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건설경기가 위축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건설 공사비 상승율은 90%에 달한다. 결국 건설사, 인테리어 회사들은 제한적인 자재를 대량으로 도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선택을 하곤 한다.
이는 리모델링이나 새로운 인테리어 도입에 나서는 개별 건물이나 개인 사업자 등 소규모 시공의 경우 역시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인테리어 업체들이 종종 고객들에게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자재를 선택할 시 시공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문제는 고급 식당이나 명품 숍 등 트렌드나 디자인을 우선시하는 공간 인테리어의 경우다. 비용과 상관없이 디자인을 우선 한다고 해도 시중에서 유통되는 자재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탓에 차별화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디자인의 한계와 비용 문제는 건설 시장, 그 중에서도 인테리어 자재 분야에서 오래도록 풀지 못한 숙제이라 할 수 있다.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면서도 차별적인 디자인의 인테리어 자재를 만들 수 없을까?’
최근 글로벌 VC(벤처캐피탈) 앤틀러코리아 스타트업 제터레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한 크래용 팀의 새로운 시도는 이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이들은 단기간에 특별한 소재를 개발하고 변화하는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시중에 존재하지 않은 커스텀 디자인을 탑재한 인테리어 자재를 선보였다. 크래용 팀이 선택한 소재는 다름 아닌 폐기되는 의류 원단이었다.
폐원단을 고부가가치 인테리어 자재로 개발한 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조지타운대 출신 금융·사업개발 전문가인 정래준 대표와 미국 뉴욕의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패션공과대학교) 출신 디자인·원단 전문가인 이선영 부대표가 의기투합한 크래용 팀을 만나봤다.
화학적 업사이클링 적용, 폐기물을 고부가가치 인테리어 자재로 개발

크래용은 글로벌 벤처캐피탈 앤틀러코리아 스타트업 제너레이터 4기 출신으로, 지난해 6월 앤틀러 제터레이터 프로그램을 거쳐 팀 결성 후 프리시드를 투자 유치를 완료했다. 이후 8월에 프리팁스(Pre-TIPS) 시드 트랙에 선정되었으며, 이어 지난해 말 팁스 R&D에 선정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사이 크래용은 기존 타일을 대체하는 폐원단 소재의 인테리어 자재를 통해 고객을 확보하고 월 2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비결은 폐기되는 의류원단을 소재로 채택해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면서도 화학적 업사이클링을 통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방염성, 내구성을 확보한 기술력이다. 여기에 더해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주문제작 방식의 커스텀 디자인을 적용, 차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내외 고객들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키고 있다.
게다가 크래용이 생산하는 인테리어 자재는 가벼운 소재 특성 덕분에 적은 인력으로 빠르게 시공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장점들은 고객이 부담하게 되는 전체 건축시공 비용과 시간을 절감한다. 이러한 크래용의 혁신적인 인테리어 자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프리미엄 팝업 스토어를 비롯해 파인다이닝 등 세련되고 독창적인 인테리어 시공이 필요한 공간들이다. 새롭게 마련한 사무실에서 마주한 정래준 크래용 대표는 “프리미엄 인테리어를 필요로 하는 상업용 시설 등을 우선 타깃으로 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한 브랜딩 전략을 언급했다.

