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딥테크(Deep Tech)가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5년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보틱스, 헬스케어 등 12대 신산업 분야에 투입된 벤처투자금은 5조2014억원으로 전체 벤처투자 6조8111억원의 76.4%를 차지했다. 분야별로는 AI 모델·인프라가 1조3352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콘텐츠 1조1852억원, 헬스케어 1조1344억원이 뒤를 이었다. 신산업 기업의 평균 투자금액도 33억9000만원으로 그 외 분야 19억1000만원보다 높았다.
하지만 딥테크로 자금이 몰리는 것과 개별 스타트업이 투자받기 쉬워졌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난 15일 IPO(기업공개)와 기술특례상장을 주제로 서울창업허브 스케일업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홍현권 제타플랜인베스트(ZetaPlan INVESTMENT) 대표가 제시한 더브이씨(THE VC) 자료를 보면 2025년 시드~시리즈A 초기 라운드 투자금액은 1조9190억원으로 2024년 2조7091억원보다 감소했다. 반면 시리즈D~프리IPO(Pre-IPO) 후기 라운드는 같은 기간 1조1431억원에서 1조3802억원으로 늘었고 투자 건수도 63건에서 85건으로 증가했다. 기술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초기 자금보다 일정 수준의 검증을 마친 기업을 향한 자금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진 셈이다.
이날 홍 대표는 ‘딥테크기업의 벤처투자 동향에 따른 IPO 트렌드와 현황’을 주제로 투자시장의 변화를 설명했다. 이어 유희찬 KRX 한국거래소 기술기업상장부 심사역은 ‘IPO의 동향과 이해’를 주제로 기술특례상장의 절차와 실제 심사에서 확인하는 요소들을 짚었다.
딥테크 투자, ‘좋은 기술’에서 ‘검증된 기술’로

첫 발표에 나선 홍 대표는 “딥테크 스타트업은 일반 서비스·플랫폼 기업보다 사업화에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며 과학·공학 기반 원천기술, 장기간 연구개발, 대규모 자본 투입, 실증·인증·양산 이후의 매출 발생 등을 딥테크 기업의 특징으로 제시했다. 특허와 축적된 기술 노하우가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한편, 기술의 구현 가능성뿐 아니라 독창성과 확장성에 대한 평가도 뒤따른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AI와 로보틱스를 향한 투자 집중도 두드러졌다. 홍 대표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까지 100억원 이상 규모의 시드·초기 라운드 투자 31건 가운데 17건이 AI·로보틱스 분야였다. 별도로 전체 시드 라운드 투자금액에서 AI·로보틱스가 차지한 비중은 91.2%로 나타났다. 홍 대표는 투자 건수와 투자금액을 구분해 AI·로보틱스 분야로 자금이 집중되는 흐름을 설명했다.

“시드 투자부터 시리즈A까지는 개념검증, 즉 PoC가 중요합니다. PoC를 통해 원천 IP를 확보하는 게 딥테크 분야의 가장 중요한 전략 중 하나입니다. 기술 검증이 되지 않은 기술은 시장에서 꽃을 피우기 전에 사장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검증을 거쳐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확인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합니다. 이런 검증이 끝나 후기나 프리IPO 단계로 가면 투자 대비 수익률, 즉 ROI가 정말 중요해집니다. 아직도 많은 기업이 시리즈B·C 단계를 넘지 못하고 후속투자를 받지 못하면서 기술특례상장의 문턱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기술특례상장 기업 수도 꾸준히 늘었다. 홍는 지난 4일 기준 제도 도입 이후 기술특례 신규상장 기업이 누적 300개사에 도달했고 올해 들어 17개사가 상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초기 바이오 중심에서 AI·로봇·우주 등 딥테크 분야로 산업군이 확대되는 흐름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투자 단계에서 PoC와 IP, 고객과 매출을 차례로 증명했다면 IPO에서는 또 다른 검증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혁신기술기업 트랙에서 기술평가는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기 위한 첫 관문에 가깝다.
A·BBB는 상장 합격증 아니다…기술평가 이후 시작되는 심사

