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앤트로픽의 텍사스 데이터센터 건설 대출 150억달러(약 21조원)에 신용 보증을 서고 지분 20%를 확보했지만, 정작 그 대출을 내준 월가 은행들은 채권시장에 서둘러 팔아넘기고 있다. 빅테크가 서로의 부채·지분을 얽어매며 몸집을 불리는 'AI 순환금융' 구조에 금융권이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데이터센터 개발업체 넥서스 데이터센터스는 텍사스주 허버드에 대규모 데이터센터 캠퍼스와 1.6기가와트(GW)급 자체 천연가스 발전소를 짓고 있다. 이를 위해 150억달러(약 21조원) 규모 대출을 협의 중이라고 복수의 외신들이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모건스탠리 주도 은행 컨소시엄이 브리지 파이낸싱(단기 연결 대출) 형태로 자금을 조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데이터센터는 앤트로픽이 임차해 자사 모델 구동과 구글이 설계한 AI 반도체 텐서프로세싱유닛(TPU) 운용에 쓸 예정이다. 구글은 앤트로픽이 임차료·전력 구매 대금을 내지 못할 경우 이를 대신 부담하는 방식으로 수십억달러 규모 보증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데이터센터·발전소 프로젝트 지분 약 20%를 확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구글은 현금 대신 신용도만 빌려준 뒤 지분을 챙기는 구조를 택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대출의 실질적 신용은 앤트로픽이 아니라 구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모건스탠리 은행단이 사실상 알파벳(구글 모회사) 재무제표를 보고 150억달러를 빌려주는 것이며, 앤트로픽의 자체 신용은 보증이 발동되는 방아쇠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이런 구조는 앤트로픽·구글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최근 빅테크 업계에서는 한 회사가 다른 AI 기업에 투자하면 그 투자금이 다시 투자자의 제품·서비스 구매로 되돌아오는 이른바 'AI 순환금융(circular financing)'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엔비디아는 소프트뱅크가 오하이오주에 짓는 10기가와트급 데이터센터에서 오픈AI가 낼 임차료로 최대 2500억달러를 보증하는 방안을 논의했고, 별도로 오픈AI의 반도체 구매를 위해 3500억달러 규모 금융 지원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엔비디아는 앤트로픽에도 각각 최대 50억달러, 1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앤트로픽은 그 대가로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 애저에 300억달러를 쓰기로 약속했다.

블룸버그는 이런 거래 구조를 다룬 분석 기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오픈AI·엔비디아가 서로에게 돈을 지불하는 구조"라고 요약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상호 보증·투자망이 AI 기업들을 단단히 묶어놓아,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제는 정작 이 구조에 실제 자금을 댄 월가 은행들이 위험을 오래 떠안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모건스탠리 주도 은행 컨소시엄은 구글이 보증을 선 텍사스 데이터센터 대출 150억달러를 채권 발행 방식으로 재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은행들이 일단 대출을 집행한 뒤 장기채권 투자자에게 넘겨 자기 장부에서는 덜어내겠다는 구상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신용등급이다. 구글 보증에도 이 채권은 투기등급으로 평가될 전망이다. 보증 효력이 데이터센터 완공 이후에나 발동돼, 그 전까지 공사 지연·비용 초과 같은 건설 리스크를 채권 투자자가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월가 은행들은 오라클 임차 데이터센터 관련 대출 500억달러어치의 인수자를 수개월째 찾아왔고, 오라클의 최대 파트너였던 사모펀드 블루오울캐피털도 지난해 12월 100억달러 규모 차기 데이터센터 계획에서 발을 뺐다. 대출 기관들 사이에서 AI 데이터센터를 '안전자산'이 아닌 '고위험 프로젝트'로 보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런 흐름은 개별 은행의 판단을 넘어 국제결제은행(BIS)의 공식 경고로도 이어졌다. BIS는 지난 6월 28일 공개한 2026년 연례 경제보고서에서 AI 투자의 지속가능성, 물가 재상승 압력, 금융시장 취약성, 국가부채발 재정 압박을 세계 경제를 짓누를 주요 리스크로 지목했다.
BIS가 특히 짚은 대목은 AI 기업들의 순환금융 구조다. 보고서는 "이러한 거래의 조건은 대체로 제대로 공시되지 않으며, 동일한 자산이 여러 번 담보로 잡힐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기업·하이퍼스케일러가 AI 기업에 지분을 투자하면 그 기업은 다시 수년간 반도체·컴퓨팅 파워 구매를 약정하고, 데이터센터는 제3자에 의해 지어진 뒤 장기 임대로 되돌아오는 구조라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동일 담보가 여러 금융상품에 중복 활용됐던 구조와 닮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지난 7월 2~9일 펀드매니저 2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45%가 AI 버블을, 발생 확률은 낮지만 현실화하면 충격이 큰 위험을 뜻하는 '테일 리스크'로 지목했다. 6월 조사(28%)보다 크게 늘었고,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26%)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정리하면 이렇다. 빅테크는 서로의 부채를 보증하고 지분을 맞바꾸며 AI 인프라 투자를 계속 부풀린다. 반면 실제로 돈을 대는 은행들은 보증 있는 대출조차 오래 붙들지 않고, 위험을 장기 채권 투자자에게 넘기고 있다.
구글로서는 현금 지출 없이 신용만 빌려주고 알짜 인프라 지분을 챙기는 자본 효율적 거래다. 하지만 국제기구와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얽힌 구조가 AI 수요 둔화 시 어디로, 얼마나 크게 위험을 번지게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I 버블 논쟁이 이제 채권 등급과 매각 움직임이라는 구체적 자금시장 데이터로 확인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