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은 닫혔는데 여권은 더 열린다?”…불황 속 ‘한국인 해외여행 역주행’, 이유는?

해외여행객 수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 ‘회복’을 넘어 ‘증가’ 추세 확인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야, ‘여행을 간다’는 선택은 유지, 다만 돈 쓰는 방식 바뀌어
마이리얼트립 ‘2025 여행 트렌드’… 중국 주요 도시·동남아 휴양지, 일본 소도시로 수요 확대
경기 불황 속 여행수요 증가는 SNS 기반의 ‘보여주는 일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젊은층 여가가 ‘실행하는 활동’에서 ‘보여주는 일상생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정체성(라이프스타일)·관계·콘텐츠 생산과 결합하면서, 불황기에도 쉽게 내려놓기 어려운 소비로 진화한 셈이다. (사진=젠스파크로 생성)

경기 불황과 고물가·고환율이 장기화되는 국면에서도 ‘해외여행자 수’는 꺾이지 않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관광지식정보시스템(TourGo) ‘출입국 관광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국민 해외관광객은 223만5874명, 10월은 267만8376명, 11월은 246만7701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10~11월 수치는 2019년 동월 대비 증가로 나타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급락했던 여행 수요가 ‘회복’을 넘어 ‘확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광지식정보시스템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KCTI)이 운영하는 관광 통계·지식 플랫폼으로, 월별 ‘출입국 관광통계’ 같은 주요 지표를 공지사항 형태로 공표한다. 이 통계는 통계청 승인통계(국가승인통계)로도 분류된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높다 할 수 있다.

경기 불황과 고물가 등으로 지출 여력이 빠듯해진 상황에서, 다른 소비가 줄어드는 것과 달리 여행은 ‘다른 소비를 대체’하는 ‘우선순위’로 재배치되는 현상이 통계를 통해 확인되는 셈이다.

‘불황 속 해외여행 증가’의 실체

관광지식정보시스템 통계를 좀 더 들여다보면, 지난해 9월 223만5874명에서 10월 267만8376명으로 급증한 뒤, 11월에도 246만7701명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연휴·시즌 효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건, 2019년 지표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국내 해외여행자는 전년 동월 대비 3.3% 줄었지만(231만→223만), 2019년 9월과 비교하면 오히려 9.1% 많다. 10월은 전년 동월 대비 12.4% 증가했고, 11월도 2019년 11월 대비 18.1% 높은 수준이다. 즉 전년 대비 등락이 있어도, 중장기 기준(2019년)으로 보면 ‘회복’이 아니라 ‘상향 평준화’에 가까운 구간이 나타난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만의 특이 현상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관광 시장의 재가동 흐름과 동기화된 현상으로 보고 있다. UN 관광기구(UN Tourism)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국제관광(국제관광객 도착)이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했다. 이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웃돈 수치다. 글로벌 항공·숙박 공급이 정상화되고 노선이 늘어날수록, “지금 아니면 더 비싸질 수 있다”는 심리(선구매·조기예약)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여행을 간다’는 선택 자체는 유지되지만, 돈 쓰는 방식이 바뀌는 신호도 잡힌다. 관광수지 통계(한국은행 기준)를 보면 지난해 9월 관광지출(잠정)이 관광수입을 상회해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해외여행이 늘어날수록 국내 소비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적 압력도 함께 커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불황의 충격이 여행을 멈추게 하기보다, 여행을 ‘더 영리하게’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기 불황과 고물가·고환율이 장기화되는 국면에서도 ‘해외여행자 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붐비는 공항 풍경. (사진=젠스파크로 생성)

라이프스타일 변화: ‘다른 소비를 줄여도 여행은 남긴다’

해외여행 증가를 ‘소비 여력 확대’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핵심은 소비의 재배열에 가깝다. 여행 수요가 불황에도 버티는 배경에는 ‘경험 소비’의 생활화가 있다.

마스터카드 이코노믹스 인스티튜트(MEI)는 2026년 전망에서 소비자가 필수재에선 가격 민감도를 유지하면서도, 여행·라이브 이벤트 같은 ‘의미 있는 순간(meaningful moments)’을 우선순위로 둘 가능성을 언급했다. 즉 지갑이 얇아질수록 “물건을 더 사는 만족”보다 “기억에 남는 경험”이 선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역시 ‘지출 확대’가 아니라 선택을 한 셈이다.  

딜로이트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휴가철 여행 의향 조사에서도, 비용을 줄이려는 여행자들이 현지 지출을 줄이거나(식음·쇼핑), 교통수단을 바꾸는 등 다운그레이드 전략을 취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행을 포기하기보다, 여행의 구성요소를 바꿔서라도 유지한다는 얘기다.

국내에선 이 ‘선택적 유지’가 더 선명하게 관측된다. 컨슈머인사이트는 이달 공개한 여행소비자 행태 분석에서 해외여행을 두고 “소수는 더, 다수는 덜 가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여행률은 낮아도 출국자 통계는 감소하지 않는” 현상을 지적한다. 이는 가족·동반여행의 ‘필수 이벤트화’, 1~2회 ‘버킷리스트형’ 집중 소비, 혹은 잦은 단거리 여행(일본·근거리 중심) 같은 패턴이 겹치며 강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SNS 기반의 ‘보여주는 일상’도 여행의 효용을 바꾼다. 젊은층 여가가 ‘실행하는 활동’에서 ‘보여주는 일상생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정체성(라이프스타일)·관계·콘텐츠 생산과 결합하면서, 불황기에도 쉽게 내려놓기 어려운 소비로 진화한 셈이다.

마이리얼트립 데이터로 본 ‘수요의 방향’

15일 마이리얼트립은 2025년 자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항공·숙박·투어·티켓을 합친 여행 거래가 300만 건을 넘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거시 흐름이 플랫폼 데이터에서는 ‘어디로, 무엇을’ 소비하는지로 구체화된다. 15일 마이리얼트립은 2025년 자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항공·숙박·투어·티켓을 합친 여행 거래가 300만건을 넘었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항공권 약 100만 건, 투어·티켓 약 200만 건, 숙박 40만 건 구매·누적 80만 박으로 제시했다.

눈에 띄는 건 ‘근거리·재방문’의 힘이다. 항공 이용 상위 목적지에 제주와 일본 주요 도시(후쿠오카·오사카·도쿄)가 포함되고, 이용 도시도 문화·관광 콘텐츠가 밀집한 대도시가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설명이 따른다.

불황 국면에서 여행이 늘 때 흔히 나타나는 가성비가 확보되는 노선, 일정 짧게, 대신 자주 등의 패턴과 맞닿아 있다.

또 하나는 ‘경험 소비’의 전면화다. 마이리얼트립은 투어·티켓 부문이 약 200만건으로, 여행지에서의 체험을 더 간편하게 즐기려는 흐름이 확인됐다고 했다.

항공·숙박 중심의 전통적 여행 지출이 ‘현지 경험’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구간에서는, 플랫폼이 교통→숙소→체험을 한 번에 묶어 마찰 비용(검색·예약·결제)을 낮출수록 수요가 더 쉽게 살아난다.

마지막으로 수요는 분산되고 있다. 급성장 방문지로 상하이·나고야·발리·포르투·마카오가 언급되는데, 이는 회복된 중국 대도시 수요와 일본 지방도시, 동남아 휴양, 유럽의 신흥 목적지까지 선택지가 넓어지는 신호로 읽힌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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