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암호화폐 시장의 규제 체계를 새로 짜는 '클래리티법(CLARITY Act)'이 8월 처리에 실패했다. 표결은 9월 15일로 넘어갔다.
존 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 3일 "휴회 전 표결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법안은 그날 상원 공식 일정에서 빠졌다. 상원은 결국 지역구 활동 기간이 시작되는 8월 10일 전 표결에 실패했다. 튠 원내대표는 마라톤 철야 회기 끝에 8일 새벽(동부시간) 무제한 토론을 강제 종료하는 절차인 '클로처 동의안'을 전격 제출했다. 법안 통과가 확정된 건 아니지만, 표결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법안이 완전히 폐기될 뻔한 위기는 넘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식 명칭은 '디지털자산시장 클래리티법'이다. 지난해 7월 17일 하원을 294 대 134로 통과했다. 민주당 의원 70여 명도 찬성표를 던졌다. 상원 은행위원회는 지난 5월 14일 15 대 9로 법안을 가결했다. 6월 1일에는 수정안이 상원 일반의사일정에 등재됐다. 본회의 상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9월 15일 오후(동부시간)에는 클로처 표결이 열린다. 법안 본회의 상정 동의에 대한 절차적 표결이다. 법안을 최종 통과시키는 표결이 아니다. 클로처 통과에는 60표가 필요하다. 공화당은 53석을 확보하고 있다. 민주당 또는 무소속 의원 최소 7명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법안이 토론대에 오를 수 있다. 이후에도 상원 은행위원회안과 농업위원회안의 조율, 본회의 통과, 하원 통과안과의 조율, 대통령 서명이 남아 있다.
민주당과의 협상에서는 윤리 조항이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정부 관계자의 암호화폐 보유에 따른 이해상충을 막는 조항이다. 불법금융 방지 규정과 스테이블코인 수익·리워드 배분 방식을 둘러싼 이견도 남아 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 예측시장 폴리마켓의 클래리티법 2026년 내 서명 확률은 지난 2월 82%까지 올랐다. 이후 13~28% 사이를 오갔다. 클로처 제출 소식이 전해진 8일 기준으로는 20%로 집계됐다.
법안의 핵심은 디지털자산을 세 갈래로 나눠 규제 주체를 명확히 하는 데 있다.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설명 자료에 따르면 증권은 기존대로 증권거래위원회(SEC) 관할에 남는다. 탈중앙화 블록체인 네트워크 사용에 따라 가치가 형성되는 디지털 상품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관할로 이전된다. 스테이블코인은 SEC와 CFTC가 공동 관할하는 별도 범주로 분류된다. CFTC는 현재 상품 현물시장에 대해 사기·시세조작 방지 권한만 갖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디지털 상품 현물시장과 관련 거래소·브로커·딜러에 대한 배타적 규제 권한을 새롭게 부여받는다.
법안 처리 지연은 투자은행들의 목표가 하향으로 이어졌다. 씨티그룹은 연초 14만3000달러였던 12개월 비트코인 목표가를 지난 3월 11만2000달러로 낮췄다. 지난달 1일에는 다시 8만2000달러로 내렸다. 스탠다드차타드도 지난해 12월 30만달러였던 목표가를 올해 2월 15만달러로, 이후 10만달러로 재차 하향했다. 두 은행 모두 클래리티법 지연에 따른 기관 자금 유입 지연과 현물 비트코인 ETF 자금 이탈을 근거로 들었다. 리서치업체 FM인텔리전스는 법안이 11월 중간선거 전 서명될 경우 비트코인이 13만5000달러에서 20만달러 사이에서 움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그 확률은 4분의 1 수준으로 낮게 잡았다.
법안 통과에 가장 민감한 종목은 XRP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애초 2026년 말 목표가로 8달러를 제시했다. 하지만 법안 지연과 기관 자금 이탈이 이어지자 지난 2월 이를 65% 낮춘 2.80달러로 수정했다. XRP가 증권이 아닌 디지털 상품으로 공식 분류될 경우 신규 현물 ETF 출시와 은행권 연동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는 법안 통과를 전제로 한 조건부 전망이다. 실제로 XRP는 지난 7일 상원이 처리 시한을 넘기자 2%대 하락했다.
이더리움은 법안 통과 시 스테이블코인·토큰화 인프라 확대에 따른 펀더멘털 개선 기대가 가장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비트코인은 이미 현물 ETF 등 기존 상품 성격의 규제 대우를 받고 있다. 법안 통과 여부와 무관하게 상대적으로 방어적인 자산으로 꼽힌다.
9월 15일 표결은 법안 통과 자체가 아니다. 본회의 토론 개시 여부를 정하는 절차다. 이를 통과하더라도 은행위·농업위 안 조율, 본회의 통과, 하원과의 조율 등 관문이 여럿 남아 있다. 실제 입법까지는 수개월이 더 걸릴 수 있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