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게 되겠냐’는 의심에서 시장의 선택 받기까지… 딥테크 스타트업이 궤도에 오른 ‘성장 방정식’은?

코스모비·아이디어오션, 제품과 매출 없이 시장을 설득한 기술 검증의 시간
테파로보틱스·퍼스트랩·스페이스린텍, 기술의 우수성 넘어 고객과 시장을 다시 정의하다
갭텍·피트인, 창업자 의존에서 조직과 시스템으로…지속 가능한 성장의 조건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디캠프 마포에서 열린 스타트업 성장 파트너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배치 4기 '디데이(d.day)'는 '궤도에 오르기까지, 일곱 개의 기록(Paths to Orbit)'을 주제로 진행됐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의 진행 아래 '증명', '전환', '확장'이라는 세 가지 성장 국면에서 우주항공, 제조 인공지능(AI), 로봇, 환경기술, 우주의약, 에너지 인프라 분야 딥테크 스타트업 대표 7인이 결정한 선택이 공유됐다. (이미지=AI로 생성)

우주선이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발사 순간의 추진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목표한 궤도에 진입하기까지 방향을 조정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응해야 한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는 이러한 우주선의 비행 과정을 스타트업의 성장에 빗댔다. 뛰어난 기술로 창업하더라도 시장의 의심을 극복하고 고객을 확보하며 조직을 키워가는 과정에는 끊임없는 판단과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투자 유치나 매출이라는 결과보다 그 결과를 만들어낸 창업가들의 선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디캠프 마포에서 열린 스타트업 성장 파트너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배치 4기 '디데이(d.day)'는 바로 그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궤도에 오르기까지, 일곱 개의 기록(Paths to Orbit)'을 주제로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우주항공, 제조 인공지능(AI), 로봇, 환경기술, 우주의약, 에너지 인프라 분야 딥테크 스타트업 대표 7인이 참여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의 진행 아래 '증명', '전환', '확장'이라는 세 가지 성장 국면에서 마주한 문제와 시행착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내렸던 결정이 공유됐다.

디데이의 문을 연 윤형철 디캠프 팀장은 환영사를 통해 이날 행사가 창업가들이 전담 멘토와 함께 사업 방향을 조정하며 축적한 경험을 창업 생태계와 나누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사진=테크42)

디데이의 문을 연 윤형철 디캠프 팀장은 환영사를 통해 이날 행사가 창업가들이 전담 멘토와 함께 사업 방향을 조정하며 축적한 경험을 창업 생태계와 나누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기술은 만들었지만 누가 믿어줄까…시장 검증의 첫 번째 관문 '증명'

첫 번째 세션에서 과학커뮤니케이터 궤도가 던진 질문은 기술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부터 실제 구현 능력을 입증하는 일까지, 초기 딥테크 스타트업이 넘어야 할 문턱이 결코 낮지 않음을 에둘러 표현한 듯했다. (사진=테크42)

"좋은 기술을 개발하면 시장이 알아서 알아봐 줄까요?"

이날 첫 번째 세션에서 궤도가 던진 질문은 기술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부터 실제 구현 능력을 입증하는 일까지, 초기 딥테크 스타트업이 넘어야 할 문턱이 결코 낮지 않음을 에둘러 표현한 듯했다. 함께한 코스모비 박동하 대표와 아이디어오션 김중호 대표는 서로 다른 기술을 개발하면서도 시장의 비슷한 의심을 마주했다고 털어놨다.

코스모비는 소형 인공위성의 궤도 유지와 이동을 돕는 전기추진시스템을 개발하는 우주 딥테크 기업이다. 주력 제품인 '허니비(Honeybee)'는 전기에너지를 활용해 추력을 만드는 홀추력기로, 초소형·소형위성의 운용 효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창업한 코스모비는 누리호 발사를 통한 기술 실증을 추진해 왔다.

