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기를 키우는 재배대가 회전하고, 수확물을 실은 로봇이 농민의 뒤를 따라 과수원을 움직인다. 또 다른 화면에서는 네 발 달린 로봇이 자석발을 철판에 붙인 채 조선소 구조물을 오르고, 한 번 충전한 사족보행 로봇은 사람들과 함께 42.195㎞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다. 병실을 겨냥한 로봇손은 카메라에만 의존하지 않고 손가락에 내장된 근접센서를 이용해 작은 물체의 위치를 정밀하게 보정한다.
지난 19일 서울 역삼동 TIPS타운 S6에서 열린 ‘2026년 제4회 KAIST Startup Tech Plaza(KSTP)’에서 확인한 피지컬 인공지능(Physical AI)의 모습이다. KAIST 창업원이 마련한 이번 행사는 드론·로보틱스를 주제로 기술 세미나와 스타트업 IR 피칭을 연결했다.
최근 피지컬 AI 경쟁의 상징으로 사람 형태의 범용 휴머노이드가 부상하고 있지만, 이날 노만, 더로보틱스, 디든로보틱스, 라이온로보틱스, 비바트로보틱스가 내놓은 답은 조금 달랐다.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로봇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농장의 노동력 부족, 위성항법시스템(GPS)이나 통신이 제약되는 험지, 사람이 들어가기 위험한 조선소, 장시간 이동해야 하는 국방 현장, 조도가 낮은 병실처럼 자동화 필요성이 이미 분명한 공간부터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현장에 맞는 ‘몸’을 만들고, 실제 환경에서 데이터를 확보해 AI를 학습시키고, 다시 작업에 투입하는 순환 구조가 공통적으로 드러났다.
“농장을 로봇에 맞춘다”…회전형 재배대로 작업환경부터 표준화

첫 번째 방식은 로봇이 일하기 어려운 환경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스마트팜 스타트업 노만이 택한 접근법이다. 문정욱 노만 대표는 농업 자동화의 출발점을 로봇 자체보다 기후와 노동력, 비싼 시설의 활용도라는 현장의 문제에서 찾았다.
“저희가 푸는 농업 문제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요즘처럼 덥고 불규칙한 날씨인데, 농민들한테는 이게 훨씬 더 치명적으로 다가옵니다. 또 하나는 노동력 부족이고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빠지면 우리나라 먹거리가 다 멈춘다고 할 정도로 현장에서는 심각합니다. 그래서 온실 환경을 컨트롤하는 수요가 커지고 있는데, 비싼 온실 공간을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까지 같이 풀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온실과 다단 재배시설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높일 수 있지만 고정식 구조에서는 층마다 광량과 생육 조건이 달라지고, 작업자가 높은 곳까지 접근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노만도 초기에는 이동형 로봇팔을 농업 현장에 투입하려 했지만 농장마다 다른 작물 위치와 통로, 작업 방식이 새로운 장벽이 됐다. 문 대표는 여기서 발상을 뒤집었다. 모든 농장에 대응하는 로봇을 만드는 대신 로봇이 일할 환경을 먼저 표준화하는 방식이다.

“저희도 처음에는 이동하는 로봇에 팔을 달아서 농작업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모든 농가에 갖다 놔도 다 작업할 수 있게 만들려면 데이터가 너무 방대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풀지 못한 문제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로봇 입장에서는 작업할 수 있는 작업대를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냈어요. 하나의 표준화된 작업환경과 통합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거죠. 회전형 재배대를 통해 기존 문제도 같이 풀자는 게 저희 접근입니다.”
노만은 회전형 재배 시스템을 실제 딸기 농장에 설치해 작기 동안 실증을 진행했다. 문 대표는 처음에는 회의적이던 농민들이 실제 재배 결과를 본 뒤 반응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향후에는 회전형 재배대와 양팔 로봇을 연결해 농작업 자동화 범위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기술을 현장에 안착시키는 과정에서는 농민들과의 관계를 특히 강조했다. 기술을 만든 뒤 농가에 판매하는 전통적인 공급자 방식이 아니라 개발 단계부터 실제 농사에 참여하며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이다.
“저희는 청년농 문제를 풀고 싶어서 실제로 딸기 정식하러 농사도 지으러 갑니다. 청년농들과 계속 스킨십하면서 저희 아이템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있고요. 로봇 시장으로 돈을 벌기 전에 기존 온실 시공 시장을 먼저 가져오겠다는 전략도 갖고 있습니다. 농민분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같이 농사짓습니다’라고 답해요. 실제로 같이 농사짓고 같이 땀 흘려야 마음을 여시더라고요.”
GPS 안 잡히는 험지도 간다…UWB와 현장 데이터로 만든 ‘일하는 로봇’

