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삼겹살 10㎏을 출고하더라도 거래처마다 함께 보내야 하는 식재료와 포장 방식이 다르다. 계절이나 프로모션이 바뀌면 동봉 상품과 대체 상품도 달라진다. 여기에 유통기한과 보관 온도, 최소 주문 수량(MOQ), 공급처별 리드타임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식음료(F&B) 물류는 단순히 상품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수많은 예외 규칙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에 현장에는 이미 전사적 자원 관리(ERP), 주문 관리 시스템(OMS), 창고 관리 시스템(WMS), 운송 관리 시스템(TMS) 등 다양한 솔루션이 도입돼 있다. 하지만 시스템별로 데이터가 흩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구매·물류 담당자는 수많은 엑셀 파일을 내려 받아 재고와 주문량을 대조하고 발주 수량과 적재 위치를 판단해야 한다. 또 시스템은 현재 상태를 보여주지만 담당자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엠제이코퍼레이션이 개발한 공급망 운영 플랫폼 ‘반드로(VANDRO)’는 이 간극을 겨냥한다. 기존 시스템을 갖춘 고객사에는 이를 교체하는 대신 그 위에서 각각의 데이터를 연결하고, 구매·입고·재고·출고 과정의 다음 행동을 추천하는 운영 계층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데이터가 충분히 정제되지 않은 현장에는 키오스크와 휴대용 단말기(PDA), 스캐너, 라벨 프린터 등 하드웨어까지 공급해 연결한다.
공동창업자인 이정현 대표와 조민우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지난해 5월 엠제이코퍼레이션 창업에 나섰다. 앞서 물류 스타트업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의기투합했다. 글로벌 벤처캐피탈(VC)인 앤틀러코리아 인셉션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프리시드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데이터는 있는데 다음 행동은 없었다”…구매 담당자의 ‘엑셀 지옥’에서 시작한 창업

반드로의 출발점은 이 대표가 미국 제약회사 구매팀에서 경험한 업무상 불편이었다. 국제 비즈니스와 물류를 전공한 이 대표는 구매 담당자로 근무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재고량과 주문 데이터, 중국 공장에서 미국 창고까지 걸리는 운송 기간을 엑셀로 분석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각각 시스템에서 내 놓은 이런 저런 엑셀표를 분석하며 다양한 관리 품목의 발주 시점과 수량을 판단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현장의 문제를 절실히 깨달은 당시 경험은 이후 반드로 개발로 이어졌다.
“반드로는 기존 OMS나 WMS, TMS, ERP를 없애려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기존 시스템은 데이터를 보여주지만 현장 담당자에게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미국 제약회사 구매팀에서 약 30개 품목을 관리하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엑셀을 분석했고, 그 정도만으로도 실수가 반복됐습니다. 이후 물류 분야 창업을 경험하면서 더욱 흩어진 데이터를 연결해 얼마나 주문하고 어느 창고에 적재해야 할지를 분석하고 제안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공동창업자인 조 CTO는 자동차 분야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물류 스타트업에 합류해 물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이 대표와 호흡을 맞췄다. 이 대표가 공급망 현장의 문제와 업무 규칙을 정의한다면, 조 CTO는 이를 데이터 구조와 소프트웨어로 구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엠제이코퍼레이션은 첫 공략 분야로 F&B 물류를 선택했다. 유통기한과 보관 온도, 거래처별 납품 조건이 복잡한 데다 작은 출고 오류가 폐기·반품·할인 판매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는 등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존재하는 영역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 대표는 “유통기한이 먼저 도래하는 상품부터 출고하는 선한선출(FEFO)과 로트(LOT)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재고 손실이 커질 수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F&B는 제약 조건이 가장 많은 산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상품마다 보관 온도와 유통기한이 다르고, 같은 품목이라도 거래처별로 함께 보내야 하는 구성품과 주문 기준이 달라집니다. 이런 규칙은 시즌이 바뀔 때마다 다시 달라지고 유통기한에 따른 가격 변동에도 민감합니다. 가장 어려운 F&B 물류의 운영 규칙을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이후 다른 산업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반드로가 해결하려는 핵심은 담당자의 머릿속과 엑셀에 흩어진 예외 규칙을 시스템이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로 바꾸는 것이다. 거래처와 품목, 시점별로 달라지는 규칙을 시스템에 축적하고 이를 작업 지시로 전환하면 담당자가 바뀌어도 운영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엠제이코퍼레이션은 이렇게 F&B에서 확보한 운영 모델을 제3자 물류(3PL), 패션·의류, 전자상거래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엑셀·ERP 데이터를 하나의 언어로…현장 장비까지 연결

반드로의 기술 구조는 데이터 수집과 정준화, 운영 워크플로, 현장 실행의 네 단계로 요약된다. 먼저 ERP와 판매 시점 정보 관리 시스템(POS), WMS, 엑셀, 구글 스프레드시트, 외부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에서 데이터를 가져온다. ‘데이터 브리지(Data Bridge)’가 서로 다른 상품·공급처·창고 코드를 매핑하고 필수값과 수량, 날짜, 단위, 중복 여부를 검증한다.
