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보다 유통망’…오픈AI-커서 ‘결별 수순’이 드러낸 AI 플랫폼 주도권 전쟁

스페이스X의 600억달러 애니스피어 인수 완료 14일 만에 오픈AI 모델 공급 종료 계획 발표
“오픈AI 모델은 커서 트래픽의 약 5%”…빈자리 파고든 앤트로픽, 지난해와 뒤바뀐 구도
모델 골라 쓰던 멀티모델 시대의 균열…AI 경쟁, 성능 넘어 개발자 접점과 ‘접근권’으로
AI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흐름들. 오픈AI와 커서의 결별 수순은 AI 경쟁의 중심이 모델 성능에서 개발자 접점과 플랫폼 유통망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지=AI로 생성)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의 무게중심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누가 더 뛰어난 모델을 만드느냐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그 모델을 누가 개발자와 이용자에게 연결하느냐도 못지않은 경쟁력이 되고 있다. 최근 오픈AI(OpenAI)가 AI 코딩 플랫폼 커서(Cursor)에 모델 공급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사건은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커서 운영사 애니스피어(Anysphere)는 지난 6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SpaceX)가 600억달러 규모의 전액 주식 거래로 자사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 14일 인수 절차가 마무리했다. 커서는 스페이스X의 대규모 그래픽처리장치(GPU) 자원을 활용해 더 강력하면서도 비용 효율적인 자체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인수 완료 이후인 지난 28일 오픈AI는 커서에 모델을 제공하는 계약을 단계적으로 종료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제안한 종료일은 오는 11월 12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오픈AI의 이와 같은 발표 직후 경쟁사 앤트로픽(Anthropic)은 커서에서 클로드(Claude)를 지원하기 위한 컴퓨팅 자원을 계속 확대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오픈AI의 입장 변화로 당장 커서 서비스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는 듯하다. 커서 공동창업자 마이클 트루엘(Michael Truell)은 오픈AI 모델이 현재 커서 이용자 트래픽의 약 5%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루엘은 커서가 오픈AI의 초기 고객 가운데 하나였고 오랫동안 오픈AI 플랫폼을 사업의 ‘중립적 인프라’로 신뢰해 왔다고 강조했다.

실제 커서는 이미 오픈AI와 앤트로픽, 구글, 스페이스XAI 등 여러 업체의 모델을 한곳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이용자가 직접 모델을 고르거나 ‘커서 라우터(Cursor Router)’가 작업 특성에 맞춰 모델을 자동 선택하도록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코드 호스팅 서비스 ‘오리진(Origin)’까지 내놓으며 코드 작성과 저장, AI 에이전트 활용, 협업 과정을 자사 플랫폼 안으로 넓히고 있다. 모델 하나의 성능뿐 아니라 여러 모델을 실제 업무에 연결하는 플랫폼의 힘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스페이스X 품에 안긴 커서…14일 만에 모델 공급 종료 꺼낸 오픈AI

스페이스X의 커서 인수 완료 이후 오픈AI가 커서 대상 모델 공급 종료 계획을 밝히면서 AI 생태계 내 전략적 긴장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미지=AI로 생성)

스페이스X가 커서 운영사 애니스피어를 600억달러 규모의 전액 주식 거래로 인수하기로 한 사실은 지난 6월 로이터 등 외신을 통해 알려졌다. 이후 커서는 지난 14일 공식 블로그에서 인수 절차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스페이스X와의 결합으로 대규모 GPU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됐으며, 이를 바탕으로 더 강력하고 비용 효율적인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지난 12일 공개한 ‘그록 4.6(Grok 4.6)’은 양측 협업의 초기 사례로 제시됐다.

오픈AI는 커서의 인수 완료 발표 14일 뒤인 지난 28일 커서에 모델을 공급하는 계약을 단계적으로 종료하겠다는 계획을 알렸다. 이유는 계약 위반과 같은 것이 아닌, 스페이스X가 자사 기술을 이용약관에 맞게 사용할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오픈AI는 대형 파트너와는 이용약관 준수와 대규모 서비스의 안전성을 위해 별도의 맞춤형 계약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커서와의 계약에는 기업의 소유권이 바뀌는 ‘지배권 변경(change of control)’ 뒤 일정 기간 안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고, 이번 스페이스X 인수를 계기로 이 조항을 행사한 것이다. 오픈 AI는 계약상 가능한 가장 늦은 시점까지 현재 제공 중인 모델 접근은 유지하되 향후 새롭게 출시할 모델은 커서에 제공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커서 공동창업자 마이클 트루엘은 지난 29일 자신의 엑스(X)를 통해 양측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양 측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공급 종료 계획이 지배구조 변화 직후 제기됐다는 점은 모델 접근권이 사업 관계와 경쟁구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난해 다른 장면, 앤트로픽의 윈드서프 공급 축소…이번에는 오픈AI 빈자리 파고들었다

지난해 윈드서프 사례와 이번 커서 사례는 AI 모델 공급이 단순한 기술 제공이 아니라 경쟁 구도에 따라 재편되는 전략 변수임을 보여준다. (이미지=AI로 생성)

사실 이와 비슷한 장면은 지난해 또 다른 AI 코딩 플랫폼 윈드서프(Windsurf)를 둘러싸고 먼저 나타났다. 지난해 6월 3일 앤트로픽은 윈드서프에 직접 제공하던 ‘클로드 3.7 소넷(Claude 3.7 Sonnet)’과 ‘클로드 3.5 소넷’의 공급 용량을 대폭 줄인 바 있다. 당시 오픈AI가 윈드서프를 약 30억달러에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던 시점이었다.