같은 농업 현장을 더로보틱스는 반대 방향에서 파고든다. 환경을 로봇에 맞춰 표준화하기보다 목적형 로봇을 실제 농장과 험지에 보내고, 그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를 다시 기술 고도화에 이용하는 방식이다. 강동우 더로보틱스 대표는 범용 휴머노이드의 발전 가능성과 실제 산업현장에 투입되는 시점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머노이드가 많이 핫하긴 하지만 이게 언제 상용화될 것이냐는 사실 우리 모두의 숙제였죠. 휴머노이드가 탁구도 하고 복싱도 하는데, 그러면 우리 농장에서 사과는 언제 딸까 하는 물음표가 남습니다. 저희는 그런 범용성보다 과수 수확이나 철도 정비, 방산·탐사·건축처럼 특별한 영역에 필요한 기술만 모으고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현장 중심형 로봇을 만들자는 거죠. 결국 사람이 진짜 필요로 하는 험지에서 먼저 쓸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겁니다.”
더로보틱스의 대표 제품 ‘봇박스(botbox)’는 과수원 같은 노지 환경에서 작업자를 따라 이동하며 수확물이나 자재를 운반하는 추종형 로봇이다. 적재하중은 200㎏, 이동속도는 시속 4㎞, 사용시간은 7시간이다.
초광대역(Ultra-Wideband, UWB) 기반 위치추정은 더로보틱스의 핵심 기술 중 하나다. GPS나 LTE 신호가 닿기 어렵고 장애물이 많아 카메라만으로 위치를 안정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공간에서 UWB 신호를 이용해 로봇의 위치를 추정한다. UWB로 기준이 되는 앵커와 웨이포인트를 설정하고 그 사이를 로봇이 이동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렌탈 사업을 통해 확보하는 실제 현장 데이터와 결합된다. 더로보틱스가 농가에 로봇을 빌려주는 것은 단순한 판매 방식의 차원을 넘어 실제 사람이 험지를 이동하는 행동 데이터를 축적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저희 코어 기술 하나가 로컬리제이션입니다. GPS나 LTE가 터지지 않는 음영지역이고 장애물이 많아 카메라 기반 위치추적도 어려운 현장에서 UWB라는 전파를 써서 위치를 추정합니다. 그런데 둔덕인지 낭떠러지인지, 넘어가야 하는지 피해야 하는지를 사람이 매번 모델에 학습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로봇이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사람이 피할 때는 피하고, 멈출 때는 멈추는 그 순간의 환경 데이터를 계속 모으고 있습니다. 농번기에는 하루 5만원에 로봇을 빌려드리고 계절마다 여러 농장을 돌리면서 로봇 하나로 365일 데이터를 쌓는 방식입니다.”
더로보틱스는 2025년 140개소에서 로봇을 운영해 흑자 전환했고 올해는 160개 농가에 보급되고 있다. 렌탈로 확보한 데이터와 현장에서 검증한 기술은 다시 모듈 사업으로 이어진다. 실제 더로보틱스는 추종·자율주행 로봇 외에도 수질 측정·배관 탐사 로봇과 추종·자율주행 모듈을 제품군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희는 농업만 하는 회사는 아닙니다. 결국 울퉁불퉁한 곳을 잘 다니는 기술을 갖고 있고, 완제품에서 검증한 UWB 모듈이나 컴퓨팅 모듈을 다시 키트 형태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실내에서는 SLAM이 역할을 하고 도로에서는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겠지만, 저희가 보는 곳은 그 사이에 있는 음영지역입니다. 문 밖에서 도로까지, 기존 위치추정 기술이 잘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오퍼레이팅할 수 있는 핵심 모듈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지금은 완제품 중심이지만 데이터가 충분히 쌓일수록 모듈과 데이터 쪽으로 계속 확장해 나가는 회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조선소 벽·천장까지 오른다…자석발로 ‘사람이 못 가는 곳’ 공략