수집한 정보는 반드로가 ‘정준 데이터’라고 부르는 공통 데이터 모델로 변환된다. 정준 데이터는 형식이 제각각인 외부 데이터를 상품·공급처·창고·주문·발주·입고·재고 등 하나의 표준 구조로 맞춘 것이다. 그 위에서 워크플로 엔진이 발주, 공급처 회신, 입고 검수, 이상 입고, 적치, 재고 이동과 같은 상태 변화를 관리한다. 조 CTO는 “원본 데이터를 정제하고, 물류 데이터의 구조와 형태를 미리 정의한 정준 데이터로 변환하는 과정에 우리가 축적한 알고리즘과 규칙이 들어간다”며 기술 경쟁력을 강조했다.
“겉으로 보면 데이터를 모아 보여주는 개념 자체는 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업체들이 데이터를 쌓고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반드로는 운영 데이터로 실제 업무 흐름을 해석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외와 결과 데이터가 쌓일수록 사람의 노하우에 해당하는 경험적 데이터도 축적되기 때문에 단기간에 그대로 따라오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자동발주 기능도 현재 재고가 부족하면 정해진 수량을 채우는 단순 보충 방식과 다르다. 현재고에서 출고 예정과 보류·파손 수량을 제외해 가용 재고를 계산하고, 평균 소진량과 확정 입고 예정, 리드타임, 발주 주기, 안전 재고를 반영한다. 이후 최소주문수량(Minimum Order Quantity, MOQ)와 박스·팔레트 단위 같은 공급 조건에 맞춰 추천 발주량을 제시한다. 반드로가 산출한 추천 수량은 구매 담당자가 검토·조정한 뒤 최종 발주로 확정하는 사람 참여형(Human-in-the-Loop) 구조다.
확정된 발주는 공급처에 전달되고, 공급처가 납품 가능 수량과 입고 예정일을 회신하면 물류센터의 입고 예정 정보로 연결된다. 현장에서는 반드로가 공급한 키오스크와 모바일 기기, 스캐너로 실제 수량과 로트, 유통기한, 파손 여부를 확인한다. 정상 입고분은 라벨 출력과 지정 위치 적치를 거쳐 재고에 반영되고, 미입고·과입고·오입고·파손은 별도의 예외 이력으로 남는다. 이 결과가 다음 발주 계산에 다시 반영되는 순환 구조다.

스타트업이 굳이 하드웨어까지 공급하는 이유에 대해 두 창업자는 “소프트웨어만으로는 이 흐름을 완성하기 어렵다”는 답을 내 놨다. 많은 중소·중견 물류 현장은 인공지능(AI)이 분석할 만큼 정제된 데이터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엠제이코퍼레이션은 현장 운영·관리 시스템(PMS)과 WMS, 주문 통합 솔루션, 정책·마스터 관리 시스템인 아카이브(Archive), 현장 장비를 연결하는 반드로 에이전트(VANDRO Agent)를 함께 개발했다. 하드웨어 장비는 직접 대규모 생산하기보다 외부에서 소싱한 키오스크·PDA·스캐너·라벨 프린터·분류 설비 등을 소프트웨어와 연결해 판매하거나 빌려주는 방식이다. 조 CTO는 “하드웨어를 함께 하는 이유도 하나의 버티컬 영역을 끝까지 연결하기 위해서”라고 재차 강조했다.
“데이터가 전산화되고 정준화된다는 것은 현장의 물리적인 요소까지 같은 기준으로 관리하고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자동화 설비나 현장용 AI 에이전트를 도입하려 해도 데이터 수집과 품질 문제부터 부딪히는데, 저희는 그 기반부터 정리하려고 합니다. 이 과정이 쌓이면 장비 자동화에서 더 나아가 피지컬 AI나 휴머노이드를 도입할 수 있는 기반도 만들 수 있습니다.”
