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일자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직업훈련 기간의 소득을 지원하는 새로운 사회보장제도 도입 방안이 제시됐다. 직무 전환이나 취업 준비에 필요한 교육을 받는 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향후 육아·돌봄까지 보장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는 26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AI 대전환 시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역량개발과 소득보장 중심으로'를 주제로 공개포럼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에서는 AI 기술 발전이 고용과 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할 인적 역량 강화와 사회안전망 개편 방안을 논의한다.
가장 구체적인 정책 대안은 홍경준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제안한 '국민활동급여제도'다. 기술 변화로 재교육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존 직업훈련 지원만으로는 생계 부담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홍 교수는 제도를 두 단계로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국민역량급여'를 마련해 재직자와 이직자의 경력 전환 교육,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의 취업 준비 훈련을 지원하자는 구상이다. 훈련 참여자에게 일정 수준의 급여를 생애 최대 12개월까지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후에는 지원 대상 활동에 육아·돌봄을 추가하는 '국민활동급여'로 제도를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기여금을 활용한 소득비례 보충급여를 도입하고 지원 기간도 최대 24개월로 늘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직업능력 개발이나 돌봄으로 경제활동에 공백이 발생하더라도 소득을 일정 부분 보전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AI 도입을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고용 기회로 연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AI 기술 확산으로 신규 채용이 위축되고 고용 불안정이 커질 가능성에 주목했다. 경제성장의 성과가 일자리와 가계소득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술 설비뿐 아니라 노동자의 숙련 형성에도 투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중소기업의 AI 전환(AX) 지원체계를 바꾸는 방안을 제시했다. 장비 도입과 기존 직원 교육에 집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의 업무체계와 조직을 AI 환경에 맞춰 재설계하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 청년의 첫 직장 경험과 중장년층의 기존 직무 전문성을 활용하는 기회를 결합하면 기업의 AI 활용 역량과 고용 기반을 함께 강화할 수 있다고 봤다.
사회보험의 가입 기준을 근로계약이 아닌 소득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장 연구위원은 국세청 소득자료를 활용해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정 사업주와의 계약을 전제로 하는 현행 체계에서는 비전형적인 고용 형태로 일하는 사람들을 충분히 보호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미래대응기금에서도 인재 양성에 필요한 재원을 우선 배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AI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성과를 사회 전체에 배분할 수 있는 재정체계의 필요성도 주요 의제로 다뤄진다.
여유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AI에 의한 노동 대체와 소득 양극화가 심화할 가능성을 지적하며 사회보험의 보편성과 재분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소득이 낮거나 고용이 불안정한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를 제시했다.
장기적인 재원 마련 방안으로는 미래대응기금의 일정 비율을 활용해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별도 국부펀드를 조성하는 구상을 내놨다. 이와 함께 조세체계 개편, 공적펀드의 지분투자, 한국형 기본자산 제도, 부의 소득세 등 새로운 분배·재분배 수단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AI 산업에 대한 투자가 국민의 생활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기술 인프라와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AI로 높아진 생산성과 경제적 성과를 노동자의 역량 강화와 사회안전망에 다시 투입해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에서는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보완 과제도 제시됐다. 최영준 연세대학교 교수는 직업훈련이 실제 취업과 숙련 향상으로 연결되도록 교육체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금급여뿐 아니라 사회보장과 공공서비스를 통해 국민이 누리는 생활 자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제언했다.
남찬섭 동아대학교 교수는 국세청 신고소득을 활용해 사회보험 가입 자격과 기여 이력을 자동으로 관리하고, 기업의 기여 방식도 목적세 형태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민활동급여 역시 생애 전반에 걸친 다양한 경제·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체계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이번 포럼에서 제시된 의견을 토대로 AI 전환기에 필요한 포용적 성장 정책을 구체화하고 향후 대통령 자문과 정책 제언에 반영할 계획이다. 다만 국민활동급여 등 개별 정책 대안은 발표자들의 제안으로, 정부의 도입이 확정된 제도는 아니다.