'증명'을 주제로 첫 세션에 함께한 코스모비 박동하 대표와 아이디어오션 김중호 대표는 서로 다른 기술을 개발하면서도 시장의 비슷한 의심을 마주했다고 털어놨다. (사진=테크42)

창업 이후 박동하 대표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투자자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우주 전기추진 기술이 왜 필요한지부터 설명해야 했고, 필요성을 납득시킨 뒤에는 실제 제품을 만들 수 있느냐는 의심을 넘어야 했다.

"저희는 학생 창업이다 보니까 투자자들에게 크게 두 가지 질문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그게 뭔데'였고, 다른 하나는 '너희가 할 수 있어'였죠. 위성이 우주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소한 분들이 많다 보니 기술의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걸 설명하고 나면 이번에는 아직 박사과정이고 제품도 없는데 실제 위성 기업에 납품할 수 있느냐고 묻는 거예요. 기술 개발에는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투자를 받으려면 그 안에 성과를 보여줘야 하니 그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박동하 대표는 고객들을 만나면서 더 큰 소형위성 시장의 수요를 확인했고, 이에 맞춰 성능과 출력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한 과정을 설명했다. 박 대표는 초기부터 고객의 요구를 충분히 파악했다면 더 큰 시장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사진=테크42)

이에 코스모비는 기술의 가능성을 실제 제품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박 대표는 누리호 4차와 5차 발사를 통해 관련 기술을 우주로 보내 실증을 진행했으며, 행사 당시에도 우주 실험 데이터를 받아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제품 개발 방향도 달라졌다. 당초 큐브위성용 추진시스템에 집중했지만 고객들을 만나면서 더 큰 소형위성 시장의 수요를 확인했고, 이에 맞춰 성능과 출력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했다. 박 대표는 초기부터 고객의 요구를 충분히 파악했다면 더 큰 시장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아이디어오션 역시 고객의 목소리에서 사업의 방향을 찾았다. 아이디어오션은 AI로 기계와 제품의 설계를 자동화하는 제조 AI 기업이다. 주력 제품인 '메테우스(METHEUS)'는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기계 구조를 설계하고 성능 검증과 설계 보고서 작성까지 지원하는 AI 에이전트다. 숙련 엔지니어의 반복적인 설계 업무를 줄이고 제품 개발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김중호 대표(오른쪽)는 “처음에는 대기업 고객을 중심으로 접근했지만 실제 설계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협력사와 다양한 사용자에게도 수요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고객의 문제'에 접근한 과정을 설명했다. (사진=테크42)

김중호 대표는 “처음에는 대기업 고객을 중심으로 접근했지만 실제 설계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협력사와 다양한 사용자에게도 수요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주 3회 이상 고객을 만나 요구사항과 불편한 점을 확인하고 이를 제품 개발에 반영하고 있음을 털어 놓으며 ‘고객의 문제’를 언급했다.

"저도 대학원에서 계속 연구하다 보니 기술에 집중했던 경향이 있었습니다. 좋은 기술을 만들어주면 누군가는 쓰겠지라는 암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는 딥테크 스타트업이지, 스타트업 딥테크가 아니잖아요. 결국 스타트업은 고객의 문제에서 출발해서 가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고객을 더 많이 만나보고 제품을 정의했을 것 같습니다."

아이디어오션은 배치 기간 국내 제조 대기업과 유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업 가능성을 검증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제품시장적합성(PMF)을 확인하고 고객의 투자 대비 수익률(ROI)을 높일 수 있는 제품임을 증명하는 것이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의 첫 스타트를 끊은  두 기업의 이야기는 기술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과 고객이 그 기술에 비용을 지불할 이유를 증명하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임을 보여줬다.

잘 만든 기술이 왜 팔리지 않을까…고객의 관심을 계약으로 바꾼 '전환'

두 번째 세션에서는 기술에 대한 관심을 실제 구매로 연결하기 위해 사업 전략을 바꾼 창업가들의 경험이 이어졌다. 테파로보틱스의 박정혁 대표, 퍼스트랩의 황보민성 대표, 스페이스린텍의 윤학순 대표다. (사진=테크42)

두 번째 세션에서는 기술에 대한 관심을 실제 구매로 연결하기 위해 사업 전략을 바꾼 창업가들의 경험이 이어졌다. 테파로보틱스는 산업용 로봇이 상자 안에 불규칙하게 쌓인 부품을 인식하고 집어내는 빈피킹(Bin Picking) 자동화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비전·언어·행동을 연결하는 VLA(Vision-Language-Action) 모델을 활용해 다양한 제조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범용 로봇 AI를 지향한다.

