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장서 성공한 AI, 다른 공장도 쓴다… 정부 '제조AI 확산'에 남은 숙제

정부가 한 공장에서 검증된 제조 인공지능(AI) 모델을 다른 공장과 공급망, 산업단지로 옮겨 쓰는 체계 구축에 나선다.

정부가 예로 든 것은 철강 가열로의 온도를 예측하는 AI 모델이다. 이런 모델은 지금까지 대체로 개발된 공장 안에서 쓰이는 데 그쳤다. 비슷한 열처리 공정을 가진 다른 공장은 같은 기술을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했고, 이는 고스란히 중복 투자로 이어졌다. 산업통상부의 새 전략은 이 낭비를 줄이는 데서 출발한다.

산업부는 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AI 팩토리 전략회의'를 열고 ‘AI 팩토리 확산전략'을 발표했다. 회의에는 기업·전문기관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했다. 정부가 지금까지 AI 팩토리 전환을 지원한 기업은 전국 245곳이다.

정부가 내세운 성과는 생산성 30.1% 향상, 불량률 15.5% 감소다. 다만 245개 기업 전체가 아니라 38개 우수사례에서 확인된 수치다. 잘된 곳을 추린 성적인 만큼, 모든 현장에서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수사례를 고른 기준이나 성과를 계산한 방식은 산업부가 발표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부 현장에서나마 AI 도입 효과가 숫자로 확인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확산전략은 '점·선·면·입체' 4단계로 짜였다. 1단계(점)는 진단이다. 기존에 개발된 AI 모델 541개를 분석해 확산 가능성이 높은 과업을 ‘M.AX 핵심과업 히트맵'으로 시각화한다. M.AX는 제조 AI 전환을 뜻한다. 기업별 AI 전환 수준을 진단해 맞춤형 ‘M.AX 처방전'을 발급하고, 투자수익률(ROI) 평가체계도 새로 만든다.

2단계(선)는 검증된 모델을 유사 공정에 다시 쓰는 단계다. 기존 모델을 현장 특성에 맞게 추가 학습시켜 개발 시간과 비용을 줄인다. 특정 업종에 특화된 제조AI 전문기업도 집중 육성한다. 공장마다 AI 개발을 떠안는 대신, 검증된 모델을 공급하고 현장에 맞게 조정하는 전문 시장을 키우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3단계(면)에서는 대기업 등 앵커기업이 협력사와 함께 공통 난제를 찾아 AI로 푼다. 산업단지별 공통 수요도 발굴한다. 대상은 광주·창원(자동차·기계), 천안·청주·구미(반도체·디스플레이), 울산·여수(석유화학·철강), 대불·군산(조선) 등이다.

마지막 4단계(입체)의 목표는 '풀스택 AI 팩토리'다. 생산계획부터 제조·검사·물류까지 공장 전체를 AI가 통합 제어하는 공장이다. 정부는 2027년부터 2031년까지 '풀스택 AI 팩토리 및 제조AI 파운데이션 모델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2027년 정부 예산안에는 이 사업에 1200억원이 반영됐다. 제조 현장의 암묵지를 활용하는 AI 솔루션 개발 사업에도 2900억원이 잡혔다. 최종 규모는 국회 심의에서 달라질 수 있다.

중소 제조기업에게 AI 도입은 여전히 먼 얘기다. 모델을 옮겨 쓰는 비용, 기존 설비와의 연결, 성과가 나지 않았을 때의 책임이 불분명하면 선뜻 지갑을 열기 어렵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도 이날 “AI를 얼마나 많이 도입했느냐를 넘어, 검증된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폭넓게 확산해 기업의 실질적인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하느냐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ROI 평가체계가 이 불확실성을 숫자로 바꿔줄 때 확산은 정부 지원사업을 넘어 기업의 투자 판단이 된다.

일본도 기업 간 데이터 활용과 AI 확산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쌓아 왔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8년 6월 ‘AI·데이터 이용에 관한 계약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데이터 이용과 AI 개발·활용을 둘러싼 권리·책임 관계를 계약으로 정하는 기준이다. 2025년 2월에는 생성형 AI 확산에 맞춰 ‘AI의 이용·개발에 관한 계약 체크리스트'를 발표했다. 데이터 이용 범위와 AI 결과물의 이용 조건, 리스크 배분을 점검하는 내용이다.

데이터를 잇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2024년 5월에는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 데이터 연계 구상 '우라노스 에코시스템(Ouranos Ecosystem)'을 바탕으로 자동차·배터리 공급망의 추적관리 서비스가 시작됐다. 올해 5월에는 생성형 AI 육성 사업 '제니악(GENIAC)'을 통해 제조업 등의 데이터를 AI가 활용하기 쉬운 형태로 바꾸는 연구 9건을 선정했다. 숙련자의 암묵지를 데이터로 구조화하는 과제도 여기에 포함됐다. 모델 개발 못지않게 데이터 이용 조건과 기업 간 연결 체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일본 사례는 보여준다.

한 기업의 현장 데이터로 학습한 모델을 다른 기업이 쓴다면, 모델과 데이터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옮겨 심은 모델이 불량이나 사고를 낳으면 책임은 어떻게 나누는가. 이번 보도자료에는 기술·재정 지원 방향이 담겼지만, 기업 간 데이터 이용권과 모델 소유권, 오작동 책임 배분에 관한 구체적 기준은 없었다. 김 장관은 기술 도입 초기의 리스크를 기업과 현장에만 떠넘기지 않겠다고 했다. 이 약속이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규칙으로 구체화될 때 재사용 전략도 속도를 낼 수 있다.

AI 팩토리의 다음 시험대는 새 모델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이미 만든 모델을 얼마나 잘 옮기느냐다.

정재엽 기자

anihil@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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