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서비스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인프라 경쟁의 초점도 단순한 연산 성능을 넘어 전력 안정성, 화재 안전성, 에너지 효율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고성능 GPU를 대규모로 운영하는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전력 사용량과 열 발생 부담이 크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와 냉각 기술, 비상 전원 장치, 에너지 저장 장치를 결합한 통합 인프라 설계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겨냥해 국내 AI 인프라 기업과 배터리 전문 기업이 AI 모듈형 데이터센터(PMDC)와 차세대 전력 솔루션을 결합한 모델 개발에 나선다. 엘리스그룹은 지난 6일 스탠다드에너지와 ‘AI PMDC 및 전력 솔루션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엘리스그룹의 AI 모듈형 데이터센터인 ‘엘리스 AI PMDC’에 스탠다드에너지의 바나듐이온배터리(VIB) 기술을 접목해 고효율 전력 인프라 솔루션을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이번 협력의 핵심은 AI 데이터센터 운영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세 가지 문제를 동시에 다루는 데 있다. 첫째는 고성능 GPU 가동에 필요한 전력 안정성이다. 둘째는 데이터센터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재 안전성이다. 셋째는 장시간 대규모 연산을 감당하기 위한 에너지 효율이다. 양사는 AI PMDC와 배터리 기반 전력 솔루션을 결합해 이들 과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는 인프라 모델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스탠다드에너지가 개발한 바나듐이온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배터리와 달리 물을 주성분으로 하는 전해액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회사 측은 이 특성으로 화재 발생을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고성능 GPU 기반 AI 데이터센터처럼 전력 부하와 열 발생이 큰 환경에서는 배터리의 안전성과 전력 공급 안정성이 전체 인프라 운영의 신뢰도와 직결된다. 바나듐이온배터리가 AI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의 대안으로 주목되는 배경이다.
엘리스그룹은 지난해 아시아 최초이자 국내 최초로 수랭식 B200 AI 데이터센터를 상용화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력은 이 같은 수랭식 AI 데이터센터 운영 기술에 바나듐이온배터리 기반 전력 솔루션을 결합해, 안전성과 효율을 강화한 차세대 AI 데이터센터 모델을 개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랭식 냉각 기술이 GPU 운용 과정의 열 문제를 다룬다면, 배터리 기반 전력 솔루션은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에너지 관리 문제를 보완하는 역할을 맡는다.
양사는 PMDC 환경에 맞춘 모듈형 비상 전원 장치(UPS)와 에너지 저장 장치(BESS)를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 UPS는 예기치 않은 전력 장애 상황에서 데이터센터 운영을 보호하는 장치이며, BESS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점에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AI 데이터센터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두 장치가 데이터센터 구조와 전력 사용 패턴에 맞게 설계돼야 한다.
에너지 관리 시스템(EMS) 고도화도 협력 범위에 포함됐다. 양사는 AI를 활용해 에너지 사용 패턴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방식으로 PMDC 운영 효율을 높일 계획이다. 엘리스그룹은 PMDC 운영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적용 기술을 지원하고, 스탠다드에너지는 바나듐이온배터리의 안정적 공급과 기술 표준화를 담당한다. 단순히 배터리를 공급하는 수준이 아니라, AI 데이터센터 운영 환경에 맞춘 전력 관리 체계를 함께 설계하는 방식이다.
이번 협력 모델은 향후 정부 주도의 국가 AI 데이터센터(AIDC) 구축 사업과 공공·민간 데이터센터 시장 공략에도 활용될 전망이다. AI 인프라 수요가 공공 연구, 산업 현장, 기업용 클라우드, 교육·연구 환경 전반으로 확대되는 만큼, 설치 유연성과 전력 효율을 높인 모듈형 데이터센터 모델의 활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양사는 일본을 비롯한 해외 시장 진출에서도 협력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김재원 엘리스그룹 대표는 “지속 가능한 AI 인프라 운영을 위해서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에너지 솔루션이 핵심 요소”라며 “엘리스그룹이 국내에서 선도하고 있는 AI 모듈러 데이터센터 기술 역량에 스탠다드에너지의 배터리 기술을 결합해 AI 가동에 최적화된 에너지 효율성을 확보하고, 장소 제약을 줄이면서도 안정적인 고성능 컴퓨팅 환경을 제공하는 차세대 AI 데이터센터 표준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김부기 스탠다드에너지 대표는 “전력 인프라는 AI 산업의 최종 승부처가 될 것”이라며 “물리적 공간 제약을 해결한 AI PMDC와 안전성이 검증된 VIB ESS의 결합은 AI 데이터센터 확산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며, 전력망 부담은 낮추고 효율은 높이는 최적의 해법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AI 데이터센터 경쟁은 더 많은 GPU를 확보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고성능 연산 장비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전력 체계, 열 관리 기술, 비상 전원 장치, 에너지 저장 시스템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번 협력은 AI 인프라 시장에서 연산 성능과 전력 솔루션을 통합한 국산 모듈형 데이터센터 모델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결국 AI 인프라의 확산 속도가 빨라질수록 데이터센터의 전력·안전·효율 문제는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수랭식 AI PMDC와 바나듐이온배터리 기반 전력 솔루션의 결합이 국내외 AI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어떤 표준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