박정혁 테파로보틱스 대표는 창업 초기 대기업들로부터 개별 기술 개발 요청을 많이 받았지만, 모든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정 기업에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보다 여러 고객에게 판매할 수 있는 범용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정혁 테파로보틱스 대표는 창업 초기 대기업들로부터 개별 기술 개발 요청을 많이 받았지만, 모든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시장 진입에서는 기존 전략을 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박 대표는 “해당 고객사 담당자도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결국 기존 방침을 바꿔 도전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게 개발된 테파로보틱스의 기술은 현재 미국 완성차 공장의 양산라인에 적용돼 있다. (사진=테크42)

"대기업에서 요청하는 그 기술을 만들었을 때 다른 기업에도 판매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어요. 대기업의 요청을 거절한다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고객 맞춤형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저희는 범용으로 풀겠다고 정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반면 시장 진입에서는 기존 전략을 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당초 생산라인 중단에 따른 부담이 큰 완성차 제조공정 진입을 미루려 했지만 미국 완성차 업체로부터 약 1개월 반 안에 솔루션을 적용할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박 대표는 “해당 고객사 담당자도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결국 기존 방침을 바꿔 도전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게 개발된 테파로보틱스의 기술은 현재 미국 완성차 공장의 양산라인에 적용돼 있다.

한편 퍼스트랩은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실제 고객의 구매를 이끌어내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 경험한 기업이다.

황보민성 퍼스트랩 대표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오랜 기간 연구한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했지만, 기술적 우위가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사진=테크42)

퍼스트랩은 집속형 초음파 기술을 활용해 산업용 유화·분산 장비와 난분해성 유해물질 처리 솔루션을 개발한다. 화장품·의약품 제조공정에서 물질을 미세하게 혼합하는 '데브렉스(DEBREX)'와 수처리용 '캐비톡스(CAVITOX)' 등이 주요 제품이다. 황보민성 퍼스트랩 대표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오랜 기간 연구한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했지만, 기술적 우위가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잘 만들면 잘 팔리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계면활성제 없이 좋은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면 당연히 많이 팔릴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한 1년 6개월 정도의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화장품 회사의 구매 결재 과정이나 예산 집행 절차부터 알아야 하더라고요. 제품 개발에 필요한 것을 어디까지 준비하고 기술의 차이를 어떻게 수치로 증명해야 하는지 알게 된 뒤에야 실제 구매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퍼스트랩은 기술 자체보다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고 도입하는 절차를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 해외 시장에서도 일본의 가능성을 확인한 뒤 매출이 충분히 안정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결정을 내렸다. 일본 시장 진입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스페이스린텍 윤학순 대표의 전환점은 투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우주 실증을 선택한 일이었다. 윤 대표는 2021년 창업한 뒤 투자자들에게 우주의약 사업의 가능성을 설명했지만 약 2년 동안 투자를 유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윤 대표는 과감하게 실제 우주 실험을 감행하며 도전을 이어갔다. (사진=테크42)

스페이스린텍 윤학순 대표의 전환점은 투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우주 실증을 선택한 일이었다. 스페이스린텍은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한 의약품 연구개발과 생산 플랫폼을 구축하는 우주 바이오 기업이다. 우주에서 단백질 결정을 성장시켜 신약개발에 필요한 구조분석을 지원하고, 장기적으로 우주 기반 의약품 생산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윤 대표는 2021년 창업한 뒤 투자자들에게 우주의약 사업의 가능성을 설명했지만 약 2년 동안 투자를 유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첫 엔젤투자를 확보한 이후에도 자금을 아끼며 추가 투자를 기다릴지, 상당한 비용을 감수하고 실제 우주 실험에 나설지 결정해야 했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윤 대표의 선택은 과감한 도전이었다.

