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LG, 로봇에 사활 거는 이유…'피지컬 AI'가 반도체 뒤를 이을까

국내 대기업들이 반도체 다음 성장동력으로 로봇을 정조준하고 있다.

LG그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엔비디아 본사에서 구광모 ㈜LG 대표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참석한 가운데 전략적 사업협력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지난 6월 서울에서 두 사람이 만나 협력 방향을 논의한 지 두 달 만의 공식화다.

LG는 2027년 1분기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공개를 목표로 잡았다. 엔비디아의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아이작 그루트(Isaac GR00T)'와 온보드 컴퓨팅 플랫폼 '젯슨 토르(Jetson Thor)', 안전 시스템 '헤일로스(Halos)'가 탑재된다. 하드웨어는 LG전자 액추에이터, LG이노텍 센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등 계열사 역량을 모아 자체 제작하고, 학습 데이터는 LG CNS의 로봇 플랫폼 '피지컬웍스'로 수집한다.

내년 상반기에는 엔비디아 '베라 루빈' 아키텍처 기반 AI 팩토리 거점을 국내에 조성하고, 2028년 상반기에는 이를 대규모 시설로 확장한다는 계획도 나왔다. 미국 테네시 세탁기 공장에서는 휠 기반 로봇 '클로이드'를 연내 실증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실증 단계에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소프트뱅크그룹이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잔여 지분(약 9.7%)을 약 3250억원에 인수하는 절차에 착수해 완전 자회사화를 추진 중이다.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향후 기업공개(IPO)의 걸림돌을 없애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출처=보스턴다이내믹스 홈페이지)

현대차는 올 1월 CES 2026에서 양산형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공개했고, 지난달에는 FIFA 월드컵 브라질-노르웨이전 하프타임에 아틀라스를 등장시켜 심판에게 경기공을 전달하는 시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2028년까지 연 3만대 생산체계를 구축해 조지아주 서배너 공장에 우선 투입한다는 목표다. 올초에는 테슬라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마일런 코박을 로보틱스 고문으로 영입했다.

삼성전자도 지난달 21일 최고경영자(CEO) 직속 조직 'RX(로보틱스 익스피리언스)'를 신설하고, 현대차·보스턴다이내믹스에서 로보틱스 전략을 이끌었던 이동건 부사장을 영입했다. 미국·중국·일본에는 로보틱스 연구거점도 세운다.

로이터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국·중국·일본에 로보틱스 연구거점도 세운다. 국내 매체 보도에 따르면 35% 지분을 보유한 레인보우로보틱스를 통해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고 있으며, 가전에 쓰던 모터 기술을 로봇 관절 구동장치인 액추에이터에 접목해 자체 개발 중이다. 대당 약 1만6000달러(약 2200만원)로 알려진 중국 유니트리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원가 절감 전략으로 풀이된다.

지난 7월 3일 정부가 주최한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는 삼성전자·삼성SDS가 경북 구미에 로봇데이터팩토리와 AI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19조원을, 삼성SDI가 울산에 휴머노이드용 전고체 배터리 양산 거점 구축을 위해 16조원을 각각 투자한다는 계획이 공식 발표됐다.

이 같은 베팅의 배경에는 AI 경쟁의 무게중심이 소프트웨어에서 현실 세계를 인식·판단·행동하는 '피지컬 AI'로 옮겨가고 있다는 진단이 깔려 있다. 모건스탠리는 2050년 휴머노이드 시장이 5조달러 규모로 커지고 10억대 이상이 보급되며, 이 중 90%는 산업·상업용일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24년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 대수는 54만2000대로 10년 전의 두 배를 넘었고, 이 중 74%가 아시아에서 이뤄졌다. 다만 밸류에이션 부담과 상용화·수익화 검증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어, 국내 대기업들의 '반도체 이후' 승부수가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다.

정재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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