 찾은 방식은 환자가 보유한 5년치 진료 기록을 활용하는 것이다. 퍼슬리는 이 기록을 10초 만에 연동해 환자의 현재 건강 상태를 먼저 파악하고, 치료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의사결정 순간마다 개인화된 정보를 제공한다.
예컨대, “현재 간암 3기로 OOO 항암제를 투약 중인 상황이네요”라며 사용자 상태를 인식한 뒤, 약학정보원과 국제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부작용과 치료 방향에 대한 근거 있는 정보를 안내한다. 이러한 답변은 공식 출처를 명시하며, 환자가 스스로 기록한 자신의 일별 증상 데이터를 반영해 점차 더 개인화된다.
퍼슬리는 2024년 12월 MVP를 출시한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누적 질문 수 40만 건을 기록했고, 월간 활성 사용자(MAU)는 1만 명을 돌파했다. 최근 3개월 동안 월평균 성장률은 26%을 기록했다. 현재 구독 유지율은 82%에 이르고, 이용자당 월 평균 대화 횟수는 140회에 달한다. 이는 별도의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도 자연 유입을 통해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비스 이용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1년에 7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모든 과에 능통한 주치의가 생긴 느낌” “외래 진료 때보다 더 소상한 답변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실제 후기들이 대표적이다.
서비스 론칭 이후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퍼슬리가 확보한 555만 건 이상의 의료 데이터도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는 진단명, 수술 및 투약 정보, 조제내역을 비롯해 병원에서 조차 존재하지 않는 환자 개개인의 데일리 증상 정보가 포함된다. 이러한 데이터는 장기적으로 재발 증상 조기 발견과 진료비 감축 효과 검증에 활용할 수 있다.
개인 주치의 역할을 하는 AI 에이전트가 목표

“저희는 환자 개인의 의료 기록을 연동하는 의료 AI 챗봇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장기적으로는 1인 1 주치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비전이죠. 의료 정보를 개인화해 알려주는 AI 에이전트라고도 볼 수 있어요.”
오상준 대표가 지향하는 퍼슬리의 방향성은 이미 명확한 듯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기존 의료 분야와 헬스케어 서비스의 경계를 준수하는 부분은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선을 지키는 것이다.
퍼슬리는 환자의 진료기록과 데일리 증상 데이터를 모두 연동해 개인화된 대화형 답변을 제공한다. 기존 범용 챗봇 서비스들이 민감한 의료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아 개인 맞춤형 답변이 불가능했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의료법과 의료기기법을 준수해 AI가 의료 행위를 침범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쉽게 말해 진단과 처방까지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퍼슬리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비의료기기 건강관리 서비스’라는 유권해석까지 받아 놓은 상황이다.
오 대표는 “생성형 AI 기반 의료 서비스와 관련된 부분은 식약처에서도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나오고 있고 유동적으로 대응할 생각”이라며 “범용 LLM(거대언어모델)과 다른 버티컬 서비스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점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말을 이어갔다.

“범용 LLM은 개별 질문을 스레드 단위로 처리하다 보니 스레드의 맥락에 함몰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점에 있어 버티컬한 헬스케어 전문 LLM 서비스가 훨씬 더 강점을 가져갈 수 있죠. 퍼슬리는 환자의 질문 맥락과 이전 기록을 모두 기억합니다. 환자가 오늘 겪은 증상, 어제 먹은 약, 지난달 받았던 진료까지 모두 이어서 답변할 수 있다는 점이 본질적인 차별점이죠.”
실제 이용자 반응은 이를 증명한다. “나의 모든 것을 받아 주고 답변 주심에 완전 신뢰가 간다”, “내 마음의 대변인 같다”는 후기들은 환자들이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심리적 위안을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 B2C 구독 모델에서 유료 전환율과 유지율이 높은 것은, 환자들이 꾸준히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오 대표는 “의료 전문가가 만드는 헬스케어 서비스와 다른 점은 그 생태계에서 볼 수 없는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이라며 환자들의 사용 방식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털어놨다.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리뷰를 남기고, 마케팅 없이도 성장을 이어가는 것은 퍼슬리가 실제 환자의 문제를 제대로 건드렸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고객이 시선에서 리텐션을 만들고 제품의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저희가 가져갈 수 있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희가 최근에 선보인 ‘증상 리포트’가 있는데, 고객 중 본인 증상을 시간단위로 입력하고 그에 따른 답변을 받는 분이 계셨어요. 그 패턴을 보고 인터뷰를 하니 이분은 퍼슬리를 이용하기 전부터 다이어리에 증상을 기록하고 취합해 병원 진료를 할 때 가져가는 분이셨어요. 이걸 퍼슬리가 대신해 줄 수 있게 된 거죠. 이제는 퍼슬리에 증상과 질문을 남기고 구체적으로 상담한 내역을 기반으로 한 달치 증상 리포트를 한 두 줄로 정리해 의사에게 알려줄 수 있게 된 거죠.”
앤틀러 코리아 프로그램에서 찾은 기회와 동료들
오상준 대표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전략마케팅팀 글로벌 PM으로 경력을 샇았다. 이후에는 족부질환 환자를 타겟으로 한 기능성 인솔 커머스 사업을 통해 국내 1위까지 달성하며 창업을 통한 성공을 맛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돌연 잘 되는 사업을 뒤로하고 다시 창업에 나선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좀 더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첫 째는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일, 둘 째는 좀 더 규모 있고 글로벌하게 확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죠.”
그의 새로운 시도는 기능성 인솔을 찾는 족저근막염 환자들의 행태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당시 그는 고객 인터뷰를 통해 의외로 많은 이들이 단순 인터넷 검색으로 잘못된 의료 정보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런 환자들의 답답함과 고민들은 병원 진료를 통해서도 해소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발견했다. 이에 그는 사이드 프로젝트로 LLM을 활용한 1인 개발을 통해 퍼슬리의 초기 모델을 만들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이 중증 질환자 고객들이었다고. 하지만 이후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앞서 그가 언급한 두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방향성, 그리고 팀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기회를 마주한 것이 앤틀러 코리아의 제너레이터 프로그램이다.