이틀 뒤 앤트로픽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과학책임자(CSO)인 재러드 캐플런(Jared Kaplan)은 제한된 컴퓨팅 자원을 장기적으로 협력할 고객에게 우선 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픈AI가 윈드서프를 인수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경쟁사에 클로드를 공급하는 것은 어색한 구조라는 취지의 발언도 내놨다.

다만 오픈AI의 윈드서프 인수는 결국 성사되지 않았고, 대신 구글이 같은 해 7월 윈드서프 최고경영자와 핵심 연구진을 영입하면서 일부 기술에 대한 비독점 라이선스를 확보하는 24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여기서 구글이 윈드서프 지분이나 경영권을 인수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구도가 뒤집혔다. 스페이스X가 커서 운영사 애니스피어를 인수하자 오픈AI가 모델 공급 종료 계획을 내놨고, 앤트로픽은 오픈AI 발표 직후 커서에서 클로드를 지원하기 위한 컴퓨팅 자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앤트로픽 공동창업자 톰 브라운(Tom Brown)은 커서가 클로드 3.5 소넷 시절부터 신뢰해 온 파트너라며 지원 확대 방침을 밝혔다. 앤트로픽은 현재 스페이스X와도 컴퓨팅 관련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일련의 흐름을 두고 앤트로픽은 개방적이고 오픈AI는 폐쇄적이라고 단순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난해 앤트로픽 역시 경쟁사 진영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는 플랫폼에 대한 직접 공급을 줄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두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AI 모델 접근권이 경쟁전략의 일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모델 기업에 플랫폼은 기술을 구매하는 고객이면서 최종 이용자에게 모델을 전달하는 유통망이고, 플랫폼이 경쟁사의 통제 아래 들어가면 공급 조건을 다시 판단할 유인이 생긴다. 반대로 경쟁 모델 기업에는 그 빈자리를 파고들어 개발자와 이용자를 확보할 기회가 된다.

모델 하나 잘 만드는 경쟁에서 개발자 접점 장악으로…‘멀티모델’에도 생긴 공급망 변수

멀티모델 시대에 핵심은 어떤 플랫폼이 개발자 접점을 장악하고, 필요한 모델에 대한 안정적 접근권을 확보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이미지=AI로 생성)

커서는 여러 모델을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멀티모델 구조를 적극 활용해 성장한 플랫폼이다. 오픈AI와 앤트로픽, 구글, 스페이스XAI 등 여러 업체의 프런티어 모델을 사용할 수 있고, 개발자가 직접 모델을 고르거나 커서 라우터를 통해 작업의 유형과 복잡도, 비용·성능 조건에 맞는 모델을 자동 선택하도록 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좋은 모델을 보유하는 것만큼 어떤 모델을 어떤 순간에 이용자에게 연결할지를 결정하는 플랫폼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커서는 이 접점을 코딩 에디터 밖으로도 넓히고 있다. 지난 17일 코드 호스팅 서비스 오리진을 초기 베타로 공개하며 저장소(repository), 풀리퀘스트(pull request), 코드 탐색, 깃허브(GitHub) 동기화 기능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난 27일에는 외부 코드 저장소를 연결하지 않아도 클라우드 에이전트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결과물을 오리진 저장소로 만들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테크크런치는 이를 깃허브와 경쟁할 수 있는 코드 호스팅 플랫폼의 등장으로 평가했다.

스페이스X의 대규모 GPU 컴퓨팅 자원과 AI 모델, 커서의 개발자 접점이 한 구조 안으로 들어온다는 점도 중요하다. 커서는 인수 완료를 발표하면서 스페이스X의 GPU 인프라를 이용해 더 강력하고 비용 효율적인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컴퓨팅 인프라에서 AI 모델, 개발 플랫폼, 최종 개발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한 진영 안에서 묶이는 모습이다. 오픈AI의 공급 종료 계획 역시 이런 구조 변화와 맞닿아 있다. 뛰어난 모델을 보유해도 이용자가 머무는 플랫폼에서 선택되지 않거나 직접 공급 경로가 줄어들면 유통 측면의 영향력이 제한될 수 있다.

기업 이용자에게도 새로운 변수다. 멀티모델 전략은 하나의 모델에 묶이는 ‘벤더 락인(vendor lock-in)’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지만, 여러 모델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것과 필요한 모델에 계속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기업 인수와 지배구조 변화, 모델 제공기업과 플랫폼 사이의 경쟁관계, 이용약관과 개별 공급계약에 따라 특정 모델의 접근 조건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멀티모델 전략의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모델을 동시에 지원하면 한 공급자가 빠지더라도 다른 모델로 옮길 여지가 커진다.

오픈AI와 커서의 계약이 오는 11월 실제로 종료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트루엘이 양측이 해결을 위해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힌 상황에서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남아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이 보여준 구조 변화는 분명하다. AI 모델 기업은 애플리케이션과 에이전트 시장으로 직접 내려오고, 플랫폼 기업은 자체 모델과 컴퓨팅 인프라까지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과거 모델 공급자와 고객으로 나뉘던 관계가 어느 순간 경쟁관계로 바뀔 수 있는 시장이 됐다.

적어도 모델 분야에서 AI 경쟁의 다음 전선은 ‘누가 가장 뛰어난 모델을 만드느냐’에만 머물지 않는다. 개발자가 머무는 플랫폼을 누가 장악하고, 그 안에서 어떤 모델이 선택되는지, 필요한 모델에 대한 접근권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함께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픈AI와 커서의 결별 수순은 모델 경쟁 뒤편에서 진행돼 온 AI 플랫폼 주도권 전쟁이 실제 계약과 서비스 현장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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