"우주 기업이라고 하면서 실제로 우주에 올리지 않는다면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받은 투자금을 거의 다 써야 할 정도로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어요. 조금 더 버티면서 추가 투자를 받을 것인지, 일단 우주로 올릴 것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결국 일단 우주로 올려서 성공시키자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걸 해내면 이후 사업도 더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고, 저희에게 굉장히 중요한 결단이 됐습니다."

스페이스린텍은 이후 국제우주정거장과 저궤도 위성을 활용한 실험을 진행하며 기술 실증을 확대했다. 윤 대표는 국내 제약사들과 협력하고 있으며, 우주의약 사업화를 위해 관련 규제 체계와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세 기업의 경험은 사업의 전환이 단순히 기술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무엇을 선택하고 포기할지, 언제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지를 판단하는 과정이 성장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대표가 없어도 성장하는 회사…사람과 시스템으로 완성하는 '확장'

마지막 세션에서는 사업 규모가 커진 이후 창업자의 역할과 조직 운영 방식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과학커뮤니케이터 궤도는 마지막 세션에 참여한 갭텍 김은학 대표와 피트인 김세권 대표에게 새롭게 조직을 구성한다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완벽한 매뉴얼'과 '매뉴얼 없이도 문제를 해결하는 뛰어난 인재 한 명' 중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사진=테크42)

이날 마지막 세션에서는 사업 규모가 커진 이후 창업자의 역할과 조직 운영 방식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과학커뮤니케이터 궤도는 마지막 세션에 참여한 갭텍 김은학 대표와 피트인 김세권 대표에게 새롭게 조직을 구성한다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완벽한 매뉴얼'과 '매뉴얼 없이도 문제를 해결하는 뛰어난 인재 한 명' 중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흥미롭게도 두 대표의 대답은 달랐다. 한쪽은 뛰어난 인재를, 다른 한쪽은 표준화된 운영체계를 선택했다.

뛰어난 인재를 선택한 김은학 대표의 갭텍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유해가스를 처리하는 기후테크 기업이다. 저온 플라즈마와 촉매, 습식전기집진 기술 등을 활용한 산업용 가스처리 설비를 개발·공급하고 있다.

궤도의 질문에 뛰어난 인재를 선택한 김은학 갭텍 대표. 김 대표는 산업용 환경설비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뒤 창업했다. 그 과정에서 김 대표는 빠른 외형 성장보다 내부 구성원의 역량을 높이는 일이 먼저라고 판단했다며 그 과정을 설명했다. (사진=테크42)

김 대표는 산업용 환경설비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뒤 창업했다. 그 과정에서 김 대표는 빠른 외형 성장보다 내부 구성원의 역량을 높이는 일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조직의 신뢰와 인재 육성에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철학은 주 4.5일제 운영에서도 드러났다.

"저는 4.5일제를 직원들에게 주는 복지나 특별한 혜택이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을 누리려면 다른 시간에 일을 더 효율적으로 마쳐야 하고 서로 약속도 지켜야 하거든요. 실제로 직원들이 좋은 문화를 깨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보이지 않는 규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업무를 빨리 끝낼 수 있고 직원들이 기분 좋게 퇴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변화는 대표가 자리를 비웠을 때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김 대표는 1년 전만 해도 자신이 일주일간 자리를 비우면 영업과 수주, 회계 등 여러 업무가 지연됐지만 이제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회사가 커지더라도 신뢰와 윤리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표준화된 운영체계를 택한 김세권 피트인 대표. 피트인은 실제 빠른 사업 확장을 위한 표준화와 데이터 기반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김 대표는 어느 지역을 방문하더라도 고객이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표준화된 운영체계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사진=테크42)

반면 표준화된 운영체계를 택한 김세권 대표의 피트인은 실제 빠른 사업 확장을 위한 표준화와 데이터 기반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피트인은 택시와 물류차 등 영업용 전기차의 배터리 교환·충전·관리를 제공하는 에너지 인프라 기업이다. 배터리 교환 시스템(BSS)을 기반으로 충전된 배터리를 교체하고 차량 관리까지 지원하는 에너지스테이션 플랫폼을 운영한다.