결과적으로 퍼슬리팀은 올해 초 앤틀러 코리아 제너레이터 프로그램 5기에서 오상준 대표와 코파운더인 남궁현 대표가 의기투합하며 탄생했다. 남궁현 대표는 개인정보 보안 딥테크 스타트업 개발자 출신으로 20개 이상의 프로덕트를 개발한 경험자이기도 했다. 앤틀러 코리아 프로그램 기준으로 보면 최연소 참가자이기도 했다. 오상준 대표는 “앤틀러 프로그램은 저희에게 단순한 인큐베이팅이 아니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고 검증하는 과정이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현님(오상준 대표는 남궁현 대표를 ‘현님’이라고 불렀다)은 앤틀러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커피챗을 했던 분인데, 그때부터 서로 끌렸어요(웃음). 제 눈에 현님은 천재 개발자 스타일이었죠. 저와 띠 동갑이지만 말도 굉장히 잘 통했어요. 물론 현님과 커피챗 이후로도 많은 분들과 팀 메이킹을 하려 시도했어요. 돌이켜 보면 힘들어 울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죠. 결과적으로 돌고 돌아 최종적으로 현님과 함께하게 됐고 밤새 고민하던 끝에 새벽 5시 무렵 “짧은 진료 시간이 문제”라는 것에서 시작한 문제 정의가 지금의 퍼슬리가 된 거예요.”
프로그램 과정에서 오 대표와 남궁 대표는 수많은 가설 검증을 반복했다. 오 대표는 “처음에는 병원 밖에서 환자들이 겪는 문제를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두려움도 있었지만, 사용자 인터뷰와 초기 MVP 테스트를 거치며 확신을 얻었다”고 회상했다. 그 과정에서 앤틀러 파트너들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고. 오 대표는 특히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이것도 창업의 일환’이라고 한 강지호 파트너의 말이 큰 위로가 됐다”고 떠올렸다.
“엄청난 창업 과정과 액시트를 경험하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아 다들 겪는 일인가’ 하면서 위안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현님과 고민하고 걱정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따뜻한 커뮤니케이션이 지속된 것이 이후 몇 달 동안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1인 1주치의 시대를 준비한다
퍼슬리는 현재 B2C 멤버십 구독 모델을 고도화하면서 동시에 B2B 모델을 기획을 병행하고 있다. 환자의 반복 사용과 높은 유지율을 기반으로, 보험사·제약사·병원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확장하려는 전략이다. B2C 반복 매출을 기반으로 2년 차에 글로벌 진출, 4년 차에 B2B 진출을 본격화하겠다는 로드맵이다. 그러면서도 오 대표는 “쉽게 갈 생각은 없다”며 남다른 고집을 드러내기도 했다.
“B2B라고 해도 병원이나 기관, 기업의 앱에 하나의 기능으로 들어가는 방식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퍼슬리라는 B2C 앱을 기반으로 B2B 비즈니스로 확장하려고 해요. 단기적으로는 개인화된 답변에 데이터 사이클을 만들어 리텐션을 높이려 하고 있어요. 중증 질환자들이 매일 쓰는 서비스가 되는 것을 지향하고 있고 더욱 개인화된 답변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고도화하려 합니다.”

카카오와의 공식 제휴도 그러한 계획에 날개를 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퍼슬리는 그간 카카오톡으로 제공되고 있었는데, 이는 주요 고객인 시니어 층 분들이 카톡에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카카오 측에서 공식 제휴 제안이 온 것이다. 이제는 가족방이나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도 퍼슬리를 적용해 질문할 수 있는 기능이 더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제까지 자연 유입으로 1만명의 MAU(월간 활성 사용자수)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더 큰 이용자 유입과 리텐션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오 대표는 재차 “압도적인 리텐션이 첫 번째”라고 답했다. 이어 “MAU 성장, 구독 유지율, 대화 빈도 같은 지표들이 증명하듯, 퍼슬리는 실제 환자들의 생활 속 깊이 파고든 서비스”라며 “이 지표들이야말로 퍼슬리의 성장 가능성을 증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근거”라고 말했다.
투자 전략 역시 뚜렷하다. 퍼슬리는 이달 팁스 R&D 프로그램에 선정됐고, 연말까지 MAU 50만 명 달성을 목표로 한다. 이후 내년 초 프리A 라운드를 통해 글로벌 진출을 위한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오 대표는 팁스 과제를 설명하며 퍼슬리의 향후 방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병이 일어나기 전에 징후는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저희는 암 재발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기능을 개발하고 있어요. 암의 재발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1~2개월이라도 먼저 발견하면 치료비를 줄일 수 있고 생존율도 높일 수 있거든요.”

인터뷰 말미, 오 대표는 본인 스스로를 “행복론에 대한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몇 개월 만큼 행복했던 때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그가 지향하는 가치를 이뤄내서 일까? 퍼슬리에 담은 선한 의도는 그런 그의 진심과 함께 더욱 빛을 발할 듯했다.
“물론 힘들기도 하죠. 인생에게 가장 힘들고 행복한 느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해 나가는 것이 창업이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 즐거운 과정을 통해 퍼슬리는 곧 다가올 1인 1 주치의 시대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올 그 시대에 퍼슬리가 선두 주자가 되는 것이 저희 목표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