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25일 마라도함 갑판에서 국방과학연구소가 공들여 만든 자폭 드론 시제품이 발사됐다. 목표는 2킬로미터 앞 표적정. 육상에선 30번도 넘게 성공한 실험이었다.
첫 번째 드론이 날아올랐다. 2초. 바다로 곤두박질. 두 번째는 4초를 버텼다. 결과는 똑같았다. 대당 8억원짜리가 그렇게 두 대나 물속으로 사라졌다. 해상 환경이 문제였을 거란 추측만 나왔다. 9월까지 개발 완료해야 하는데 빨간불이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 키이우. 독립 35주년 기념 열병식엔 병사도 전차도 없었다. 드론 100여 대와 로봇들만 도열했다. 러시아랑 5년째 싸우는 나라가 세계에 보낸 신호는 분명했다. 이제 드론 없이는 전쟁을 못한다고.
■ 7300만원이 4500억원을 날렸다
올해 3월 사우디 공군기지. 미군의 E-3센트리 한 대가 불타올랐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일명 '하늘의 눈'. 대당 3억 달러짜리다. 한화로 4500억. 이걸 격추한 게 이란제 샤헤드-136 드론 한 대였다. 가격은 5만 달러. 7300만원.
가격 비교가 무의미하다. 이란 파르스통신은 "현대전에서 비대칭 타격의 명확한 사례"라고 했고, 블룸버그는 "400만 달러짜리 요격미사일로 수만 달러 드론 막는 건 지속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의 싸움이란 얘기다.
우크라이나 전장은 이걸 증명하는 실험실이 됐다. 제68독립엽병여단 '도브부시 호넷' 부대. 500달러짜리 1인칭 시점 드론으로 러시아 전차들을 부숴댔다. 전술은 간단하다. 러시아 보병이 오면 기관총으로 쏴서 엎드리게 만든다. 그 순간 드론 날려서 끝낸다.
공격 드론이 우크라이나 전장 사상자의 80%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숨을 곳이 없어진 전장. 30~100명씩 모여 있던 거점은 이제 3~8명짜리 소부대로 쪼개져야 살아남는다.
■ 미국은 30만 대 확보한다
미국 국방부가 2027년 말까지 저가 공격 드론 30만 대를 확보하는 '드론 도미넌스'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방식이 재밌다. 4단계 경쟁 체제로 25개 업체가 뛰어들어 프로토타입 만들고, 군이 직접 써보고 평가한다. 최종 5개사가 총 34만 대를 생산하는데, 핵심은 가격이다. 1단계에서 대당 5000달러던 게 마지막 단계에선 2300달러로 떨어진다. 대량 생산으로 단가를 절반 이하로 낮추겠다는 계산이다.
중국산 부품 안 쓴 드론엔 'Blue UAS' 인증을 준다. 미국과 동맹국 중심 드론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 나토는 더 크게 움직였다. 지난 7월 향후 5년간 400억 달러를 드론에 쏟아붓는 'Drone Edge 이니셔티브' 발표. 드론 조작자를 2027년 말까지 5배 늘리고, 회원국이 공동으로 쓸 '대드론 마켓플레이스'도 만든다. 계속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거다.
대만은 더 절박하다. 중국 침공 위협 때문에 2030년까지 월 10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춘다는 계획을 세웠다. 군이 비행형·해상형 합쳐 21만 대 이상 보유하는 게 목표. 뉴욕타임스가 '헬스케이프'(지옥풍경) 전략이라고 이름 붙였다. 중국군이 대만 해협 건너는 순간, 수천 대의 무인 잠수함과 드론으로 바다를 지옥으로 만들겠다는 구상. 10조 2000억원을 쏟아붓는다.
■ 한국? 백지 상태라고 봐야 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발표 보니까 2025년 세계 군사비가 2조 8870억 달러. 11년 연속 증가다. 유럽 14%, 아시아·오세아니아 8.1% 급증. 재무장의 중심엔 드론이 있다.