현장이 더 거칠어지면 소프트웨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늘어난다. 피지컬 AI가 실제 산업현장에서 일하려면 먼지와 물, 진동과 장애물, 하중을 견디며 작업지점까지 이동할 수 있는 물리적인 몸이 필요하다. 김준하 디든로보틱스 대표가 선택한 첫 번째 현장은 조선소다. 자동차와 반도체 등 대형 제조업은 이미 상당 부분 자동화됐지만, 선박·조선·건설 현장에는 사람이 좁고 밀폐된 공간으로 직접 들어가 작업해야 하는 구간이 여전히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조선소를 가면 현장 근로자분들의 평균 나이대도 높고, 그분들이 일에 대해 갖고 있는 프라이드는 굉장히 높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는 이 일에 대한 자부심이 높지만 내 자식들은 여기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세요. 선박 안을 보면 천장과 벽이 막힌 밀폐공간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용접을 하고 여러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저는 이런 곳에 사람이 계속 들어가서 일하는 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고민한 게 ‘이 현장에 사람 말고 무엇을 넣을 수 있을까’였습니다.”
하지만 기존 사족보행 로봇이나 일반적인 산업용 로봇을 그대로 조선소에 넣는 것은 쉽지 않다. 선박 내부에는 수십㎝ 높이의 보강재와 개구부가 이어지고 작업지점에 따라 바닥뿐 아니라 철제 벽면이나 천장까지 접근해야 한다.

디든로보틱스가 사족보행 로봇 ‘DIDEN Spider’에 특수 자석발을 적용한 이유다. 스파이더는 전자영구자석(Electro-Permanent Magnet, EPM)을 이용해 철제 벽면과 천장을 이동하도록 개발됐다. EPM은 일반적으로 짧은 전기 펄스로 자력의 ON·OFF 상태를 전환하고 이후에는 별도의 전력 없이 해당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날 김 대표가 설명한 피지컬 AI 개발 방식의 핵심은 하드웨어와 AI를 분리하지 않는 데 있다. 특정 현장에서 작동할 몸을 먼저 만들고, 그 몸을 통해 데이터를 얻은 뒤, 다시 AI와 제어 기술을 학습시키는 반복 과정이다.
“결국에는 현장에 맞는 하드웨어를 고민해야 되고요. 그 하드웨어를 가지고 데이터를 수집해야 되고, 그걸 가지고 학습해서 다시 디플로이하는 루프를 잘 그려야 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처음에 상용 구동기를 사서 써봤더니 베어링이 터지는 등 현장에서 문제가 계속 생겼어요. 그래서 ‘안 되겠다, 이건 우리가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저희는 연구실 때부터 구동기를 만들던 팀이었기 때문에 그 노하우를 가지고 현장에서 요구하는 방진·방수와 높은 하중 조건에 맞는 구동기를 직접 개발했습니다.”
이 외에도 디든로보틱스는 액추에이터와 기계구조, 전장을 비롯해 강화학습 기반 보행제어, 비전 AI, 상태추정, 시뮬레이션까지 자체 개발하고 있다. 스파이더에서 확보한 기술은 이족보행 플랫폼 ‘DIDEN Walker’ 등 다른 폼팩터로도 확장하고 있다.

자석발 역시 단순히 벽을 타기 위한 장치에서 끝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실제 작업지점까지 로봇을 자동으로 이동시키고 지면과 벽면 사이를 전환하거나 개구부를 통과한 뒤 작업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자동화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저희가 들어가려고 하는 현장을 보니까 대부분 철제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이 환경에서 잘 동작하는 자석발을 활용해보자고 했고, 개구부를 통과하거나 높은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로봇이 잘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결국 현장에서 작업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CAD 도면 정보와 웨이포인트만 주면 중간에 사람이 조종하지 않아도 작업 위치까지 스스로 이동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 이름도 ‘어디든’이라는 말에서 가져왔는데, 산업 현장 어디든 갈 수 있는 로봇을 만들고 그 로봇으로 끝까지 작업하자는 게 저희 모토입니다.”
한 번 충전해 50㎞…국방이 요구한 것은 ‘오래 걷는 로봇’