“인테리어 디자인 업계에서 가장 최신의 트렌드를 추구하는 것은 상업용 프리미엄 공간이예요. 주로 중소형 인테리어 기업들이 시공하는 공간이라 기업의 생존과도 연결돼 있어 항상 새로운 소재와 디자인을 추구하거든요. 또 그렇게 선택이 되면 이후에는 대중 상업용 시설과 주거용 시설에도 확산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시작부터 고급 인테리어 자재로서 브랜딩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브랜딩이 된 이후에 후속 클라이언트로는 30~40층 이상의 고층 빌딩 시공사를 공략할 전략을 세우고 있어요. 저희 자재는 디자인도 차별성이 있지만, 기능적인 측면에서 가볍고 시공이 빠르다는 것이 장점이거든요. 시공사 입장에서는 가벼워 운반비가 절감될 뿐 아니라 시공 기간을 줄여 전체 시공비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버려지는 의류원단을 활용한 소재 개발은 이선영 부대표가 담당했다. LG패션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해 FIT 유학 이후 미국 현지와 국내 기업에서 경력을 이어가며 15년간 다양한 패션 디자인을 구현한 그녀는 자연스레 많은 원단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만지거나 보기만 해도 원단의 혼용율이나 특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수준이 됐다고. 그러한 경험은 앤틀러 프로그램을 통해 사업 아이템이 정해지고 폐원단을 활용해 인테리어 자재 개발에 나설 때 빛을 발했다. 별도의 원단 리서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다양한 원단의 특성을 파악하고 가공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 부대표가 택한 방식은 폐원단에 화학적인 업사이클링을 적용한 것이다. 물리적인 업사이클링으로는 패션용품, 비용이 싼 흡음재, 패널 등의 건축자재 정도로 활용하는데 그치는 반면 화학적 업사이클링은 방염성과 내구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고부가가치 인테리어 자재로 제품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 고급 인테리어 자재 대비 27% 정도의 생산원가 절감까지 이뤄냈다. 이 부대표는 “디자인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차별성을 강조했다.
“폐원단을 고부가가치 명품으로 만들자고 결심하고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굉장히 도전적인 과제이긴 했죠. 사실 원단은 너무 잘 타는 특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어제도 새로운 제품 개발을 하며 오븐에 원단을 굽다가 불이 날 뻔했어요(웃음). 현재는 방염을 넘어 난연성을 확보하고 준불연 등급 신청을 해 놓은 상황이예요. 최고 등급인 불연 단계까지 달성하는 것이 목표죠. 현재까지는 어려운 영역이라고 하지만 꾸준히 연구를 하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님께 물려 받은 사업가 기질
앤틀러 프로그램을 통해 팀을 결성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의외의 공통점을 알게 됐다. 바로 두 사람 모두 부모님이 건축 관련 사업을 해 오고 계신다는 점이다. 정래준 대표의 부모님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건축 자재 유통 사업을 해 오셨다. 이선영 부대표의 부모님은 인조 대리석 공장을 운영하며 직접 개발한 제품을 선보일 정도의 기술력까지 확보한 전문가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삶을 지켜본 두 사람은 자연스레 사업가를 동경하며 창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정 대표의 경우 대학 시절 이미 3명의 코파운더와 ‘필란트로피스트’라는 비영리 재단을 설립해 미리 사용처와 이유를 알리고 공연 등을 통해 기부금을 모은 다음 집행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정 대표는 “유니세프에 등록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며 금융 분야 입문 이전 창업의 경험을 돌이켰다.

“당시만 해도 기부금의 집행 방식이 투명하지 않았어요. 저희는 기부금을 모금하는 목적과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임팩트가 무엇인지를 알리며 투명하게 진행하는 방식을 적용했죠. 일례로 물 부족 현상으로 고통 받는 국가들의 문제를 살피다가 캄보디아에 우물을 만들어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당시 유명 뮤지션들과 협업해 콘서트를 개최하고 그렇게 모은 기부금으로 실제 캄보디아에 17개의 우물을 파기도 했죠.”
이선영 부대표는 패션 디자이너의 경력을 살려 회사를 나온 이후 어린이 발레복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다. 니치 마켓이라고 판단했고 초기에는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고객들의 반응이 뜨거워질 때 즈음 난데없이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진 탓이다. 그렇게 첫 사업은 적잖은 손해와 함께 접어야 했다고.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당시 실패의 경험은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밑거름이 됐다.
차별적인 경쟁력으로 국내는 물론 글로벌까지 목표
앤틀러 프로그램 참가를 통해 이 부대표는 “이미 시작부터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패션과 원단 경험을 활용하겠다는 확고한 방침을 새웠다”며 당시를 돌이켰다.
"한가지 확실했던 것은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일 자체를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그래서 버려지는 원단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정 대표 역시도 “이 부대표의 아이디어로 개발된 상품을 제가 사업화하고 서포트하는 방식으로 회사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며 사업성을 확인하고 크래용 팀 결성을 결심한 이유를 언급했다.