그런데 한국은? 2025년 5월 기준으로 국방부가 보유한 드론이 13종 728대다. 대부분 정찰·감시용. 2030년까지 24종 1210대로 늘린다는데 속도가 너무 더디다. 안규백 국방장관이 작년에 '50만 드론 전사' 양성 외쳤지만, 올해 드론 예산은 오히려 전년 1678억원에서 1464억원으로 11.5% 줄었다. 65조 넘는 국방 예산의 0.27%.
자폭 드론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전력은 육군 일부 시범부대랑 특전사 정도다. 2024년에 폴란드제 WB 워메이트 200여 대 들여온 게 드론작전사령부의 사실상 유일한 공격 드론이었다. 차기 육군 군단급 정찰 무인기 국내 개발은 기술 부족으로 작년에 중단. 저가 골판지 자폭 드론 도입 사업은 입찰 업체 전부가 부적합 판정 받아서 사업이 멈췄다.
조직은 간판만 바뀐다. 2023년 만든 드론작전사령부는 평양 무인기 침투 의혹으로 내란 특검한테 '북한 도발 유도 부대'로 찍혔다. 결국 해체가 결정됐고 11월에 소장급이 이끄는 '국방드론본부'가 출범한다.
파면된 김용대 전 사령관은 법정에서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한때 국가 안보를 책임지던 소장 출신이 지금 물류센터에서 물건 분류하고 있다.
■ 계속 만들 수 있어야 이긴다
드론 전쟁의 핵심은 숫자가 아니다.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러시아는 이란 샤헤드를 개량한 '게란-2'를 매달 2000대씩 찍어낸다. 5000대로 늘릴 계획도 있다고 한다. 이 기술은 북한에도 넘어갔다. 작년부터 북한 내 생산 설비에서 드론 양산이 시작됐다는 정보가 있다. 북한이 자폭 드론을 미사일·방사포랑 섞어서 쏘면 한국 방공망이 버티기 어렵다.
한국의 문제는 산업 생태계다. 2025년 기준 국내 드론 사업체가 6900여 곳인데, 사업체당 평균 매출액이 1억 7000만원. 종업원 5인 미만 영세기업이 대부분이다. 국산 상용 드론 부품 국산화율은 50% 아래. 중국산이 품질도 좋고 싸니까 국내 업체가 기술 개발할 이유가 없다. 대기업이 뛰어들어도 부품까지 자체 개발하려니 단가가 치솟는다.
8억원짜리 시제품이 4초 만에 추락한 건 우연이 아니다. 양산해도 대당 1억~2억은 든다는 게 전문가들 추산이다. 이란 샤헤드가 7300만원, 미국 루카스가 5000만원대인 거 생각하면 경쟁력이 없다. 한 드론 제조 업체 대표는 "한국은 드론에 관한 한 백지"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드론기업연합회가 제시한 방향은 네 가지다. 드론 개수 늘리기에서 탐지-타격 연결체계 구축으로. 각 군 독립 운영에서 통합 지휘체계로. 첨단 대형 드론에서 저가 일회용과 고성능 요격 혼합으로. 평시 전력에서 지속 생산 능력 확보로. 근데 예산은 줄고, 개발은 실패하고, 조직은 간판만 바뀌고 있다.
■ 영국 총리가 우크라이나부터 간 이유
영국의 앤디 버넘 총리는 7월 20일 취임한 뒤 8월 24일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에 키이우를 찾았다. 프랑스나 독일보다 먼저였다. 드론 협력 때문이라는 얘기가 돈다. 세계는 우크라이나를 현대전의 실험실로 보고 있다. 거기서 검증된 게 미래 전쟁의 표준이 될 거니까.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나온 교훈은 명확하다. 절대적 군사력보다 기민성, 기동성, 적응성, 회복탄력성이 승패를 가른다. 고정 진지는 이제 드론 공격의 표적일 뿐이다. 양측은 전자전 교란 피하려고 무선 대신 광섬유 쓰는 드론으로 전환하고 있다. 전장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말했다. "드론 없이는 전쟁을 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외국 공급망 영향 안 받는 독자 생태계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당장 한국이 드론으로 싸워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7300만원이 4500억을 날렸고, 500달러가 수백만 달러 전차를 부수는 시대는 이미 왔다. 세계는 드론 재무장에 사활을 걸었다. 한국만 예외일 순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