디든로보틱스가 ‘사람이 가기 어려운 작업지점까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파고든다면 라이온로보틱스(RAION Robotics)는 장시간 이동과 에너지 효율에 초점을 맞춘다. 황보제민 KAIST 기계공학과 교수가 창업한 라이온로보틱스는 사족보행 로봇 ‘라이보(RAIBO)’를 개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라이온로보틱스는 자체 물리엔진과 시뮬레이션 기반 강화학습 제어를 비롯해 감속기·모터·모터 드라이버, 자율주행 기술까지 개발하고 있다. 이날 황보 대표는 “국방과 같은 필드 환경에서는 화려한 동작보다 로봇이 얼마나 오래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느냐가 중요한 성능 지표”라고 강조했다.
“저희 라이보의 장점은 8시간 운영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보통 사족보행 로봇은 운영 시간이 짧다고 생각하시는데 저희 로봇은 좀 다릅니다. 8시간 연속 보행이 가능하고 한 번 충전으로 50㎞를 걸을 수 있습니다. 적진에 멀리 보내야 하는데 거기에 사람이 따라가서 배터리를 갈아줄 수는 없잖아요. 결국 에너지 분석을 잘해서 효율적인 설계를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라이보의 장거리 이동 능력은 실제 마라톤에서도 검증된 바 있다. 2024년 11월 열린 제22회 상주곶감마라톤에서 라이보2는 42.195㎞ 풀코스를 4시간19분52초에 완주했다. 라이온로보틱스는 이를 공식 마라톤 대회에서 사족보행 로봇이 풀코스를 완주한 세계 최초 사례로 발표했다.

라이온로보틱스가 강조하는 또 다른 차별점은 로봇의 핵심 구성 요소와 학습 환경을 함께 개발한다는 것이다. 로봇의 움직임을 학습시키기 위한 물리엔진부터 구동부와 자율주행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다룬다.
“자율주행도 연구하고 있고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도 저희가 다 개발합니다. 모터, 모터 드라이버, 감속기 같은 시스템도 직접 개발하고 있고요. 강화학습을 할 때는 정확히 하나의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게 아니라 랜덤한 환경들을 만들어 다양한 조건을 커버하도록 합니다. 거기서 학습이 되면 실제 여러 환경에서도 잘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로봇이 움직일 때도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을 사용해서 어디를 어떻게 밟아야 할지를 계산합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라이온로보틱스가 특히 공을 들이는 적용처는 국방이다. 올해 군 실험과 합동훈련, 관련 과제를 진행하며 실제 납품으로 이어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차세대 모델 RAIBO3와 양산체계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저희는 내년 중순부터 양산 준비에 들어가고, 내년 말에는 양산 라인을 만들어 실제 양산을 시작하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진만 있는 게 아니라 양산 경험을 가진 인력도 회사에 합류하고 있고요. 군에서 요구하는 것은 연구실에서 잘 걷는 로봇이 아니라 실제 환경 인증을 통과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결국 방수나 내구성 같은 것까지 실제 군 환경에서 시험해봐야 합니다. 기술적으로 좋은 로봇을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납품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못 봐도 손끝은 안다…근접센서로 푸는 ‘블라인드 매니퓰레이션’

로봇이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문제를 해결해도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물건을 집고 문을 열고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피지컬 AI의 또 다른 난제로 꼽히는 매니퓰레이션(manipulation·조작) 영역이다. 비바트로보틱스는 그중에서도 시각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환경에서 물체를 조작하는 ‘블라인드 매니퓰레이션(Blind Manipulation)’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 발표에 나선 구제민 비바트로보틱스 대표는 현장에서 로봇손이 컵과 빨대 같은 작은 물체를 집는 영상을 보여줬다. 핵심은 RGB 카메라가 제공하는 시각정보만을 이용하지 않고 손가락과 손 주변에 근접센서를 내장해 물체 가까이에서 위치와 형상을 다시 확인한다는 점이다.
“실제 산업 현장에 들어가면 조도 환경이 불확실하거나 시각 정보가 소실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야간 돌봄 병실이나 건설·국방·제조 현장에서도 가시광 카메라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작업이 있고요. 저희는 근접센서를 로봇 손의 마디와 손끝 등에 직접 내장해 전 방향으로 센싱하면서 포인트클라우드를 만듭니다. 물체에 다가가면서 형상을 스캔하고 최적의 파지 자세를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기존 비전이 본 위치에 오차가 있어도 가까이에서 다시 위치를 보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정밀한 파지 작업에서 강점이 있습니다.”