수요예측과 피킹·배차 최적화, 이상 탐지는 향후 단계적으로 고도화할 기능이다.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적용 역시 장기 목표로 가져가고 있다. 현재 반드로는 구매·입고·재고·출고 데이터를 연결하고 운영 규칙과 재고 조건을 적용해 발주량과 후속 작업을 추천하며, 현장 장비의 작업 결과를 다시 시스템에 반영하는 기반을 구축하는 단계다.
구축비와 구독료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3년 내 고객사 100곳 목표
반드로의 사업 모델은 초기 구축과 월 구독을 결합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형태다. 회사와 품목마다 주문·포장·검수 규칙이 달라 도입 초기에는 고객사의 데이터와 업무 프로세스를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엠제이코퍼레이션은 이 과정에 구축비를 받고, 시스템 도입 이후에는 월 구독료를 받는다. 하드웨어는 판매·렌탈·총판 방식으로 공급하거나 소프트웨어 구독과 묶어 제공한다. 이 대표는 “회사별로 프로세스가 다르고 품목별 운영 규칙도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일정 수준의 커스터마이징이 필요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초기 구축 과정에서 그 회사와 국가, 품목에 맞는 프로세스와 규칙을 반드로에 축적합니다. 이후에는 매달 구독료를 받고 시즌이나 업무 방식이 바뀔 때 그 변화도 계속 시스템에 반영합니다. 일회성 시스템 통합(SI)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축과 구독을 결합해 계속 기능을 확장하는 하이브리드 SaaS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건은 고객이 늘어날수록 초기 구축에 투입되는 시간과 인력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다. 고객사마다 별도의 개발이 반복되면 구독형 소프트웨어보다 SI 사업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이 대표는 “F&B 물류에서 거래처·품목·시즌별 운영 규칙과 도입 사례를 축적하면 다음 고객사의 데이터 매핑과 시스템 구축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반드로가 겨냥하는 타깃 고객은 재고관리단위(SKU)가 수천개로 늘어나 기존 인력과 엑셀만으로 운영하기 어려워진 중소·중견기업이다. 대형 ERP 업체에 고액의 커스터마이징을 맡기거나 자체 개발팀을 꾸리기는 부담스럽지만, 주문과 재고의 복잡성은 이미 사람을 추가 채용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진 기업들이다. 엠제이코퍼레이션이 공개한 현재 지표는 유료 고객사 4곳과 실제 운영 중인 2400개 이상의 SKU다. 물류창고 작업시간이 약 40% 줄었다는 유의미한 성과도 확인했다. 이 대표는 “하드웨어 공급으로 한 번에 큰 매출이 발생하는 것보다 저희와 계속 함께하며 매달 구독하는 고객이 늘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지표는 월 반복 매출과 구독 고객사 수입니다. 앞으로 3년 안에 반드로 도입 기업 100곳 이상이 되도록 하려 합니다. 일회성 매출보다 고객이 계속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해외 사업은 북미와 유럽에서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다. 엠제이코퍼레이션은 캐나다 농산물 유통 분야에서 유료 개념 검증(PoC)을 추진하고 있으며, 스페인 항만 분야에서도 PoC를 협의하고 있다. 독일과 핀란드에서는 현지 사업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후속 투자 유치는 내년 초로 잡고 있다. 투자 단계는 사업 성장 속도와 실적에 따라 시드 또는 프리A(Pre-Series A) 라운드를 염두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 두 창업자에게 최우선 목표는 구매·창고 운영에서 시작해 생산과 운송, 최종 소비자에 이르는 공급망 전반으로 반드로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조 CTO는 “엔지니어로서 엠제이코퍼레이션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회사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털어놓기도 했다.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을 통해 실제 현장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더 큰 목표입니다. 모든 산업을 한꺼번에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물류라는 영역에서는 반드로로 인해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기술로 현장의 변화를 만들어낸 회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 대표 역시 반드로를 통해 내세우고 싶은 문장으로 ‘워크 스마트, 낫 하드(Work smart, not hard)’을 이야기했다. 물류 노동자가 힘들게 일하는 대신 데이터와 시스템을 이용해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미다. 기존 시스템 위에 더한 반드로의 혁신이 실제 현장에서 반복 매출과 정량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