김세권 대표는 안양에 첫 스테이션을 구축해 서비스의 시장성을 검증한 이후 인천을 비롯한 전국 주요 지역으로 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느 지역을 방문하더라도 고객이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표준화된 운영체계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조직 역시 대표 중심에서 분야별 최고책임자(C레벨) 중심으로 재편했다. 김 대표는 시장 검증 단계에서는 대표가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사업이 커진 뒤에도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면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창업 초기에는 제가 거의 모든 일을 직접 챙겼습니다. 기술과 서비스를 검증해야 했기 때문에 대표 중심 조직이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시장 검증이 끝난 뒤에도 계속 그렇게 운영하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전문성은 외부에서 영입하고, 내부에서 함께 성장한 직원들도 책임자가 될 수 있도록 조직을 바꿨습니다. 지금은 제가 없어도 각 분야에서 부분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저는 미래 사업을 고민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피트인의 또 다른 특징은 AI를 활용한 업무보고 자동화다. 김 대표에 따르면 피트인은 고객 현황, 매출, 로봇 상태, 설비 가동률 등 서비스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디지털로 관리한다. AI는 이를 분석해 매주 금요일 오전 9시 전 직원에게 주간 보고서를 전달한다. 보고서에는 한 주간의 주요 문제와 부서별 조치 제안도 포함된다.

"저희 회사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이 디지털 데이터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만 있으면 고객 상황이나 매출, 로봇 문제점, 설비 가동률 같은 걸 확인할 수 있어요. 저희는 주간 업무회의를 많이 하지 않고 별도의 보고서도 거의 작성하지 않습니다. 대신 AI가 매주 금요일 매출 현황과 한 주간 발생한 문제들을 분석해 어떤 팀이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보고서를 전 직원에게 보냅니다. 누군가가 직접 문서를 작성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갭텍과 피트인의 접근 방식은 달랐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창업자가 모든 일을 처리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구성원과 조직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기업은 인재와 신뢰를 중심으로, 다른 기업은 표준화된 운영체계와 AI를 활용해 성장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다. (사진=테크42)

다만 AI 분석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김 대표는 보고서의 기초 데이터와 분석 결과를 직접 점검한다고 설명했다. 업무보고를 자동화하더라도 데이터 검증과 최종 판단에는 사람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갭텍과 피트인의 접근 방식은 달랐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창업자가 모든 일을 처리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구성원과 조직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기업은 인재와 신뢰를 중심으로, 다른 기업은 표준화된 운영체계와 AI를 활용해 성장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날 디데이에서 확인된 것은 딥테크 스타트업 성장에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술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시장의 요구에 맞춰 전략을 수정하고, 그 성과를 반복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우주선이 목표한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끊임없이 방향을 조정하듯, 스타트업의 성장은 한 번의 성공적인 출발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에서 창업가가 거듭 내리는 선택과 판단의 결과였다. (사진=디캠프)

한편 이날 행사 종료 후에는 디토파트너스그룹 최유환 대표, 노타 채명수 대표, 코르트 홍기현 대표, 에스오에스랩 정지성 대표 등 선배 창업가와 멘토 7명이 참여하는 비공개 세션 '파운더스 라운드테이블(Founders Roundtable)'이 이어졌다. 이들은 사업 성장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적인 과제와 시행착오를 공유했다.

이날 디데이에서 확인된 것은 딥테크 스타트업 성장에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술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시장의 요구에 맞춰 전략을 수정하고, 그 성과를 반복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우주선이 목표한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끊임없이 방향을 조정하듯, 스타트업의 성장은 한 번의 성공적인 출발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에서 창업가가 거듭 내리는 선택과 판단의 결과였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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