비바트로보틱스가 활용하는 ToF(Time of Flight) 센서는 적외선 등이 물체에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거리를 계산한다. 물체에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포인트클라우드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파지 위치와 자세를 다시 계산하는 구조다. 하지만 비바트가 풀려는 문제는 물건 하나를 정확히 집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목표는 여러 단계의 동작이 길게 연결되는 ‘롱 호라이즌(Long-horizon) 매니퓰레이션’이다.
“저희가 말하는 롱 호라이즌은 굉장히 긴 단위의 다단계 시퀀셜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간호·간병 병실에서 로봇 손이 슬라이딩 도어를 직접 열고 들어갑니다. 안에 있는 소변통을 들고 화장실로 가서 내용물을 버리고, 뚜껑을 열어 세척한 다음 다시 가져다 놓는 과정까지 이어지는 거죠. 이런 건 단순히 집어서 옮기는 한 번의 작업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저희는 이런 문제 하나를 성공적으로 풀면 다른 깊은 문제들도 확장해서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바트로보틱스가 의료·돌봄 분야를 주요 적용처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식사 보조와 구강 돌봄, 욕창 예방을 위한 병상 자세 변경 보조 등을 로봇 활용 시나리오로 제시하고 있다. 팀에도 AI·로보틱스 연구진뿐 아니라 임상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사업화 속도에 대한 판단이다. 구 대표는 지난 1년여간 제조와 돌봄 등 여러 산업에 기술을 적용하는 과정에서을 언급하며 “당장 고객이 요구하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것과 장기적으로 차별화된 로봇 기술을 축적하는 것이 항상 같은 방향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저희가 지난 1년 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얻은 교훈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중 가장 큰 결론은 ‘시장에 지금 들어가지 말자’였어요. 당장 시장에서 요구하는 문제를 따라가다 보면 기존 방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에 계속 매달리게 되고, 정작 우리가 쌓아야 할 기술 스택을 깊게 가져가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기술 스택의 버티컬을 굉장히 깊게 쌓으려고 합니다. 근접센싱을 통한 저연산량 조작과 정밀 오차 보정이 실제로 어떤 경제적 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를 앞으로 약 18개월 동안 검증할 생각입니다.”
이날 테크42가 주목한 로보틱스 스타트업 다섯 곳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현장’이었다. 노만은 농장의 작업환경을 다시 설계했고, 더로보틱스는 UWB와 실제 현장 데이터를 이용해 험지에서 로봇이 움직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 디든로보틱스는 자석발과 자체 구동기로 조선소 철제 구조물을 공략하고, 라이온로보틱스는 에너지 효율과 장거리 이동 능력을 끌어올렸다. 비바트로보틱스는 시각 정보가 부족한 공간에서도 정밀한 조작이 가능한 근접센싱 기술을 쌓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범용 휴머노이드 플랫폼 경쟁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지만 이날 KAIST 스타트업들이 보여준 피지컬 AI의 사업화 방식은 조금 달랐다. 사람과 똑같은 로봇을 먼저 만든 뒤 쓰임새를 찾는 대신 자동화 수요와 경제적 가치가 분명한 버티컬 시장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하드웨어와 AI를 함께 만드는 방식이다.
결국 피지컬 AI의 승부처가 사람과 가장 닮은 로봇을 누가 먼저 완성하느냐에만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사람이 지금 하기 힘든 일을 로봇이 실제로 대신할 수 있는가’ KAIST 스타트업들이 보여준 피지컬 AI는 그 질문에 한층 가까이 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