코스닥 기술성장기업 특례는 크게 전문평가기관 평가를 거치는 혁신기술기업과 상장주선인의 성장성 추천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모델기업으로 나뉜다. 혁신기술기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거래소가 배정한 2개 전문평가기관에서 복수평가를 통해 A등급과 BBB등급 이상을 받아야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일정 요건을 갖춘 기업은 단수평가를 통해 A등급을 받으면 청구 자격을 확보할 수 있다. 두 번째 발표에 나선 유희찬 KRX 한국거래소 심사역은 이처럼 복수평가와 단수평가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한편 평가 대상은 기술 자체에 한정되지 않는다. 기술 완성도와 경쟁우위, 연구개발 환경과 함께 목표시장의 규모와 성장성, 사업모델, 자본조달 역량, 생산·품질관리, 판매처 확보와 제품·서비스 경쟁력 등을 함께 평가하는 것이다.
유 심사역은 특히 ‘평가 결과를 받은 이후’부터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술평가부터 받고 나중에 기업 내부 문제를 정리하겠다는 접근이 오히려 상장 준비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술평가 등급이 나오면 등급을 받은 날부터 6개월 이내에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해야 하고, 6개월이 넘어가면 그 등급의 효력이 없어집니다. 안타까운 경우 중 하나가 내부통제처럼 아직 정리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는데 기술평가부터 받는 경우입니다. 그런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심사를 받더라도 사실 결론이 긍정적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가장 권장하는 것은 정비할 것들이 있으면 다 정비하고 기술평가를 받으시라는 겁니다. 그 정리 기간이 그렇게 짧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장예비심사는 서류만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도 아니다. 기술특례기업의 경우 해당 산업과 기술에 전문성을 가진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전문가회의가 진행된다. 이어 대표이사 면담과 현장 실사 등을 거쳐 심사 안건이 마련되고 상장위원회가 상장 적격 여부를 심의한다. 이후 증권신고서 제출과 공모를 마치고 신규상장 심사를 거쳐야 시장에 입성할 수 있다.
혁신기술기업 트랙에서 기술평가가 상장예비심사 청구 요건을 충족했는지 가르는 절차라면, 예비심사에서는 기업 자체를 보다 폭넓게 들여다보게 되는 셈이다.
“연구실을 상장하는 게 아니다”…매출액보다 보는 것은 ‘매출의 질’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장예비심사에서는 기업의 계속성과 내부통제, 경영 투명성 등을 살피는 질적 심사가 이뤄진다. 특히 기술특례기업은 재무실적에 일반기업과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사업성을 심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유 심사역은 기술특례기업의 계속성을 판단할 때 기술성과 사업성, 성장성을 함께 본다고 설명하며, 이와 관련해 시장에서 퍼진 ‘매출 100억원 기준’까지 직접 꺼내 들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사업성도 봅니다. 성장성도 보고요. 우리는 연구실이 아니라 계속기업을 상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업성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일반기업과 비교하면 무게추가 기술성에 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시장에서는 기술기업도 매출 100억원을 찍지 않으면 승인해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도는데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100억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실현한 매출에 반복매출이 있는지, 앞으로 고객 기반이 보이는지 같은 증거를 통해 ‘매출의 질’을 보는 겁니다.”
결국 같은 100억원의 매출이라도 일회성 계약에 의존한 것인지, 지속적으로 다시 발생할 수 있는 매출인지에 따라 기업의 사업 지속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질 수 있다. 앞서 홍 대표가 투자 단계에서 ARR과 수주잔고, 유료 PoC를 강조한 것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는 투자시장에서는 사업화의 증거로 활용되고, 상장심사에서는 기업이 앞으로도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자료가 된다. 이 외에도 심사 자료의 신뢰성 역시 중요한 기준이다. 유 심사역은 부족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 자체보다 이를 감추기 위해 사실과 다른 자료를 내는 경우가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예비심사 과정에서 거래소에 허위 정보를 제출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했다면 예상과 다르게 승인이 나지 않거나 상장을 철회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래소나 감독원에 제출하는 자료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너무 포장하다 보면 그게 심해져 허위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심사를 하면서 제일 좋지 않다고 보는 것은 기업이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기업이 어느 정도 부족할 수도 있고 내부통제나 사업적으로 더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허위로 덮거나 거짓으로 포장하는 행위는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이 있다면 미리 이야기하고 거래소와 충분히 협의해 심사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습니다.”
딥테크 기업의 IPO 준비는 기술평가 직전에 시작되는 작업이 아니다. 초기 단계에서 확보한 PoC와 IP, 사업화 과정에서 쌓은 고객과 매출, 후속투자를 거치며 정비한 지배구조와 내부통제가 차례로 상장심사의 근거가 된다. 투자 단계가 올라갈수록 ‘기술이 가능한가’에서 ‘시장에서 작동하는가’로 질문이 바뀌고, IPO에 이르면 다시 ‘상장 이후에도 지속할 수 있는 기업인가’를 확인받는다.
즉 기술을 실제 사업으로 전환하고 그 성과를 지속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딥테크 기업이 상장까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문턱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