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0개 클러스터에 6.5조 쏟아부었다…하지만, 티가 안난다?

  • 용인 반도체는 2년 늦고, 우주청은 예산 93.9%를 못 쓴 이유
  • 강원 1등·전북 꼴찌, 갈린 클러스터 운명… "이젠 선택과 집중"
전국 곳곳에 흩어진 2,330개의 클러스터. 지난 5년간 6조 5,449억 원이 투입됐지만, 정작 티는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클러스터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국내 클러스터 사업이 유사·중복 투자와 부처 분산 관리로 비효율을 키우고 있다. (사진=생성형 AI)

전국 곳곳에 흩어진 2,330개의 클러스터. 지난 5년간 6조 5,449억 원이 투입됐지만, 정작 티는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클러스터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지난해 11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보고서는 충격적이었다. 10개 부처가 52개 유형으로 운영 중인 클러스터 사업이 유사·중복 투자와 부처 분산 관리로 비효율을 키우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갔지만, 지역경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경기도에만 286개, 경남 283개, 경북 256개가 몰려 있다. 같은 지역에 비슷한 클러스터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자원은 분산되고 효과는 희석됐다. 강원도의 경우 외국인투자 관련 경제자유구역 5개, 외국인투자지역 1개, 자유무역지역 1개가 동시에 운영되며 공간적 중첩마저 발생했다.

■ 바이오 클러스터 25개, 협업 없는 각개전투

클러스터 중복의 민낯은 바이오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 허경화 대표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개최한 헬스케어 미래포럼에서 "15개 시도에 25개의 바이오 클러스터가 있으나, 제약강국의 클러스터와 달리 차별점이 부족하고 클러스터 간 협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40여 개 바이오클러스터가 공동으로 인재를 육성하고 메인 과제를 토대로 협업해 시너지를 내는 반면, 국내는 각자도생이다. 허 대표는 "글로벌 신약개발 완주라는 공통 목표를 세우고 협업 플랫폼을 구축해 과제 중복 문제를 해소하면서 상생·효율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2년 기준 강원도엔 바이오 사업체 45개만 있지만, 11개 시도가 바이오를 주력산업으로 내걸었다. 산업집적 효과는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전북특별자치도는 더 심각하다. 182개 클러스터가 지정됐지만, 지역총생산(GRDP)의 전국 비중은 2013년 2.9%에서 2022년 2.6%로 오히려 줄었다. 종사자 수도 2017년 51만 1,000명에서 2022년 52만 7,000명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전국 비중은 2.9%에서 2.8%로 하락했다. 주력산업과 국가 계획 간 연계성이 떨어지고 외국인 투자유치도 부진했다는 게 예산정책처의 지적이다.

클러스터 65종이 법령에 규정돼 있지만, 실제 지정된 건 52종뿐이다. 소프트웨어진흥단지, 스마트도시특화단지 등 13종은 아예 한 곳도 지정되지 않았다. 제도는 난립하고 관리는 부실한 셈이다.

■ 우주청 예산 집행률 6.1%의 경고

클러스터 예산 집행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7월 13일 전자신문 보도에 따르면 우주항공청의 '우주산업 클러스터 삼각체제 구축' 사업은 2024~2025년 예산 집행률이 6.1%에 그쳤다. 315억 9,600만 원 중 19억 3,500만 원만 집행했다.

우주산업 클러스터 삼각체제 구축' 사업은 대전, 전남, 경남을 아우르는 3각 체계 구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진=대전시)

우주청은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지연을 이유로 들었다. 2024년 검토 과정에서 추진 방식이 사업단 위탁에서 우주청 직접 관리로 바뀌면서 장비 발주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혁신형 재사용발사체 핵심기술' R&D 사업은 방위사업청과 과제가 중복돼 50억 원 예산이 편성됐지만 사업 자체가 중단됐다.

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KPS) 1호기 발사 시점은 2027년 12월에서 2029년 9월로 1년 9개월 미뤄졌다. 예산 실집행률도 4년 연속 60~70%대에 머물렀다. 부처 간 칸막이와 졸속 기획이 빚어낸 결과였다.

■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2년 지연의 교훈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는 완공 시점이 2024년 말에서 2026년 말로 2년 늦춰졌다. KBS 보도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 반려, 토지 보상 지연, 공업용수·전력 시설 인허가 지연이 겹쳤다.

2020년 1월 한강유역환경청은 용인시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했다. 방류수가 안성으로 배출되는데 안성시 의견 수렴 절차가 빠졌다는 이유였다. 같은 해 11월 보완 통과했지만, 이미 일정은 꼬였다. SK하이닉스 600조 원, 삼성전자 300조 원 규모 투자가 걸린 사안이었지만, 지자체 간 협의 누락이라는 초보적 실수가 발목을 잡았다.

지난 8월 18일 전자신문에 실린 이상일 용인특례시장 기고문은 절박했다.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반도체특별법에 따른 1호 반도체클러스터로 지정하고, 전력·용수 공급과 도로망 확충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속도가 생명인 반도체 산업에서 2년은 치명적이다.

■ 강원도 1등, 전북 꼴찌의 명암

같은 클러스터 정책이지만 성과는 극과 극이다. 강원테크노파크가 운영하는 디지털헬스케어 클러스터는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의 2023~2024년 성과평가에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투자유치 18개사, 사업화 매출 641억 원, 신규 고용 239명, 특허·인증 141건의 실적을 냈다.

원주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병원·대학·기업을 연계한 전 주기 지원체계가 주효했다. 메쥬(MEZOO)가 개발한 AI 기반 심폐 재활 모니터링 의료기기는 누적 투자유치 305억 원을 끌어냈다. 클러스터 내 입주기업 274개사의 2023년 매출은 1조 8,783억 원, 고용 인원은 6,873명에 달했다.

메쥬(MEZOO)가 개발한 AI 기반 심폐 재활 모니터링 의료기기는 누적 투자유치 305억 원을 끌어냈다. (사진=메쥬 홈페이지)

반면 전북은 182개 클러스터를 운영하면서도 경제 비중은 2%대에 묶여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주력산업과 국가 계획 간 연계성이 미흡하고, 혁신성장 계획 자체 평가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숫자만 늘리고 내실은 챙기지 못한 전형적 사례다.

■ 2026년 예산 13조… 이젠 달라질까

산업통상자원부는 2026년 예산을 역대 최대인 13조 8,778억 원으로 편성했다. 2025년 11조 4,336억 원 대비 21.4% 늘어난 규모다. 지역혁신클러스터육성 예산도 431억 원에서 803억 원으로 86% 증액됐다.

산업부는 관행적 지출과 유사·중복 사업을 정비했다고 밝혔다. 절감된 예산은 AI 전환, 첨단산업 육성, 재생에너지, 공급망 강화, 균형성장에 집중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2023년 7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7개소와 소부장 특화단지 5개소도 지정했다.

■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는 명확한 처방을 내놨다. "지역 산업클러스터 승인·지정·운영 전반에 면밀한 관리체계를 수립하고, 전략산업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유기적 연계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각 지역별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산업 입지 선정 및 육성 방안을 수립함으로써 시너지효과 창출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2,330개 클러스터 중 얼마나 살아남을까. 강원도처럼 명확한 목표와 전 주기 지원체계를 갖춘 곳은 성장하겠지만, 전북처럼 숫자만 채운 곳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6.5조 원이 증발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클러스터 정책의 성패는 양이 아니라 질에 달려 있다.

김광우 기자

kimnoba@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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