“부모님께서 건축 자재 유통 사업을 하시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레 이 분야에 관심이 있었죠. 또 미국과 유럽에서 오래 생활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친환경 건축 자재가 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요. 금융 권에서는 근무하던 직장에서 동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파생상품을 구조화 하는 일을 했지만, 그와 별개로 창업을 할 경우 두 가지 목표는 있었어요. 하나는 확실히 내 손에 만져지는 제품 분야를 하고 싶다는 것, 남은 하나가 무조건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스케일업이 가능한 아이템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죠. 실제로 크래용이 공략하는 인테리어 시장은 글로벌 2576조원에 달하는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크래용 팀은 이후 폐원단을 활용한 제품 방향성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다. 초기 가구 제작으로 시작한 아이디어는 이후 건축 자재로, 다시 좀 더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목표로 하며 인테리어 자재로 구체화됐다. 정 대표는 “그 과정에서 앤틀러코리아 장재희 파트너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초반에는 굉장히 미약한 아이디어로 시작했지만, 디벨롭을 하는 과정에서 장재희 파트너님이 전문적인 마케팅 인사이트로 글로벌 레퍼런스를 찾아봐 주시면서 인테리어 자재에 집중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저는 시장 사이즈를 파악하고 선행 기업들을 분석했고, 이 부대표는 제품 개발을 본격화하기 시작했죠.”
정 대표의 말을 들으며 이 부대표 역시 어렵사리 만든 MVP(최소기능제품)를 가지고 투자심사에 나서던 당시를 떠올렸다. 심사를 하는 앤틀러코리아 파트너들 앞에서 그녀는 제품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물에 담그기까지 하며 기능적인 차별성을 강조했다. 이 부대표는 “그 방식은 이후 PoC(기술검증) 과정에서 만난 고객들 앞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제품에 비하면 굉장히 초보적인 상태였지만, 그래도 굉장히 짧은 시간 내에 그런 기능성을 확보했다는 것이 임팩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 저희가 만난 잠재적인 클라이언트 분들도 그 부분에서 좋은 반응을 하시더군요(웃음). 질문이 들어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테스트를 했거든요. 한 번은 오염성이 어떠냐고 묻는 말에 바로 간장과 커피 등을 뿌려 놓고 10분 뒤에 닦는 시연을 했어요. 그걸 보고는 한 번 믿고 진행해 볼 수 있겠다는 말들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굉장히 뿌듯했죠.”
차별적인 커스텀 디자인과 함께 비용적인 절감까지 가능하며 폐원단 소재의 친환경성까지 갖춘 크래용의 제품은 이에 대한 확실한 니즈가 있는 고객군으로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기 스타트업으로서 쉽지 않은 제조업에 도전하는 이들이 풀어야 할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체 개발한 화학적 업사이클링 기술의 국내외 특허 출원은 이미 진행 중이다. 또 폐원단을 활용한 인테리어 타일을 넘어 보드와 인조대리석 등 제품 다양화를 비롯해 국내 고객은 물론 미국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고객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에 맞춰 전문적인 생산 공장을 확보하는 일도 과제로 남아 있다.
인터뷰 말미 정 대표는 “지속적으로 브랜딩을 강화하며 상업용 프리미엄 시장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후속 투자 유치 계획을 언급했다. 이 부대표 역시 “제품 기능을 불연 수준으로 달성하고 내구성을 더욱 높여 내장재를 넘어 외벽 마감재까지 선보일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목표를 이야기했다.
“인테리어 전문가들은 내벽부터 천장과 바닥까지 단일한 자재로 완벽하고 깔끔하게 마감을 하는 공간을 꿈꾸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아직까지 모든 부분에 적용할 수 있는 마감재는 나오지 못한 것이 현실이죠. 저희는 이제 실내 내벽 마감재로 시작했지만, 실내 모든 곳, 나아가 외벽 마감재까지 모두 커버하는 친환경 자재 기업으로 거듭나 고객들의 바람을 현실화시키고 싶어요. 그것이 저희 장기적인 목표이자 비전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